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현무
놈은 산처럼 거대했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네 발로 느릿느릿 땅을 기어 다니는 동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얼굴과 네 발을 빼꼼히 내밀고, 유사시엔 등껍질로 숨어 버리는, 인간에겐 전혀 유해하지 않은 짐승. 거북이였다.
전체적인 윤곽은 거북이와 비슷했지만, 확실히 다른 점도 있었다.
맨들맨들한 느낌의 등껍질과는 달리 놈의 그것은 울퉁불퉁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거북이 영물인가.”
거북이는 애초에 영물로 귀한 취급을 받는다.
평범한 개체가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간다고도 한다. 육지 위에서 살아가는 짐승들은 대개 인간보다 짧게 살았지만, 거북이는 기본적으로 장수하는 짐승이었다. 그런 거북이가 내단을 만든다면 대체 얼마나 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
황극린은 저 거대한 덩치를 보고 ‘현무’라는 전설 속의 영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방신(四方神). 네 방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북쪽에 기거한다고 하며, 물과 겨울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황극린은 저것이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현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현무라는 존재는 너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그러한 존재가 정말 있었다면, 인간들이 그 신비한 영물의 존재를 어찌 알고 있었을까? 절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무림인이라도 과연 현무를 이길 수 있었을까?
저것은 막대한 영기를 품은 영물일 뿐이었다.
그 영물 중에서 특별할 뿐.
- 구어어어어-!
현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왠지 어감이 잘 달라붙어 황극린은 저것을 현무라 칭하기로 했다.
입을 벌린 현무.
놈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바닷속에 가득했던, 황극린의 피부조차 저릿하게 만들었던 독액이었다. 독액이 공간을 잠식하자마자 녹색의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독액도 독액인데, 저 연기도 들이마시면 위험할 것 같았다.
타닷!
황극린은 일단 거리를 벌렸다. 독에 내성이 있는 황극린이었지만, 저것에 정면으로 맞서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손가락을 펼쳤다.
마경에 들어오기 전, 황극린은 뇌탄을 쐈었다. 그로 인해 현무는 괴성을 내질렀다. 놈에게도 통한다. 회계산의 폭풍에선 함부로 힘을 쓰다가 위험을 자초했었지만, 이곳에선 다르다.
콰지지직-!
황극린의 단전에서 평소보다 수십 배는 많은 내력이 세맥을 타고 움직인다. 금령신단을 취하여 육신 전체의 강도가 강해지지 않았다면, 꽤 따끔했으리라. 손가락 앞에 뇌전의 구슬이 생성된다. 황극린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두웅!
뇌탄이 쏘아졌다.
- 구어어어어어어어어─!
현무는 뇌탄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발을 굴러 지진을 일으킨다. 황극린이 뇌탄을 쏘지 못하도록 신형을 흔들려고 한 모양이다. 상당히 지능적이다. 그리고 제 몸집보다 훨씬 작은 황극린의 행동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
이미 뇌탄은 나아간 상태였다. 이미 현무의 지척에 도달했고, 이윽고 뇌탄에 닿았다.
콰지지지지지직-!
뇌탄에 직격한 현무가 거칠게 경련한다. 입과 귀에서 녹색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두 눈동자가 붉게 충혈됐다. 놈의 입에서는 고통이 섞인 괴성이 터져 나왔다.
- 구어-!
벌써 뇌탄을 두 번이나 맞았는데, 현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뇌탄은 황극린이 만들어 낸 뇌전의 정수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버티는 것을 보면 보통 영물은 아니었다. 이제껏 무림에서 등장했던 영물 중에서 가장 강한 게 아닐까?
황극린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진다.
뇌전은 소모하는 정신력과 내력이 상당하다. 분명 효과는 큰 듯하지만, 무작정 계속 뇌탄만 쏘아 댈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현무의 앞에 도달한 황극린.
가까이서 보니 놈의 덩치가 몹시도 살벌했다. 저 거대한 발에 깔리면 몸이 터져 나가 죽을 것만 같았다.
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황극린을 밟아 뭉개려 했다.
저토록 거대한데도 은근히 날렵했다.
