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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18화 (218/316)

218화 미끼

“근데 말이야.”

화령신침이라는 말에 당황했던 혈혼단주 혁련소였지만,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황극린을 만났다. 그가 가정한 최악은 황극린을 만나자마자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상대로 황극린은 그를 인질로 잡았을 뿐이었다.

물론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약란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 또한 혈마교에서 꽤 높은 지위였지만, 결국 그녀의 뒤에 있는 혈악이 무서운 것이지, 우약란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다.

“넌 언제부터 내게 반말했지?”

차가운 눈동자로 노려보는 혁련소.

그는 인간의 목숨 따위는 파리보다 하찮게 끊어 낼 수 있는 위인이다. 뭐, 높은 자리에 있는 혈마교도들이라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혁련소는 그중에서도 더 잔혹했다.

당연히 혁련소는 우약란이 굽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도 생각이 있다면 여기서 빠져나간 뒤를 걱정할 테니까. 거기다 혁련소는 제2공자의 도움을 받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을 놈에게 왜 존대해 줘야 하지?”

“뭐라?”

“네놈은 만뇌문이 어떤 문파인지 모르고 있다.”

만뇌문이 어떤 문파인지 모른다고?

기가 찬 눈빛으로 혁련소가 우약란을 노려본다. 소림사와 만뇌문을 이간질하기 위해서 온갖 정보를 끌어모았었다. 그만큼 만뇌문을 잘 아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 혁련소의 시선을 우약란이 비웃는다.

“보아라.”

우약란이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굴린다.

혁련소의 눈동자도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그곳에서는 붉은 눈동자를 가진 괴물 한 마리가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넌 저런 인면지주를 본 적이 있나?”

날개가 달린 인면지주.

인면지주는 영물치고는 인간들에게 많이 발각되었다. 당연히 그것을 사육하고 길들이려는 사람도 있었다. 혈마교에서도 오래전 인면지주를 기른 적이 있다.

“날개가 달린 인면지주다.”

“그게 어쩌란 거지? 그거랑 만뇌문이랑 무슨 상관…….”

“영물이 강해지는 방식을 알고 있어?”

영물이 강해지는 법?

사실 혁련소는 그따위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무공을 갈고닦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조금 머리 좋은 짐승들 따위가 어떻게 강해지는지, 알 게 뭔가?

“그걸 꼭 알아야 하나?”

“멍청하군.”

“입조심해라. 혈악 장로께서 네년을 보살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 않나?”

“영물이 성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 영약을 취하거나 인간의 진원진기를 취하거나.”

혁련소가 무슨 말을 하든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내뱉는 우약란이었다.

“저 특이한 인면지주가 얼마나 많은 인간을 먹었을 것 같아?”

“……!”

순간 혁련소의 등줄기에 오한이 일었다. 몸 곳곳에서 닭살이 돋아났다.

“만뇌문은 ‘마기’를 가진 무인을 인면지주에게 먹이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이게 만뇌문의 계획이라고?”

우약란이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는다.

어차피 그녀도 혁련소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을 예상했다.

“만뇌문은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문파다. 뇌옥 전체를 감싼 거미줄을 보아라. 저들은 이 감옥을 얼마나 오랫동안 운영해 왔을까? 수천? 수만? 고작 그 정도의 생명으로 인면지주에게 ‘날개’가 생겨났을까?”

“헛소리. 내가 파악한 황극린의 성정은 그렇지 않다.”

“그걸 확신하나? 인면지주를 보고서도?”

“…….”

혁련소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린다.

만약 그가 잘못 파악한 것이라면?

화령신침을 요구하는 것도, 혈마교가 당연히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고 행동한 것이었다면?

“설마 교섭을 미끼로 마기를 품은 교도들을 납치하려는 속셈이라는 건가?”

“이제야 눈치챘나 보군.”

“인면지주가 대체 뭐라고? 영물 따위가 아무리 강해져 봤자 한계는 존재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음명대주가 저 인면지주에게 패배한 것을 알고 있나?”

“……!”

고작 영물 따위에게 음명대주가 패배했다?

혁련소가 음명대주에게 소리쳤다.

“음명대주! 우약란이 하는 말이 사실인가!”

