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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34화 (234/316)

234화 이동

“끄아아아악-!”

“용왕궁의 위치.”

“그런 곳은 어, 없다……. 우리의 터전은 바다다!”

콰지지지직-!

처음엔 어떠한 것에도 답하지 않으려 했던 이가중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기에 황극린은 고문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회생비록을 노리는 이유.”

“그건… 동족의… 미래를 위해서……!”

“동족의 미래? 너희는 인간이 아닌가?”

“인간이다! 우리도 인간! 크아아악!”

“너희도 저주를 받았나?”

“쿨럭! 저, 저주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럴 수도 있었겠지…….”

“무슨 말이지?”

“그것만… 회생비록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황극린이 더 질문하려 한다.

하지만 이가중의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황극린의 피. 그건 분명히 회복의 능력이 존재한다. 짐승이나 영초가 취하면 이해가 안 되는 속도로 자라게 된다. 그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이가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깐 쉬었다. 뇌전도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묻지. 용왕궁의 배후에 누가 있나?”

“배후… 무슨 배후를 말하는 것이냐……?”

용왕궁은 독립된 문파인가?

“천화련이나 북해빙궁과 관련되지 않았나?”

“천화… 그래, 그들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하여…….”

“무엇이 잘못된 선택이지?”

“모른… 다. 그들에게 관심… 은 없다……. 쿨럭! 그런데…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처음으로 되묻는 이가중이다.

“뭔가 달라진 건가?”

“우리의 몸은… 독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

“극한의 양기… 끓어오르는 독… 지금 내 몸은 뜨겁지 않다…….”

독이라.

황극린의 피가 가진 능력은 회복 능력. 만약 저들의 피가 독으로 작용했다면 그것을 중화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내게 뭘 먹인 거지? 정말 네 피인가? 어떻게… 어떻게……?”

“용왕궁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뭐지?”

황극린이 다시 묻자 이가중이 마음에 안 드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황극린의 손을 보고는 움찔하곤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동족의… 저주를 해소하는 것…….”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네가 아는 건 그게 끝인가?”

“무엇을… 원하는 건가…….”

“회생비록에 대하여 네가 아는 대로 말해라.”

“그건… 선인(仙人)께서 집필하신 하나의 무공서다…….”

“무공서? 선인이라?”

“그것을 익히면… 모든 저주를 해소할 수 있다고… 우리가 가진 회생비록에 적혀 있었다…….”

“내가 가진 회생비록은 무공서 따위가 아니다.”

“그건 숨겨져 있다……. 단순히 읽어서는… 알아낼 수가… 없…….”

결국 이가중이 눈을 뜬 채로 기절했다.

맥을 짚어 보니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맥박이 세차게 뛰는 것이 너무 건강해서 탈이었다. 육신과 정신의 괴리일까? 황극린의 피를 먹은 부작용일까. 어쩌면 고문 때문일 수도 있었다.

황극린은 이제껏 알아낸 것을 정리한다.

‘회생비록은 무공서. 그리고 용왕궁은 그들의 저주를 해소하기 위해 그것을 찾고 있다.’

제약이라고 할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저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출 난 체질을 타고날 것이다. 피에 독이 흐른다. 독공을 익히면 해결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 간단하다면 저주라 부를 수 있을까?

‘북해빙궁은 저주를 해소하기 위해서 날 원했었지.’

그건 황극린의 피에 담긴 힘을 보기 전이었다.

그리고 북해빙궁은 아마 평생 저주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다녔으리라. 그들이 회생비록을 모르고 있을까? 존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으리라.

흑살문에서 살수로 살아왔던 황극린도 서문세가에 와서 처음 들어 본 것이었으니까.

특별한 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

‘솔직히 믿기지 않는군.’

황극린이 회생비록을 다시 본다.

백 번도 넘게 읽었지만, 딱히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구결을 숨겨 놓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 * *

“어떻게 됐습니까?”

황극린은 사흘에 걸친 심문으로 많은 것을 알아냈다.

피에 대한 것도 실험할 수 있었으며, 용왕궁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아냈다. 회생비록에 숨겨져 있다는 구결 따위는 결국 찾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혹시나 하여 서문륭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그도 당연히 몰랐다. 알았다면 벌써 황극린에게 말했으리라.