놈이 발로 지면을 내려찍음과 동시에 황극린이 묵철 암기를 내던졌다. 묵철 암기에는 뇌섬사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황극린은 뇌섬사를 당겨 놈의 몸 위로 올라갔다.
쿠우웅! 쿠우웅-! 쿵! 쿵! 쿵!
황극린이 놈의 몸에 닿자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에서 벌레를 떼어 내려는 듯한 움직임. 발작하듯 움직이는 현무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무작정 덩치를 키우지 말았어야지.”
동물들은 주변 환경에 맞게 성장한다. 물을 구하기 힘든 사막과 같은 곳에선 모래에서 사는 거미와 전갈 그리고 낙타 등이 살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비가 자주 내리고 습도가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신체적 특징은 조금씩 다르다.
놈이 이곳에서 몸집을 키운 이유는 하나였다.
그것이 더 유리했을 테니까.
- 구어!
마치 황극린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격노하는 현무다.
- 구어! 구어어어! 구루루룩!
흑주가 있었다면 놈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황극린의 귀에 들리기엔 무언가 분노하여 소리치는 인간의 감정을 닮아 있었다.
놈은 황극린의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소리친 후, 이상한 짓을 벌이기 시작한다.
- 구어어!
현무의 피부와 등껍질.
놈의 몸에 붙어 있는 황극린은 볼 수 있었다. 피부가 작게 열리며 그 안에서 녹색의 진액이 흐르기 시작한다. 독액이었다. 현무의 피부에 비해서는 작았지만, 황극린의 입장에선 사람의 눈동자만큼의 구멍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우우웅!
진액이 쏟아지며 녹색의 연기가 주변을 감싼다. 황극린은 숨쉬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한 독은 아닌 것 같았다. 현무가 쏟아 내는 독액은 주변의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극린이 현무의 피부에 접근한 이유는 하나였다. 뇌탄을 멀리서 쏘아 대는 건 효율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황극린은 직접 현무에게 뇌전을 쏘아 대기 위해서 접근했다. 뇌전의 광채가 흩날리는 주먹. 그것을 현무의 피부 구멍에 쑤셔 넣었다.
- 꾸어!?
현무가 당황한다.
황극린은 놈에게 짜릿한 맛을 선사해 주기로 했다.
콰지지지지직-!
- 구어어어어!
놈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진액의 색이 더욱 진해진다. 황극린은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멈추지 않고 뇌전을 쏟아 낸다. 이미 첫 번째 뇌전으로 놈은 꽤 타격을 입었다. 처음 해저에서 거대한 구멍이 열렸을 때, 현무는 뇌탄에 직격했다.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분노를 표출했지만, 놈의 목소리엔 은은한 공포가 새겨져 있었다.
“네 독액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놈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 말에 현무의 피부가 거칠게 떨린다. 너무 거대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흡사 개미와도 같은 황극린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놈이 할 수 있는 건 전방위로 독액을 흘리는 방법뿐이다.
황극린의 손에서 뇌전이 터졌다.
현무의 몸이 발작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콰지지직!
조금만 더. 체내에 직접 뇌전을 쏟아 내다 보니 현무의 몸 내부가 익어 가는 것을 느낀다. 왜인지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그때였다.
“……!”
이제껏 대응이라곤 독액을 쏟아 내는 것밖에 하지 못했던 현무.
- 구우우욱!
마치 비웃는 듯한 괴성. 황극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거대한 이무기의 형상이었다. 현무의 목이 길어진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놈의 꼬리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정말 현무랑 외관이 비슷하잖아?’
놈은 이제껏 황극린이 가까이 접근하길 기다렸던 걸까? 마치 비웃는 듯한 현무의 두 번째 머리. 거대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자랑하듯 입을 벌리더니 쏜살같이 황극린에게 다가온다. 안 그래도 현무에게 뇌전을 쏟아 내던 황극린이었다.
- 캬아아아악!
이무기의 머리가 황극린의 몸통을 물어 버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황극린의 근육과 뼈를 당장 부숴 버릴 것만 같았다.
까드득!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무의 비웃음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착각하고 있구나.”
- 구억?
