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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35화 (235/316)

235화 도착

육금연은 겨우 당황을 잠재우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황극린을 쫓다가 갑자기 기척이 사라졌었다. 그녀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확인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것만으로 회계산을 추리하는 게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황극린이 회계산을 말하는 이유.

어쩌면.

‘황 공자님도 회계산으로 향하시는 건가?’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

유도신문에 낚인 것이다.

‘아니야. 어쩌면 정말 황 공자는 독심술을 익히고 있을 수…….’

잘 나가다가 황극린이라면 혹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황극린과 눈을 마주친다. 무심한 듯 보였지만, 왜인지 살벌하다.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육금연이 만난 황극린은 그 천화련의 소련주마저 납치했던 인간이 아니던가?

배교의 부교주라고 해도 그가 납치할 수도……?

“헙!”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황극린의 시선이 더 예리해진 것만 같았다. 깜짝 놀란 육금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시선과 마주하고 있으면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회계산으로 가는 이유가 뭐지? 거기에 배교가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이제는 확신하듯 말하는 황극린.

육금연은 어딜 가더라도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그녀가 상대를 농락하는 쪽이었기에 황극린이라는 존재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짓을 고해야 하는가?

아니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하지만 진실을 모두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게…….”

“말해 주기 싫다면 말해 주지 않아도 된다.”

“저, 정말인가요?”

감았던 눈을 뜬 육금연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황극린을 바라본다. 굳이 그가 묻지 않는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하지만 다시 회계산에서 너와 마주친다면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군. 나도 목적지가 회계산이거든.”

“그, 그런!”

결국, 말하지 않을 거라면 회계산에 올 생각은 말아라.

돌려서 협박하는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육금연이다. 황극린에게 말하는 게 더 이익일까? 차라리 회계산을 포기하는 게 나을까?

‘천흉 그년이 왔으면 아마 황 공자님과 싸우려 했을 거야.’

자신이 온 게 다행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배교에는 크나큰 피해가 생겼으리라. 황극린의 무위는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것을 육금연은 알고 있었다.

치지지직-!

자기만족일지도 모를 그럴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 육금연의 코를 간지럽히는 진한 육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것을 느낀 육금연이 눈매를 파르르 떨었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가고 있다.

“갑자기 고기를…….”

“아직 식사를 안 해서 말이다.”

너무 뻔하긴 했다.

설마 고기로 자신을 회유하려는 건가?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미 황극린은 독심술과 비슷한 것으로 그녀의 목적을 모두 알아냈다.

‘그, 그래. 그냥 배가 고파서 고기를 굽는 거겠지……?’

꼬르르륵.

분명 아침을 먹었건만 배가 고프다. 이미 알고 있는 맛이기에 더 허기가 돈다. 황극린은 육금연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고기를 먹기 시작한다. 적절하게 구워진 고기와 속속들이 배어 든 양념.

황극린이 세 개의 꼬챙이에 구운 고기가 모두 사라져 갈 무렵이었다.

“저기요? 황 공자님.”

“뭐지?”

황극린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한번 먹어 보라는 권유도 하지 않는 황극린이다. 애초에 줄 생각이 없었던 건가? 당근과 채찍의 전략이 아니었던 건가? 그런 불안감이 육금연의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들었다.

“저도… 꿀꺽… 한 입만…….”

“먹고 싶나?”

“네!”

너무 크게 소리친 건가. 소리를 지른 그녀도 깜짝 놀라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알겠다.”

“정말인가요?”

“대신,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여, 역시!”

“배교가 만뇌문과 척을 지고 싶은 건 아니겠지?”

황극린이 무심한 눈동자로 묻고 있었다.

“당연히 아니죠!”

“그럼 좋게 좋게 해결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건… 그렇죠.”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하는 육금연이다. 어차피 황극린은 육금연의 목적을 다 알고 있다. 만약 그녀가 몰래 회계산에 찾아갔다간 황극린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아무리 과거의 인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황극린은 그걸 다 받아 주는 협객 따위가 아니다.

목표를 방해한다면 그 누구의 목도 베어 버릴 수 있는 인간.

그것이 바로 황극린!

그렇다면 육금연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래, 난 똑똑해.’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그녀였기에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배교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

“그럼 일단 풀어 주시는 건가요?”

