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46화 (246/316)

246화 이야기

금성지체(金星之體).

무공을 익히기에 특화된 체질이라 할 수 있었다. 영약을 취할수록 육신의 강도가 상승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유연성을 겸비할 수 있다. 고양이의 반사 신경과 움직임을 타고났다는 묘연골(猫軟骨)보다 훨씬 희귀한 체질이었다.

무림 역사상 금성지체를 타고났다고 알려진 이들은 황금왕(黃金王) 초아란과 무적금강권(無敵金剛拳) 황보휘 등이 있었다. 그들은 한 세대를 주름잡은 무림인이었으며 천하칠대고수에 이름을 올렸었다.

화산의 장문인 화염신황은 황극린이 화산이 개최한 용봉지회에 참가한 순간부터 눈여겨보았다. 용봉지회에 참가한 황극린은 소림의 대제자인 천덕과의 권법 대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강인한 육신을 선보였다.

화염신황은 황극린의 행보를 주목했다.

그는 용봉지회에 참가하기 전에도 광성문이 개최한 천하광명대회에 참가하여 영약을 따냈다.

여기까지라면 특이점이라곤 거의 없었지만, 만뇌문의 행보를 보면 황극린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것으로 뭘 했느냐가 중요하다.

만뇌문은 중원의 영약을 모두 사들일 것처럼 막대한 자금을 풀어 냈다.

마치 영약만이 그의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때, 화염신황은 깨달을 수 있었다.

‘금성지체로구나.’

황극린이 가진 육신.

화염신황은 맞대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강도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있다. 완전한 의미의 도검불침(刀劍不侵)에 닿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현 무림에서는 도검불침에 가장 가까운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금성지체를 타고났던 다른 고수들은 결국 체질의 한계로 ‘끝’을 보지 못했다.

황금왕이나 무적금강권 두 사람도 상당한 부를 이루고 있었지만, 영약 하나가 보통 가격이 아니다.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특히 집안이나 문파에 돈이 좀 있다고 하면 무조건 영약을 확보하려 애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계를 맞이했다.

물론, 영약만으로 무공의 경지를 상승시키려 하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라 평할 수도 있겠지만, 금성지체가 그러한 체질이었다.

‘이 사내는 역대 금성지체 중 최강이 될 수 있다.’

황극린이 어떤 사상과 목적을 가지고 무림을 살아가는지 몰랐기에.

화염신황은 그와 거리를 둔 채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지금.

화염신황은 황극린에게 제안했다.

“자네는 다가오는 어둠을 막아 낼 힘이 있다네. 아니, 극(極)에 달한 금성지체의 육신은 그 누구도 베어 낼 수 없다고 하지. 난 자네의 힘을 빌리고 싶다네.”

“…….”

금성지체니 금령신단이니 황극린은 잘 모른다.

뭐, 화염신황이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퍽 대단한 체질이고 영약일 것 같다고 예상할 뿐.

“그래서 부탁할 게 무엇이오?”

화염신황이 뜸을 들인다.

황극린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정말 옳은 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천하칠대고수 중 한 명에게 전달할까도 생각했다. 정파에는 영웅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금성지체를 타고난 황극린이라면.

객관적으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지에 접어든 그라면.

“암혼마제(暗混魔帝), 그를 막아 주게.”

암혼마제.

흑살문의 문주.

당대 최악의 살수.

거기다 실제로 그와 부딪쳐 본 화염신황은 알고 있었다.

그는 살수 중에서만 최고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좋소.”

“그래, 당황스럽겠지. 그는 사흑련의 네 마제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올라 있으며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붙인 절대고수라네. 하나, 그는 분명 중원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며 나아가 종국에는 자네의 문파에까지 손을 댈…….”

“알겠소.”

“…음?”

화염신황은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생각했다.

황극린의 성격은 잘 알고 있다. 그는 정파도 사파도 아니다. 따지자면 회색이다. 정파인의 가치로 그에게 부탁하면 당연히 거절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대의나 협의 따위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

거기다 흑살문주는 당대 최강의 살수다.

금령신단 하나로 퉁치기엔 솔직히 무리한 부탁이었다. 그렇기에 황극린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네, 지금 알겠다고 했나?”

“그렇소.”

설마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아니면 뭐지? 암혼마제를 우습게 보는 건가?

복잡한 시선으로 황극린을 바라보는 화염신황이다.

“그게 부탁의 전부요?”

“그렇네만…….”

