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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36화 (236/316)

236화 이해 불가

회계산 중턱의 동굴.

입구에 도착하니 제대로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약간 떨어진 곳에는 잡초들이 듬성듬성 나 있었지만, 연갈색으로 물든 외관을 볼 때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회계산은 보통 산이라는 장소와 대비될 정도로 정기가 부족했다.

“꽤 동굴이 깁니다. 들어가 보니 함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좁아서 주의하셔야 합니다.”

“들어가 보지.”

“예.”

육금연도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헤벌레하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떤 것을 느낀 것인지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직 그녀도 확신이 없었던 탓일까? 동굴로 들어가는 건 황극린과 교특범 그리고 육금연 세 사람이었다.

‘길긴 하군.’

황극린은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생명의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산이라는 장소에는 온갖 동물들이 살아간다. 단순히 잡초나 나무 같은 것들만 말하는 건 아니다. 온갖 날벌레와 작은 짐승들도 산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런데 동굴 안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박쥐 따위는커녕 작은 벌레들도 기어 다니지 않았다.

‘정말 고요하군.’

황극린은 왜 교특범이 이곳에 귀기가 넘쳤다고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거의 반 시진을 기어가듯 앞으로 전진한다. 그리고 동굴의 끝부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람 다섯이 누우면 꽉 찰 듯한 넓이의 공동. 딱히 입구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회계산 전체를 수색했지만, 이곳처럼 의심되는 장소는 찾지 못했습니다. 평범한 동굴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선 작을 벌레도 찾아볼 수 없더군요. 여기엔 이렇게 물이 고여 있기도 한데 말입니다.”

“확실히 그렇군.”

황극린이 육금연을 바라본다.

“뭔가 알겠나?”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육금연이 장난기를 싹 지운 얼굴로 공동의 벽을 쓰다듬는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벽면에선 회색빛의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곳엔 확실히 진법이 있소.”

하지만 황극린은 육금연과 달리 단번에 진법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의 감각은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한데…….”

황극린은 정말 진법의 존재를 느끼는 걸까?

그녀는 약간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탐안쌍지(探眼雙指)의 수법으로 진법의 흔적을 알아챈 것과 다르게 황극린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진법에 대해서라면 육금연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그냥 그런 느낌인가?’

애초에 진법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이들도, 진법의 입구에 다가서면 이상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끔 어두운 뒷골목을 혼자 거닐 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런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입구는 여기예요.”

육금연이 동쪽의 벽면을 가리킨다. 매끈한 벽면. 인간이 조형하지 않았다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을 듯 보인다.

“진의 초입부를 해독하여 입구를 열 거예요. 아마도…….”

육금연의 눈이 금빛으로 번뜩였다.

“보름 내에는 해독할 수 있을 거랍니다.”

왜인지 모르게 육금연은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 그녀가 보아도 이 동굴에 만들어진 진법은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보통 명산이라 불리는 곳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면 일부 구역에서만 정기를 빨아들인다.

하지만 회계산에 설치된 진법은 회계산 전체에 뿌리를 넓게 뻗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보는 구조였다. 이렇게 무식하게 정기를 끌어온다면 언제 균형이 깨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니 진법을 만든 주체의 실력이 고대의 배교도들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을 실력자라는 뜻. 그런 수준의 진법을 보름 만에 해독할 수 있다. 제갈세가에서 들었다면 거짓말 말라며 노발대발했으리라.

육금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황극린을 본다.

날 데려오길 잘했지? 그런 얼굴이었다. 그런데 황극린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곳이 입구가 맞나?”

“맞아요. 이곳이 바로 입구로 통하는 문. 만약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다가는 동굴 속에서 매몰되고 말 거예요.”

황극린이 다가와서 동쪽의 벽면을 쓰다듬는다.

육금연이 그랬던 것처럼 손에서 연기 따위가 흘러나오진 않았다.

