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61화 (261/316)

261화 쟁탈전

“흐, 흑마질풍단(黑馬疾風團)이라고?”

“대, 대체 왜?”

“무슨 일이지?”

모두가 경악한다.

그들이 왜 오로목제에 왔단 말인가? 애초에 혈마교는 신강성의 오롯한 지배자이다. 굳이 정벌하지 않아도 혈마교의 말 한 마디면 오로목제의 무인 모두가 무릎을 꿇으리라. 강자존을 숭배하는 무인들이었기에 강자에게 허리를 숙이는 건 당연하다.

그렇기에 공포에 떨었다.

혈마교는 힘의 논리에서 정점에 오른 존재. 그들의 뜻을 감히 아랫것들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인간이 개미를 짓밟는 데에 이유가 있는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밟을 수도 있는 게 개미였다.

당연히 오로목제의 드높은 성곽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거대한 정문이 열리고, 흑마질풍단이 오로목제에 입성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룡천가에서 그 누구도 출입이 불가하다고 선언했던 게 꿈만 같은 풍경이었다.

대로엔 정말 사람이 없었다. 감히 흑마질풍단을 구경하고자 하는 간 큰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들을 맞이하는 건, 거대 가문의 정예뿐이다.

“어, 어쩐 일로 오로목제에 방문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소교주 후보끼리의 친선 비무를 오로목제에서 하기로 했다.”

“아… 친선 비무를… 예?”

흑마질풍단의 단주 흑룡마군(黑龍魔君)의 눈썹이 올라갔다.

사자군림가의 직계인 곡초량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러시군요! 거대 가문의 가주들께 전갈을 올리겠습니다! 뭣 하느냐! 소교주 후보들께서 오로목제에 방문한 것을 알려라!”

“예! 알겠습니다!”

“소교주 후보들께서 오로목제에 방문하셨다!”

“모두 경배하라!”

“만마앙복! 천마강림!”

“우아아아아아!”

살기 위해서 모두가 발악하듯 소리친다. 물론, 진심으로 소교주 후보의 면면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소리치는 자들도 꽤 있었다. 잔치가 끝난 것은 아쉬웠지만, 새로운 잔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섯 명의 소교주 후보께서 방문하셨다. 오로목제의 가주들은 각자 판단하여 후보분들을 맞이하도록 하라.”

그게 무슨 말인가?

각자 알아서 후보분들을 맞이하라고? 후보끼리의 친선 비무가 있을 예정이니 당분간 오로목제에 머문다는 말이다. 소교주 후보들은 언젠간 교주의 뒤를 이어 천마가 될 위대한 존재들이다. 당연히 객잔 따위에 머무르지 않을 거다. 거대 가문의 가주들은 자신들의 침실을 내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오로목제의 거대 가문은 구룡천가, 사자군림가, 황금세가 그리고 활연의가가 있다.

비무에 참석한다는 소교주 후보가 다섯 명이니…….

한 명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거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각 가문이 대접한 소교주 후보가 소교주가 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소교주가 된 마인이 다른 가문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좀스러운 인간이 소교주가 될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무조건 제1공자를 사자군림가로 모셔야 한다!’

아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소교주 쟁탈전이 벌어진다. 거대 가문으로선 명운을 걸어야 한다. 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한 번에 오로목제의 패권을 가져올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

* * *

“허어, 이거 미안하게 됐소. 상황이 좋지 않군.”

색귀를 죽인 황극린을 거나하게 대접하려 했던 구룡천가의 가주 천륙자.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소교주 후보가 왔는데, 황극린과 함께 있는 게 알려진다면 꽤 난감할 터였다. 은원은 확실히 갚는 사내였지만, 가문의 명운이 달린 상황이었으니까.

“괜찮소. 어차피 술은 즐기지 않소.”

“허허, 정말이오? 세상의 재미를 잘 모르시는군.”

황극린이 술을 즐기지 않는 건,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살수로 살아가던 시절에도 술은 마시지 않았다. 취한다는 건 살수로서 실격이었으니까.

그런 황극린을 보며 천륙자가 눈치를 살핀다.

