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21화 (221/316)

221화 합공

혈마교의 제2공자이자 소교주 후보.

혈마교주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마도삼가 중 하나인 야수천가(野獸天家)의 출신이었다. 당연히 소교주 후보에 오를 만큼 재능은 상당히 뛰어나다. 그가 만약 혈마교주의 천마신공을 이어받을 수 있다면 언젠가 화경이라는 경지에 오를 만큼 말이다.

마적사는 황극린에게 접근한 채로도 긴장을 풀진 않았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황극린이 기습을 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에 언제든 내공을 끌어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만약 대응하지 않았다면 황극린의 일격에 머리가 터져 나갔을 수도 있었으니까.

퍽!

“크억!”

기괴한 신음을 토내 해며 우당탕 넘어진다. 탁자 위에 있던 산해진미들이 죄다 바닥에 쏟아졌다. 마적사는 당황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마적사 또한 죽음의 위험을 수없이 빠져나온 승부사였다.

“이, 이 개자식이… 나를… 나를 속였어……!”

화끈!

분노와 더불어 손끝 발끝까지 덜덜 떨리게 하는 치욕. 마적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은 터라 휘청거릴 뿐 일어서지 못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뭐라……?”

황극린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마적사는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방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물론 지금 당장 일어설 수는 없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회복할 수 있으리라.

‘일부러 힘을 조절했다고?’

그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황극린은 마적사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반응할 것까지 예상해서 힘을 조절했다. 황극린은 백골마존을 상대할 시간을 번 것뿐이었다.

“감히……!”

욕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백골마존이 황극린이 이기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이미 전투는 벌어졌다.

“이놈!”

쿠웅!

백골마존이 아니라 그가 조종하는 혈강시(血僵尸)가 황극린에게 돌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황극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혈강시의 공격을 피했는데, 놈의 주먹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한지 돌바닥을 꿰뚫어 버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혈강시는 지체하지 않고 황극린에게 공세를 퍼부었고, 백골마존 또한 싸움에 끼어들었다.

“같은 화경이라도 모두 다 같지 않음을 알려 주마.”

백골마존의 목소리엔 음산한 귀기(鬼氣)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 죽은 인간만 해도 기천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인간의 생사를 결정했으며 성장해 왔다.

일수(一手)에 담긴 지독한 살의.

당장이라도 황극린의 사지를 찢어 버릴 듯이 사납게 포효하고 있었다.

사악!

기다란 손톱을 휘두르자 붉은 강기가 열 갈래로 황극린에게 쇄도했다. 앞으로는 혈강시가 황극린을 노리고 있었고, 백골마존의 강기는 그의 경로를 예측하여 공간을 갈라 놓았다.

쿵!

사가아악-!

‘됐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가자미눈을 한 채로 전투를 지켜보던 마적사.

전각 자체를 뒤흔드는 굉음에 황극린이 당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작은 상처라도 입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굉음의 진원지를 바라본다.

흙먼지가 걷히고, 황극린의 모습이 보였다.

- 끼이!

기이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마적사는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아직도 눈앞이 흐릿하다. 최소한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로 회복하려면 일각은 소요될 듯했다.

백골마존의 눈썹이 꿈틀한다.

“분명 네놈은 이몸의 강기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 그런데…….”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으로 황극린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면 작은 생채기라도… 최소한 의복이라도 갈갈이 찢어졌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혈강기를 정면으로 맞은 황극린은 멀쩡했다. 심지어 그의 의복까지 말이다.

“신물(神物)인가?”

“그런 셈이지.”

- 끼이!

날개 달린 복슬복슬한 거미가 자랑스레 두 발로 섰다. 거미가 저런 형태로 일어서는 것은 처음 본 백골마존이 당황한다. 저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쿠당탕!

격전의 소음에 밖에서 대기하던 혈마교도들이 달려왔다.

세 명의 장로와 그를 따르는 정예 마인들.

“혈악이라는 놈도 불러야 할 텐데.”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백골마존이 앞으로 나선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언가 퀭한 눈동자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생기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많은 내력을 끌어 올리면 반대가 되어야 정상이 아니던가?

황극린은 금방 그 이유를 알아챘다.

끄드득, 끄득!

뻣뻣하게 움직이던 혈강시가 관절을 꺾을 때마다 소름 돋는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연결된 건가.’

황극린이 보기에도 참으로 신기한 무공이었다.