“용왕궁의 궁주는 저들의 동족이 아니라는군요.”

“동족이 아니라는 말은…….”

“궁주는 전대 궁주의 부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용왕궁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정체를 모른다니요?”

“그녀의 진짜 신분. 분명히 명문거파 출신인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만… 용왕궁 최심복 두 명을 제외하곤 모른다고 하더군요.”

서문륭의 표정이 굳는다.

“그렇다면 용왕궁주라는 이는 상상할 수 없이 간악한 여인이로군요.”

정체를 숨긴다.

말이 쉽지만 사실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십 년도 넘게 용왕궁을 지휘했다. 그녀는 용왕궁의 저주를 해소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이끌었다고 했다. 정이 있다면 그녀가 부리는 수하들에게 출신지를 알려 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가중과 같은 간부에게도 숨겼다.

“용왕궁의 궁도들은 어찌 그녀를 믿었을까요? 신분을 숨기고 신뢰를 얻는 것은 힘들 텐데 말입니다.”

“그녀 또한 화경에 이른 고수라더군요.”

“화경입니까.”

“예. 그리고 아들을 향한 사람이 극진하다고 합니다. 만약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여인이라 했습니다.”

아들의 목숨을 구한다.

결국, 용왕궁의 저주를 해소할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궁도들의 신뢰를 얻었을 수도 있다.

“설마 용왕궁도가 북해빙궁과 같은 문파와 관련이 있는 건…….”

“그건 아닐 겁니다.”

용왕궁은 과거에도 북해빙궁과 많이 격돌했다.

흑살문에 소속되어 있던 황극린은 두 문파의 전투를 전해 들었을 뿐이었지만, 그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고 있다. 북해빙궁이 용왕궁과 한패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용왕궁과 북해빙궁은 경쟁했었다. 회생비록을 두고.

‘그런데 이상하군. 회생비록의 존재는 서문세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소문이라도 나야 할 터인데.’

가장 의문인 것.

황극린은 회생비록을 처음 들어 보았다.

과거에도 서문세가가 회생비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 존재에 침묵했을까? 서문륭이 반로환동을 겪고 다시 나타났을 때 무엇을 했었지? 거기까진 황극린도 모르는 일이었다.

황극린은 알아낸 모든 것을 서문륭에게 알려 주었다.

“용왕궁은 아마 당장 활동하지 않을 겁니다. 신기영도 있고 태상가주께서도 계시니 서문세가는 건들기 힘들겠지요.”

“예,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겠지요.”

황극린이 계속 서문세가에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목적이 있어서 절강성으로 왔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말씀하셨던 것은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서문세가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문륭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황극린은 서문세가를 도와주며 대가를 요구했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만약 만뇌문에 위기가 생기면 도와 달라는 것. 반대로 만뇌문 또한 서문세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다. 쉽게 말해 동맹을 제안했고, 서문세가의 장로들은 모두 동의했다.

사실 화경에 이른 서문륭 한 명만 얻었어도 황극린에겐 남는 장사였다.

물론 이번 일로 용왕궁과 척을 지긴 했지만, 황극린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 판단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당연하다.

‘같은 하나라도 서문세가가 더 크다.’

서문세가는 그리 대단한 세를 자랑하는 가문은 아니었지만, 신의가 있었다. 그런 문파와 연을 맺는 건 협을 찾아보기 힘든 당금의 무림에서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예, 부디 조심하십시오.”

“무림맹의 정예 부대가 오고 있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원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서문청과 서문취아가 따라붙었다.

“은인, 언젠가 만뇌문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봬요. 그땐 은혜를 꼭 갚을게요!”

아직 두 사람의 얼굴 한편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가문에 혈겁이 일어났기에 두 남매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고, 복수만을 꿈꾸고 있었다. 그때 황극린이 나타나 위기에서 구해 주었고, 다음으로 태상가주가 나타났다.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물론, 영원히 당시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살아가려 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건 다 비슷하다고 할까. 황극린도 부모가 죽고 납치됐을 때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심장에 혈고독을 주입당할 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발걸음이 무거워졌지만, 황극린은 기어코 발을 내디뎠다.

“…그럼 다음에 뵙겠소.”

