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48화 (248/316)

248화 뇌탄

“그 생물은 무엇인가?”

화염신황의 눈이 번뜩인다. 주인을 만난 반가움에 바위틈 사이에서 펄쩍 뛰어올랐던 흑주가 자세를 낮추며 경계한다.

“신기하구나. 분명 인면지주가 분명한데… 다르구나.”

화산에선 다른 지역보다 자주 영물이 출몰했다.

당연한 일이다. 중원에서 오악으로 꼽히는 만큼 화산은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수많은 짐승과 식물들이 더불어 살아간다. 막대한 정기가 화산 내부에서 순환하는 만큼 영물의 탄생도 그만큼 쉽다.

화염신황은 영물을 본 적이 있었지만, 흑주처럼 특별한 아이는 처음 보는 것이다. 날개가 달린 거미가 어디 흔한가? 거기다 몸통에 튀어나온 인간 얼굴의 형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고 정말 인간의 피부와 비슷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영물 중에서도 특별한 개체가 분명했다.

“상처를 보여 주시오.”

“응? 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설마 저 인면지주를 보고 했던 말인가?”

“그렇소.”

화염신황이 말하자 청운이 그를 내려놓는다.

그는 의아해하는 듯하면서도 황극린의 말대로 상의를 걷어 상처 부위를 드러낸다. 그러자 흑주가 관심을 보인다.

“저런 독도 먹을 수 있겠느냐?”

- 끼이이! 끼이!

화염신황의 얼굴이 묘해진다.

“설마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건가?”

흑주는 화염신황의 혼잣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암혼마제의 강기가 담긴 상처 부위, 그곳에선 진물이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화염신황의 고절한 내공이 아니었다면, 이미 수백 번 죽어도 모자랄 수준의 독기(毒氣)였다.

날개를 퍼덕이며 화염신황의 복부를 바라보던 흑주.

녀석이 이빨을 세우고 상처 부위를 콱 물었다.

지켜보던 청운이 움찔했지만, 화염신황이 손을 저어 말렸다.

“허허… 허허허…….”

화염신황은 흑주가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중한 피를 빨아 먹는 게 아니다. 인면지주는 상처 부위의 독기를 포식하고 있었다.

황극린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흑주가 먹이를 먹는 걸 지켜보았다.

저렇게 외관이 변한 이후로는 웬만한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았던 흑주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저리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까?

황극린이 말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당신이 도와줘야 할 게 있소.”

화염신황은 당연히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다. 더 요양해야겠지만, 시시각각 그를 괴롭히던 독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빠르게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뭐든지 말만 하게.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는가?”

“이쪽 실을 따라가서 우리 문도가 잡혀 있다면 구출해 주시오.”

화염신황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네.”

화염신황은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천하칠대고수 중 일인이다. 참으로 믿음직한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난 이쪽으로 가겠소.”

“그리하게나.”

그렇게 황극린은 짠 내가 가득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용왕궁주가 있으리라.

* * *

“그래서 용성의 직책에 욕심낸 것이로군.”

“네놈과 뇌불 탓에 부성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

용왕궁주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검후(劍后).

현 무림에서 검후라 불리는 여인은 한 명뿐이다.

보타문의 장문인이자 검후신제(劍侯神帝)라는 별호를 가진 절대 무인. 과거의 삶에서 황극린은 검후신제를 멀찍이 서서 만난 적이 있었다. 황극린은 당시 남궁세가의 사위로 들어갔었으니 일대의 거물들과 몇 번 자리를 가졌던 것이다.

검후신제는 당시 용성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었다.

언치골은 무너져 가는 용성에 대해 책임을 졌고, 검후신제가 용성의 책임자로 급부상했다. 물론, 그런 용성도 마지막에 가서는 힘이 다했었지만 말이다.

대충 상황 파악이 된다.

검후신제가 용왕궁의 궁주다.

무너져 가는 용성이지만 황군의 힘을 쓸 수 있는 용왕궁이었기에, 오랜 기간 중원에서 난동을 부려도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만뇌문의 등장으로 인해 꼬이기 시작했다.

본래 검후신제는 용성의 부성주가 되어야 했었다.

“더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불편하군.”

“뭐가 불편하다는 말이지?”