기(氣)라는 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의 방향성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외성은 인정해 줄 만했다.

“혈악 장로는 네놈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그렇군.”

“네놈도 강시로 만들어 주마. 화경에 이른 고수를 강시로 만든다면… 이 몸은 부교주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

백골마존이 달려든다.

황극린이 흑주를 바깥으로 던진다. 흑주는 강하지만, 그래도 화경에 이른 고수들 사이에 있을 정도는 아니다.

“넌 장로들과 싸우고 있거라.”

- 끼이!

까드드득, 까악!

뼈가 부서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한 소음. 백골마존의 혈육이 더 활발해진 안색으로 황극린에게 달려든다.

쿵!

주먹과 주먹이 충돌했다.

‘단단하군.’

평범한 인간의 육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였다. 황극린이 바로 신형을 돌린다. 뒤에서 백골마존이 손을 뻗어 왔기 때문이다. 거리를 벌려 강기를 날려서는 황극린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사가악!

공간을 가르는 백골마존의 붉은 손톱.

그가 강기를 환(環)으로 엮었기에 검강마저도 베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예리함이 깃들어 있었다.

유려하면서도 부드럽게 황극린이 공격을 흘려 내자마자 또다시 혈강시가 달려들었다.

일체의 틈도 내어 주지 않겠다는 듯한 합격이 이어진다.

쿵쿵! 스윽! 스걱!

결국, 황극린의 의복에 백골마존의 손톱이 닿았다.

카앙!

하지만 의복에 환의 묘리가 담긴 조공이 닿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충격음이 울린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친 것처럼 카랑카랑했다.

“의복에 내력이 담긴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서 말이야.”

끼이, 열심히 혈마교의 교도들을 상대하면서도 신이 난 흑주의 울음소리가 황극린의 귓가를 스쳐 간다.

“그럼 다른 곳을 공격하면 되겠군!”

백골마존이 손가락을 튕겼다.

붉은 광채를 발하는 무언가가 황극린의 목을 노린다. 부서진 손톱을 암기처럼 활용했다. 단순한 손톱은 아니었다. 거기엔 상당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정확히 황극린의 동맥을 노리는 손톱.

그때, 황극린의 머리카락이 일렁였다.

콰지지직-!

전신에 휘몰아치는 뇌전. 순간 황극린의 속도는 백골마존의 인지 범위를 넘어섰다.

“대체… 방금 뭘 한 거지?”

“…….”

질문과 동시에 혈강시가 다리를 휘둘렀다. 부웅! 맞았다간 척추가 부러질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다. 황극린은 그것마저 피해 냈다. 분명히 황극린의 시선은 백골마존의 손끝에 향해 있었지만,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부우웅! 부웅!

혈강시는 황극린이 너무도 쉽게 공세를 피해 내자 억울하다는 듯이 더 빠르게 공격을 가했다. 백골마존이 뒤로 물러선다.

‘놈의 몸에 뇌전이 깃든 뒤로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평소 백골마존의 전투법은 간단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육신을 가진 혈강시를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한다. 혈강시가 홀로 상대하지 못한다면, 백골마존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급소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황극린에게 말릴 것이다.

‘더 이상 간을 보면 안 된다.’

황극린이 예상하지 못할 때.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했다. 언젠가 다른 부교주들과 싸울 때 선보이려 했던 것을 내보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

‘이놈은 진짜다.’

갓 화경에 도달했다고 하여 얕잡아 보던 마음이 쏙 사라진다.

수십 번의 경합 끝에 백골마존은 황극린이 제대로 된 무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우야, 신룡파미(神龍擺尾)다!”

“끄르르르-!”

목에 가래가 잔뜩 낀 듯이 혈강시의 목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혈강시의 두 눈에서 현기(玄機)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신룡파미.

그 이름을 들은 황극린이 작게 탄성을 터트린다.

“곤륜의 무공이로군.”

“알아 봤자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멸문한 곤륜파.

그들은 과거 마교와 가장 앞에서 싸웠던 존재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마교의 침공에 대비했으며, 마공에 대비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진 무공을 창안해 낸다. 그중 하나가 신룡파미. 꽤 오래전 멸문한 곤륜이었지만, 신룡파미라는 이름은 중원에서도 꽤 유명했다.

그것은 신법(身法)이자 권법(拳法)이었으며, 종국엔 신공(神功)이라 일컬어지고 있었다.

