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37화 (237/316)

237화 뇌정 폭풍

이곳에 들어와서 알 수 있는 것.

하나. 태양이나 보통의 자연현상만 볼 수 있는 만뇌문과 달리 이곳의 내부는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형태로 기가 순환하고 있다는 것.

둘. 이곳으로 빨려 들어온 기운들은 사용되지 않고 계속 흐를 뿐이라는 것.

셋. 모든 기의 폭풍이 황극린에게 돌진하고 있다는 것.

“이건 뭐.”

마치 인간의 눈처럼 생긴 회오리 폭풍.

설명하려면 눈알 같은 것들이 모래처럼 흩날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징그럽긴 했다. 그것이 삽시간에 다가와 황극린의 몸을 집어삼키려 했다.

쉬이이이익-!

황극린이 피하자 폭풍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급격하게 방향을 꺾는 일은 없었다. 다만, 워낙 폭풍의 수가 많았기에 황극린도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쉬이익-! 쉬익-!

그렇게 얼마나 피하고 있었을까? 황극린의 눈이 번뜩인다.

폭풍에 틈이 보이는 순간.

쿠르으응!

혈풍뇌전신공 뇌성분참(雷聲分斬).

시각적으로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지만, 뇌전이 폭발하는 소리는 몹시 크다. 파괴력은 늘리고 타격 범위는 줄인 일종의 암살식이라 할 수 있었다. 황극린의 손가락에서 터져 나간 뇌전이 약간의 방향도 꺾지 않고 직선으로 쭈욱 나아갔다.

콰아앙!

뇌성분참이 회오리 폭풍과 충돌했다.

“부족했다?”

작은 폭풍 중 하나를 노렸을 뿐이다. 솔직히 황극린은 하나 정도는 쉽게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대충 뇌전 한 줄기를 쏜 것도 아니다. 파괴력을 극대화하여 폭풍의 중심을 노렸다. 본능적으로 그곳이 약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

눈알을 달고 다니는 회오리들은 잠시 위력이 약해지나 싶었지만, 다시 맹렬히 회전하며 황극린에게 다가왔다.

‘없앨 수는 없는 건가.’

마경이라는 장소.

방심은 금물이다. 지금은 피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또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황극린이 다시금 손을 뻗는다.

위력이 약하다면 조금 더 올려 보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공은 아껴 놓는다.

‘이곳은 내공의 밀도 자체가 달라 운기조식을 하면 금방 내력을 채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가 회오리 폭풍에 집어삼켜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무림인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운기조식을 할 때였다.

“천노뇌정(天怒雷霆).”

순간 황극린의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섰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온몸의 솜털도 서는 게 느껴진다. 그의 주먹에 뇌전의 기운이 빠르게 뭉친다. 세맥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삽시간에 손에 모여 둥근 형태를 갖추었다.

온전한 원은 아니다.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사방으로 터질 것처럼 꿀렁이고 있었다.

뇌전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거듭한 황극린이 만들어 낸 초식 중 하나. 뇌불이 만든 ‘만신’이나 ‘만뇌’와 비교해도 절대 그 파괴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건 뇌불이 사용할 수 없는 초식이다. 타인과의 비교를 불허하는 세맥의 탄력과 강도를 가진 황극린이었기에 이런 막대한 기운을 단번에 모을 수 있는 거다.

중요한 건,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바로 쏘아 내야 한다는 것.

콰지지지지지지직!

황극린이 던진 천노뇌정이 황극린을 향해 다가오던 회오리 폭풍의 중심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

쿠르으응! 쿠르응!

폭풍은 벼락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마경의 회오리 폭풍들은 모두 회전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황극린의 천노뇌정에 닿은 폭풍은 힘이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품은 채로.

더욱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황극린에게 다가오던 폭풍의 속도가 몇 배는 늘어났다. 황극린의 감각으로도 위험하게 느껴진다. 황급히 회피했다.

‘뭐지?’

황극린도 의아해했다.

어쩌면 기의 집합체인 폭풍들이 황극린이 쏘아 낸 기운을 흡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지만, 뇌성분참에 직격한 회오리 폭풍은 잠깐이었지만 힘을 잃었다. 그런데 왜 천노뇌정은 흡수한 걸까? 뭐가 다른 거지?

