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26화 (226/316)

226화 결과

“크억!”

성수신의가 기겁하며 녹색 진액을 닦아 낸다. 파열고가 어떤 종류의 고독인지 확실히 파악되지 않았다. 놈의 몸에 독이 있을지 어찌 아는가? 성수신의는 항시 들고 다니는 은침(銀鍼)을 꺼내 자신의 몸에 찔러 넣을 준비를 했지만, 딱히 이상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우우우! 다행히 독은 없었군요. 장로님은… 그걸 다 피하셨군요.”

성수신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황극린이 더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옷에는 진액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화경의 경지라지만 저게 가능한가? 아니, 그 정도 경지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일까? 대단한 반응속도였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황극린의 물음에 성수신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파열고에 독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피를 먹으니 몸이 터져 버리다니… 참으로 이상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황극린도 의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약이라고 생각하는 게 독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황극린의 피가 독으로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몸 자체가 터져 버리다니?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됐다.

“한 마리 더 먹여 보겠습니다.”

“예, 그러는 편이 좋겠군요.”

성수신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옆에 있는 파열고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까? 다행히도 파열고는 옆의 친구가 몸이 터져 죽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극린의 피 한 방울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파-앙!

다른 파열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몸이 터져 버렸다. 진액에 독이 없다는 걸 확인한 성수신의였기에 진액이 얼굴에 범벅이 되었음에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말 장로님의 피에 내력이 깃들어 있다면…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파열고는 이미 불룩하게 배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장로님의 피를 체내에 흡수하고 있었을지 모르지요. 그런 와중에 또 내력이 주입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기운에 몸이 터져 버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군요.”

성수신의의 추론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예,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애초에 장로님의 피에는 기(氣)가 깃들어 있더라도 그것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종류의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기(魔氣)와 비슷하다는 말이군요.”

“예, 맞습니다. 정종의 내공심법을 익힌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기운을 마기로 칭하지요. 그리고 정파인들도 힘을 얻기 위해 마공을 익혀 마기를 쌓았던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대부분 마기에 정신과 육신이 잡아먹혔고, 몇몇 이들은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광인(狂人)이 되기도 했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파열고라는 고독이 배가 차면 저리 터져 버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이걸 확실하게 파악하려면.

“다른 놈들에게도 먹여 봐야겠군요.”

“예, 정확합니다.”

그때, 성수신의와 황극린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흑주가 다가온다. 왜인지 몸통에 솟은 인간의 얼굴이 조금 긴장한 듯이 굳어 있다.

파닥파닥.

날개를 움직이던 흑주가 황극린을 바라본다. 황극린의 피를 마시고 싶다는 뜻인 듯하다. 황극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넌 안 된다.”

아직 황극린의 피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흑주가 실망한 듯 뒤로 물러섰다. 황극린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걸 지켜보던 성수신의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소리친다.

“아! 혹시 모르니 다른 파열고에게 제 피를 먹여 봐야겠습니다!”

“그걸 확인하지 않았군요.”

성수신의가 배를 뒤집고 뒤뚱거리는 파열고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손끝에서 그의 피가 한 방울 떨어지는 순간.

- 끼리리릭!

파열고의 작은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무언가 단단히 화가 났는지 당장이라도 성수신의에게 달려들 듯 크게 몸을 꿈틀대는 순간.

“헙!”

성수신의가 기겁하며 피하려 했지만, 파열고의 속도는 그의 인지 속도를 뛰어넘었다. 벌써 성수신의의 얼굴에 거의 닿을 듯 다가온 파열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황극린이 놈을 손바닥으로 잡아챘다. 흥분한 파열고는 지체하지 않고 황극린의 손을 물었다. 조금 따끔했지만, 황극린은 파열고를 아귀힘으로 터트리거나 하지 않았다.

파열고가 잔뜩 분노하여 황극린의 피를 머금은 순간이었다.

파드드득! 파르르륵!

한 방울보다 더 많은 피를 갑자기 흡입한 파열고. 녀석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몸이 터졌다. 다행히도 진액은 튀지 않았다. 황극린의 기막(氣膜)에 가로막힌 것이다.

“이것도 알겠군요. 파열고는 제 피를 분간하는 능력은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놈은 배가 가득 찼음에도 분노하면 그 포악성을 드러내는군요.”

황극린의 분석은 맞았다. 파열고가 만약 더 먹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 생명에겐 모두 본능이 있다. 숨이 막히면 발버둥을 친다든지 말이다. 파열고가 처음 황극린의 피를 빨아 먹고 멈춘 것은 배가 가득 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파열고는 분노하여 성수신의를 먹어 치우려 했다.

“그렇게 보면 이상하군요. 그럼 더 먹을 수 있다는 건데… 이놈은 먹으면 바로 배출하여 배를 비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마 소저는 그리 말하더군요.”

“장로님의 피가 마기와 같은 성질이라 쉽게 배출해 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배 속에 담긴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지……. 저리 행복하게 뒤뚱거리는 것을 보면 후자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확인해 봅시다.”

“예!”

성수신의는 밝게 대답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실험 따위를 좋아했다. 변수 하나를 바꾸어서 결과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서 대응책을 내놓는다. 그가 인간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러한 탐구욕 때문일 터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 * *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황극린의 피는 신선이 내려 준 보약이 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독이 되기도 한다. 아리송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황극린의 피를 먹은 영초들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라났다. 십 년 묵은 하수오가 반나절 만에 오십 년 묵은 하수오처럼 크기를 키웠다.

성수신의는 경악하면서도 기뻐했다.

황극린의 피로 영약을 키우면 절세의 영약 따위는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몇 시진이 지난 이후.

‘그렇게 죽어 버릴 줄이야.’

