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원하는 것
마적사가 먼저 음식을 먹고 난 후 황극린 또한 젓가락을 들었다. 마적사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대편 자리로 가 앉았다.
‘경계를 늦추게 된다면 너는 내게 말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극린.
만뇌문이라는 문파의 장로이자 어린 나이에 화경에 도달한 초월적인 재능을 가진 고수. 제2공자는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지.’
황극린은 문파가 공격당하면 과하게 반응하곤 했었다. 대룡상단의 고수였던 용살단주 이중산을 처리한 걸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도들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문파의 안정을 원한다.
용성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곳은 불완전한 세력에 불과했다. 혈마교가 작정한다면 그들의 신뢰를 작정하고 부술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용성의 존재 자체가 혈마교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혈마교는 용성에 소속될 생각도 있었다.
“황 공자, 먼저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됐소.”
“…….”
마적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황극린이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마적사가 속으로 웃었다.
“현재 중원에 진출한 혈마교도들은 각자의 판단으로 움직이곤 한다오. 교주님께 직접 명령을 받지 않았지. 모두 교에 대한 충성으로 일을 벌인 것이라오. 하나, 그것이 황 공자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도 인정하겠소.”
혈마교의 잘못을 인정하되 그것이 마적사의 탓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제2공자 마적사는 그런 것까지 직접 사과하며 황극린의 환심을 사려 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사과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과 표정은 기백과 여유가 흘렀다.
“그 부분에 대하여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황 공자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여기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셔도 좋소.”
잠시 그를 지켜보던 황극린이 입을 연다.
“당신에게 그럴 권한이 있소?”
그런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었다.
마적사의 시선이 백골마존으로 향한다.
“부교주 백골마존, 그는 본교의 충직한 마인이지만 내 사람이기도 하오. 나는 말이오. 조만간 혈마교의 소교주가 될 몸이오.”
여유롭던 얼굴에 패기가 아로새겨진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망과 욕망.
“천하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천마신공을 익혀 언젠가 교주의 위에 오를 것이기도 하지.”
백골마존은 마적사의 그런 자신감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이 만족하고 있으니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수 있소. 원하는 것을 말해 보시오. 우리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오.”
손에 깍지를 낀 채 턱을 괸 마적사.
끈적한 눈빛이 황극린을 향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이미 말했소.”
“하하, 화령신침 말이로군. 정녕 그것을 원하는 것이오?”
“일단은.”
마적사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화령신침은 교주께서 지니고 계신 신물이오. 지금 당장 그것을 내어 줄 순 없소이다.”
그는 황극린이 화령신침을 계속 요구할 경우도 대비해 놓았다.
언젠가 그는 교주가 된다. 황극린이 마적사의 사람이 되어 그를 보필한다면, 언젠간 화령신침을 빌려줄 수도 있었다.
“아쉽게 됐군.”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오, 당신은 언젠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니. 일단 식사부터 합시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를 마시며 하면 좋겠구려.”
입꼬리를 올리며 식사를 시작하는 마적사.
마주앉은 황극린의 시선이 느껴진다.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넌 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사람을 휘어잡는 능력.
마적사는 소교주 후보 중에서 무력으로는 최강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교도를 이끌고 있었다. 그가 마도삼가의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교도들에게 확실한 이상과 목표를 보여 주며 믿음을 갖게 했다.
절대적인 자신감.
오만과 자만으로 비치지 않게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마적사는 능수능란하게 절대자의 풍모를 내보이고 있었다.
마적사가 상황을 주도하는 듯이 식사가 이어진다.
대충 젓가락을 휘적이던 황극린이 대뜸 묻는다.
“마령은 어떻소?”
“마령?”
순간 경쟁자의 이름이 나오자 마적사는 기분이 나빠졌지만, 겉으론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말해 보라는 듯이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와 소교주의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지 않소?”
“하하하, 그러고 보니 령이와 만난 적이 있으시군. 맞소. 그 아이는 나와 경쟁하고 있지. 왜? 령이 그 아이에게 관심이 있소?”
은근슬쩍 질문한다.
알아본 바로 황극린과 이어진 여인은 없다고 했었지만, 그가 마음에 품은 여인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그녀도 소교주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말이오.”
“본교 내부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오. 본교에는 말이오. 총 네 명의 부교주가 있소이다.”
마적사가 설명을 시작한다.
소교주 후보는 다섯.
그리고 부교주는 넷.
부교주들은 소교주 후보 중 한 사람씩을 선택했다. 부교주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기로 소문이 난 백골마존은 마적사를 선택했다.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했소이다. 마도삼가 중 하나인 묵룡천가를 외척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말이오. 그 아이의 재능은 나쁘지 않소. 언젠가는 본교의 요직을 차지할 것이라오. 하나, 소교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냐고 하면… 글쎄, 힘들지 않겠소? 후후.”
“그렇군.”
마령이 왜 천흉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부교주는 마교의 비대칭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교도 수백, 수천을 압도한다. 부교주의 선택을 받지 못한 마령은 천흉을 다시 혈마교로 불러들여 부교주의 위에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황극린의 표정에서 무엇을 착각했는지 마적사가 말을 이어 나간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오. 다른 부교주가 지원하는 소교주 후보들과 경쟁하여 승리할 자신이 있느냐고 말이오.”
“자신이 있소?”
“나는 말이오. 인재를 아끼지 않소이다. 출신이 어떠하든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취할 영약까지 나누어 주며 성장시키오. 물론,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효율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지.”
사실이었다.
마적사는 노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무공을 알려 주고, 심지어는 영약까지 나눠 주기도 했다. 투자란 그런 것이다. 가장 볼품없을 때 투자하여 극상의 이익을 취한다.
