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기적
혈교의 교도들은 특별한 체질을 타고났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피를 이용하여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여러 비술을 개발해 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강시였다.
하지만 중원에 널리 알려진 강시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 강시라 함은 인간의 사체를 다시 일으켜 술자의 뜻대로 조종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혈교의 강시술은 죽은 이를 조종하는 게 아니었다. 온전히 살아 있는 인간을 조종하는 게 그들이 만든 강시였다.
깊이 파고들면 강시가 아니라 인간을 세뇌하거나 최면을 거는 비술이라 말할 수 있었지만, 애초에 강시라는 것도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된 것이 아니었기에 혈교도들은 그 비술에 당한 인간을 강시라 칭했다.
죽음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강시가 된 이들은 두 번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육은 살아 있지만 정신이 죽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혈교도들에겐 그것이 죽음이다.
강시란 죽은 존재였으며.
다시는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는 존재였다.
적어도 백골마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끄어어어……!”
수십 가닥의 뇌섬사에서 뇌전이 쉴 새 없이 혈강시에게 주입되고 있었다.
“이노옴!”
백골마존이 달려든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위화감을 없애고자 달려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혈강시에게서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교도답지 않게 천성이 순수했던 동생. 재능은 뛰어났지만, 양육강식이 기본이 되는 혈마교에서 매번 눈물만 흘리던 그의 동생 공야진의 얼굴이 말이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커진다.
혈조난무(血爪亂舞). 인간을 찢어발기기 위하여 만들어진 무공. 백골마존의 혈강기가 황극린의 뇌섬사를 끊어 내기 위해 쇄도한다.
혈강기가 맺힌 손톱이 뇌섬사에 부딪친 순간이었다.
“끄윽!”
혈강시 공야진의 육신으로 향하던 뇌전이 백골마존을 강타한다.
두 눈이 충혈되고, 입에 피가 흐른다. 뇌섬사 한 가닥마다에 흐르는 방대한 양의 뇌전.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정도로 고통스럽다.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네놈… 네놈 따위가 내력으로 이 몸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이제는 내력 싸움이 되었다.
손끝에 모인 혈강기가 뇌섬사를 끊어 내기 위해 응축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뇌섬사에 흐르는 뇌전의 힘도 강해진다. 황극린 또한 방출하는 내력의 양을 늘리고 있었다.
콰지직, 콰지지직!
힘과 힘이 충돌하여 뇌전이 튄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뇌전 때문에 흑주와 혈마교의 장로들이 흠칫하며 물러선다.
“이노오옴!”
왜인지 황극린의 뇌전과 맞서면 맞설수록 백골마존의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퀭한 눈동자와 홀쭉한 볼. 해골을 연상케 하는 그의 얼굴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고통 따위는 모르는 강시가.
감정을 담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놈! 대체 무얼 하는 짓이냐! 당장 멈춰라! 멈추지 않는다면…….”
“어쩔 테지.”
백골마존은 한 갑자 이상을 살아온 노괴였다. 그가 혈강시의 조종을 포기하면서까지 내력을 쏟아붓는 중인데도 황극린의 뇌전을 베어 낼 수 없었다.
‘뇌전이 상성인가?’
백골마존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황극린의 뇌전에 버티고 있긴 하지만, 내력을 쏟아부으면 부을수록 기이함을 느꼈다. 마치 황극린의 뇌전이 혈강기를 녹이는 것만 같은…….
‘설마!’
이미 백골마존 또한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강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통각이 없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공야진은 고통 섞인 신음을 터트리고 있다. 단순한 괴성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이놈이…….
‘한번 시작된 도시송시술(跳屍送尸術)은 멈출 수 없다!’
백골마존이 아무리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함께 혈마교에서 버텨 온 동생의 이지를 상실함에 죄책감을 아예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점차 사라져 가는 동생의 표정을 보고 되돌릴 방법을 찾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알아낸 것이라곤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몇십 년이 지나서 도시송시술을 풀 방도가 있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백골마존이 노호성을 터트린다.
그의 피부 위로 굵은 핏줄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관자놀이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으며, 눈자위가 검붉게 충혈되었다.
“모조리 태워 주마!”
피로 만들어진 강기.