황극린이 떠나간다.

서문 남매는 지평선 너머로 황극린이 사라질 때까지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 * *

“그래서, 왜 날 따라온 거지?”

“아니, 제가 언제 황 공자님을 미행했다는 건가요! 그리고 제 실력에 황 공자님을 미행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그러니까 이렇게 잡혔겠지.”

뇌섬사에 꽁꽁 묶여 나무에 걸린 여인.

황극린은 그녀와 만난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녀는 흑살문에 걸린 의뢰를 취소해 달라며 황극린을 찾아왔었다.

“배교 부교주 육금연.”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셨군요! 감동이에요.”

왜인지 성격이 더 발랄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단전의 냄새가 더 짙어졌군.’

그녀는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녀는 요사스러운 술법에 능하다. 본신의 무력까지 상승했으니 한층 더 위험해졌다고 봐야 했다.

물론, 그래 봤자 황극린에게 순식간에 제압되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긴 했지만 말이다.

“저, 저기… 근데 이것 좀 풀어 주시면 안 되나요?”

“이유는?”

“아, 아니! 이유라뇨?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과격하게 묶어 버리시면…….”

“넌 배교의 부교주 아닌가? 너와 내가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 생각하는데.”

“제가 계빈을 납치하는 걸 도와드렸는데…….”

“도망칠 궁리만 했겠지.”

“…….”

사실 황극린이 해 준 양념 육포만 아니었어도 도망쳤을 것이다. 계빈을 납치할 당시에는 그녀의 목적은 달성되었으니까.

“듣자 하니 배교의 힘이 대단하다더군.”

“네?”

“굳이 왜 나한테 찾아와서 의뢰를 취소해 달라고 한 거지?”

“그거야 흑살문은 사흑련 중 하나로 엄청나게 강하니까…….”

“아니, 배교는 그걸 극복할 힘이 있다.”

확신에 가득 찬 황극린의 눈빛. 배교 부교주 육금연이 찔끔했다. 양심에 찔려서라기보단 황극린의 눈빛이 너무 무시무시했으니까. 마치 교주님과 ‘그년’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배교의 또 다른 부교주 중 하나가 혈마교 출신이라더군. 그것도 현 교주와 남매지.”

“그, 그걸 어떻게……?”

“…….”

육금연이 황극린의 기세에 질려 결국 입을 열었다.

“맞아요. 부교주 요초란은 혈마교 출신이 맞아요.”

황극린은 천흉의 이름이 요초란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혈마교주의 직계라면 ‘마’씨 성을 쓰겠지만, 배교로 가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혈마교주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와 경쟁할 수준의 고수였겠지. 그리고 배교주는 더 강하지 않나? 흑살문과 자웅을 겨룰 수준으로 생각되는데.”

“그건 아니에요! 공자님께서 흑살문주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셔서!”

“모를 것 같나?”

“…….”

황극린이 하는 말은 허풍인 것 같으면서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육금연의 직감으로는 그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사실 그녀의 직감이 틀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왜 날 쫓아왔지?”

“쫓아온 것 아니에요! 정말 일이 있어서 상우(上虞)현에 들렀다가 우연히 황 공자님을 발견해서…….”

거짓이 담겨 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황극린은 육금연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단지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뿐.

‘마령을 밀어주려면 확실히 밀어줘야겠지.’

그녀는 후원자로 천흉을 찾고 있었다.

어찌 보면 배교의 전력을 혈마교에 갖다 바치는 꼴이었지만, 황극린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만뇌문에 호의적인 마령이 혈마교 내에서 세력을 키운다면 그에겐 호재라 할 수 있었으니까.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육금연을 조금 더 협박하면 천흉에 대한 것을 알아낼 것 같았다.

하나, 지금 더 중요한 게 있다.

“네 목적지가 회계산인가?”

“그, 그걸 어떻게?”

황극린은 육금연이 쫓아오는 걸 파악하고 기척을 숨긴 채 그녀를 감시했다. 황극린을 놓쳤다고 판단한 그녀는 회계산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걸 확인한 황극린은 바로 육금연을 뇌섬사로 묶어 이렇게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서, 설마 독심술이라도 익힌 건가? 그건 교주님도 익히다가 결국 포기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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