은인에게 떠나 달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언젠간 은혜를 갚을 터이니, 지금은 떠나 달라는 말이 황극린에게 얼마나 우습게 들리겠는가? 그는 두 달 동안 구룡천가에 머물며 살수를 기다렸다. 그 노고를 어찌 잊으랴?

“소교주 후보들이 오로목제에 왔다고 했소?”

황극린이 먼저 물어 주니 참으로 고마웠다.

그에게 무엇을 해야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구룡천가주가 대답한다.

“오로목제의 지하에는 거대한 비무장이 있소. 수백 년도 더 된 비무장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분위기 하나는 참으로 살벌하오. 비무장 주변엔 수천 구의 해골이 굴러다니고 있소이다. 그곳에서 소교주 후보들이 비무할 생각인가 보오.”

“비무로 소교주 후보를 정하려나 보군.”

“비무 한 번으로 끝나겠소? 혈마교의 소교주 쟁탈전은 많은 이권이 달린 문제라 아마 이번 한 번으로는…….”

“아니, 확실한 것 같소.”

황극린이 확실하다니 천륙자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말만 들으면 헛된 말 같으면서도 믿게 되는 힘. 애초에 그는 살수가 온다는 것도 밝혀 냈지 않았던가?

“오로목제는 신강성의 강자들이 즐비한 곳이오. 강자존의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오. 여기서 비무를 한다는 건 모두에게 소교주 후보의 상하 관계를 확실히 보여 주려 하는 게 아니겠소? 굳이 비무를 더 할 것이라면 오로목제에서 할 이유가 없겠지.”

“듣고 보니 그렇구려.”

거기다 황극린의 말이 틀린 구석이 없다.

굳이 오로목제에서 비무를 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지하 비무장의 분위기가 살벌하다는 이유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위험하군.’

이대로 소교주가 정해지면 혼란스러웠던 혈마교의 내부도 정리될 것이다.

구룡천가가 그나마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외부로 눈을 돌리지 않아서였다.

“황 장로, 정말 미안하오. 은인께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죄스럽지만 나는 가문을 이끄는 몸이오.”

구롱천가의 가주가 안쓰러운 얼굴로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한다.

지금쯤 다른 거대 가문의 수장들이 소교주 후보들을 만나러 움직였으리라. 제1공자를 모시기 위해서 말이다. 당장 떠나지 않고 황극린과 대화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천륙자의 각오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은 무리다. 그 또한 당장 움직여야 한다.

“떠나 달라는 말이오?”

“정말 미안하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소만.”

“그게 무슨 말이오?”

황극린이 천륙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제3공녀 마령을 데려가려는 가주가 있겠소?”

“3공녀 말이오? 으음… 아마 없을 것이오. 제1공녀도 아니고, 제3공녀라면 아마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하리라 보오. 애초에 이제껏 여인이 소교주 후보가 된 적은 없었소이다.”

“그럼 마령을 데려오시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마령은 마도삼가 중 하나인 묵룡천가의 직계였지만, 공자들 중에서도 묵룡천가의 직계가 있다. 강자존을 숭배하는 혈마교에서 남녀의 구분 따위는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낮은 건 사실이다. 이제껏 모든 소교주가 사내였던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천륙자는 그에 대하여 황극린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황극린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잔치를 즐기지 않고 떠날 생각이었소. 마령을 데려오지 않는다면 떠나도록 하겠소.”

“…….”

저리 말하니 더 미안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황극린이 말한다.

“가시오. 엉덩이가 들썩이는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부들대는 천륙자. 야수의 얼굴을 가졌지만, 황극린 앞에선 그런 위엄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은혜는 꼭 갚겠소. 구룡천가 가주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말이오.”

“알겠으니까 가시오.”

“끄응…….”

천륙자가 주춤주춤 일어섰다.

그리고 황급히 달려 나갔다. 오로목제의 패자라도 혈마교 앞에서는 한낱 동네 촌장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 * *

“어이가 없구나.”

혈마교의 제3공녀이자 소교주 후보인 마령. 그녀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녀를 모셔 가려는 거대 가문의 가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직 오지 않은 가주가 있긴 했지만, 아마 마령을 데려가지 않을 거다. 수라천가의 방계인 구룡천가가 왜 마령을 모셔 가려 하겠는가?