그의 피는 폭발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천괴혈조의 그 특성을 살린 무공이다. 혈맥을 따라 흐르던 피가 피부를 뚫고 나온다. 마치 의지를 가진 듯한 그 피는 뇌섬사를 붉게 물들였으며, 동시에 폭발했다.
화르륵, 콰앙!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백골마존이 광기 가득한 웃음을 터트렸다.
“죽어라! 터져라! 녹아 버려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백골마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분명히 화기에 의해 끊어졌어야 한다. 그런데 왜, 동생의 몸에 연결된 뇌섬사는 무사한 건가? 황극린의 내공이 대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고작 한 가닥도 끊어 내지 못했다. 같은 화경에 올랐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선택과 집중의 차이지.”
“……!”
황극린의 말은 백골마존의 가슴을 후벼 팠다.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너를 내가 알아야 하나?”
“…….”
“아무튼, 됐군.”
스르륵.
백골마존이 허망한 눈으로 아래를 바라본다. 그토록 끊어 내고 싶었던 뇌섬사가 힘없이 축 늘어진다. 혈강시를 꽁꽁 묶던 뇌섬사가 황극린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홱 고개를 돌린다.
설마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부정해 보았다.
“형… 님…….”
“…….”
공야진은 그대로였다.
수십 년 전,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겠다며.
곤륜파의 무공이 자신에게 맞는 것 같다며 기뻐하던 미숙하고 어리석은 동생.
그가 슬픈 눈빛으로 백골마존을 바라보았다.
“많이… 늙으셨군요…….”
백골마존의 두 손이 벌벌 떨린다.
“아니… 기억이… 납니다……. 저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죽여 왔군요…….”
“닥쳐… 닥쳐라! 네놈은 내 동생이 아니다!”
백골마존의 분노.
동생은 이미 죽었다. 실제로도 그러했으며, 그의 마음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정신을 차린다고 의미가 있을까? 백골마존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네놈은 내 혈강시다! 그러니 싸워라! 신룡파미를 펼쳐 황극린을 찢어 죽여라! 네가 좋아하는 피를 잔뜩 먹여 주도록 하마!”
“그럴 수는… 없습… 쿨럭!”
공야진이 검은 피를 토해 냈다.
탄내가 잔뜩이었다.
“얼빠진 새끼! 위선적인 놈! 네놈 때문에 우리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내가 혈족들 사이에서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안다면… 싸워라! 황극린을 죽여라!”
“그렇기에… 용서할 수… 없습니다…….”
흐릿한 기억 속.
공야진의 형 공야월은 도시송시술(跳屍送尸術)을 펼치고 있었다. 대상은 공야진이 아니었다. 바로 그들의 부모였다.
하지만 공야진의 의지와는 달리 그는 전혀 싸울 힘이 없었다.
그에게 내력을 전해 주던 것은 백골마존의 마기였고, 그 마기가 다해 공야진은 말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다시 착한 아이로 만들어 주마.”
일렁이는 광기.
백골마존이 시선을 돌린다.
황극린이 무심하게 서 있었다. 딱히 백골마존을 혐오하는 눈빛도 아니다. 그냥 무관심 그 자체였다.
“이노오오옴…….”
그래서 더 분노가 치민다.
감히 네깟 놈이 뭐라고 그따위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건가?
억지로 미소를 지은 백골마존이 이죽인다.
“…네놈은 너무 시간을 끌었다. 나였다면 동생과 대화하고 있을 때 결정타를 날렸을 거다.”
황극린의 발아래서 회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의지라도 가진 듯이 황극린에게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표염암향(飄閻暗香)이다. 그 자체로도 인간을 죽이는 극독이지. 하지만 그것은 파열고의 주식이기도 하다.”
“파열고?”
황극린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회색의 연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멀쩡해 보인다.
거기까진 백골마존의 예상대로였다.
“소교주님!”
“흐흐흐, 이미 풀어놓았소이다.”
황극린이 인상을 찌푸린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팔뚝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검은 벌레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 감각을 속였다?’
벌레가 접근하여 물기 전까지 황극린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벌레의 접근은 인간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은밀하다. 여름마다 인간을 죽도록 괴롭히는 모기만 봐도 알지 않은가? 인간이 모기에 반응할 수 있고 죄다 잡아 버릴 수 있었다면 모기는 오래전에 멸종했으리라.
