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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24화 (224/316)

224화 신의

- 끼이이.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울음소리. 흑주는 자신보다 훨씬 몸집이 작은 인면지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귀마(鬼魔)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아기 인면지주가 흠칫하며 몸을 웅크린다. 그러다가 살살 눈치를 보더니 배를 홀라당 까 버렸다.

- 뀨우.

“저대로 둬도 괜찮겠죠……?”

옆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마령이 황극린에게 물었다.

“괜찮을 것이오.”

흑주는 마치 귀마의 냄새를 맡듯 얼굴을 박고 킁킁대고 있었다. 자신의 자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행동인 듯하다.

“어떻게 영물이 된 것이오?”

“아, 그게 말이에요.”

마령의 외가인 묵룡천가는 오래도록 영물을 키워 왔다. 독각화망(獨角化蟒)이라는 거의 천 년 묵은 영물을 애지중지 키웠으며, 독각화망에서 나온 독으로 온갖 독약과 약을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물이라도 삶에 한계는 있었고, 독각화망은 서서히 죽어 가게 된다.

그래서 묵룡천가는 독각화망이 낳은 자식들을 영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했다.

어린 뱀들이 자라는 환경을 임의로 조성하기도 했다. 혹한의 환경을 만들기도 했고, 뱀이 아무런 경쟁 없이 자라도록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독각화망이 낳은 새끼 중 하나인 비비가 영물이 되었다.

영물이 되었다는 말은 ‘내단’을 만들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평범한 짐승을 영물로 만드는 것은 보통의 성장 방법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평범한 먹이를 먹어서는 영물이 될 수 없었다. 인간이 내공심법을 이용하여 단전에 내력을 쌓는 것을 상기한다면 알 수 있었다.

오래도록 발전시킨 내공심법이 있더라도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인간은 한정적이었다. 그건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짐승을 영물로 만들기 위해 영초나 영약을 먹이로 준다고 하더라도 영약에 담긴 기운을 온전히 체내에 흡수하는 건 어렵다.

특별한 몇몇 개체만이 영약을 취해 내단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겨우 내단을 형성했다고 하더라도 내부에서 날뛰는 기운을 제어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귀마가 내단을 형성하여 영물이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인면지주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흑주의 피를 이어받은 거미라는 점과 묵룡천가가 오랜 세월 쌓아 온 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영물이었다.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마령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내단을 형성하고도 마령과 함께 있었으니 귀마는 평범한 인면지주와는 달리 인간을 따른다고 했다.

“운이 좋았구려.”

“네, 정말 그래요. 흑주라는 희대의 영물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훨씬 쉽게 내단을 만들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니오, 어차피 영약도 꽤 많이 썼을 텐데.”

“맞아요. 묵룡천가에서 모은 영약을 꽤 많이 먹였죠. 후후.”

그래도 성공했다는 게 어딘가?

잘만 키우면 귀마도 흑주처럼 저리 멋진 외관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한껏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귀마와 흑주를 바라보던 마령. 그녀의 표정이 굳는다. 귀마의 일 때문에 청성산에 왔다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그녀가 찾아온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제가 찾아온 이유는… 만뇌문과 협상하기 위해서예요. 지금 상부에서는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어요. 특히 다른 소교주 후보들은 뇌옥에 갇힌 이들을 모두 버리자고 하고 있죠.”

혈마교는 교주라는 절대적인 인물 아래에 모인 집단이다.

거기다 혈교와 마교라는 거대한 집단이 결합한 문파였다.

더 심각한 것은 소교주 후보들의 경합이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제2공자 마적사가 인질이 되지 않았다면 반응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혈마교주는 어떤 반응이오?”

“그분께선 지금 크게 신경 쓰고 계시지 않을 거예요. 요즘 마경(魔境)에 들어가 계시거든요.”

“마경이라면?”

“교주님만 출입이 가능한 연무장이라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그렇군.”

혈마교주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걸까?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튼, 시간을 들여 납치를 해 왔더니 혈마교주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이가 없긴 했다. 너무 강대한 힘을 지닌 문파라 이 정도로는 전혀 신경 쓸 수준이 아니라는 걸까?

“그럼 마 소저는 왜 만뇌문에 찾아왔소?”

“이대로 간다면 본교와 만뇌문의 충돌은 기정사실이랍니다. 그걸 막고 싶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혈악과 백골마존을 제 휘하로 들이려는 것도 있답니다.”