‘나만 객잔인가?’

마령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모든 가주의 관심을 받는 건, 제1공자 마영비였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외모와 압도적인 무력. 그리고 수많은 마인의 지지를 받으며 소교주의 자리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솔직히 마령이라도 그에게 붙었을 거다.

그렇기에 짜증이 났다. 그녀도 이제 든든한 우군이 생겼다. 아직 그녀가 돌아왔다는 건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친선 비무에서 증명해야 한다.’

마령이 독기를 품고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드디어 오셨군.”

“마 공자께선 당연히 저분을 기다리신 거겠지?”

“당연하지. 오로목제의 패자가 누군지는 이미 밝혀졌지 않나?”

가주를 보필하는 각 가문의 정예들이 속닥이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읽지 못하면 바보였다. 적당히 가주들을 상대하던 마영비도 구룡천가의 가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실 소교주 후보들은 거대 가문의 가주 따위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선택지가 좁다는 거다. 오로목제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곳에서 가장 뛰어난 이와 손을 잡아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게 바로 구룡천가의 가주 천륙자였다.

천륙자와 마영비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자 사자군림가의 가주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3공자 마운비로 갈아탔다. 슬금슬금 다른 가주들도 눈치를 살핀다. 이런 순간에도 마령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소교주 후보 중에서 가장 어릴 뿐 아니라, 배경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부족하다. 마령이 혈마교 내에서 지고한 신분인 것은 맞지만, 그중 최하위라는 게 문제였다.

“쯧.”

일말의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결국 마령은 포기했다.

누구의 침실에서 묵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본질은 반년 후 개최될 친선 비무였다. 거기서 증명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령이 신형을 돌린 순간.

“3공녀님.”

누군가 마령을 불렀다.

마령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린다. 활연의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황금세가?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제1공자 마영비가 마령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음, 자네는?”

알지만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떠는 마령이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구룡천가의 가주 천륙자입니다.”

예를 갖춰 인사하는 천륙자. 마령보다 몇 배는 큰 몸집의 사내였다. 그의 휘날리는 머리는 마치 사자를 연상케 했으며, 그의 두 팔은 보기만 해도 긴장될 정도로 우악스러웠다.

“그런가. 날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마령의 말투에는 지존의 위엄이 깃들어 있다.

소교주 후보는 어릴 때부터 지존으로 행동할 수 있게 교육을 받는다.

그녀의 물음에 천륙자가 한쪽 무릎을 꿇는다.

‘얘는 갑자기 왜 이래?’

마령은 솔직히 당황했다.

누가 봐도 천륙자는 마영비를 모시리라 생각됐다. 마령 또한 그게 당연하다 여겼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그의 명성은 신강성 전체에 퍼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뭐지? 구룡천가의 가주가 왜 나에게?

물론, 겉으로 전혀 티 내지 않는다.

“구룡천가에서 3공녀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음.”

바로 승낙하진 않았다.

고민하는 척, 주위를 여유롭게 둘러본다. 마영비는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언제나 여유 만만이던 제1공자가 당황하는 것만으로 마령은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내키지는 않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천륙자가 외친다.

“제가 꼭 3공녀님을 모시게 해 주십시오! 구룡천가의 모든 식솔이 바라는 것입니다! 부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뭐, 좋다.”

마령이 승낙한다.

“구룡천가로 가도록 하지.”

“감사드립니다!”

천륙자가 세상을 얻은 듯이 기뻐한다.

마령으로서도 당황스러웠다.

‘설마 고모님이 내 뒤에 있다는 걸 눈치챈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데.’

마령이 말하는 고모는 천흉이었다.

든든한 뒷배가 없었던 마령에게 최근에 생긴 거대한 기둥. 그녀는 여느 부교주 못지않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엔 그녀에게 온갖 사술을 알려 주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새어 나간 거지?’

분명 기뻤지만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마령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기에 오히려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견제를 받지 않았으니까.

씰룩이던 마령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마냥 좋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혈마교의 소교주 후보들은 절대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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