이제껏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 어색함이 있던 혈강시였다.

하지만 갑자기 놈의 움직임이 몹시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빨라졌다.

탓.

발을 구르는 소리도 거의 나지 않는다. 빠르고 은밀하게 황극린의 지척에 도달한 혈강시가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아-!

단순히 뻗은 주먹에 불과했지만, 그 권격에는 공간을 밀어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신룡파미는 단전의 모든 내공을 피부에 깃들게 하는 무공이다. 보법을 펼쳐 스치기만 해도 강렬한 기파에 휩쓸려 내상을 입는다. 마공으로 무장한 마인들 사이에 들어가 그들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무공.

그것이 신룡파미다.

“끄르으윽!”

고오오오오-

콰아아!

막혀 있던 둑의 물줄기가 터져 나오듯 고막을 때리는 강렬한 굉음. 제아무리 신물이라 불릴 의복을 착용하고 있더라도 넓은 범위로 파괴하는 신룡파미의 기운을 모두 막아 낼 수 없으리라.

“목을 찢어 주마!”

천괴혈조(天魁血爪).

예리함을 담고 있던 백골마존의 혈강기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마치 인간의 피처럼 흐물흐물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오히려 더 크다. 기(氣)는 모이면 모일수록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지극히 작은 한 점에 기를 응축하여 검강보다 더 강한 힘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환이라는 형태로 고리를 만들어 검강을 엮는다.

정확히 따지자면 천괴혈조라 불리는 강기 또한 환의 일종이다.

하지만 백골마존은 조금 더 세밀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강기와 강기를 연결했다. 단순히 뭉치는 게 아니라 거대한 하나에 모두가 휩쓸리는 해일과도 같다.

신룡파미로 공간을 휩쓰는 혈강시.

그 사이로 천괴혈조를 펼친 백골마존.

“타올라라!”

천괴혈조의 기운이 순식간에 변화한다.

마치 기름에 불이 붙듯, 붉은 액체가 타올랐다. 동시에 폭발했다.

콰아아앙-!

황극린의 근처에서 열심시 신룡파미를 펼치던 혈강시도 그 충격에 뒤로 튕겨 나간다. 어떤 것으로도 부술 수 없어 보였던 혈강시의 입가에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천괴혈조는 느리다.

황극린이 그걸 피하지 못하도록 백골마존은 혈강시를 이용했다. 어차피 죽은 놈이었으니 고통 따위는 모를 테니까. 마기를 주입하여 치료하면 그만이었다.

“크크… 크크크…….”

붉은 피를 뒤집어쓴 황극린. 백골마존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씰룩였다.

“뇌전을 사용하는 놈이라. 네놈은 내가 최고의 강시로 만들어 주마.”

이미 승부가 결정됐다고 생각했을까?

천괴혈조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면 어떠한 호신강기라도 녹여 버릴 수 있었다. 백골마존이 그리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황극린도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니 마지막 한 수 정도는 남아 있으리라.

“아우야, 다시 신룡파미다!”

혈강시의 눈동자에 다시금 현기가 감돈다.

파들파들 떨리는 몸으로 일어선 혈강시. 다시금 황극린에게 다가오려 할 때였다.

“네 얼굴이 창백한 건 계속 피를 사용했기 때문인가? 이게 혈교의 무공이로군.”

무심한 목소리.

피에 뒤덮인 황극린이 말하고 있었다.

“얼른 공격해!”

백골마존은 정곡을 찔렸지만,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황극린이 회복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공격하지 못할 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건 혈강시의 이상 증세를 확인한 후였다.

콰지직, 콰지지직……!

혈강시의 몸에 뇌전이 깃들어 있었다. 혈강시는 뇌전의 성질을 다루지 못하였으니 저것의 주인이 누군지는 분명했다. 황극린이다. 눈에 내력을 집중해야지만 보일 정도로 얇은 실. 수십 가닥이 혈강시의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피의 냄새를 기억했다.”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로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황극린의 모습은 백골마존이 보기에도 기이한 공포를 자아내고 있었다.

“혈강시에 걸린 저주를 녹여 낼 수 있을 것 같군.”

녹여 내? 무엇을? 저주라고……?

불안함을 느낀 백골마존이 움직임과 동시에.

쿠르으으응!

황극린의 몸에서 뇌전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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