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받아들이다
황극린이 교특범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회생비록에 대한 정보를 찾고 그를 노리는 문파가 어딘지 알아보도록.”
“회생비록이 무엇입니까?”
황극린이 서문세가에서 받아 온 회생비록을 보여 준다. 꼼꼼하게 회생비록을 검토한 교특범.
“혹시 이것과 주군께서 찾으시는 인형혈삼이 연관이 있는 겁니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인형혈삼은 기이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황극린이 207호로서 살아가던 미래와 현재는 다르다. 그것은 황극린의 존재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인형혈삼은 현시대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황극린은 마경에 다녀온 이후 그런 가정을 세웠다.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 회생비록에서 말하는 ‘저주’가 주군께도 영향이 있는 겁니까?”
교특범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는 황극린을 모시기로 했다. 그렇기에 주군의 안위에 대하여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다. 교특범이 보기에 황극린의 재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러한 재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저주 때문이라면? 황극린이 인형혈삼이라는 의문의 영약을 찾는 것도 이해가 됐다.
“아니다. 내겐 상관이 없다.”
황극린의 말에 교특범이 안심한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아,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이들은 북해빙궁과 천화련 그리고 혈마교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만 들어도 긴장하게 되는 그 이름들.
사실상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문파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회생비록에 나오는 것처럼 저주를 타고나는 대신 인간을 초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말인가?
“그들이 경쟁자라면 더욱 조심해야겠군요.”
“주의해라.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잠시 뒤로 물러서면 된다. 작은 정보를 얻기 위해 네가 죽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교특범이 황극린의 말에 감동하여 목소리가 떨렸다.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죽지 않겠습니다.”
황극린은 교특범에게 여러 조언을 해 주었다. 무문은 이제 만뇌문만을 위한 정보 단체였다. 황극린이 아는 정보를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혈마교에도 마경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교주가 그곳에 들어가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회계산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겠지.”
혈마교.
그들에게도 마경이 있다는 말은 어쩌면 그곳에서 인형혈삼과 같은 희대의 영약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황극린은 그런 영약이 다른 이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황극린은 이미 인형혈삼이 자신을 과거로 보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황극린은 과거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손에 그러한 물건이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
마경에서 탄생하는 것이 인형혈삼과 같이 시간을 되돌리는 역천의 수준이 아니더라도.
만약 혈마교주나 천화련주 그리고 북해빙궁주가 그런 것을 취하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만뇌문은 그 모든 문파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어찌 보면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황악반점이라고 있을 거다.”
“예, 알고 있습니다. 요즘 중원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더군요.”
황극린은 공격적으로 황악반점을 중원 전역에 퍼트렸다. 물론, 작은 현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각 성의 성도들이나 주요 현의 중심부에 들어간 것이 전부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늘리는 것보다 착실하게 늘려 가는 게 좋았다.
단순히 장사의 개념도 있겠지만, 황악반점의 역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받아라.”
“이건……?”
“너는 반점연합회주다.”
반점연합.
황극린이 황악반점을 중원 전역에 퍼트렸던 건 현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설마 황악반점은…….”
“만뇌문의 정보 거점이다. 솔직히 하오문과 비슷한 방식이라 할 수 있겠군.”
“……!”
“이제 네가 그곳의 총책임자다.”
황극린은 사실 교특범이 임무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여러 가지를 보고 판단했다. 처음 흑사회에 잡혀 있는 그를 보았을 때도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하오문주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황악반점을 떠올렸으며, 임무를 수행하는 자세를 보고 확신했다.
“전 주군께서 내리신 임무를 완전히 수행하지도 못했는데…….”
혼란과 감격에 휩싸이는 교특범이 선뜻 황극린이 내민 금으로 만든 신분패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라고 하진 않는다. 네 가능성을 보았고, 능력을 확인했을 뿐이다.”
교특범은 크게 눈을 한 번 끔뻑이더니 신분패를 받아 들었다.
부담스럽다고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수하의 도리가 아니다. 명령을 내리면 받든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사실 교특범은 그 자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하오문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장단점을 황악반점에 적용할 수도 있으리라. 하오문을 뛰어넘는 정보 문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받들겠습니다. 주군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점주들을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현재 황악반점의 점주들은 만뇌문 식솔들의 가족들이다. 그렇기에 배신할 가능성은 낮지만… 규모를 키운다면 인력 관리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믿는 수하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하오문에서도 인재를 빼 올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가진 기반이 없어서 따라 나오지 못한 하오문의 장로들도 있습니다. 믿을 만한 자들이지요.”
“네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겠다. 그러니 너만의 정보 문파를 만들도록. 무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다.
임무가 있다고 하길래 그것만 수행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황극린은 더 큰 기회를 주었다.
“절대 주군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교특범의 부리부리한 눈빛을 본 황극린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 마음 잊지 말도록.”
“예!”
그렇게 교특범은 완전히 만뇌문의 식구가 되었다.
처음엔 뇌불과 황극린 그리고 몇 명의 제자가 전부였지만, 현재는 여느 대문파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황극린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곧 용왕궁이 오겠군. 어쩌면 다른 문파들도 말이야.”
그들은 회계산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으리라.
만약 겁도 없이 이빨을 드러낸다면, 그에 걸맞은 대답을 해 주면 된다.
* * *
“천흉을 만나고 싶다고요?”
제갈소희와 열띤 토론을 펼친 탓인지 땀이 흥건한 육금연. 그녀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황극린을 바라본다.
“왜요? 설마 천흉이 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천흉 부교주는 무력은 저보다 강하겠지만…….”
“그녀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더군.”
