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62화 (262/316)

262화 괴물

“황 공자님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청성산에 있어야 할 황극린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이곳은 구룡천가의 장원이었다. 황극린이 구룡천가와 어떻게 연이 닿아 있단 말인가?

“구룡천가의 가주가 결국 마 소저를 불렀구려.”

“설마 천 가주가 절 선택한 이유가……?”

놀라움의 연속이다.

대체 뭐라고 했길래 구룡천가의 가주가 제1공자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천흉의 정체가 탄로 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다.

거기다가.

“은공, 이리도 빠르게 다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축골공(縮骨功)을 익힌 천흉.

그녀는 마령의 전속 시비로 분장하여 평범한 외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는 황극린을 보자마자 예를 갖춰 인사한다. 마령은 또 한 번 당황했다. 시비로 변장하여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성격은 마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드셌다. 그녀에게 부탁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 천흉이 황극린에게 극진한 예를 보인다.

마령은 천흉이 혈마교에 뜻이 있어서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뭔가 다른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황극린을 은공으로 칭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마 소저가 소교주의 위에 오를 수 있겠소?”

그 질문에 마령 또한 긴장한다.

천흉은 아직 마령에 대하여 이렇다 할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령이 소교주가 될 확률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까?

“반반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경쟁자들도 만만치 않아서 말입니다.”

“그렇군.”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모든 것을 전수해서 소교주로 만들겠습니다.”

“고모님…….”

반반이라 평하는 것도 놀라운데, 천흉이 모든 것을 전수해 준다니?

그녀의 무공은 혈마교의 것과 비교해도 이질적이다. 그걸 모두 익힌다면 제1공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저도 제 모든 것을 바쳐서 소교주의 위에 오르도록 하겠습니다.”

천흉과 마령의 의지가 느껴지고 있다. 뭐, 황극린이 여기서 더 해 줄 것은 없었다. 마령이 소교주가 되면 좋겠지만, 그걸 위해서 더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제 마령에게 달린 일이다. 구룡천가까지 마령을 지원할 테니, 그녀가 바라던 세력의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을 때.

“천륙자입니다.”

구룡천가의 가주가 찾아왔다.

“네, 무슨 일인가요?”

“제1공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군요.”

마령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마 자존심이 상했으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지존의 길을 걸어갔던 제1공자였다. 오로목제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구룡천가가 제3공녀인 마령을 선택했으니 당연히 궁금하리라.

마령은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마교의 지존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꺾어야 하는 상대일 뿐. 만남이 부담스럽다고 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황극린 또한 같이 일어섰다.

어차피 여기서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소교주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제1공자라는 놈이 어떤 사내인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죽립을 눌러쓴 황극린과 마령이 밖으로 나간다.

그 뒤를 시비로 변장한 천흉이 따랐다.

* * *

“대체 뭘 믿고 마령을 선택했을까?”

제1공자. 그는 외모면 외모, 지략이면 지략, 무공이면 무공, 모든 것이 뛰어났다. 그는 마도삼가의 출신은 아니지만, 교주가 얻은 첫 번째 자식이었고 그의 재능을 대다수 물려받았다.

그의 혼잣말 같은 질문에 부교주 섭혼요희가 답한다.

“새로온 시비가 마음에 걸리는군요. 알아보고는 있지만 어떤 가문에서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위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그 시비가 구룡천가의 사람이라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구룡천가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기고만장하진 않았으면 좋겠군.”

그러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구룡천가는 오로목제의 패자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제1공자인 마영비를 따라잡았다고 생각한다면?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오히려 제3공자가 훨씬 무섭다.

경쟁자가 강해지는 건 좋다.

그들은 마영비가 강해질 계기가 될 테니까. 그는 강자존의 혈마교에서 지존이 될 사내였다.

“제가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저 멀리서 마령이 나타났다. 마영비가 눈을 빛낸다. 그녀의 뒤에는 의문의 시비뿐 아니라 죽립을 눌러쓴 사내가 있었다.

“제1공자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 절 찾아오셨죠?”

“동생을 찾아가는 데 이유가 필요하겠느냐?”

“설마 절 동생이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럼 동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마영비와 마령의 신경전.

