소설리스트

혈귀귀환-278화 (278/316)

278화 기괴한 꽃

태사의 죽음에 황태자가 감탄한다.

“역시 황 대협이십니다. 평소에도 그런 잔악무도한 독을 지니고 다시니시는군요. 철저한 준비성에 또 한 번 감격했습니다. 저도 배워야겠습니다.”

“…….”

자기 피를 먹였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아무튼, 황극린은 또 한 번 자신의 피가 가진 힘을 시험할 수 있었다.

“바로 갈 것이냐?”

“그렇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는 저 검은 연기에 속수무책이거든.”

뇌불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황극린이 저 검은 연기에 몸이 닿고도 무사할 수 있는 건, 단순히 무공이 강해서는 아니었다. 분명 황극린이 강한 건 맞지만, 이곳에 있는 무당의 장문인이나 뇌불 그리고 언치골이 결코 약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검은 연기에 버티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심지어 뇌불 또한 혈풍뇌전신공의 오의 중 만뇌로 연기를 밀어내려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먹혔을 뿐이었다. 인간의 생기만 빨아먹는 게 아니라 기(氣)까지 흡수하는 것이었다.

황극린은 이에 대하여 이야기할 게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흑주에게 말한다.

“흑주, 넌 여기 남아서 사람들의 몸에 침범한 독을 먹어 다오.”

- 끼이…….

가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황극린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녀석은 잘 알고 있었다. 황극린은 필요한 명령만 한다.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흑주가 따라붙어도 상관없었을 테지만, 만약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잠시 황극린과 떨어져 있는 것과 미움을 사는 것.

당연히 전자를 선택한다. 흑주는 영리했다. 방금 죽은 태사보다 더.

“조심하거라.”

“금방 돌아오겠소.”

모두가 황극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엔 절망이 아닌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황극린은 자금성에 내려앉은 저주에 대항할 수 있는… 아니, 압도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자금성 내에 없었다.

심지어 태사를 보낸 그녀마저도 말이다.

* * *

“뭐지? 대체 저놈은 뭐지?”

여인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경에서 만들어진 지독한 악의. 그것은 인간을 섬멸하기 위한 하늘의 의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사내는 무엇이었을까? 황극린이라 했던가? 이름 석 자는 들어 본 적이 있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했다.

‘대체 어떻게?’

의문이 차오른다.

그놈의 정체가 무엇일까. 설마?

여인의 생각이 무언가에 닿았을 때,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흥, 말도 안 되지.”

여인은 자신감을 갖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눈동자에 검은 마기가 일렁거리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깟 인간 놈 하나 잡았다고 기고만장하구나. 여기까지 왔다면 필히 중독되었을 터.”

여인이 확신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갔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흑무에 적응할 수가 없다. 흑무는 인간의 생기를 빨아먹는다. 막대한 내공을 지녔다고 해도 잠깐뿐이다. 흑무는 더 강한 힘을 원하는 포식자였다.

“후후후, 여기까진 온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여인이 자신감을 내비침과 동시에.

쉬이잇-!

작은 뇌전의 구체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들었다.

콰지지지직-!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황극린은 힘을 아껴 두고 있었다. 태사와의 전투에선 사용하지 않았던, 황극린의 비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여인의 비명이 흑무를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 * *

“허억! 허어억!”

흑무의 힘을 빌려 여인이 겨우 도망쳤다. 황극린이라는 놈은 괴물이었다. 인간 따위는 모두 발아래 놓으리라 생각했던 그녀마저도 다시금 끔찍한 마경으로 되돌아가야 했을 정도로 말이다.

꾸르르륵!

꾸륵!

도원향이라 불리고 있다.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들은 여기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꽃. 굳이 분류하자면 꽃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괴상망측한 비늘을 가지고, 인간을 유혹하는 향을 뿜어내며, 흑무를 배설물로 내뱉는…….

“마기가 더 많아졌구나!”

당연했다.

자금성의 인간을 거의 다 잡아먹었으니까. 특히 황제의 핏줄을 먹고 난 뒤에 더욱 흉포해졌다. 다행히 여인을 노리지는 않았다.

“제기랄! 대체 뭐지?”

고민해 봤지만,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 따위가 어떻게 저리도 강할 수 있단 말인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약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인간은 대부분 짐승 사이에서 최하위 피식자일 뿐이다.

‘난 여기서 마기를 먹으며 자라 왔다. 그런데도 일방적으로 패배했다.’