“그렇… 습니다.”

부끄럽긴 하지만 혈혼단주에게 거짓을 보고할 순 없었다.

그 대답에 혁련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렇다면 지금 황극린은 인면지주에게 그를 먹이려고 납치했다는 말인가? 만뇌문도 정파의 하나고 교도들을 납치한 것을 보면, 협상을 위해서 인질들을 살려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처음부터 인면지주의 먹잇감을 만들기 위한 계략이었다면?

“말도 안… 헉!”

혁련소가 숨을 멈춘다.

어느샌가 인면지주가 다가왔다. 여덟 개의 붉은 눈동자가 혁련소를 응시하고 있다. 입가에서는 녹색의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 끼이.

혁련소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마치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인면지주가 거미줄을 쏘아 냈다. 혁련소의 완력으로도 꿈쩍하지 않던 거미줄이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인간이 아닌 괴물.

상식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짐승이 침을 뚝뚝 흘리며 탐스럽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괴기스러웠다. 혁련소가 발버둥을 친다. 그러자 인면지주가 무언가를 또 쏘아 냈다. 눅눅하면서도 단단한 무언가.

마치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 듯했다.

이 괴물이 정말 사람과 대화할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취했으면……?’

혈마교에서도 이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영물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수십만 명의 인간을 먹이로 주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영물이 강해져 봤자 인간의 노동력이 더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데 황극린이라는 놈은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가?

저런 짐승에게 인간을 먹이로 주는 놈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무서운 자였다.

인면지주 흑주에게 공포를 느끼고 입을 다문 혁련소.

우약란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의 모습이 왠지 남 일 같지 않았다. 결국 혁련소가 죽으면 다음은 그녀의 차례일 것이다.

‘만뇌문은 정파의 탈을 쓴 괴물이다.’

우약란.

그녀는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가며 만뇌문에 대한 공포를 키워 나갔다.

그리고 그건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혈마교도들도 마찬가지였다.

혈마교도라고 하면, 중원인들은 공포에 떤다. 그들이 자신과는 다른 인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만적이며 중원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패륜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물론, 혈마교도도 결국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잔인무도한 황극린이 키운 인면지주를 보고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괴물.’

납치된 혈마교도들 사이에서 황극린은 이미 괴물이 되었다.

* * *

‘꽤 얌전해졌군.’

황극린은 하루 뒤 뇌옥을 찾아갔다.

혁련소의 볼이 하룻밤 사이에 홀쭉해졌다. 저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눴는진 알고 있었다.

‘혈마교도가 나를 괴물로 생각한다니.’

공교로운 일이었다.

결국 저들도 인간이었다. 아무리 중원에서 저들을 보며 공포에 떤다고 하더라도 변치 않는 사실이다. 가늠할 수 없는 것과 조우하면 공포를 느끼곤 한다.

황극린이 뇌옥에 가둔 교도들의 입을 막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다.

뇌옥의 한쪽엔 사람 두 명이 머물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에선 뇌옥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잘 훈련된 혈마교도들이었기에 뇌옥에 갇혀도 대화하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우약란과 혁련소는 말다툼을 벌였다고 했다.

“혁련소.”

“에… 예? 저… 말입니까?”

흠칫!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빛.

혁련소가 황극린과 인면지주를 곁눈질한다. 감히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진 못했지만 말이다.

‘뭐, 굳이 오해를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는 타인의 시선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의로워 보이고 싶은 허영심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혁련소가 황극린을 괴물로 여기는 편이 한결 다루기가 쉬워지리라.

“너는 내일 죽는다.”

“……!”

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죽는다고? 더 문제는 편안한 죽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녹색의 침을 줄줄 흘리는 괴물에게 산 채로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태초의 인간은 피식자(被食者)였다. 온갖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나약한 존재였을 뿐.

혁련소는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편안히 죽고 싶나?”

“…….”

살고 싶냐고 묻는 것도 아니다.

편안히 죽고 싶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기에 혁련소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날 죽일 생각으로 납치한 놈이다.’

협상이 통하지 않는 괴물.

인간을 거미의 먹이로 주는 정신이상자.

‘살고 싶다.’