그래서인지 거래를 제안하듯 말을 내뱉는 육금연이다.

“대화할 용의가 있다면 말이지.”

“네, 있어요. 대화하죠.”

“좋다.”

툭, 스르륵.

꽁꽁 묶여 있던 뇌섬사가 스르르 풀린다.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육금연.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먹어라.”

“네!”

꼬챙이 하나. 예상보다 양이 적었지만, 맛을 보는 게 어디냐며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고기에 정신이 팔린 육금연. 그녀를 보며 황극린이 입꼬리를 올린다.

‘걸려들었군.’

그 또한 굳이 배교와 척을 질 생각은 없었다.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고기 하나로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 할 수 있었다.

* * *

“소문이라?”

“소문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긴 하죠.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소수일 테니 말이에요. 냠냠.”

육금연은 어차피 다 틀렸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황극린과 정보를 공유하는 게 이익이라 판단한 것인지 스스럼없이 정보를 털어 냈다. 그녀가 회계산에 향하는 이유.

“회계산에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공 비급이 있다?”

“네, 사실 회계산은 딱히 가치가 있는 명산은 아니었답니다. 보통 명산이라 불리는 오악(五岳)에서는 가끔 백 년 이상 묵은 하수오가 발견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회계산에서는 1년 된 하수오 뿌리도 발견하기 어렵잖아요?”

“알고 있었군.”

“본교에서도 영약이 꽤 필요한지라 주인이 없는 산에 대해선 빠삭해요. 최대한 많은 영약을 확보하려 하고 있죠. 최근엔 어떤 문파…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요.”

어떤 문파.

그것이 만뇌문임은 명확하다. 압도적인 재력으로 중원 전역의 영약을 매입하고 있었다. 순간 자신이 말실수한 건가 싶었던 육금연이 황극린의 눈치를 살폈지만, 딱히 신경을 거스르진 않은 듯하다.

“그래서 회계산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는 산은 아니었답니다. 보통 명산이라면 작은 문파라도 하나 세워졌을 법한데… 규모가 큰 산인 데 비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렇더군. 그런데 왜 그곳에 무공 비급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육금연이 날카로운 눈으로 황극린을 바라본다.

그리고.

“앗, 감사해요!”

황극린에게 갓 구운 고기를 얻은 육금연이 말을 이어 나간다.

“냠냠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규모의 산이 정기(正氣)를 품지 못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모종의 수작을 부리고 있지 않다면 말이에요. 냐암, 아! 벌써 다 먹었네.”

“진법이라도 설치되어 있다는 건가?”

“정확해요.”

배교 또한 진법을 다루는 문파.

제갈세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법을 다룬다. 제갈세가의 진법은 천지간의 화합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배교의 진법은 악독한 부분이 있었다. 주변의 기운을 빼앗더라도 진법의 규모나 완성도를 끌어올리려 한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배교의 진법 지식은 제갈세가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교주께서 회계산에 무공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사실 무림에서 갑자기 사라진 절대고수의 수가 꽤 많다는 걸 알고 계시죠? 무공에는 끝이 없다고 해요. 화경에 이른 고수들도 더 높은 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하죠. 교주님께선 그런 고수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중이라 하셨어요. 남과 경쟁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고 하셨죠.”

“회계산에 무공 비급을 남겨 둔 게 그런 고수라 생각하는 건가?”

“네, 회계산 전체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진법의 규모라면… 솔직히 본교에서도 예상하지 못할 수준의 고수라 판단하고 있죠.”

그러자 황극린의 눈동자에 의심이 깃든다.

“그런 중요한 곳에 너를?”

“…네?”

연신 고기를 뜯고 있던 육금연. 처음엔 황극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이 벌어진다.

“서, 설마 그런 중요한 일에 절 보내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그런 말씀을 하신 건가요? 제가 말이죠, 본교의 부교주랍니다. 무공은 천흉 고년보다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쌓아 온 진법의 지식은 교주님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알겠다.”

“진법과 관련된 일이니 제가 가는 게 확실한 거죠! 제가 풀지 못한 진법은 없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만뇌문에 설치된 진도 제가 마음만 먹으면!”

“그래?”

