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64화 (264/316)

264화 강림

현무의 냄새가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들이 현무와 같은 ‘마물’이거나, 혹은 마경에서 자라 온 자들이거나. 사실 둘 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황극린 겪어 본 마경은 모두 현세에 강림한 수라장이라 할 만큼 인간에겐 지옥도나 다름이 없었다. 회계산의 마경은 인간은 생존할 수 없는 폭풍이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었고, 바다의 마경은 현무가 죽은 뒤로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니었다.

마물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으니 후자가 가능성이 있다.

마경에서 살아왔기에 그들의 몸에 마경에서 나는 그 묘한 냄새가 배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황극린의 질문에 소년과 소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황극린은 진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정말 마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로군. 애초에 내가 본 마경은 고작 두 개가 전부니까.’

그러니까 납득할 만했지만, 그래도 설명이 더 필요했다.

“대협님,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평소 같았다면 아니라고 딱 잡아뗄 것이었지만, 하종은 은인이기에 예를 갖춰 묻는다. 그들의 출신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됐다.

“냄새가 나는군.”

“내, 냄새요?”

“내가 씻고 가자고 했잖아! 아까 개울이 보였는데…….”

“야, 네가 씻자고 한 곳에서 씻었으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저놈들한테 잡혔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설마 대협님이 씻고 있는 우리도 구해 줬을 거라는 말이냐?”

“자꾸 대협님, 대협님 하면서 귀여운 척을 하고 있네? 평소엔 욕도 잘하는 놈이!”

“뭐어……!?”

이렇게만 보면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마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외관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무공을 배우지 않은 것치고는 꽤 무공이 강했으며, 마경에서 날 법한 냄새가 몸에 배어 있다는 게 황극린에겐 보였지만 말이다.

“너희는 마경에서 왔느냐?”

다시 한번 황극린이 물었다.

그러자 율명이 황급히 대답한다.

“맞아요!”

“율명!”

“뭐? 이미 알고 계신데 속이려고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 그건 그런데…….”

“넌 은인을 속일 생각이었구나.”

“아니야! 난 은인이 걱정돼서!”

“걱정이라고? 넌 저분이 우리가 걱정할 수준이라 생각해?”

“그만.”

조금만 틈을 주면 말다툼을 한다.

위기의 순간에서는 서로를 희생하려 할 만큼 돈독한 우애를 자랑했지만, 평소에는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전형적인 남매의 모습이었다. 황극린은 먼저 두 사람의 결연한 각오를 목격했기에 딱히 미워 보이지도 않는다.

“하나 더 물어볼 게 있다.”

“네, 뭐든 물어보세요!”

“설마 너희가 있었던 마경이 십만대산에 있는 것이더냐?”

“……!”

이제는 두 사람의 얼굴에도 긴장이 서렸다. 마경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꽤 있다. 애초에 중원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었다. 혈마교 내에선 교주가 마경에 자주 출입한다고 알고 있다. 그곳에 당최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할 뿐.

황극린은 혈마교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두 사람의 출신지를 한 번에 맞혔는가?

“교주와 만난 적이 있다.”

“네……?”

“교, 교, 교주라고요?”

“이 근처에 있는 마경은 혈마교가 터를 잡은 십만대산뿐이지. 그렇게 예상한 것일 뿐이다.”

“설마… 교주님의 친우분이세요?”

율명이 묘한 얼굴로 묻는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황극린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친우라고 할 정도로 가깝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적이라고 할까.”

“……!”

두 소년, 소녀가 눈빛으로 의사를 교환한다.

잠시 뒤.

“혹시 마경에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저희랑 함께 가실래요? 어르신들이 저희를 구해 준 보상을 꼭 해 주실 거예요. 제가 가면서 시중은 다 들게요!”

율명의 말에 하종이 안색이 변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우릴 받아 줄까? 우리는 율법도 어기고 도망갔잖아.”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교주가 자주 출입한다는 마경에는 ‘어르신’이라 불리는 존재들과 더불어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그게 어찌 가능할까 싶었지만, 사실 회계산의 마경과 바다의 마경도 다른 곳이라 할 만큼 다르다. 둘 다 위험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을 뿐.