마음속으로 삶의 갈망이 벅차오르고 있다.

- 네가 이곳에서 가장 직책이 높다고 알고 있다.

머릿속을 울리는 전음.

이제까지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는데, 황극린이 전음을 보냈다는 건 무슨 뜻일까? 혁련소의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 너보다 더 높은 놈이 이곳으로 온다면… 넌 사흘 후에 죽지 않는다. 쓸모가 있다면 당장 죽일 필요는 없겠지.

“…….”

황극린이 수작을 부린다는 것 따위는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혁련소의 머리 위에서 침을 뚝뚝 흘려 대는 인면지주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 네 상관과 대화할 통로를 열어 줄 수 있다. 만약 마음이 동한다면 흑주를 향해 눈을 세 번 깜빡이도록 해라.

황극린은 전혀 아쉽지 않다는 듯,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고 빠져나갔다.

흑주는 아쉽다는 듯이, 꽁꽁 묶인 혁련소의 몸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속에 있는 것을 토해 낼 것만 같았다.

“우욱.”

혁련소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한다.

살고 싶다. 그러한 욕망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여기도록 머릿속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래, 아무리 황극린이라도 본교와 전쟁을 벌이는 걸 원하지 않을 거다. 놈이 필요로 하는 건 마기가 충만한 마인. 나보다 더 강한 마인이 필요한 거야.’

혈마교의 힘은 강하다.

아무리 황극린이 괴물이라고 하지만, 교주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할 것이다.

혁련소가 천천히 눈을 세 번 깜빡인다.

흑주는 그것을 알아채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혁련소를 노려보고 있었다.

- 끼이이…….

마치 아쉽다는 듯이.

침을 뚝뚝 흘려 대는 흑주.

혁련소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 * *

“화령신침? 그건 교주님께서 애용하시는 물건이 아닌가?”

장로 혈악.

만뇌문의 무리한 요구에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우약란을 비롯하여 혈혼단주 혁련소마저 사로잡혔다. 혈마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십만대산에서는 장로 회의가 있었다고 했다.

결론은 일단 혈악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교주께서 마경(魔境)에 진입하셨기에, 당장 그분의 뜻을 듣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분 성격에 아랫것들이 많이 납치되어도 그걸 내어 주시지는 않겠지. 황극린은 그걸 노렸던 건가? 정말 본교와 전쟁이라도 할 셈인가?’

혈악은 아끼던 수하가 사로잡혔다는 분노에서 벗어났다.

그나마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노리는 게 무엇일까.’

어쩌면 만뇌문의 뒤에는 천화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정파의 탈을 쓴 그놈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직접 만나야겠군.”

혈악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당연히 아무런 대비도 없이 황극린과 만날 생각은 아니었다. 그 또한 납치될 수는 없지 않은가?

본교에서 지원을 받는다.

혈악 또한 경지에 이른 고수로서 자신은 있었지만, 황극린은 소림사의 방장마저 꺾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혈악이 어떤 무인을 차출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보고드립니다. 마검궁(魔劍宮)에서 방금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마검궁?

제2공자가 기거하는 궁이었다. 소교주가 될 후보자들은 모두 궁을 받는다.

“마검궁이 왜?”

지금 십만대산 내부에선 소교주 쟁탈전이 한창이었다.

소교주가 되면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그 무공을 접할 수 있다. 중원 전역을 뒤져 보아도 그 무공보다 뛰어난 것은 없었다. 그걸 익히면 혈마교의 교주가 되는 것이며, 천하제일인이 된다.

그렇기에 높은 서열의 마인들은 기를 쓰고 자신이 밀고 있는 공자나 공녀가 소교주가 되도록 밀어주고 있었다.

서신을 펼친다.

- 혈악 장로는 들어라. 만뇌문과 만나기 위해 본인은 부교주 한 명과 함께 중강현으로 향하고 있다. 며칠 내로 도착할 것이다. 준비해 놓도록.

제2공자와 부교주 한 명이 온다고?

당연히 뒤에 딸려 오는 마인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마 제2공자를 따르는 장로들도 죄다 끌고 오지 않을까?

‘따로 지원 요청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제2공자는 이번 일로 확실하게 소교주 위(位)에 다가서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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