“그렇소?”

마령이 심각한 얼굴로 허리를 숙인다.

“죄송해요. 사죄드릴게요. 이번 일은 수라천가의 둘째이자 혈혼단의 단주 혁련소가 단독으로 벌인 일이랍니다. 그렇다고 해도 혁련소에게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진 않을 거랍니다. 혁련소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을 거예요.”

마령은 만뇌문과 혈마교의 충돌을 최대한 막고 싶었다.

“수라천가 가주의 목이라도 내어 줄 수 있다는 말이오?”

황극린의 말에 마령이 눈을 감는다.

그녀는 혈마교라는 거대한 세력에서 지존이 되고자 하는 여인이었다. 수라천가의 가주. 분명히 현시점의 마령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지만…….

“아직 제가 부족하여 당장 그의 목을 드릴 순 없답니다. 하나, 제가 소교주 자리에 오른다면… 수라천가의 가주 마랑천살도(魔狼天殺刀)의 목을 내어 드릴게요.”

황극린이 마령의 눈을 마주한다.

거짓이 담겨 있지 않았다. 결의가 가득했다.

아무리 소교주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마도삼가라 불리는 수라천가 가주의 목을 내어 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니리라. 당연히 마령의 세력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있을까?

“제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수라천가에서 배상금을 받아 내도록 할게요. 그러니…….”

“알겠소. 마 소저를 믿어 보겠소.”

“그, 그게 정말인가요?”

마령이 깜짝 놀란다.

이렇게 쉽게 수락할 줄은 몰랐다.

황극린의 행적으로 볼 때 혈마교와 전쟁이라도 불사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꽤 오랜 설득이 필요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어찌?

“마 소저를 믿어 보기로 했소.”

“…….”

믿음.

마령은 황극린의 말 뒤편에 숨겨진 뜻을 깨달았다.

그는 마령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게 이성적인 호감이라는 건 아니다. 황극린은 여러 이유로 마령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녀의 편의를 봐주었다. 아마 북해에서 마령이 선뜻 봉황의 패를 내어 줬기 때문이리라. 그는 신의를 저버리는 사내가 아니다.

하나, 그런 황극린의 배려는 계속될 수 없으리라.

마령은 세상을 쉽게 보고 있지 않았다. 받는 것이 있다면 내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마령이 만약 황극린과의 협상을 통해 인질들을 돌려받는다면,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 했다.

물론, 황극린은 직접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꼭 약조를 지키겠어요.”

“그리고 전음석은 우리가 가지고 있소.”

전음석.

혈마교의 보물 중 하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도 수라천가 가주의 물건이었다.

“네, 이미 그건 처리했답니다. 황 공자님께서 가지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

마령은 이곳에 오기 전 많은 준비를 했다.

혈마교의 장로들을 설득하고, 다른 소교주 후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 주면서까지 협상의 자리에 올랐다. 당연히 소교주 후보들은 마령이 이곳에서 마적사와 같은 꼴이 될 것을 기대했다.

이제껏 보여 준 황극린의 태도를 보건대, 협상 따위는 없어 보이는 인간이었다.

만약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혈마교가 작정하고 치워 버릴 수 있는 문파였다. 그 전에 경쟁자들을 제거해 준다면 남는 장사였다.

“또 하나 지금 해결해 줘야 할 것이 있소.”

“네, 그게 무엇인가요?”

“혈마교가 용성과 접촉하고 있다고 알고 있소.”

본래 혈혼단이 맡은 임무였다.

용성에 들어간다면 혈마교는 자연스럽게 황실의 힘을 빌려 무림맹과 격돌할 수 있다. 혈혼단이 거의 와해된 지금은 다른 부대가 그 임무를 맡고 있었다.

“네, 맞아요.”

“그걸 막을 수 있겠소?”

무당파의 원로원주 무운자는 황극린에게 용성에서 나와 무림맹 휘하로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황극린은 무림맹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무림맹이라는 집단에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뇌불은 이미 용성에서 부성주의 직에 올라 있었다.

그러한 권한을 버리고 무림맹에 속한 문파 중 하나로 들어가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차피 황실과도 직접 접촉하여 일을 해결할 예정이었지만… 마령에게도 언질을 주는 편이 좋았다.

“네, 가능해요.”