그녀는 흑무를 다룰 능력이 있었다.

천하칠대고수라 불리는 놈들에게 태사라는 멍청한 인간을 먼저 접근시켜서 흑무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흑무도 통하지 않는다. 본신의 힘으로도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여인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백 년… 아니, 십 년만 지나도 인간들은 이 일을 모두 잊겠지.’

최소한 마경에서 살아가는 한, 그녀는 평생토록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원래 그녀가 머물렀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마경의 가장 후미진 장소. 꽃이라 불리는 존재가 배설물처럼 내뱉은 흑무조차도 거의 닿지 않는 곳이다.

이때까지 기다려 온 세월이 얼만데, 여기서 포기하리?

여인이 오랜만에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늦었구나.”

“……!”

여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어떻게?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지?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건, 그나마 꽃에게 호의를 받는 여인과 그녀가 허락한 인간뿐이었다. 그마저도 흑무에 견딜 수 없으면 들어올 수 없었다.

그가 들어온 것도 놀라운데, 어떻게 먼저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여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황극린.”

“이름이 아닙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래, 뭘 알고 싶지?”

황극린은 저 멀리 보이는 태산과도 같은 꽃을 흘끔 바라본 후에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인간이 맞으십니까?”

“맞다.”

황극린이 되묻는다.

“넌 인간이 아닌가.”

“전…….”

여인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사내가 인간이 맞는가? 어쩌면 자신을 시험하는 게 아닌가? 인간이 어떻게 흑무의 기운을 받고도 저리 멀쩡할 수 있는가?

“호리정입니다.”

“여우라고?”

“여우가 아닙니다. 그런 미개한 것들과는 다릅니다!”

호리정이 발작하듯 외치다가 금방 목을 움츠렸다. 외관은 영락없는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여우도 아니란다.

“넌 어떻게 사람처럼 변했지?”

“제가 선택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위대한 흑무에게 선택을 받아 저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황극린은 바다의 마경에서 보았던 현무를 떠올렸다.

어쩌면 현무나 호리정이나 그리고 중심부에서 쉴 새 없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거대하고 징그러운 꽃이나.

다 비슷하다.

본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했다. 무림인이 겪는 환골탈태와는 조금 성질이 다르다. 환골탈태는 무공을 펼치기 가장 적절한 신체를 가지게 되는 일종의 무공의 경지라 말할 수 있었다.

“역시 그렇군.”

황극린의 의문은 모두 지워진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가서 뭘 하려 했지?”

“제가 원하는 건…….”

여인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을 먹이로 던져 주는 거다!”

우우우우우-!

거대한 줄기. 채찍과도 같은 그것이 휘둘러진다.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움직인다. 저게 정말 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콰앙!

지축이 흔들렸다.

이미 호리정은 도주하고 있었다. 황극린을 두려워했지만 저 꽃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일단 저것부터 처리해야겠군.”

쉴 새 없이 거목의 몸통처럼 굵은 줄기를 휘두르는 꽃. 거기다 자금성 위로 피어오른 연기와는 질이 다른 흑무가 사방에서 황극린을 죄어 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황극린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저들이 가진 힘은 강하다.

단순히 내력의 양으로 비교하자면 황극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저들은 ‘전투’하는 법을 모른다. 하물며 대지 위에서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고양이나 개도 싸우는 방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저것들은 단순히 직선으로 공격해 볼 뿐이었다.

쿵! 쿠웅! 쿠우웅!

얼핏 매섭게 보인다. 애초에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 아니었다면 이미 줄기의 공격에 육신이 터져 나갔으리라. 하지만 황극린은 그 거대한 공격을 쉽게 피해 냈다.

‘오히려 현무 놈보다 멍청하군. 꽃이라 그런가.’

황극린은 줄기를 타고 달려 나갔다. 결국, 이것과 연결된 것은 꽃이었다. 괴이한 그것은 황극린이 달라붙은 것을 인지했는지, 황극린을 향해 줄기를 휘몰아쳤다. 결국, 스스로의 몸을 공격한 셈이다.

까득!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꽃의 줄기가 부서졌다. 붉은 피가 아니라 검은 진액이 사방에 흩어져 비처럼 흘러내린다. 그러자 마경 전체에 감돌던 흑무가 그곳으로 모인다. 마치 그것을 먹으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걸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황극린은 어느새 꽃의 중심에 도달했다.

