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오로목제
혈마교.
그들에게 인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신강성 전체를 지배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원이라 불리지 않으며 새외무림(塞外武林)이라 일컬어진다. 북해빙궁이나 흑살문도 마찬가지다. 물론, 흑살문은 호시탐탐 중원을 침범하며 재능 있는 인재들을 납치하여 세를 불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신강성의 인재들은 어린아이들도 무예를 갈고닦는다. 비록 그것이 개싸움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강자존(强者尊). 그것은 혈마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알아야 하는 생존의 덕목이었다. 약하면 잡아먹히고, 강하면 잡아먹는다. 그들은 피식자가 아니라 포식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중원 무림의 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쉽사리 신강성으로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십만대산의 험준한 산세 덕분도 있겠지만, 신강성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기세 때문도 있으리라.
그런 신강성의 성도 오로목제(烏魯木齊).
이곳은 흡사 혈마교의 본진이라 착각할 정도로 강자가 즐비한 곳이며, 약한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힘이 약하더라도 정신이 드세며, 공격을 당할 것 같으면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다.
그러한 탓인지 오로목제에선 쉽사리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를 건드리면 자신도 많은 것을 내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오로목제였지만, 요 며칠 사이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피의 혈족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구룡천가(九龍天家).
천씨 성을 가진 이들은 흔치 않았다. 특히 오로목제에서는 더더욱. 그들은 혈마교 내에서 마도삼가(魔道三家)라 불리는 가문 수라천가의 방계였다. 그들은 오로목제의 중추 권력 중 하나였으며 성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가문이었다.
그런 구룡천가가 오로목제의 무인들에게 선언했다.
그 누구도 오로목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대부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구룡천가가 결국 난을 일으켜 오로목제의 패자가 되려고 한다는 추측부터 혈마교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까지. 구룡천가의 가주가 암살당했다는 황당무계한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성도 오로목제를 감싼 성벽. 그곳에서 구룡천가의 무인들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성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누구도 성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다른 유력 가문들이 나서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무서우리만큼 조용하다.
두 사내가 작은 객잔의 구석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구룡천가가 저리 나선 적이 있던가?”
“없었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는 강자들.
오로목제에 모인 이들은 자신들이 중원에 나선다면 능히 백대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강자존에서 생존한 이들의 자만에 불과할지라도, 오로목제에 도달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실력은 증명된 것이다.
그런 강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사자군림가(獅子君臨家)에선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건가? 아무리 구룡천가의 세가 강하다고 해도… 그들이 오로목제의 주인은 아니지 않은가?”
“모르겠네. 사자군림가도, 황금세가(黃金世家)와 활연의가(豁然醫家)도 마찬가지로 침묵하고 있네. 어쩌면 우리는 이제껏 잘못 알고 있었는지 모르네.”
“뭘 잘못 알았다는 말인가?”
“오로목제의 주인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일세.”
“……!”
오로목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 신강의 중심에 도달했다.
강자존.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정확한 말은.
“그들이 오로목제의 주인임을 인정해야 할 수도 있다네.”
진정한 강자에겐 목숨을 구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혈마교에서 나서진 않겠지?”
“교에선 오로목제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지 않나? 이번에도 그렇겠지.”
“부디 많은 피가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러게 말일세.”
두 무인이 한숨을 토해 내고 있을 때.
객잔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모두 병장기를 바닥에 내려놓도록. 겉옷은 모두 벗는다.”
“혈랑대(血狼隊)!”
오로목제의 작은 객잔에 그들이 나타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들은 구룡천가의 정예 전투 부대였다. 강자존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에게 납작 엎드려야 한다.
구석에서 술을 홀짝이던 두 사내가 황급히 겉옷을 벗고, 검을 바닥에 던졌다.
신속한 판단은 생존 확률을 높여 준다.
아무리 강자들이 모인 오로목제라고 해도 순수한 강함으로 이곳에서 생존하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객잔에 있는 대부분이 그러했다.
하지만.
