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53화 (253/316)

253화 황 선인

보글보글!

소궁주 사우비, 그는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는 독 안개가 자옥하게 퍼진 해저를 뚫어질 듯 응시하고 있다. 갑자기 휘몰아치던 회오리.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괴성. 웅장하면서도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그 괴성이 들려온 뒤, 회오리는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독이 가득한 공간 안에는 대체 무엇이 있길래? 사우비는 바다에서 오래 생활한 만큼 고래와 같은 거대한 생명체도 목격한 적이 있다. 고래 또한 울음소리를 내뱉지만, 조금 전 들려온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대체 뭐지? 황 대협께선 어떻게 되신 거지?’

설마 독무에 갇히신 걸까?

아니면 고래와 같은 거대한 생물과 싸우는 것일까?

눈앞의 독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로 그는 기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면 위로 올라가기를 수차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황극린은 바닷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기에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사우비.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다. 아니, 언젠간 죽을 운명이었다.

만약 황극린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면 그것을 구출하는 것도 값진 마지막에 어울리리라.

사우비가 결단을 내리고 독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억!”

무언가가 허리춤을 감쌌다.

바닷속에서 사우비는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육지라면 모를까 물속은 그에게 안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허리춤을 잡아챈 무언가는 사우비가 묶이고 나서야 알아챌 정도로 은밀하면서 빨랐다.

“쿠릅!”

독무에 들어가자마자 밖으로 꺼내진 사우비.

긴장하며 뒤를 돌아본다.

- 황 대협!

물속에서 전음을 보내는 것은 웬만한 무림인은 하지 못하는 기예였지만, 용왕궁도들은 어지간하면 전음을 보낼 수 있다. 사우비의 앞에는 황극린이 있었다. 독 안개 속으로 들어가려는 사우비를 황극린이 빼낸 것이다.

- 저길 보시오.

- 예?

어딜 보라는 거지? 황극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

몸에서 힘이 쫙 빠진다.

평생 기다려 왔던 것이다. 언젠간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다의 정수가 바닥에서 솟아나지 않을까? 잠깐 지맥이 막혔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문으로 바닷속에서 용왕궁도들이 수백 장에 달하는 땅굴을 판 적도 있었지만, 정수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상황은 무엇인가?

괴물의 괴성이 들리고, 황극린이 다시 물속에 나타났다.

- 어떻게… 어떻게…….

- 마경이었소.

- 마경 말입니까……?

그게 뭔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게 있었다.

‘황 대협께서…….’

보타문의 문주이자 천하칠대고수 중 일인인 검후신제.

그녀와 용왕궁도들이 평생을 바쳐 정수를 다시 솟아나게 하려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용왕궁의 궁도들은 언젠가 모두 멸종하리라 여겼다.

그것을 해결했다.

그 누구도 아닌 용왕궁과 악연이 깊은 황극린이 말이다. 만약 사우비 자신이었다면 원수들을 위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복수를 갚아도 모자랄 판에…….

‘아아……!’

이제야 보인다.

황극린의 몸에서 휘몰아치는 광채가 말이다.

깊은 바닷속. 햇빛이 잘 닿지 않아 어두운 공간에서 황극린의 주위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피부가 저릿하다. 그는 무림에서 파천뇌권이라 불리며, 동려대협이라 불리는 대협객이기도 했다.

찌릿! 찌릿!

사우비의 정신이 혼미해진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니, 죽지 않아도 된다. 황극린은 용왕궁을 구원했다. 바닷속에서 울려 퍼지는 괴물의 괴성과 관련이 있으리라. 그는 용왕궁을 위해 싸움을 했으리라. 마경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 선인이시여… 정말 감…….

- …….

사우비의 입에서 거품이 솟구치고 그의 눈이 까뒤집힌다. 기절한 것이다. 황극린이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뇌섬사로 사우비의 몸을 묶고 있었다.

황극린이 격하게 뇌전을 방출해 내서 그런지 주위로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뇌전은 수중에서 더 잘 퍼진다.

‘음, 기절해도 숨을 쉴 수 있는 건가?’

잘 모르겠다.

황극린은 주변에 흐르는 뇌전을 완전히 갈무리하고 사우비를 끌고 육지로 향했다.

* * *

“허억!”

사우비가 깨어났다.

“서, 선인이시여!”

깨어나자마자 황극린을 찾는다. 그러자 해촌의 장로 국 노인이 고개를 갸웃한다. 선인이라니?