하지만 황극린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감각은 인간을 초월했다. 그의 초감각은 화경에 이르기 전부터 궤를 달리했다. 하지만 팔에 따끔한 고통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외관은 혈고독과 전혀 다르지만… 왠지 냄새가 비슷해.’
황극린이 가만히 서 있으니 백골마존이 광오한 웃음을 터트린다.
“큭큭… 크하하하하! 네놈이 자랑하는 뇌전을 발현해 보아라! 좌절을 느끼도록 해라! 파열고는 그 자체로 무인의 천적이다. 네놈이 호신강기를 펼치면 그것조차 갉아먹을 것이고, 종국에는 네 장기를 모두 파먹을 것이다!”
백골마존의 말을 제2공자 마적사가 받는다.
“아쉽게 됐군. 당신 정도의 실력이라면… 중원 전체를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을 텐데 말이야.”
그가 마적사의 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수월하게 혈마교의 소교주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마적사보다 훨씬 어렸지만, 마적사가 꿈꾸던 경지에 오른 황극린이다. 하지만 그라도 파열고에선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발버둥 치거라! 절망하는 표정을 내게 보여 다오!”
백골마존은 실성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아마 동생의 정신이 돌아온 게 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황극린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게 장기를 파먹는다고?”
“……?”
분명히 장기를 파먹히는 고통에 절규했어야 한다. 파열고 한 마리는 일각 안에 사람의 장기를 모두 파먹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풀어놓은 파열고는 총 세 마리. 모두 성충이었다. 내공으로 파열고를 막아 내려 했다면 오히려 발광하며 더 빠르게 장기가 갉아먹혔으리라.
이상하다.
분명히 그랬어야 하는데.
황극린은 너무 멀쩡했다.
“부, 부교주!”
경악한 마적사. 그가 아래턱을 벌벌 떨며 말을 이어 나간다.
“파, 파열고가 뭔가 이상하오. 이, 이게 왜 이런단 말이오?”
백골마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급히 마적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곳에서는…….
꿈틀꿈틀!
저 작고 흉측한 벌레는 인간의 장기를 모두 파먹어도 몸집이 커지거나 하지 않는다.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파열고는 장기를 파먹으면서 동시에 배출한다. 죽은 인간의 배를 갈라 보면 파열고가 싸지른 배변이 가득했다.
혈마교에선 파열고의 한계를 알아보고자 인간 백 명을 먹이로 준 적이 있었다.
파열고는 백 명의 장기를 모두 파먹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마구 발광했었다. 그런데도 파열고는 달라지는 게 전혀 없었다. 파열고는 애초에 평범한 생명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먹고 소화하는 과정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생명이었다.
그런 파열고가.
인간 백 명의 장기를 파먹고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던 그 괴이한 존재가…….
불-룩!
두툼한 배를 드러낸 채로 벌러덩 누워 꿈틀이고 있었다. 표염암향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인간이 보이면 파열고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파열고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짓을…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기적.
그 단어밖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해할 수 없었다.
백골마존이 혈마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상식이 모조리 흔들리고 있었다.
도시송시술로 강시로 변한 인간은 절대 제정신을 찾지 못하지만, 백골마존의 동생 공야진은 의식을 되찾았다.
결코 만족을 모르는 파열고가 만족한 채로 두툼한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황극린.
대체 이놈은 뭔가?
단순히 무력이 강하다고 이런 일을 벌일 수 없었다.
“네놈… 뭐지? 대체… 대체 당신은 누구지?”
황극린은 무언가 알고 있다.
백골마존이 모르는 세상의 비밀을 말이다.
“알면서 묻는군.”
황극린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을 못 읽을 것도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선 분노를 넘어 초탈의 감정이 엿보이고 있었다.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에게 해 줄 대답은 없었다.
혈강시에 깃든 특이한 냄새만을 ‘만뇌’로 녹여 냈을 뿐이었고.
파열고라 불리는 괴이한 생명체는 황극린이 반응하기도 전에 피를 한 방울 빨아먹더니 저렇게 벌렁 드러누웠다.
“만뇌문의 황극린이다.”
황극린이 움직인다.
마무리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