“확실히 여기도 입구가 될 것 같군.”

“여기도요?”

“그래, 하지만 아니야.”

“아니라고요?”

황극린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감각은 모든 곳이 입구라 말하고 있다. 단순히 힘으로 부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반 시진 동안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꽤 무위가 높은 세 사람이 반 시진이 걸렸다면 그 깊이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만약 힘으로 입구를 뚫어 내려다가 산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 무게는 한낱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침입자를 대비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황극린이 다른 벽면을 살펴본다.

‘벽마다 감촉이 다르다.’

매끈하다, 울퉁불퉁하다 이런 관점이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벽면의 느낌은 달랐다. 동쪽은 서쪽보다 차가웠으며, 남쪽은 동쪽보다 따스했다. 그리고 왜인지 물기를 머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푸석푸석한 돌인 건 마찬가지긴 했지만 말이다.

황극린의 말에 다시 한번 육금연이 탐색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지.”

황극린도 아직 확신이 없었다.

보통 이렇게 숨겨진 비동은 확실한 딱 하나의 길을 열어 두곤 한다. 황극린의 감각으로도 쉬이 찾아낼 수 없는 틈이었으니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는 편이 좋으리라.

“삼방……. 무언가 이상해요.”

“뭐가 말이지?”

“벽면은 분명 떨어져 있지만… 연결된 것 같아요. 이런 구조는 말이 안 되는데? 설마 이 공동 자체로 벌써 진법에 들어온 건가?”

“그건 아니다.”

육금연이 소매 속에서 수십 장의 부적을 꺼냈다. 그것을 동, 서, 남의 벽면에 모두 붙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교특범이 신기하게 육금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법이나 도술 따위를 사용하는 무인은 흔치 않다고 했다. 주군이 데려오신 여인은 꽤 대단한 실력을 가진 술법가인 듯했다.

세 시진이 지난 후.

“황 공자님의 말씀이 맞아요. 여긴 세 군데의 입구를 동시에 공략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해요.”

육금연의 표정이 구겨진다.

“그럼 저희 세 사람이 각각의 벽면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될 것 같긴 한데…….”

황극린은 육금연이 펼치는 술법을 관찰했다.

어떤 식으로 기운이 움직이는지. 그것으로 자연에서 어떤 반응을 기다리는지. 술법이라는 건 결국 내가기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명이 살아가지 않다고 해도 기(氣)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는 없다. 귀기가 넘친다는 이 의문스러운 공동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두 달. 본교의 지원이 없다면 그 정도는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육금연이 참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깊은 동굴에서 두 달 동안 생활한다? 진법의 입구를 여는 데만 그 정도나 걸린다. 먹을 것도 없으니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아니다.”

“네?”

“네 방법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 같군.”

“뭐가 가능하다는…….”

육금연이 의아한 얼굴로 황극린을 바라본다.

“잠시 들어갔다가 오도록 하지.”

진법에 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육금연이 최소 두 달이라는 기간을 말했다. 실제로 여러 변수를 생각하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들어간다고?

‘육금연을 데려오길 잘했군.’

황극린 혼자 왔다면 더 오래 걸렸으리라. 그가 이제껏 진법을 통과해 왔던 것은 온전히 예민한 감각에 의존한 것이다. 체계적인 진법의 체계 따위는 갖춰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육금연이 부리는 부적과 기의 흐름을 보고 어떻게 진법의 요체를 파악하는지 깨달았다.

육감에만 의지하던 황극린이 기술을 배운 것이다.

“대체 어떻게 들어가신다는 건가요? 힘으로 뚫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답니다. 만약 공동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나 혼자 들어가면 괜찮다.”

육금연이 교특범을 바라본다.

충직한 수하라면 주군의 오만을 바로잡을 수도 있어야 했다. 그녀도 황극린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무공이 강한 것과 진법을 연구하는 건 다르다. 분명 그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교특범은 황극린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다녀오시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자, 잠깐만요!”