그렇게 고민하며 폭풍들을 피해 도망치던 황극린.

그의 등허리에서 소름이 쭈뼛 돋아났다. 이런 경험은 황극린으로서 흔치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를 만나더라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게 그의 장점이었으니까.

그런 황극린이 긴장했다.

“…실수인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천노뇌정을 머금은 회오리 폭풍이 맹렬하게 사방으로 움직이고 있다. 벼락을 끌고 다니는 폭풍. 작은 폭풍은 큰 폭풍에 집어삼켜진다. 그리고 천노뇌정을 담은 폭풍은…….

어느샌가 그 크기가 열 배로 커졌으며.

실시간으로 더욱 몸집을 불려 가고 있었다.

자연에는 의지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법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거대한 것은 작은 것을 집어삼킨다. 이 장소도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장소는 아니다.

단지.

비정상적으로 많은 기운이 한 공간에 모였을 뿐.

“제기랄.”

만약 천노뇌정보다 극강의 오의를 쏟아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겨우 천노뇌정을 발출한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당연히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이어 나갈 여유 따위는 없었다.

천노뇌정의 폭풍은 지금도 그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으니까.

타다다닷-!

황극린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쳤다. 온몸에 뇌전의 기운을 전달하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가 전속력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공간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일단 거대한 폭풍에서 멀어져야 했다.

휘이이익-!

어찌나 빠르게 달렸는지 바람이 귀를 강하게 때린다. 일각 정도 달려갔지만 아직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넓었다. 거의 만뇌문의 입구에 설치된 진과 같은 수준…….

황극린이 우뚝 멈춘다.

꽤 넓다고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에 도달했다.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의 절벽. 손을 대니 거대한 반발력이 황극린을 밀어낸다. 절벽 사이로 지금도 회계산의 정기가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

거대한 힘.

아무리 화경의 경지에 오른 인간이라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들에게 악의는 없다고 하기에 피할 수는 있겠지만,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는 거다.

“여긴 아니군.”

어쩌면 출구 따위는 없는 게 아닐까?

입구만 있는 장소가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황극린은 진법 안으로 들어오고 난 뒤로 이곳이 인형혈삼이 탄생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방을 헤집어 놓는 폭풍 때문에 제대로 된 수색을 할 수가 없는 거다.

쿠르으응-!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극린이 뒤를 돌아본다.

“…….”

척수를 타고 흐르는 전율. 이미 알고 있었다. 폭풍이 어느 정도로 거대해졌을지 말이다. 실제로 두 눈으로 마주하니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라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적당한 크기로 뭉쳐서 날아다니던 회오리 폭풍들이 천노뇌정을 품은 폭풍에 집어삼켜져 점점 그 크기를 키워 갔다. 꽤 먼 거리였지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하나의 성 따위는 삽시간에 조각내 버릴 수준으로 크기를 키웠다. 왜인지 폭풍 속에서 터지고 있는 뇌광도 훨씬 크기를 키웠다.

원래 벼락은 폭풍 속에서 피어난다고 했던가.

평생 가도 목격하기 힘든 천재지변을 마주한 황극린이 일종의 깨달음도 얻을 수준이었다. 저게 가만히 있었으면 관찰하면서 움직임을 보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황극린의 고민은 짧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거대한 폭풍은 계속 황극린에게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었다. 절벽을 뚫는 방법도 택할 수 없다. 이곳은 출구가 아니다. 애초에 이곳에 출구는 없었다. 입구만 있었을 뿐.

“도전인가.”

목숨을 건 도전.

폭풍에 내력을 소모하는 건 최하책. 오히려 폭풍은 힘을 키울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황극린은 폭풍을 마주했다. 붉게 빛나는 안광이 그 깊은 속을 꿰뚫어 보았다.

폭풍의 중심은 분명히.

‘평온하다.’

그 중심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평온한 그곳에서 폭풍의 움직임을 관조할 수만 있다면.

뚜벅뚜벅.

황극린이 앞으로 나아간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황극린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콰르으응-!

그런 황극린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천노뇌정의 폭풍이 사방으로 벼락을 발산한다. 감히 인간 따위가 겁 없이 다가오는 것에 분노하는 듯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인간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기우제를 지낸다. 하늘에 제(祭)를 올려 감동하게 하려는 거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비가 오지 않는 건, 하늘이 분노해서가 아니다. 자연의 기(氣)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뿐.