황극린이 소매 속을 뒤져 전음석을 꺼낸다. 아직 만뇌문에선 전달 사항이 없었다. 하기야 황극린이 그렇게나 헤집어 놓았는데, 이제 만뇌문을 쉬이 건드릴 수 있는 놈들은 없었다. 화산파와 소림사가 만뇌문을 지지하고 나섰으니 당연한 일이다.

“가도록 하지.”

“네! 저희가 혈마교도들이 감시하지 않는 길을 알아요! 그곳으로 가면 될 거예요!”

“어, 근데 산맥까지는 말을 타고 가도 되겠는걸?”

“말? 다 죽지 않았……?”

하종이 깜짝 놀란다.

사방을 휘저었던 뇌전. 말들은 모두 죽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반절 이상의 말이 살아 있었다.

보통 저런 강대한 힘을 다룬다면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설명하면 도끼로 채소를 얇게 써는 것과 비유할 수 있었다. 황극린은 채소를 써는 칼보다 더 세밀하고 사람 몸보다 큰 도끼를 다룰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황극린이 얼마나 뛰어난 고수인지 알 수 있었다.

‘이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그래서 저희가 동산을 빠져나왔죠. 솔직히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매번 똑같은 일상에 지쳐 있었다고 할까요? 전 새로운 도전을 엄청 좋아한답니다!”

율명이 마경에서의 생활을 설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황극린의 무심한 눈빛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지만,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칠 주야에 한 번 습격이 있었다고 했나?”

“네. 맞아요. 거긴 짐승들도 뭔가 다르거든요. 엄청 날쌔고 무섭답니다! 물론, 은인께서는 한 손으로 쉭쉭! 없애 버릴 수 있을 테지만요!”

저들이 말하는 짐승이 무엇일까?

영물일까? 아니면 현무와 같은 마물일까?

물론, 영물과 마물이라는 구분도 황극린이 만들어 낸 개념이긴 했지만, 마경에서 살아가는 짐승들이라면 무언가 다른 점이 있으리라.

“그리고 저희는 마경의 초입에서 살아가는 터라 그리 무서운 짐승들은 없었답니다.”

“마경에 혈마교주가 자주 출입한다고 들었는데, 너희 부족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더냐?”

“아뇨. 혈마교주는 이름만 들어 봤어요. 저희가 십 년 넘게 거기서 살았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그렇군.”

자세한 이야기는 그곳에 살아가는 어르신이라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아야 했다.

“여기예요!”

산맥의 초입.

광활한 산맥이 끝없이 펼쳐진 십만대산. 이곳은 혈마교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정파의 무림인도 침범할 수 없었던 천혜의 요새였다.

“여기서부턴 안녕이야. 잘 살아!”

말을 풀어 주곤 세 사람은 산맥의 기슭에서 빙빙 돌아가며 안쪽으로 진입했다. 황극린의 은신술이라면 정면으로 쭉 나아가도 상관없었겠지만, 아이들은 기척을 숨기는 데 능하지 않았다.

속도가 매우 느렸지만 황극린은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십만대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세 사람이 십만대산 안으로 진입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이곳으로 가면 매복이 있다.”

“네? 여긴 매복이 없을 텐데…….”

하종이 고개를 갸웃하자 율명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은인께서 거짓말을 할 것 같아?”

“아니! 대협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닥쳐. 은인, 어디로 가면 될까요? 조언을 부탁드릴게요!”

“이쪽으로.”

아이들의 기억이 옅어진 건지 아니면 그들이 나와 있는 동안 십만대산의 분위기가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길의 반절 이상은 틀렸다. 그대로 갔다면 혈마교도에게 발각되었으리라.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이젠 혈마교도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십만대산이 품고 있는 거대한 정기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기괴한 공간에 도달했다.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제 여기서 보름 정도만 더 나아가면 입구에 도착할 수 있어요!”

“정말 여기에 다시 오게 되다니…….”

그렇게 두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황극린이 말한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네?”

“두 사람 다 이리로 와라.”

“……?”

잠시 당황하던 소년, 소녀가 황극린이 팔을 벌리자 확 안겨 들어왔다. 황극린이 두 사람을 안은 채로 안개 속으로 달려갔다.