육금연이 기겁하며 황극린을 말리려는 순간이었다.

“기가 통하지 않는 장소는 없다. 어느 곳이든 틈이 있기 마련이지.”

황극린이 손을 뻗는다.

뇌섬사에 묶인 세 개의 암기가 세 방위의 벽면에 꽂힌다.

콰지지직-!

“도, 도망쳐야!”

설마 황극린이 뇌전으로 입구를 뚫어 낸다는 건가? 가능한 방법이다. 보통 진법을 힘으로 깨부수는 고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책이다. 그렇게 하다간 모두가 비동에 매몰된다. 최소한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고, 약점을 공략하여 천천히 진행해야 할 방법이다. 부작용이 너무 컸다.

육금연이 도망치려는 순간이었다.

스으으으으…….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무언가. 수백 개의 얼굴에 달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눈동자. 실제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육금연의 기민한 감각이 무언가를 느꼈을 뿐. 도망치려 해도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서, 설마.’

온몸이 달달 떨린다.

이 기운을 어디선가 느껴 본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다. 역대 배교주의 무덤에 만들어진 환상윤회미로대진(幻想輪回迷路大陣). 출입하는 인간을 잡아먹고, 그 위세를 더 강하게 만드는 자연의 악의가 깃들어 있는 장소.

부교주인 육금연도 그곳에 참배를 올린 적이 있다.

‘아니야. 그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무슨 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진을 해독하는 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육금연은 혼과 백을 옥죄는 공포에도 고개를 돌려 황극린이 서 있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런데.

황극린이 사라졌다.

혼과 백을 압도하던 거대한 시선도 깔끔히 사라졌다. 육금연이 자신의 얼굴을 더듬는다. 식은땀조차 전혀 흘리지 않았다.

“착각?”

방금 느꼈던 것이 착각에 불과했다? 아니다. 분명히 혼이 압도당하는 그 거대한 악의는 진짜였다. 그녀의 머리가 기억하고 있다.

“교 대협? 혹시 황 공자님이 사라지는 걸…….”

이곳에 육금연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교특범은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역시 조금 전에 느낀 거대한 악의는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작은 틈이 열렸고, 그곳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황극린은 그러한 악의 속으로 삼켜진 것이다.

“대체 뭐지?”

최소한 두 달이 걸려야 할 개방식(開放式).

황극린은 손짓 몇 번에 진의 틈새를 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가능한 건가? 그녀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과거 제갈세가의 천재라 불리는 제갈창해와 제갈소희가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보통 한 분야의 장인이란 오랜 세월 기예를 갈고닦는다. 그 분야에 대해서라면 장인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는 건 존재하니까.

하지만 황극린은 그러한 법칙을 깨부수고, 상식 밖의 움직임으로 관념을 뒤흔든다.

그렇기에 육금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말이다.

* * *

들어온 순간 깨달았다.

‘굶주린 공간.’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기(氣)와 탐욕이 한데 뭉쳐 폭풍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눈처럼 생긴 내력의 집합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탐욕이 뭉쳐 만든 기운은 주변의 모든 것을 포식하려 한다.

끼이이이이이-!

귀곡성(鬼哭聲)이 울려 퍼지고 있다. 수백 개의 폭풍이 황극린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다가오고 있다. 집어삼키기 위해서.

“본문의 것과 본질은 비슷하지만… 확실히 무언가 달라.”

황극린은 태평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그 또한 긴장했다. 처음 틈새를 파고들 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본질과 마주하니 그리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 생각했다.

“회계산의 기운을 여기로 뭉쳐 놓았을 뿐이로군.”

만약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을 흡수하여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인간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런 형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다.

“무언가를 시도했구나.”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다.

자연 그 자체가 의도한 것이 실패했다. 그리고 회계산에 만들어진 진법은…….

‘천연 진법.’

혹자는 이곳을 마경(魔境)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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