그의 손에서 검은 뇌전이 솟구쳤다. 동시에 꽃의 중심부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 * *

‘저놈은 분명히…….’

황극린은 방금 꽃의 중심부에서 튀어 나간 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다름 아닌 만뇌문이 있는 진법 안에서 말이다. 그와 싸운 적도 있었다. 황극린이 결국 승리했지만, 북해빙궁주와 진법 내라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령.’

뇌불을 납치한 놈이었다. 그놈이 과거 중원에 명성을 떨쳤던 살수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령이라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꽃의 기운이 강맹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거기다 놓쳐 버렸다.

콰아아아아-!

꽃에서 검은 액체가 솟구친다. 이건 황극린이라도 그냥 닿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내력이 녹아내린다. 마치 암천성휘의 힘과 같다. 그래서 황극린도 검은 뇌전으로 몸을 보호한다. 내력의 소모가 심각했다.

“죽은 건 아니로군.”

징한 생명력이었다. 아마 유령이 숨어 있던 곳은 꽃의 심장과도 같은 부위였으리라. 거기가 크게 잘려 나갔는데도, 꽃은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학습 능력은 있는지, 제 몸의 중심부에 도달한 황극린을 줄기로 공격하진 않았다.

‘천화련의 비밀 살수가 여기에 잠입했다는 말은.’

설마 천화련이 이번 사건의 배후였다는 말일까?

황극린은 배교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이 숨겨 온 저력이라면 분명히 가능했고, 현 무림에서 마경을 가장 잘 아는 건 그들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유령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꼬여 버렸다.

‘천화련이 전쟁을 일으킨 놈들이라면 대체 뭘 원했던 거지?’

물어볼 사람이 있긴 했다.

거의 다 죽어 가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살려… 살려 줘어어어…….”

꽃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검은 진액.

발목도 닿지 못할 정도로 바닥에 고인 상태였지만, 호리정은 마치 바다에 빠진 듯이 땅 위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흑무를 다룬다고 했지만, 이것마저 버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황극린이 호리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피를 호리정에게 먹여 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 * *

“저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

“인간의 탈을 쓴 요괴? 마물? 뭐 그런 것 아니오?”

사대마제라 추앙받는 만독문의 문주 독수마제.

그리고 돈황의 지배자 기련노괴. 두 사람은 천화련주에게 패배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화경에 이른 고수들은 엇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화경은 무림인이 닿을 수 있는 궁극의 경지가 아니던가?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이리 클 수가 없다.

화경 위에 또 다른 경지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독수마제의 한계이기도 했다.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할 때, 무인은 발전이 없는 거다. 애초에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었지만 말이다.

“혈마교주 그놈이 저자의 백 초를… 아니, 십 초를 버틸 수 있으리라 보시오?”

“실로 무신이 다름없더구나. 왜 혈교가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으며 마교가 여태 십만대산에서 숨어 있던 것인지 이해가 된다.”

“감탄하고 있을 때요? 심각한 문제잖소. 저놈이 마음만 먹으면 천하칠대고수니 사대마제니 다 죽일 수 있는 것 아니오?”

“뭐가 문제인가. 그는 우리를 살려 줬지 않은가?”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겠소? 들어 보니 저놈은 인간의 피를 탐한다던데, 우리 피를 노리는 게 아니겠소?”

“그런 인간이 천화련주 하나뿐이겠는가? 그리고 따르기 싫으면 어쩔 텐가. 어차피 패배했을진대.”

“…….”

기련노괴의 한심한 태도에 독수마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천화련주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비무를 하기 전 약속한 대로 그가 죽을 때까지 뒤를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천화련주를 이길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터이니, 두 사람은 평생 천화련주의 졸개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근데 저놈이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오?”

“섬서성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

“갑자기 왜?”

“글쎄. 저런 존재라면 다 생각이 있지 않겠느냐?”

패배한 뒤로 천화련주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버린 기련노괴였다. 무인이란 그런 존재다. 자신보다 강한 이를 만나게 되면 그를 추앙하게 된다. 솔직히 독수마제도 천화련주의 고강함에 가슴이 벅찬 상태이기도 했다. 그 또한, 더 높이 올라갈 길이 보였으므로.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천화련주를 따라다닐 수는 없다.

‘기회가 있다면 도주해야 한다. 이대로는 평생 끌려다닐 것이야.’

예상 밖에도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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