황극린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녀가 보타문의 장문인이든 검후라 불리는 존재든 간에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에게 있어 용왕궁주는 소중한 문도를 납치한 유괴범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든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네 잘못을 일깨워 주도록 하마.”

검후신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 줘야 한다.

다시는 문도들을 건드릴 수 없게 말이다.

“회생비록을 내놓아라!”

검후신제의 검에서 백청검강(白淸劍罡)이 솟구쳤다. 순백의 맑은 검강은 무엇이든 베어 버릴 듯이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칠선무보(七仙舞步)를 밟아 황극린의 지척에 도달한 검후신제. 황극린의 몸을 토막 낼 듯이 강렬하게 휘둘러지는 검.

그 순간.

황극린이 사라졌다.

“……!”

동시에.

황극린이 있던 자리에서 벼락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검후신제는 반탄지기로 벼락을 막아 내고, 검으로 베어 냈다. 하지만 황극린의 뇌전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검후신제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찌릿한 고통이 근육을 자극한다.

‘이건 뭐지?’

분명 주인을 떠난 내공은 힘을 다하고 자연에 잡아먹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황극린의 뇌전은 조금 다르다.

“이까짓 뇌전으로 날 묶어 두려 하는가!”

눈을 시리게 하는 광휘가 검후신제의 몸을 뒤덮는다. 보타문의 최절기라 할 수 있는 백청검강. 궁극에 이르면 시간마저 베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주인을 떠난 뇌전 따위야 금세 잠재울 수 있으리라.

“거기더냐!”

검후신제가 다시금 보법을 밟는다.

고양이처럼 유려한 발놀림으로 황극린에게 도달한다. 하지만 바로 검을 휘두르진 않았다. 조금 전처럼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조금 거리를 둔 상태에서 검을 휘두른다.

초승달 모양의 검강이 휘어져서 발출된다.

사각!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 검후신제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네놈과 혈황마제의 싸움을 보았었지. 네 약점은 알고 있다. 뇌전으로 시간을 끌다가 틈이 보이면 공략하는 방식이지. 하나, 그건 내게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검의 정점에 올라 있다고 할 정도의 검강을 발현했다.

검후의 검이 베지 못할 것은 없었다.

설령 그게 벼락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네놈의 뇌전은 베였다.”

황극린을 베고 사라진 줄 알았던 초승달의 백청검강.

빛을 빨아들이는 혈황마제의 암천성휘와는 달리 그녀는 무한한 빛을 발산한다. 빛은 그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황극린의 뇌전은 결국 빛에 속한 구성품에 불과하다.

사가가각!

사가각!

눈을 터지게 할 듯이 빛나는 광휘에 수백 개의 칼날이 섞여 있었다. 이것으로 황극린은 넝마가 되었으리라. 물론, 검후신제는 방심하지 않았다. 또다시 백청검강을 휘두를 수 있도록 준비한다.

빛이 사라지고 난 후.

황극린의 그림자가 보인다.

검후신제의 눈썹이 꿈틀한다.

“왜……?”

그녀가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심리를 잘 표현하는 단어였다.

왜?

어째서?

백청검강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도.

황극린의 의복 하나 베어 내지 못했는가?

“역시 강철의 기운을 담은 영약인가?”

“뭐?”

“아니다.”

“……!”

순간, 황극린의 모습이 사라졌다.

분명 검후신제는 방심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황극린이 언제 움직일지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방금 전까지 황극린을 담고 있었다. 그 시야 전체에서 황극린이 사라졌다. 마치 땅에 꺼진 듯이 말이다.

“이놈!”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검후신제가 몸을 빙그르 돌려 백청검강을 터트렸다. 이미 황극린의 뇌전과 그녀의 백청검강으로 전각은 거의 다 무너져 내린 수준이었다.

“이 몸이 베지 못할 것은 없다!”

그녀는 평생을 검을 갈고닦았다.

작은 나뭇가지부터.

견고하게 단련된 강철까지.

그녀는 차근차근 성장하여 이 순간까지 올랐다. 마공 따위로 급격하게 성장한 마인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보타문의 정수를 이어받은 무인이었으며, 용왕궁의 비전 무공까지 섭렵했다.

“네놈의 뇌전 따위! 베어 주마!”

“할 수 있겠나?”

“……!”

황극린이 검후신제의 옆에 있었다.