중앙에 앉아 홀로 식사하고 있는 죽립의 사내는 본 체도 하지 않고 있었다. 혈랑대의 이름을 모르는 건가? 객잔에 있는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뭐 하는 거냐며 눈짓과 손짓으로 알려 줬지만 사내는 무심하게 식사를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네놈은 벙어리인가?”
혈랑대를 상징하는 피가 번진 듯이 물들어 있는 무복을 갖춰 입은 무인이 다가온다. 다섯 명의 혈랑대가 내뿜는 기세에 객잔 전체가 압도되고 있었다.
‘죽었다.’
‘목이 잘리겠군.’
오로목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면 저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리라.
최근에 성도에 진입한 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 스스로의 힘에 취하여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이다. 이해는 한다. 오로목제에서 살아간다는 건 신강성에서 자부심을 품을 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거기까지다.
‘강자를 알아보지 못한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지.’
자존심을 버리고 병장기를 바닥에 내려놓은 무인들이 중앙에 앉은 사내에게 조소를 날렸다. 헛되게 죽어 가는 이들을 보면 자존심을 버리고 생존한 것이 자랑스러워진다.
혈랑대원의 검이 휘둘러졌다.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피 냄새가 객잔 가득히 퍼졌다.
‘응?’
아니, 그러했어야 했다.
한데 객잔에선 살코기가 익어 가는 냄새가 날 뿐이다. 그렇다고 식욕이 돌진 않는다. 왠지 모를 불쾌함이 감돌았다.
“으어어어어…….”
객잔 내에선 그 누구도 항거할 수 없었던 기세를 내뿜던 혈랑대.
스산한 살기를 내뿜으며 검을 휘둘렀던 사내가 바닥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다. 바짓가랑이가 젖어 오는 것을 보니 오줌도 지린 모양이었다.
‘대체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모두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워 있어야 하는 건 죽립 사내였다. 그는 아직 무심하게 식사하고 있었다. 혈랑대원이 스스로 발작을 일으켰단 건가? 병이 있었나? 그런데 타는 냄새는 뭐였지? 객잔 내에서 죽립 사내의 움직임을 파악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혈랑대원들의 판단은 빨랐다.
모두 객잔을 박차고 나갔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당신, 얼른 도망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30대 사내가 넌지시 조언한다.
죽립 사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뛰쳐나간 혈랑대원들은 원군을 부르러 갔으리라. 수십에 달하는 혈랑대와 구룡천가의 진정한 강자들이 객잔으로 몰려들 것이다.
“왜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진 모르겠지만… 아니, 방금 당신이 혈랑대원을 쓰러트린 게 맞는 건가?”
사내는 혀를 차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객잔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터트렸다. 그리고 객잔 주인이 무언가를 발견한다.
“다 먹어서 일어나는 거였나……?”
죽립 사내의 접시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천하의 혈랑대가 있었음에도 고작 식사를 마치기 위해서 본 체도 하지 않은 건가? 얼마나 무신경한가? 아니, 실력에 얼마나 자신이 있다면?
‘설마 혈마교에서 나온 교도인가?’
‘그런 고귀한 분들이 왜 이런 허름한 객잔에서 식사를?’
‘아니, 애초에 혈마교도라면 구룡천가의 사람과 척을 질 이유가 없잖아!’
죽립 사내가 혈랑대원을 알 수 없는 수법으로 제압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두가 머릿속으로 외칠 뿐이다. 감히 사내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 친한 척을 하다가 구룡천가가 오해라도 한다면? 죽음 목숨이다.
“얼마지?”
“으, 은자 석 냥이오.”
오로목제의 물가는 살벌하다.
죽립 사내가 돈을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가 빠져나가려고 할 때.
“멈춰라.”
두둥!
북 따위가 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객잔 내의 사람들은 모두 머릿속을 강타하는 북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맞는가? 중후한 내력에 당장이라도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내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건 압도적인 공포 때문이다.
어느샌가 혈랑대뿐 아니라 구룡천가의 무인들이 객잔 내부에 들어왔다.
보이진 않아지만 객잔 외부에도 포위망이 형성되었으리라.
“이름과 소속을 말하라.”