무언가 이상하다. 진득한 피 맛이 입속을 가득 메웠어야 했다. 아니, 피 맛이 느껴지는 건 맞지만 그건 현무에게 비릿할 뿐이었다. 전혀 맛이 없었다. 거기다 우수수 떨어지는 단단한 광석과도 같은 것이 목을 긁고 있었다. 현무가 삼킨 건 황극린의 뼈와 살이 아니다.
- 구어어어!
황극린의 몸이 얼마나 단단한지 현무의 이빨로 부수지 못했다.
오히려 부서진 건, 현무의 이빨이다.
“네놈은 네가 가진 힘을 아예 사용할 줄을 모르는구나.”
오히려 뇌정 폭풍이 그 힘을 더욱 잘 다뤘다.
지금 현무라는 영물의 존재는 거대한 힘을 품고 있기만 할 뿐,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십 갑자의 내공을 타고난 무인이 강기나 검강 같은 것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만뇌(萬雷).”
만뇌는 사방으로 뇌전을 폭사시키는 혈풍뇌전신공의 오의 중 하나.
하지만 뇌전을 한 방향으로 집중하지는 못해서 작정하고 막으려 들면 막지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만뇌는 오히려 뇌탄보다 더욱 강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어디로 뇌전을 쏘아 대도 그것은 현무에게 직격으로 내려꽂힌다.
콰직, 콰지지지지지직-!
수백, 수천, 수만 갈래의 뇌전이 현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껏 뇌전의 고통에 견디고 견뎠던 현무. 마지막 순간 회심의 일격으로 황극린의 몸통을 물어 버렸지만, 반대로 현무의 이빨이 부서졌다.
이제 현무가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
- 구어어어어어……!
구슬픈 영물의 괴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 * *
“징하군.”
어쩌면 이놈이 정말 현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놈은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조만간 죽을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황극린은 놈의 몸통 주위를 돌아다니며 내단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놈에겐 ‘내단’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한 의문이었다. 거대한 독액을 마구 쏟아 내던 놈이 내단이 없다니? 독을 만든 것은 내단의 힘이 아니었던가? 황극린이 알고 있던 ‘영물’과는 괴리가 있었다.
- 힘, 힘, 힘…….
그때, 현무가 ‘말’을 했다. 이게 인간처럼 말을 하는 것인지 정확하진 않았지만, 이제껏 괴성만 질러 대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힘이라는 단어. 황극린이 말한 것을 따라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황극린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놈은 성장하고 있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 만약 황극린이 아닌 다른 인간이 이 마경에 끌려왔다면, 그 인간은 현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 히이이이이임……!
결국, 현무는 거대한 눈을 감았다.
발작하듯 사방으로 뿜어내던 독이 걷히고 있었다.
“내단을 만들지 않았다. 아니, 이놈에겐 ‘육신’을 구성하는 게 먼저였을까.”
용왕궁에서 말했던 정수.
그것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현무라는 존재가 그걸 모두 먹어 치우고 있었기에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공중에 떠올랐던 광채를 품은 ‘정수’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황극린이 하늘을 바라본다. 저 높은 하늘에는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안개가 가득했다. 혈마교주가 사용하던 암천성휘와 비슷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황극린은 무엇을 떠올렸는지, 죽은 현무의 사체를 묵철 단검으로 잘라 낸다.
강기를 뽑아내지 않고는 예리한 묵철 단검으로도 잘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콰직!
뇌전으로 살점을 익혔다. 그리고 그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독액을 마구 뿜어 대던 놈이라 조금 찝찝했지만, 왜인지 이게 정답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현무의 살점을 입에 넣는 순간.
황극린은 깨달았다.
“…내 양념은 아무것도 아니로군.”
뇌전으로 구운 현무 고기.
그것은 황극린조차도 감탄하게 할 천상의 맛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꼬르르륵!
“배가 아프군.”
독에 완벽한 내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황극린의 육신이었지만, 현무의 살점은 그런 황극린에게도 쉽지 않은 독을 지니고 있었다. 뇌전으로 독을 어느 정도 태워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정도였다.
“…….”
황극린은 엉뚱하지만 기발한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흑주가 이 마경을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거대한 현무의 사체.
흑주가 이것을 모두 취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