“네? 설마 황 공자님이…….”
“아니. 혈마교다.”
혈마교? 육금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혈마교에서 천흉의 목을 원하는 건가요?”
“천흉의 혈육이 그녀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배교에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거다. 혈마교와 연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만나게 해 드릴 순 있답니다. 하지만 천흉이 황 공자님의 말을 따를지는 잘 모르겠어요. 성격이 워낙 괴팍하거든요. 저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에요.”
“그건 알아서 하지.”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황극린과 거래해서 크게 이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황극린이 주섬주섬 품을 뒤지자 육금연이 깜짝 놀란다.
“그, 그걸 사용하시려는 건가요!”
육금연을 이용할 때 쓰는 방법.
양념 육포를 구워 준다고 생각한 육금연이었다. 이미 자동으로 입가에 침이 고였다.
“아니다.”
“허.”
허탈한 표정을 한 육금연.
“이걸 알고 있나?”
전음석을 꺼내 든 황극린.
“운철 중에서도 몹시 희귀한 물건이로군요. 이건 혈마교가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육금연은 진법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도 재주가 좋았다.
“이걸 또 반으로 나눌 수 있나?”
전음석은 거리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황극린은 전음석이 더 나누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비상 때 대응이 더 빨라질 테니까.
육금연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오래도록 전음석을 살펴보았다.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성급하게 반으로 쪼개려다가 운철의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답니다.”
“그렇군.”
“운철이라는 게 참 예민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에요.”
“알겠다.”
황극린이 몸을 홱 돌린다.
그러자 육금연이 당황한다. 이게 끝인가? 그녀를 설득하려고 고기를 나눠 주거나 해야 하지 않나? 고기를 잔뜩 먹은 다음에 그에게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까지 한 그녀였다.
“화, 황 공자님, 고기는…….”
“고기는 나중으로 하지.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네?”
“천흉과 접선하게 해 주는 대가는 네 목숨을 살려 주는 것으로 하지.”
“제 목숨이요?”
“동굴로 가라, 그곳이 제일 안전할 터이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때, 황극린이 손을 휘두른다. 저 멀리 날아간 암기가 어딘가에 박혔다. 황극린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힘으로 암기에 연결된 뇌섬사를 당겼다.
“살수?”
복면까지 쓰고 정체를 가린 무인. 일격에 제압당했지만, 이런 무인들의 수가 많다는 문제가 있었다.
“용왕궁은 아니로군. 회계산 전체에 포위망이 구축되었다.”
“그, 그런!”
“혈마교도인가.”
“그것까지 알 수 있는 건가요?”
황극린이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육금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압도적인 위엄. 마치 배교주와 마주하는 것 같은 공포가 기어오른다.
“가라. 위험하다.”
“그, 그럴게요.”
육금연이 황급히 동굴로 들어간다. 좁은 길목이었으니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황극린을 뚫고 가야 한다. 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잘됐군.’
황극린은 회계산 전체를 포위한 기척을 느끼고 미소를 머금었다. 군데군데 황극린마저 긴장하게 할 고수들이 숨어 있었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회계산은 이미 황극린의 손에 넘어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저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 * *
“지옥참마대(地獄參魔隊) 집결 완료 했습니다.”
“구유혈랑대(九幽血狼隊) 집결 완료 했습니다.”
“비영추혼대(秘影追魂隊) 집결 완료 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최상부에서 내려온 명령. 그것은 단 하나였다. 회계산에 있는 모든 것을 강탈하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황극린이라는 절대고수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선의 준비를 마쳤다.
“천라지망을 펼친다.”
“존명!”
화경에 이른 절대고수를 잡는 방법.
그러한 절대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무적은 절대 아니다. 무한한 힘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부딪친다면 언젠간 힘이 다한다. 내공은 한계가 있었다.
“곧 지원군이 올 것이다.”
혈마교는 단일 문파로서 최강이라 불린다. 하지만 혈마교의 정예 대부분은 십만대산에 머물러 있다. 소교주 쟁탈전이 한창이기에 중원 무림에 모든 힘을 쏟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초정예 부대 세 개가 회계산에 당도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그것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기다 혈마교는 혈혼단의 실패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휘하 사파 세력들까지 소집했다.
“암천파(暗天派)의 장문인 이태경이올시다. 교주님의 부름을 받고 회계산에 당도하였소이다.”
“월영문(月榮門)의 소문주 조향령이라 해요. 잘 부탁드릴게요.”
“귀영회(鬼影會), 회계산에 도착했습니다.”
그 외에도 내로라하는 사파 문파들이 혈마교에게 지원을 보냈다. 이것만 해도 중소문파 정도는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아 멸문할 수준이었다. 대문파도 긴장해야 할 병력이 집결한 것이다.
“천화련보다 먼저 이곳을 점령하는 게 목표다. 일다경도 쉬지 않고 상대를 공격한다.”
“만약 전투가 치러진 후에 천화련이 도착하면 어떻게 합니까?”
귀영회의 부회주가 질문한다.
그러자 회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피식 웃는다.
“그들 또한 잡아먹는다.”
“예?”
“교주님께서 직접 오실 것이다.”
“……!”
지원을 나온 문파들이 모두 경악한다.
부교주 정도나 오면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라? 교주가 직접?
“교주님의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다. 우리가 먼저 놈을 제압한다.”
혈마교주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리 처리해 놓는 편이 좋으리라.
천을 헤아리는 고수들이 포위망을 좁혀 나간다.
이곳은 만뇌문도 아니다. 진법으로 수많은 무인을 상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모든 무인을 황극린 혼자서 상대해야 한다.
승리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