하지만 마영비는 마령을 그리 견제하지 않는 듯하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마령을 바라보다가 옆을 바라본다.

시비는 소교주 후보인 마영비와 부교주 섭혼요희가 있음에도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너, 앞으로 나와 보도록.”

“저 말인가요?”

섭혼요희가 천흉을 꼭 집어서 불렀다.

“나서지 말거라.”

“예, 공녀님.”

마령이 여유롭게 받아친다.

부교주가 직위가 높았지만, 마령의 전속 시비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었다. 평소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섭혼요희의 반응은 달랐다.

“나오지 않는다면 죽이겠다.”

“부교주, 비무가 시작되기 전까지 서로 전투를 금한다는 교주님의 명령을 무시하려는 건가요?”

그러자 섭혼요희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머, 제3공녀께서는 모르시는 게 있답니다.”

“뭘 모른다는 거지?”

“오로목제로 소교주 후보들을 다 보낸 이유가 뭘까요? 흑마질풍단까지 함께 말이에요.”

마령의 눈빛이 진중하게 변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혈마교의 교주가 내린 명령은 후보들 간의 전투를 금한다는 내용이다. 부교주의 후보를 따르는 세력들 간의 전쟁을 금한다는 게 아니었다.

비무일에는 소교주 간의 무위를 보겠지만, 그 전까지는…….

‘우두머리의 자질을 보겠다는 거야.’

지금은 오로목제의 거대 가문이 각자 한 명씩 후보를 맡고 있다. 하지만 비무일이 다가오면 거대 가문들은 가장 확률이 높은 후보에게 몰릴 것이다. 평화롭게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후보들의 성격상 그건 불가능하다.

당장 지금부터 전쟁이었다.

“네 정체를 밝히고 살려 달라고 사정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여기서 죽는 수밖에 없겠지.”

섭혼요희의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녀는 혈마교에서 생존하여 정점에 이른 존재였다. 한낱 시비 따위가 그녀의 살기를 견디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천흉은 보통 시비가 아니었기에 표정도 변하지 않고 그녀의 살기를 받아 냈다.

마영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만으로 보통 시비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녀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설마 부교주급에 이른다고 상상할 수는 없었다.

섭혼요희의 살기가 더욱 거세지고 공간에 서린 긴장감이 극에 달하려 할 때.

“그럼 내가 너를 죽여도 된다는 말이로군.”

“……!”

그 누구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실상 섭혼요희는 혈마교주 바로 아래의 마인이었다. 혈마교의 이인자는 소교주가 될 터였지만, 단순 무력으로는 섭혼요희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이 많았다.

그녀가 작정하고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기에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서야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런데 죽립을 쓴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히려 섭혼요희가 당황할 수준이었다.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지?”

“3공녀의 후원자라고 할 수 있겠지.”

“감히!”

섭혼요희.

그녀가 새하얀 검신을 자랑하는 검을 뽑았다. 검을 뽑기만 했는데도 살을 에는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죽립을 쓴 사내, 황극린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휘두를 테면 휘둘러 보라는 듯이 앞으로 다가간다. 섭혼요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쉬익.

섭혼요희가 검을 휘둘렀다. 평소였다면 마영비의 명령을 기다리고 행동했으리라. 하지만 황극린이 조금씩 다가오니 심적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은 부교주 섭혼요희에게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모습이다.

마영비의 눈이 가늘어진다.

‘섭혼요희가 기세에서 밀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존이라 불리는 존재를 제외하곤 섭혼요희를 저리 당황케 하는 존재는 혈마교 내에서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마도삼가의 가주들 앞에서조차 당당한 섭혼요희였으니, 그녀가 당황하는 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죽립 사내는 여유롭게 섭혼요희의 일격을 피했다.

거기다 짧은 순간 역공까지 가했다.

쿠당탕탕!

간단하게 주먹을 내지른 것 같았지만, 그 주먹에 담긴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섭혼요희가 그대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구룡천가의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저런 주먹질로 섭혼요희가 죽진 않았겠지만, 사내의 무위가 최소한 부교주급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만.”

마영비가 결단을 내렸다.