“꺄악!”

“율명, 소리 지르지 마!”

“읍!”

무언가 공포에 질린 듯한 두 사람. 안개로 가득 찬 공간 자체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은 진의 초입이었다. 회계산의 마경처럼 그 기운이 뻗어 있는 어느 곳이든 입구가 될 수 있다.

- 까악, 까아아아악!

황극린이 달려갈수록 귀곡성이 점차 가까이 다가온다.

하종과 율명의 손이 황극린의 소매를 꽉 쥐는 순간.

팟!

세 사람이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왜인지 두 아이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 * *

“아이들을 찾으러 가야 합니다!”

하종과 율명의 아버지.

둔저는 당장이라도 동산을 벗어나야 한다고 어르신들을 설득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둔저의 말을 깨끗하게 무시했다.

“어르신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저 혼자서라도 나가겠습니다!”

그 말에 어르신들이 시선을 마주한다.

세 명의 어르신, 칸이라는 칭호를 가진 그들의 힘은 동산 안에서는 가히 헤아릴 수 없었다.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 둔저는 심장이 터져 나가는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옷이 젖어 들었다.

“너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나갈 수 없다.”

“그 아이들이 아쉬운 건 우리도 같다.”

달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둔저는 어르신들이 반응을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생겨났다. 어르신들도 역시 두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 어쩌면 십만대산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이미 그 아이들은 경계를 넘어섰다.”

그러니까 더욱 구해 내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저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구하러 나가겠습니다!”

처음으로 어르신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러도록 하라.”

“저, 정말이십니까?”

“할 수 있다면.”

“예?”

설마 가지 못하게 제압하려는 걸까?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내뿜는 압박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놓아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어르신 중 한 명이 둔저의 떨떠름한 모습을 딱하게 여겼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동산의 기운을 품은 자는 경계를 넘어서면 필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예?”

죽음이라니?

바깥 세상에 괴물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니다. 동산에 가득한 짐승들이 더 무섭다. 둔저는 과거에 만난 ‘혈마교주’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가 설명하기로 둔저가 나온다면 능히 천하백대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칭찬해 주었다.

“그와 만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

“그는 우리를 유혹하여 끌어내려는 마귀(魔鬼). 그의 말을 믿고 그대로 나간다면 너는 죽음을 맞이하리라.”

하지만 둔저는 공포에 질리기보단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지금 그 말은…….

“어르신들의 말씀은 제 아이들이 죽었다는 말씀이십니까?”

“…….”

어르신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생각한 둔저가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려고 할 때.

“예언서에 따른다면 언젠가 동산을 구원할 존재가 이곳에 강림한다고 한다. 우리는 평생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 대에서 존재가 강림하지 않는다면 다음 대까지 기다려야 하는 여정이다. 우리는 끝까지 생존해야 한다. 둔저, 너 또한 어르신이 될 자질이 있다.”

“…….”

어르신들은 그들 부족이 살아가게끔 지탱해 주는 절대자들이다.

그들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둔저에겐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둔저는 그것에 화를 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예언이라는 게 정말 있습니까?”

어르신들은 침묵한다.

평생을 그것만 믿고 살아왔다. 당연히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들은 그것을 믿고 끝까지 동산 내에서 부족을 지키는 사명을 완수하면 된다.

“저 드높은 단상에, 하늘에서 인간이 강림한다는 그런 전설을… 예언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입니까?”

사실 강림에 대한 전설은 부족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가?

어떻게 인간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인가?

거기다 그런 존재가 왜 동산을 구원해 준다는 말인가?

어르신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였다.

쿠우우우웅-!

“뭐야!”

“무슨 일이냐!”

“황랑 늑대들이 쳐들어왔나!”

어르신들조차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웬만한 짐승의 습격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들이 말이다.

“뭐야, 저건……?”

하늘에서 인간이 내려오고 있었다.

거기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부족원들이 익히 아는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아버지!”

“아빠!”

둔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어르신들을 바라본다.

대체 이게 뭔 상황이냐 묻는 얼굴이다.

“어, 어르신들……?”

“…….”

당연히 어르신들도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