“혹, 황 대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선인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가셨습니다.”

“예?”

“조만간 다시 오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

“아! 벌써 떠나셨다니! 용왕궁을 구원해 주셨는데…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구원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고 보니 국 노인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설마 모르는 건가?

‘선인께선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구나. 그 자신의 업적을 알리지 않으셨어.’

사우비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정말 선인이 분명하다. 하늘이 내려 준 귀인. 그분께서 용왕궁을 구한 업적은 잠깐 지나치는 행적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국 노인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소궁주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다. 바닷속에서 독이라도 들이마신 건가? 기절한 것을 봐도 무언가 상황이 묘하다.

“소궁주님, 괜찮으십니까?”

“예, 저는 괜찮습니다.”

사우비가 정신을 차린다.

아무리 황 선인께서 공과 업적을 알리지 않으셨다지만, 최소한 그분의 덕을 보았다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용왕궁도 모두가 황 선인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했다.

“정수가 다시 흐르고 있습니다.”

“예……?”

국 노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한다.

용왕궁의 궁주 검후신제도 포기했다. 그렇기에 다른 방법을 찾겠다며 용왕궁의 정예를 이끌고 물 바깥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그분께서 마경의 괴수를 처단하고 정수를 다시금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혹, 독을 드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건 아니겠지요?”

“직접 확인하러 가시지요.”

사우비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용왕궁도 모두에게 황극린의 업적이 무엇인지 알려야 했다. 그게 그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용왕궁은 그 은혜를 평생 갚아 나가야만 했다. 인간이라면 그래야만 했다.

그날 밤.

용왕궁도들은 정말 정수가 다시 솟구치는 것을 보고 전율을 금치 못했다.

* * *

만뇌문에 돌아온 황극린.

그는 현무와의 싸움을 돌이켜 보았다. 놈의 살점도 행낭에 챙겨 왔다. 이미 죽은 육신에서 잘라 온 살점이었지만, 손에 대고 있으면 거대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영물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영물이라기엔 꺼림칙하긴 하다.

황극린이 아는 영물들은 대부분 내단을 형성하고 있었고, 자연의 순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북해빙궁에서 만났던 곰 영물이 그러하다. 놈은 지극히 순수한 음기(陰氣)를 품고 있었다. 만년화리는 순수한 양기(陽氣)를 품고 있었고.

그런데 마경에서 보았던 영물.

그것은 조금 다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운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기(魔氣)라고 할까?

이제껏 황극린이 보았던 영물들이 정종의 내공심법을 익혔다고 한다면, 마경에서 본 현무는 마공을 익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했다.

영물(靈物)이 아닌 마물(魔物)이라 할까?

마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인간들도 다른 내공심법을 익히는데, 영물이라고 모두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세상에는 다른 마물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물론, 마경이 더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마경이 더 있을 가능성도 컸다.

‘일단 성수신의랑 상의해야겠어.’

만뇌문에서 영물에 대하여 가장 해박한 자는 성수신의다. 그리고 뇌불 또한 어느 정도는 영물과 조우한 경험이 있었다. 두 사람은 황극린이 마경에서 본 현무라는 존재에 상당히 놀라는 듯했지만, 황극린이 마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설명하자 대충은 이해하는 듯했다.

그들과 상의한 것은 하나였다.

흑주에게 현무를 먹여도 되는가? 흑주가 강해지는 건 좋다. 하지만 흑주가 현무처럼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리는 건 영 꺼림칙하다.

“흑주에게 직접 물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아이는 인간의 말을 알아들으니까요.”

황극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성수신의의 조언에 따르기로 했다.

* * *

“어떠냐? 먹어 볼 테냐?”

- 끼… 끼…….

고민하던 흑주.

결국, 답을 내놓는다.

- 끼이!

긍정의 울음소리였다.

황극린이 현무의 살점을 내놓는다. 전혀 익히지 않았는데도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드는 향이었다. 황극린은 이미 현무의 살점을 취했기에 그 맛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자제심을 잃게 만드는 맛.

“혹시 모르니 조금씩 주마. 만약 참을 수 없다면 멈추어라.”

- 끼에!

흑주가 현무의 살점을 먹기 시작한다.

- 끽!?

맛을 보고 깜짝 놀란 흑주.

조금씩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최근 먹을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흑주가 돌변했다. 황극린은 혹시 몰라 강제로 현무의 살점을 빼앗았다. 갑자기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이라도 하면, 현무의 살점이 위험하다는 증거.