황극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노뇌정을 품은 폭풍의 분노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뇌왕현신(雷王現身).”

전신에서 뇌광이 분출됐다.

* * *

콰지지직-!

“꺄아악!”

“……!”

삼면의 입구에서 고민하고 있던 육금연과 교특범. 두 사람이 당황한다. 벽에서 뇌전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당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저야 모르죠. 근데 진이 흔들리고 있어요.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분명한데…….”

“설마 주군께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속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진법에서 저 정도의 파장이 흩어져 나올 정도면 위험할 거예요. 진법 중에서는 안으로 들어온 자를 잡아먹는 진도 있거든요. 쌓이고 쌓인 내력이 그대로 인간을 압사하는 그런 진법 말이죠.”

교특범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불가능할 겁니다. 주군께서 당하실 일은 없습니다.”

“황 공자님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시군요?”

솔직히 육금연은 아닌 척했지만, 심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타공인… 까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배교에서는 최고의 진법가였다. 그녀는 이 진법이 배교주들의 무덤에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라는 걸 알았다.

대체 어떤 진법가가 이걸 설계했을까?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그런 고민을 하다가 벽에서 뇌전이 터져 나왔다. 마치 불행을 암시하는 듯한 뇌전. 사실 인간은 벼락을 두려워한다. 하늘의 진노라 생각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육금연은 천지만상의 뜻을 헤아려 보는 자로서 그게 진짜 하늘의 분노일까? 하는 의심은 했었지만, 분명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미 황 공자님은 진법 내에서 갈가리 찢어졌을 수도 있어.’

냉철한 판단이었다.

육금연의 주먹이 꽉 쥐인다.

‘잘난 건 알지만 왜 거길 혼자 기어 들어가, 거길? 내가 말한 대로 두 달 정도만 기다렸으면 진을 해석하여 안전하게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짜증이 난다.

사내라는 것들은 다 그랬다. 분수도 모르고 자존심을 지키고자 앞으로 나아간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도 그러했다. 그냥 도망치면 되는데,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앞으로 나간다.

육금연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하는 것을 본 교특범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 판단을 내려야 하겠군.’

주군을 믿지만, 그렇다고 뒤에서 지켜만 보는 것은 수하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황극린의 명령은 없었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조력자를 불러오겠습니다.”

“누굴요?”

“제갈창해 대협입니다.”

“그 녹림의 총채주요? 교주님이 싫어하시던데.”

어느샌가 퉁명스럽게 변한 육금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제갈소희 소저도 불러오겠습니다.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단 셋이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제갈세가 것들과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교특범의 말도 틀린 게 아니다. 아마 교특범이 말한 두 사람이 만뇌문의 진을 개조한 이들일 것이다.

“그러면 좋은데… 그들을 데려오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

그건 확신할 수 없다. 솔직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일단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참, 제가 말한 물건들 좀 구해 주실 수 있나요?”

“예.”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일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교특범이 나가고 육금연이 부적을 쓰기 시작한다. 최대한 진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일단 공동에 변이 없어야지만 황극린이 나올 통로가 생기지 않겠는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육금연이 부적 열 장을 썼을 때.

교특범이 강철 기둥 열 개와 육금연이 요구한 것을 구해 왔다.

“그건 왜요?”

“기둥으로 천장이 무너지는 걸 막을 생각입니다.”

“뭐, 없는 것보단 낫겠죠. 도와드려요?”

“괜찮습니다.”

서로를 도와 가며 황극린을 구출하려는 계획을 심화시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동에 쌓은 기둥이 사십 개를 넘어간 시점이었다.

고오오오오오-

“헙!”

“미친!”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선다.

공간이 흔들린다. 쌓아 놓은 철 기둥이 휘어지고 있었다.

“무너집니다!”

“겨, 결국 이런 데서 죽는 건가……?”

무너진다면 탈출할 길은 없었다.

반시진이나 기어가야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무너지는 속도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두 사람이 좌절하고 있을 때.

“괜찮다.”

진한 피 냄새.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진한 향이었다. 육금연과 교특범이 몽롱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진동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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