황극린이 되묻자 육금연이 당황한다.

“아, 정말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요. 제 진법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고 계신 것 같아서…….”

“나중에 한번 진법을 봐주면 좋겠군.”

“네? 제가요?”

“진법에 약점이 있다면 보완하는 게 좋지 않겠나? 우리 쪽에도 진법을 잘 아는 이들이 있으니 교류도 하면 괜찮겠고 말이야.”

육금연은 진법을 공부하려는 의지가 컸다.

만뇌문의 진법도 공부해 보고 싶었다.

“본교의 진법을 개조한 게 누구죠?”

“제갈세가다.”

“제갈세가……. 좋아요. 언제 한번 들르도록 하죠!”

제갈세가의 진법이 얼마나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나 육금연한테 걸리면 일각 만에 풀어 버릴 수 있지.’

물론, 그녀의 주장일 뿐이었지만.

제갈창해와 제갈소희는 둘 다 제갈세가의 출신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재능을 자랑한다. 심지어 와룡(臥龍)과도 비견될 수 있는 수준이라 했다. 육금연이 아무리 배교 출신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가도록 하지.”

“네? 어딜요?”

“네가 진법에 대해서는 최고라 하지 않았나?”

“그, 그렇죠?”

갑자기 왜 같이 가자는 걸까? 육금연이라도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천하제일의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면 네가 해제하도록 해라. 그리고 무력을 써야 할 곳에선 내가 나서도록 하지.”

아무리 황극린이라도 모든 진법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만약 그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다시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배교에서 진법으로 부교주 자리에 오른 육금연 정도의 인물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제갈창해와 제갈소희를 데리러 가는 것도 시간이 너무 걸리고 말이다.

“천하제일의 무공이 욕심나지 않으신 건가요?”

“그런 무공이 있다면 한번 읽어 보고 싶긴 하군.”

황극린은 최고의 무공을 익힌 이들과 마주한 경험이 있다.

북해의 절대자라 불리는 빙백마후와도 조우했었으며, 그 화산파에서도 역대급의 천재라 불렸으며 이제는 장문인의 자리에 오른 화염신황까지.

그들은 그들의 체질과 성향에 맞는 완벽한 무공을 익혔다.

그리고 황극린도 그건 마찬가지다. 혈풍뇌전신공을 익히면서 깨달았다. 뇌전이라는 인간의 육체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기운을 품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체질적인 능력이 컸다.

익히면서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황극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혈풍뇌전신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만약 회계산에 무공서가 존재한다면 제가 가져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누가 더 진법 해제에 공을 세웠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좋아요!”

진법에 대해서라면 육금연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아 온 황극린은 이런 것으로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또한 절세의 무공을 익히고 있지 않은가?

* * *

“주군을 뵙습니다.”

“주군께 인사드립니다!”

무문의 문주 교특범. 그가 부리는 무문의 수하들. 황극린의 예상보다 그들의 수준이 꽤 높았다. 인형혈삼을 수색하면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 교특범은 청성산에서 볼 때보다 훨씬 기도가 안정되어 있었다.

‘역시 만뇌문은 예상보다 훨씬 큰 저력을 가지고 있어. 분명 문도의 수가 적다고 들었는데, 이런 무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니?’

배교에서도 최근에서 알아낸 정보다.

그런데 황극린은 이미 회계산에 수하들을 파견하고 있었다. 정보력의 차이가 몹시 크다는 말이다.

‘배교는 절대 만뇌문을 적대해서는 안 돼.’

그렇게 생각한 육금연이었다.

“그곳으로 안내하도록.”

“예, 주군.”

황극린이 명령에 육금연이 누군지 묻지 않는다. 애초에 교특범은 그녀가 ‘진법’과 관련하여 황극린이 초청한 인물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주군이 직접 데려온 사람을 믿지 못하면, 수하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진법으로는 내가 훨씬 앞서.’

육금연은 수많은 무문의 문도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어차피 진법을 뚫는 데 가장 필요한 인재가 바로 그녀였다. 황극린 또한 그것을 알고 그녀와 함께 온 것이었다.

‘황 공자에게 내 능력을 확실히 보여 줘야겠어.’

황극린의 눈빛이 놀람과 경악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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