하수오는 결국 크기를 키워 가더니 죽어 버렸다. 아니, 썩어 버렸다고 하는 게 정확하리라. 파열고처럼 터지진 않았지만, 이것 나름대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다른 영초도 마찬가지다. 시름시름 죽어 가던 흑요수(黑妖水)라는 영초는 황극린의 피로 활기를 되찾더니 또 금방 죽어 버렸다.

피의 양을 줄여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초가 아닌 짐승들에게 실험도 해 보았다.

만뇌문의 숙수들이 기르는 돼지나 실험을 위해 성수신의가 포획한 짐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결과는 더 나빴다. 영초와는 달리 성장의 흔적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생을 다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래도 장로님의 피는 독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독이라…….”

“오래된 영초들은 버티는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게 관건이긴 합니다. 천년화령초(千年火靈草) 정도의 최상급 영약으로 실험을 해 본다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부정적이군요.”

“피를 뽑아 보관해 놓았으니 시간을 들여 더 실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예, 시간이 날 때마다 제대로 실험을 해 보겠습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약병에 황극린의 피가 담겨 있다.

하루 동안의 실험으로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영물이라 취급받는 혈고독도 한 방울에 죽어 버리니… 실험을 하려면 더 큰 짐승이나 영물에게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실패할 때마다 손해가 너무 크겠군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급한 것은 아니니까요.”

죽어 버린 영약.

당연하게도 어떠한 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죽은 영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황극린이 뒤를 돌아본다.

“이래도 내 피를 먹어 보고 싶으냐?”

흑주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실험을 모두 지켜본 흑주였기에 처음처럼 황극린의 피를 마시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황극린도 먹일 생각이 없었다. 흑주는 황극린이 정을 주고 기르고 있는 영물이었으니까. 덜컥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래, 잘 생각했다.”

흑주는 결국 황극린의 피를 마시는 걸 포기했다.

등을 토닥여 주니 흑주가 금방 기운을 차렸다.

황극린이 성수신의를 바라본다.

“문주에겐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성수신의도 그의 말에 동감했다.

그는 과거 성수신의의 체질 변화 실험을 무턱대고 도운 적이 있었다. 그 정도 되는 고수이니 부작용 따위는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황극린의 피를 마셔 보겠다고 할 수도 있다.

“피의 비밀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예.”

황극린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니 천화련은 인간의 피를 이용하여 내공을 쌓는다고 했다. 만약 그들이 황극린의 피를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영초도 영물도 아닌 인간이 황극린의 피를 취한다면?

그것도 종국에는 독으로 작용할까?

‘사람한테 실험할 순 없지.’

황극린은 흑살문을 혐오한다. 죄 없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도구로 삼는다. 그런 놈들과 똑같은 짓은 할 수 없다.

물론.

‘언젠가는 인간 같지 않은 놈들과 마주할 수 있겠지.’

예상이 아닌 확신이다. 무림에서 황극린이 죽인 사람만 몇인가? 그런 놈들에게 뇌전을 쏘아 주는 대신 피를 먹인다. 꽤 괜찮은 방법이 아닌가.

그걸 성수신의도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 조언해 주지 않아도 황극린은 다 알아서 계획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실험의 결과물들을 치우고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장로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

황극린이 뇌옥 밖으로 나가니 구자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야진과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벌써 성취를 얻은 듯했다. 과거 곤륜파 출신의 사부에게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홀로 오래 수련했다고 했었던가?

곤륜파의 장문인이 익히던 무공의 구결을 익히고 있으니 성취가 빠른 것은 당연했다.

홀로 오랫동안 고민해 온 10년. 그 세월에 녹아 있는 깨달음이 이번 계기를 통해 꽃피우는 것이다.

“많이 성장했구나.”

황극린의 칭찬에 구자광의 입술이 씰룩인다.

하지만 누구 앞이라고 거만을 떨겠는가?

“하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노력하는 자에게 운이 따르는 법이지.”

그의 말에 구자광의 얼굴이 괴이하게 변했다. 간질거리고 오묘한 감정. 당장이라도 폭소하고 소리를 질러 대고 싶은 기쁨. 하지만 황극린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충성심이 충돌하여 만들어진 얼굴이다.

황극린은 구자광을 구제해 주었다.

“그래, 보고할 게 뭔가?”

“아… 그, 그것이…….”

약간의 고민 뒤에 자신이 왜 이곳에 찾아왔는지 깨달은 구자광.

“무문의 교특범에게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예, 옛!”

서신을 건네주는 구자광.

황극린이 서신을 펼쳐 읽는다. 꽤 긴 내용이었다.

‘음.’

그는 회계산을 중심으로 수색했다고 했다. 그곳에는 분명히 다른 산들과 다른 느낌이 있다고 했다. 마치 귀신이 있는 것처럼 황량한 느낌이었단다. 결국 귀기(鬼氣)가 가장 극심하게 느껴지는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단다.

하지만 교특범은 수색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답을 찾아냈다.

- 이곳엔 진법이 설치된 것 같습니다.

진법 내에 숨겨져 있다면 오랜 세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된다. 원래 인형혈삼이 발견되는 시기엔 진법의 기운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있고 말이다.

황극린이 가진 체질의 비밀.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취하여 과거로 돌아온 황극린이었기에 답을 찾을 필요는 있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인형혈삼을 찾는다면?

인형혈삼이 시간이라는 것을 거스르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천고의 영약이라면?

‘직접 확인해야겠군.’

회계산은 절강성에 있는 산이다. 사천성과는 거리가 꽤 되었지만 황극린이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다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혈마교를 통해 전음석을 뜯어냈으니 만뇌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바로 파악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황극린이 서신을 품속에 갈무리한다.

처음 과거로 돌아온 날에 품었던 거대한 의문을 해소할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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