그가 이끄는 세력엔 섭혼요희 하나만이 있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흑마질풍단도 그의 손에 떨어져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모든 전력을 끌고 와서 이들을 압박할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내키지 않았다.

“내가 사과하도록 하지. 여기서 멈출 수 있겠는가?”

황극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마령을 바라본다.

그녀는 황극린이 이렇게 나서 줄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놀란 것은 매한가지다. 황극린이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섭혼요희를 한 방에 날려 보내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건가?

‘급이 다르다.’

그의 무위는 혈마교의 소교주 쟁탈 세력들 사이에 난입하면 모든 균형이 초토화될 정도로 강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마령을 제외한 다른 경쟁자들의 지원 세력을 모두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다.

물론, 황극린은 마령의 세력에 속한 인간이 아니다.

그가 마령을 도와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만뇌문 출신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마령 또한 난감할 것이다.

- 여기까지 도와주겠소.

- 가, 감사해요.

마령이 당황을 숨긴 채로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 멍청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황극린이 만들어 준 기회를 날릴 수 있겠는가?

“사과는 받아들이도록 하죠. 하지만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1공자께서도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명심하도록 하지.”

어느샌가 마영비의 뒤에 섭혼요희가 서 있었다. 담장의 일부가 무너질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맞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황극린의 권격을 그대로 맞서는 게 아니라 흘려 보내며 뒤로 튕겨 나간 탓이었다. 그런 사소한 부분을 보더라도 섭혼요희의 실력이 어느 정도로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그 황극린의 권격을 맞고도 멀쩡해 보였으니까.

“구 가주, 담장이 무너진 건 조만간 사람을 보내 배상하도록 하겠소.”

“괜찮습니다. 저 정도야 늘상 있는 일입니다.”

마영비와 섭혼요희가 떠나간다.

평소의 마영비였다면 여유롭게 마령이 가진 패가 뭔지 다 알아내려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황극린의 존재. 그것 하나만으로 마영비의 부동심이 흔들렸다. 마경(魔境)에 진입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았던 그였는데 말이다.

그런 마영비를 지켜보는 마령의 얼굴은 복잡했다.

아마 마영비가 직접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물러갔다는 소문은 금방 퍼지게 될 것이다. 마령은 더 큰 세력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부담감이 컸다.

천흉과 황극린의 지원만으로 소교주가 될 수는 없으니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본신의 무력이었다.

‘황 공자님과 고모님의 지원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추어야 해.’

돌이킬 수 없으며 멈출 수 없다.

그들의 후원에 부끄럽지 않게 강해져야 한다. 그것이 마령의 사명이 되었다.

* * *

“괜찮으냐?”

“예, 괜찮습니다.”

섭혼요희가 평소처럼 여유로운 얼굴로 답한다. 하지만 마영비는 알고 있었다.

“이게 괜찮은 것이더냐?”

“죄송합니다.”

섭혼요희의 상의를 걷어 올렸다. 죽립의 사내에게 맞은 부위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마영비가 눈을 감고 손바닥을 올렸다. 마영비는 기를 ‘읽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내공이 어떤 기운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마영비의 얼굴이 굳는다.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기운이다. 섭혼요희의 뱃가죽 위에 남은 죽립 사내의 기운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스으으으.

마영비의 눈동자가 붉게 변한다. 동시에 그의 손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섭혼요희를 괴롭히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다.

“암천의 기운.”

“역시 그렇습니까?”

“설마 마경의 생존자들이 마령을 지원한다는 건가.”

“위험하군요.”

마경의 생존자.

정확히는 혈마교라 할 수 없었고, 과거 천마의 자리를 놓고 다투던 가문이 생존을 위해 마경으로 도망쳤었다. 현 시대의 생존자들은 혈마교의 마지막 수호자로서 남아 있었다. 마영비가 그들을 회유하려 했지만, 당연히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혈마교주의 명령만 받들었으니까.

“전면적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마영비는 여유롭게 소교주가 될 것이었다. 일부러 경쟁자들을 살려 뒀던 이유는 긴장감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3공자나 1공녀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복병이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었다.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괴물이 마령의 편에 섰다. 이건 혈마교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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