타닷!

본능적으로 거리가 멀어진다. 황극린은 권법가였다. 검과 권의 타격 범위는 다르다. 검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거리를 벌려야 했다. 하지만 황극린은 멀어지는 검후신제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검지손가락으로 검후신제를 조준한다.

그리고.

쿵.

이제까지 황극린이 발산하던 뇌전은 요란했다. 소리만으로 상대에게 공포를 느끼게 할 만큼 우악스러웠다. 그렇기에 일정 수준의 고수들은 황극린의 뇌전을 대비하거나 피할 수 있었다. 요란한 기술은 보기엔 멋져 보이지만, 약점이 존재했다.

황극린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막대한 내력을 방출하는 순간 굉음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황극린은 그 약점을 고치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뇌탄(雷彈).

수십, 수백 번 압축된 뇌전의 구체.

압축하는 방식은 혈풍뇌전신공의 묘리를 따른 게 아니다. 최근 황극린이 배운 무공 중에 적혈강이 있었다. 특별한 방식으로 혈액을 압축하여 액체에서 고체로 만드는 무공. 황극린에게 뇌전을 압축할 단서를 제공했다.

검후신제와 같은 고수에게 타격을 입힐 만큼 뇌탄을 만들어 내려면 중단전의 힘까지 사용해야 했지만, 그것을 감수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황극린이 주로 사용했던 천노뇌정(天怒雷霆).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뇌전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그러한 무공은 확실히 보기에도 위협적이다. 천노뇌정이 쓸고 나아간 자리에는 감전되에 타 버린 시체밖에 남지 않는다.

뇌탄이라 불리는 기술은 천노뇌정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뇌탄이 몸에 박히기라도 한다면.

“끄윽……? 꺼으윽……? 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뇌탄이 몸에 직격하는 순간.

검후신제는 분명 그것을 베어 내려 했다. 하지만 뇌탄은 그녀의 백청강기를 뚫어 내고 그대로 돌진했다. 뇌탄의 종착지는 인간의 피가 있는 곳이라는 듯 검후신제의 옆구리에 박혔다. 그녀를 관통한 것이 아니다.

“으아아아악! 끄르으으으아아아!”

검후신제가 검을 놓쳤다.

수준급에 이른 검사가 검을 놓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녀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귀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눈이 충혈됐다.

코와 입에서 검은 피가 역류했다.

박힌 뇌탄에 압축된 뇌기가 그녀의 내부를 헤집고 있었다. 백청검강으로 그 뇌전을 막아 내려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벗어날 수가 없다. 마치 몸 내부에 수천, 수만, 수억의 벌레가 기어 다니며 살을 뜯어 먹는 듯한 고통이다.

“그마아아안! 그마마마마마마마만-!”

고통을 줄이기 위해 검후신제가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경련하듯 떨리는 그녀의 몸. 조금 전까지 냉랭한 눈빛으로 황극린을 노려보던 시선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의 생의 염원이었던 회생비록이라는 서책마저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황극린이 개방했던 중단전을 닫았다.

순간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검후신제는 항거할 힘을 잃었다. 의외로 싱겁게 끝난 전투라 할 수 있었지만, 황극린이 뇌탄을 만드는 데 소모한 심력과 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으리라.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이 정도라니.’

뇌탄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껏 황극린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화련의 적혈강을 익히고 금령신단을 복용한 덕이 컸다.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혈황마제의 암천성휘도 뚫어 낼 뇌탄을 만들 수 있겠지.’

황극린은 생각을 정리하고, 검후신제의 앞에 섰다.

이제야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극한의 고통에 절규하는 모습.

남이 고통에 허우적대는 걸 즐기는 성향은 아니지만, 만뇌문의 문도를 납치했으면서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잘못을 알겠나?”

“사, 사, 사살! 사! 살려 줘! 그만! 제발, 그마아안!”

도도하고 위엄 넘치던 보타문의 장문인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뇌탄의 뇌전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그녀의 몸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백청검강이 모든 것을 벨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황극린의 뇌탄을 베어 내지 못했다.

그녀의 한계였으며.

보타문 검법의 한계였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군.”

황극린이 검후신제의 맥에 손을 얹었다.

당장 죽일 생각은 없다.

그녀에겐 물어볼 게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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