뭐, 세부적으로 해 줄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화염신황이 정말로 원하는 건 암혼마제를 막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건 황극린이 궁극적으로 생각한 목표와도 가까웠다.

‘내 전생의 업보를 끝내는 마무리.’

황극린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전생의 과오를 모두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시대에선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남궁운혜를 신경 써서 그녀를 몇 번이고 도와주었다. 알아주는 이는 없고 결국 자기만족이라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삶이란 결국 자기만족이 중요한 것을.

흑살문은 황극린의 전생에서 가장 큰 악이다.

그를 살수로 살아가게끔 만든 원흉. 벗어나고 싶어도 심장에 자리 잡은 혈고독 때문에 탈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황극린은 전생을 완전히 잊을 생각이었다.

“암혼마제의 힘은 막강하다네. 살수의 능력뿐 아니라, 정면 대결에서도 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지, 거기다 그가 이끼는 세 명의 특급 살수들은…….”

“알고 있소.”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렇소.”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다.

화염신황은 황극린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다. 장난으로 하는 말 따위가 아니었다.

“자네는 기이하군. 여태껏 보인 행보로 볼 때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쉽게 승낙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네.”

“그렇소?”

사실 흑살문이 아닌 북해빙궁이나 만독문과 같은 사파 문파였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다. 마침 흑살문이었기에 딱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혹, 금령신단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

“잘 모르오.”

이름을 들으면 꽤 대단한 영약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이름만 거창한 영약 따위는 중원에 널려 있었다.

“금령신단은 인위적으로 연단한 영약이 아닐세. 영약이란 참으로 기묘한 물건이지. 자연이 내공심법을 익힌 것도 아닌데 특별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영약들엔 마치 인간의 ‘단전’처럼 자연의 기가 모인다네. 금령신단은 청해성 시달목(柴達木)의 깊은 땅속에 묻혀 있던 영약이지. 하늘을 향해 과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 지하로 더욱 깊이 파고들어 더욱 단단해지는 영약이지.”

대지 위로 피어나는 꽃과 같지 않다.

땅속으로 자라 인간의 양식이 되는 감자나 고구마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우연히 그 장소를 지나가다 발견할 수 있는 영약들과는 다르게 금령신단은 그 존재부터가 작정하고 찾는 이들이 아니고서야 발견할 수 없는 영약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내게 주겠다는 말이오?”

화염신황이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었다.

금성지체를 타고난 황극린에게 금령신단은 최고의 영약일 것이다.

“그렇다네.”

“알겠소.”

물론, 그것을 받는다고 흑살문주와 싸우겠다는 건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황극린을 다시 보게 된 화염신황이었다.

“물어볼 게 있소.”

“무엇인가?”

“당신이 빼앗긴 회생비록에 대해서.”

“그것 말인가.”

화염신황이 진중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가지고 있던 회생비록도 하나의 설화였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아니, 인간은 무공뿐 아니라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보이는 게 달라지는 법이지. 하루 먹고살기 바쁜 이들은 숭고한 대의 따위야 전혀 관심이 없겠지. 하나, 스스로 추구하는 길에 올라선 인간들은 삶에서 생존과는 또 다른 가치를 찾는다네. 내가 가진 회생비록은 그중에서도… 마(魔)의 길에 오른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네.”

마의 길.

햇볕에 몸이 타오르는 대신 공령신체를 타고난 천재.

그리고 이제는 마의 길에 오른 여인에 대한 이야기란다.

“회생비록에서 공손채라는 여인의 이야기는 사천성에서 시작되었다네.”

* * *

황극린은 화산의 연화봉(蓮花峯)에 올라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회생비록이라는 서책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건 분명했다. 흑살문주 암혼마제가 위험을 감수하고 그것을 강탈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생비록에 담긴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황극린은 회생비록에 대한 이야기가 무림의 역사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공손채.’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흔한 이야기였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부모를 죽인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고, 무공을 익혀 사천에서 제일가는 무인이 된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사천에서 자리를 잡고자 사랑하는 사내와 가정을 이루었고, 사슴 같은 아들과 딸을 낳았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를 탐한 궁공문(穹空門)이라는 명문거파의 문주가 계략을 짜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죽인다. 복수를 이루고 평안을 이뤘다고 생각한 그녀에겐 하늘이 더 큰 시련을 내려 주었다.

그녀는 하늘을 저주했다.

더 강한 힘을 얻어서 끔찍한 세상을 파멸시키고자 했다. 마공의 힘을 빌려서까지 말이다.