- 끼…….

하지만 흑주는 전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고, 구슬픈 눈동자로 현무의 살점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라.”

결국, 현무의 살점을 다시 내어 주었다.

흑주는 황극린의 명령대로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 모습을 보여 준다. 황극린은 그 후에 흑주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하나, 왜인지 몸통에 솟아난 사람의 얼굴이 조금 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흑주가 또 변화할 수도 있는 걸까.’

아예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아마 인면지주 중에서 이렇게 다양한 먹이를 먹었던 것은 흑주가 최초이리라.

“더 먹고 싶으냐?”

- 끼에! 끼에!

“만약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멈추겠다고 약조할 수 있겠느냐?”

흑주는 관성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은 사고라는 걸 할 줄 알았다.

- 끼.

진중하게 대답한 흑주.

황극린이 쓰다듬어 주자 흑주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마경으로 가자.”

황극린은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흑주에게 혈석을 먹여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는 현무의 살점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영물(?)이니까 혈석보다는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현무의 사체보다 자신의 피가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적정량을 취하는 건 모르겠지만, 더 많은 양을 먹는다면 황극린의 피는 무조건 독으로 작용했다.

‘만약 내 피가 저주를 해주하는 능력이 있다면, 마경의 피로 부작용을 겪는다면 그것을 치료하는 용도로 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계산까지 했다.

상당히 모험적인 일이다 보니 대책은 많이 세울수록 좋다.

그렇게 황극린은 만뇌문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주산군도로 떠나갔다. 문도들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흑주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 * *

황극린이 떠난 후, 사흘이 지났을 무렵.

청성산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대단히 아름다운 외모. 아니, 그런 추상적 단어로는 제대로 그녀의 외모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인의 얼굴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북해빙궁의 궁도와 비슷한 수준의 외모라 할 수 있었지만, 빙궁의 여인들은 조각같이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만뇌문의 동굴 앞에 선 여인은 온화한 봄의 햇살과 같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여인이 정확하게 만뇌문의 입구에 도달했다.

그리고.

“아아? 계신가요?”

여인이 말하자 입구가 웅웅, 울린다.

제갈소희와 제갈창해가 만든 진법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진법의 요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듯이 진법 내부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자광과 뇌불이 나타났다.

구자광 혼자서 밖으로 나서기엔 납치를 당했던 사건이 있어서 뇌불이 직접 나선 것이다.

“네년은 누구냐?”

뇌불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

구자광이 당황한다. 혹시 귀한 손님일지도 모르는데, 문주께서는 너무 심하게 말하시는 게 아닌가? 물론, 감히 뇌불의 앞에서 토를 달 정도로 구자광의 머리가 커진 것은 아니었다.

‘허, 그런데 정말 예쁘긴 하군. 장로님의 얼굴에 적응하지 않았으면 그냥 홀릴 뻔했어.’

구자광이 여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여인이 환한 미소를 담은 채 말한다.

“여기가 만뇌문이 맞나요?”

“옙!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잘 찾아왔나 보군요. 다행이에요!”

“어이, 늙은 년. 감히 내 말을 무시하느냐?”

늙은 년이라는 말에 여인의 눈썹이 꿈틀한다.

“네년한테서 지독한 냄새가 흐르는구나.”

“어머, 귀공께서는 말씀을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유령에게 당했던 게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도 그리 오만하게 행동하시다니요?”

유령이라는 말에 뇌불의 얼굴에 살기가 감돈다.

“너무 화내지는 마세요. 먼저 시비를 건 건 그쪽이잖아요? 안 그래요?”

구자광을 보며 눈을 깜빡이는 여인.

잠깐 심각하게 마음이 흔들린 구자광이었지만.

“그, 그건 아닙니다! 다짜고짜 진법을 뒤흔든 건 소저가 아닙니까?”

구자광 또한 여인의 미색에 혹하지 않았다. 그러자 충격적이게도.

“참으로 멋이 없는 사내들이로구나.”

온화한 햇살과도 같은 여인의 얼굴이 북해의 폭설처럼 차갑게 변한다.

그 급격한 변화에 구자광이 당항화고 있을 때.

“황극린이 날 보자고 했다고 하던데.”

목소리도 완전히 바뀐다.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구자광은 여인의 연기력에 입을 벌리고 만다.

“네년이 누군데?”

“나?”

여인이 무언가를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한다.

“천흉이라고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