긴 머리로 눈을 가린 홀짝 마른 오십 대 사내.
그의 무복은 피에 젖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붉게 물들어 있다. 구룡천가에서도 장로급 인사라는 뜻이었다. 최소한 혈랑대의 대주급 이상. 그런 존재가 허름한 객잔에 등장했다. 객잔주는 혀를 깨물고 자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서 밝힐 수는 없군.”
객잔주는 빨리 고분고분하게 답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죽립 사내의 여유로운 말투에 위화감이 일었다. 이런 상황에선 조용히 구석에 박혀 있는 게 최선이다. 밝힐 수 없다고? 얼마나 대단한 신분이길래?
죽립 사내의 말에 구룡천가의 장로가 말한다.
“일단 제압하겠다.”
“뭐, 그 편이 더 빠르겠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신분을 말하지 않고 그냥 싸우겠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일을 키우겠다고?
죽립 사내가 움직였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자명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구룡천가는 실질적인 오로목제의 패자였으니까. 한 사람의 힘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 * *
“…….”
전투가 끝이 났을 때.
객잔 구석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한다. 어쩌면 죽립 사내가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도 있었다. 그가 보여 준 무심함은 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건 과하지 않은가?
죽립 사내가 구룡천가의 정예들을 제압하는 시간은 일다경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한 사람의 무력이 이렇게 강해도 되는 건가?
강자존을 신봉하는 신강성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바로 오로목제에서 살아가는 무인들이다.
그 오로목제에서 패자(覇者)라 일컬어지는 구룡천가의 무인들을 ‘제압’했다.
전투 경험이 많은 이들은 알 것이다. 죽이는 것과 제압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쉬운 건지는 말이다. 아득한 힘 차이가 나지 않고서야 상대를 죽이지 않는 건 미련한 행동이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후환이 없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전투가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일다경도 채 되지 않았다.
누군가 차를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사내는 구룡천가의 정예들을 제압했다.
물론, 저들이 구룡천가의 전부가 아니긴 했다. 구룡천가의 힘은 오로목제 전체에 미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죽립 사내의 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건 객잔 내의 모두가 인지했다. 감히 입을 떼는 이가 없었다.
죽립 사내가 쓰러진 구룡천가의 장로에게 다가간다.
그는 고통 섞인 신음을 흘리며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구룡천가에 무슨 일이 있나 보지?”
“네놈이…….”
그 범인이 아니냐.
장로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이건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보는 눈이 많았다.
죽립 사내는 이해한다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장로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다,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장로의 외침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린다. 사내의 정체가 누구란 말인가? 누구길래 구룡천가의 장로가 저리도 경악한다는 말인가?
끝끝내 그들은 죽립 사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단지 구룡천가의 장로가 저리도 놀란 것을 보면 예사 신분이 아니라는 걸 뜻했다.
* * *
지하실.
흑살문은 무림 최대의 살수 단체다. 정파가 지배하는 땅에도 그들의 비밀 지부가 널려 있다. 당연하게도 신강성 오로목제에도 마찬가지다. 비밀리에 관리되고 있는 흑살문의 휴식처. 그곳에 네 명의 아이들이 포박되어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얼굴에 공포가 깃든다.
“음.”
걸을 때마다 커다란 무언가가 시선을 잡아끈다. 사내는 나체로 다니면서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지 당당했다. 놀랍게도 코앞에서 걷는데도 전혀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체의 사내가 아이들의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아이들은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살고 싶으냐?”
사내의 목소리는 중성적이었다. 얼핏 들으면 여인 같기도 했다. 그것이 더 기괴하다. 알몸이면서 저런 목소리라니?
“너희의 피 맛은 전혀 진하지 않더구나.”
“……!”
“더 진한 피가 있는 아이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려 준다면 너희는 놓아주도록 하마.”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사내와 눈을 마주하는 아이들.
독한 마음을 품고 자결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사내의 눈을 보는 순간 반항심 따위는 눈 녹듯 사라진다.
아이들의 흐리멍덩한 얼굴을 보며 흑살문의 특급 살수 색귀가 괴기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