사실 어려운 일이긴 했다.

그 계획을 세운 건 장로진이다. 그들의 생각을 돌리려면 그만한 명분과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혈악 장로와 백골마존이 내 편에 서 준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좋소. 그럼 인질 모두를 데려가시오.”

“모, 모두를요?”

“밀어줄 때 확실히 밀어줘야 하지 않겠소?”

황극린은 이미 여러 교차 검증을 통하여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상태였다. 백골마존의 동생 공야월이나 혈혼단주 혁련소 등을 심문하여 만뇌문과 소림사를 이간질한 주체가 누군지 파악했다. 마령의 말대로 혁련소였다.

여기서 일을 더 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극린은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마령.

황극린이 전생에서 아는 그녀는 소교주가 되지 못했다. 소교주가 된 것은 제1공자 마영비였다. 그가 소교주가 된 후로 혈마교의 행보는 더욱 탐욕스럽게 변화했었다. 황극린이 무림맹 척살대에 쫓기던 와중에도 소교주 마영비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고, 미래를 바꾼다면.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황극린이 본 마령은 결코 착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는 혈마교도였다.

“혁련소는 잘 처리해 줄 것이라 믿겠소.”

마령 또한 사악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녀 또한 마인 중 하나였다. 사람 하나 죽이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성격은 절대 아니다. 필요하다면 수백, 수천의 죽음의 앞에서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니 혈마교 소교주 자리를 노리는 것이다.

“수많은 교도가 보는 앞에서 그를 처형하겠어요. 그리고 혁련소의 목을 잘라 곱게 담아서 만뇌문에도 보내도록…….”

“그럴 필요는 없소.”

“예, 공자님의 뜻대로 하겠어요.”

황극린이 소매 속에서 작은 행낭을 꺼낸다.

아기 인면지주 귀마를 한껏 귀여워해(?) 주고 있던 흑주가 펄쩍 뛰어올라 황극린의 어깨 위로 앉았다. 그 재빠른 움직임에 마령이 당황한다.

‘뭐지? 저 안에 뭐가 들어 있길래? 흑주의 먹이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인면지주가 좋아하는 간식이 있다면 우리 귀여운 귀마에게도 먹이로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이거 말…….”

“꺄아아아악!”

마령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녀가 저 징그러운 생김새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파열고.

인간의 장기를 끝없이 파먹는 괴이한 벌레. 놈은 호신강기 또한 종잇장처럼 깨 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게 해결책이다. 그 후에 멀리서 암기를 던지거나 활을 쏴서 죽이는 게 좋았다.

“파, 파, 파열고가 왜?”

마령이 도망치자 귀마도 황급히 마령에게 달려간다.

흑주의 눈빛에 움찔하며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놈을 한 열 마리 정도만 줄 수 있겠소?”

“여, 열 마리요?”

마령이 당황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알던 파열고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으면서 두툼한 배를 내밀고, 꼼지락대고 있었다. 그녀가 보았던 파열고는 인간만 보이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배가… 두툼해?”

파열고는 언제나 홀쭉한 배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것을 먹어도 배가 부르는 적이 없었다. 파열고는 피의 혈족들이 키우는 벌레 중 하나였으며, 온갖 실험을 했었지만 만족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먹자마자 먹은 것을 배출하는데 배가 부를 리가 있겠는가?

“대, 대체 뭘 먹은 건가요? 어찌 파열고의 배가 저렇게……?”

- 끼이이이!

그러자 황극린의 어깨에 앉은 흑주가 흥분하여 소리친다.

마치 파열고를 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황극린이 흑주의 몸통을 톡톡 두드려 주자 금방 화를 가라앉히긴 했지만 말이다.

“그걸 확인해 보려고 하오.”

“그렇군요……. 파열고는 수라천가에서 영물로 취급받고 있답니다.”

“힘든 것이오?”

마령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황극린이 배려해 주었다. 수라천가에서 최대한의 배상금을 약조했다. 약속했다면 지켜야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신의가 지켜지려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뇨. 황 공자님이 인질을 모두 내어 줬으니까요. 받아 낼 수 있어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소.”

사실 황극린은 마령이 말처럼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진 않았다.

아마 생각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그녀는 전생에서 소교주가 되지 못했었으니까. 하지만 여러 사소한 변수가 이루어 내는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마령은 황극린이 의도적으로 심은 변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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