여기까지 보면 전에 보았던 회생비록과는 조금 달랐다.

하늘의 저주이자 축복을 받은 이들이 무림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점이었다면, 공손채라는 여인의 이야기는 사실 무림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글의 후반부로 갈수록 무언가 기묘했다.

여인이 마공을 익힌 진짜 목적.

마공은 흔히 하늘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의 무공이라 한다.

그녀는 마공을 이용하여 죽은 직후 완전히 얼어 버린 남편과 자식을 되살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건지는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얼어 버린 남편과 자식이라.”

기묘했다.

그녀가 빙공이라도 익힌 것이 아니라면 죽은 가족들을 어떻게 얼려 버릴 수 있었을까? 가족의 시체가 썩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한 것일까? 가족이 죽은 장소에 혹한의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던 걸까?

회생비록은 그리 자세하게 상황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용을 가지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북해빙궁.”

당연히 그 이름이 떠올랐다.

동시에 의아스러웠다.

만약 공손채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북해빙궁의 초대 궁주에 대한 것이라면.

대체 왜?

회생비록의 저자는 그런 것을 서책으로 남겨 두었을까?

그는 대체 무엇을 원했던 걸까?

‘회생비록에 대하여 알고 있는 놈들을 다 만나 봐야겠군. 그 전에.’

황극린이 행낭 속에서 금색을 환히 내뿜는 영약을 꺼냈다. 금령신단. 화염신황은 따로 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그것을 내어 주었다. 조약을 문서로 남겨 두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화염신황은 뭘 보고 자신을 믿은 걸까?

뭐, 굳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어차피 약조를 지킬 생각이었으니까.

꿀꺽.

황극린이 금령신단을 삼켰다.

동시에 그의 육신에서 황금빛의 광채가 터져 나왔다.

* * *

“벌써 다 취했는가?”

“그렇소.”

화염신황의 안색은 왜인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역시 금성지체라 그런가… 정말 빠르게 취했군. 최소한 칠 주야는 걸릴 줄 알았는데, 반나절도 안 되어 영약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 건가.”

이제 와서 자신이 금성지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했기에 황극린은 말을 아꼈다. 알아서 착각한 화염신황이 만족스러운 듯이 황극린을 바라보았다.

금령신단을 발견하고 오래도록 고민했다.

그 자신이 취할 것인지. 혹은 화산을 이끌어 갈 후배에게 선물할 것인지를 말이다.

‘결국 주인을 찾아갔구나. 금성지체를 타고난 이가 취했으니 순리대로 된 것이겠지.’

화염신황은 하늘에 뜻이 있다고 믿었다.

이 순간 황극린이 화산에 찾아온 것. 금령신단을 그가 가지고 있던 것. 황금왕이나 무적금강권이 평생을 다해 찾지 못했던 것을 현세대의 금성지체를 타고난 이가 취한 것. 모두가 하늘의 안배일 것이다.

“화산의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게.”

“알겠소. 그런데 중독된 것이오?”

“그렇다네. 내공으로 몰아내려 하지만 암혼마제의 독공은… 무언가 다르군. 회복하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것 같다네.”

암혼마제가 익힌 독공은 치명적이다. 강기에 적중당하면 상처 부위가 계속 썩어 간다고 한다. 화산에도 무림의가 있을 텐데도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보면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봐도 되겠소?”

화염신황은 황극린에게 의술을 아느냐고 묻지 않았다. 조용히 상의를 들어 올려 배의 상처를 보여 준다. 보통 사람이 보았다면 눈살을 찌푸릴 법도 하지만 황극린은 가만히 검게 물든 상처를 바라본다.

“팔선초(八仙草)와 송엽(松葉) 그리고 진피(陳皮)를 달여 약으로 써 보시오.”

“자네, 약학에도 조예가 있었던가?”

“그건 아니고. 이런 상처를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소.”

“그렇군. 조언 고맙네.”

당연하게도 근본적인 해결법은 아니었다.

“화산의 의술로 해결할 수 없다면 만뇌문으로 오시오.”

“만뇌문에 고절한 의원이 있다고 들었네.”

성수신의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은 무림에 널리 퍼졌다. 만뇌문이 연단을 시작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라는 건 아니다.

‘흑주가 맛있게 먹겠군.’

암혼마제가 만든 독이라면 흑주의 별미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지이이잉.

황극린의 소매 속에서 작은 진동이 울린다. 전음석에 글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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