“황 공자도 마찬가지 아니오? 만뇌문의 문도들이 모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더군. 황 공자의 안목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며.”
잠시 말을 멈춘 마적사가 말을 이어 나간다.
“나와 비슷한 인간이라는 뜻이지.”
황극린이 흥미롭다는 듯 마적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부교주 두 명의 선택을 받은 후보는 없다는 말 아니오?”
“정확한 지적이오. 부교주?”
백골마존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손뼉을 쳤다.
짜-악!
공간 자체를 울리는 진동. 황극린의 품에 있던 흑주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평소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 흑주였기에 그 울림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왜 내가 백골마존이라 불리는 줄 아는가?”
“왜지?”
“백골을 다루기 때문이지.”
백골(白骨).
죽은 사람의 몸이 썩고 남은 뼈.
하지만 그 별호와는 다르게 백골마존의 뼈로 등장한 것은 백골이 아니었다. 피가 돌지 않아 창백한 육신이 도드라지는 한 사내가 등장했다. 놀랍게도 백골마존의 얼굴과 참으로 닮아 있었다.
“강시……?”
“나는 다른 부교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나와 내 아우는 하나이기 때문이지. 클클클클!”
혈교와 마교.
두 교도가 합쳐서 만든 문파, 혈마교. 그곳에는 수많은 마인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백골마존은 그러한 마인들도 두려워하는 마인이었다. 혈마교의 교주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존경과 공포를 자아내는 이라면, 백골마존은 그 기행과 무공에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에게 밉보이면 자신도 강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친혈육마저 강시로 만드는 인간이었으니 공포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황극린이 살짝 놀란 눈으로 강시를 바라보았다.
당연하다. 강시의 존재가 실존하는 것을 처음 보았으니까.
‘신기하군. 정말 시체를 다루는 건가?’
강시라는 존재는 세상의 기본이 되는 상식을 깨부수는 존재였다. 죽음에서 되살아났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의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니.’
황극린이 냄새를 맡는다.
소리를 들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이라 할지라도 백골마존이 불러온 강시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미약하게나마 심장은 뛰고 있었으며, 코로 숨을 쉬고 있었다.
죽은 게 아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심령을 제압한 것이로군.’
물론,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긴 했다.
“대단하군.”
황극린이 인정하자 마적사가 콧김을 내뿜는다.
“이 백골마존이 따르는 것이 바로 나 마적사라오. 이 정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소? 본교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 말이오.”
“알 것 같군.”
“역시 안목이 탁월하시군.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소교주가 된다고 하여도 마령을 내쫓지는 않을 것이니까. 만약 황 공자가 마령을 원한다면 내어 줄 수도 있소.”
은근슬쩍 떠본다.
화령신침을 내어 주는 것보다는 마령을 주는 것이 좋다.
물론 소교주 경쟁에서 패배한 후보들은 모두 죽이거나 축출하는 게 정론이라고 하지만, 이제껏 모든 후보가 그런 취급을 당한 것은 아니다.
“그녀를 내어 줄 필요는 없소.”
“호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알겠소. 하지만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시오. 난 황 공자가 마음에 든다오.”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혈마교의 상황을 들었다. 마령이 왜 천흉을 원하여 황극린에게 거래를 청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와 대화하며 혈마교에 대한 것을 더 들을 수도 있겠지만, 놈을 납치하고 심문해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혈마교와의 협상은 이게 끝이 아니다.
제2공자 마적사는 혈마교와 협상할 중요한 패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백골마존의 존재. 과연 그가 다루는 강시는 어떠한 능력을 발휘할까? 그게 몹시 궁금했다.
“나는 당신을 원하오.”
“……!”
젓가락질이 뚝 멈춘다.
“날 원한다?”
“그렇소.”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게 무슨 의민지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아리송한 얼굴로 묻는 마적사. 황극린이 말하는 게 비유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특이하다고 말할 취향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백골마존처럼 사랑하는 동생을 강시로 만들어 쾌감을 느끼는 존재도 있었으며, 동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같은 종(種)이 아닌 것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은 이들도 있다.
만약 비유가 아니라면… 설마?
‘그렇군! 저 아름다운 외모로 어떠한 여인과 관계하지 않은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인가.’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반질반질한 그릇에 살짝 비친 마적사의 얼굴.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적사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현 상황을 이용할 방법을 떠올리려 애썼다.
‘솔직히 여인처럼 머리를 길러 놓으면 웬만한 여인… 아니, 마령 그 아이보다 더 아름답겠군.’
착각하며 납득한다.
썩 괜찮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화령신침을 내어 주고 혈마교의 보물을 내어 주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
“내가 당신이 필요해서 말이오.”
마적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백골마존 또한 황극린을 경계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손가락을 튕길 준비를 한다. 손가락을 튕기면 바로 백골마존의 강시가 움직일 것이다.
- 부교주, 가만히 있으시오. 놈을 이용할 방법이 생겼소. 놈은 내게 관심이 있는 듯하군.
- 예, 알겠습니다.
마적사가 황극린에게 느긋이 다가간다.
틈이 보이면 확실하게 제압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채지 못한다면 다시 많은 것을 투자해야 했다.
“당신이 원하는 건 잘 알겠소. 하나,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하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차근차근히 해 보도록 합시다.”
그렇다고 해도 황극린의 마음을 받아 줄 수는 없었다.
당장 원하는 것을 모두 준다고 약조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간사한 법이다. 마적사는 인간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좋소.”
황극린도 만족할 만한 답이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온 먹이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마적사 또한 소교주 후보. 그의 무공은 화경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백골마존과 힘을 합쳐 싸운다면 모기처럼 귀찮게 곁에서 윙윙댈 것이다.
콰지지직-!
푸억!
뇌룡의 기운이 마적사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일단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