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08화 (208/316)

208화 초혼대법

사대금강.

소림을 지키는 4명의 기둥.

나한전주 해월대사를 비롯하여 해공, 혜영, 혜민 등이 있었다. 해월대사를 제외하곤 모두 소림사 숭산의 양심당(養心堂)에서 홀로 불법을 공부하고 수련하는 이들이었다. 중원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거기다 사대금강 네 명이 한꺼번에 숭산을 벗어난 것은 정사대전이 벌어졌을 때를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무림맹의 무인들은 깜짝 놀라 그들을 맞이했다.

“사대금강을 뵙습니다!”

“아미타불, 모두 고생하셨소이다.”

대답한 것은 해월대사였다.

나머지 사대금강은 침통한 표정으로 객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무지회에 참가하러 왔던 무승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평생 같이 수련해 왔던 사형이 죽었다. 그것을 막아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으리라.

“죄송합니다. 저희가 부족하여 이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다. 너희는 잘못한 게 없다. 잘못한 것은…….”

해공대사의 시선이 잠시 황극린을 스쳤다.

“천학을 죽인 범인이겠지.”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을 때, 해월대사가 황극린의 앞으로 왔다.

“진 안에서 뵀었지요?”

“예, 대사님. 그때 이후로 처음이군요.”

황극린의 눈썹이 살짝 꿈틀한다. 해월대사의 ‘냄새’가 약간 달라졌다. 무언가 성취가 있었던 걸까. 높은 경지에 오른 무인일수록 성장이 더디다. 하지만 한번 깨달음을 얻으면 이제껏 쌓아 올린 경험으로 확 강해지기도 한다.

‘확실히 강하군.’

해월대사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대금강들은 거대한 기운을 감추고 있었다. 그들의 위험성이 냄새로 전해진다. 방장과의 싸움에서 황극린은 승리한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대금강 전부와 싸울 수 있다고 확신하진 않았다.

일대일로는 사대금강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소림사는 합격진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 백팔나한진에 갇힌다면 무림의 어떤 고수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사대금강이 작정하고 황극린을 합공하려 들면 꽤 위험하리라.

‘물론, 취수혈정으로 취한 육신이 얼마나 달라졌느냐에 따라 또 다르겠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황극린은 살수로 살아온 세월이 더 길었다. 아직 사대금강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는 아니다. 최소한 그들이 황극린을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황 장로께서도 흉수를 찾으려는 겁니까?”

“예, 만무지회가 벌어지는 와중에 사건이 벌어졌으니… 저도 발 벗고 나서야겠지요.”

해월대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들어가지요. 문을 열어 주십시오.”

“예, 대사님!”

황극린을 막아 세우던 맹의 무인들이 비켜섰다. 만무지회에 참가했던 제자들이 황극린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를 제지하진 못했다. 함께 있는 사대금강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들이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황극린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가 알던 해월대사라면 같이 객잔을 살펴본다고 했을 때 방해했을 테니까.

사대금강이 가장 먼저 들어갔고, 그 뒤를 황극린과 소림의 제자들이 따랐다.

천학이 머물던 방은 2층에서 가장 끝 방이었다.

그곳에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죽어 있는 천학이 있다. 그걸 본 사대금강이 침음하며 불호를 외웠다. 황극린도 마찬가지였다.

‘일격에 심장을 꿰뚫었다.’

천학의 손과 발을 살펴본다. 자잘한 상처가 없었다. 만약 전투가 벌어지고 조금이라도 천학이 반항했다면 상처가 있어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봐도 살수의 냄새가 난다.

황극린이 눈을 감고, 냄새에 집중한다.

만약 독을 썼다면 냄새가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개와 같은 짐승들은 냄새를 맡아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걸 찾아내곤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흉수를 추적할 수 있다.

“심장을 일격에 꿰뚫렸소.”

해월대사가 일각 동안 시체를 살피고 낸 결론이다.

“살수, 그것도 중원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의 살수가 한 짓인 것 같소이다.”

“허어.”

“살수라니!”

“아미타불…….”

다른 사대금강들은 모두 눈을 감았다. 소림의 제자가 죽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살수에 당한 것은 몇십 년 만이다. 감히 누가 소림의 제자를 건드리겠는가? 사흑련에 속한 흑살문이나 비요둔(秘妖屯)과 밀은영(密隱營) 정도를 예상할 수 있으리라.

거기다 살수 조직이 아니더라도 살수를 키우는 문파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황 장로께서는 짐작하는 바가 있으십니까?”

해월대사의 질문에 황극린에게 시선이 모인다.

“아직 잘 모르겠군요.”

사실 황극린은 확신하는 것이 하나는 있었다.

범인은 흑살문 출신이 아니라는 것.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심장의 상처로 볼 때, 흔히 볼 수 있는 검(劍) 따위에 꿰뚫린 게 아니다. 송곳과 같은 모양의 병기에 꿰뚫린 것처럼 보인다. 피가 튄 방향으로 보았을 때, 상대는 정면에서 찔렀다. 흑살문의 살수들은, 특히 최상급에 오른 이들은 정면에서 노리지 않는다.

정면에서 노렸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실력 차이가 압도적이거나.

혹은.

‘면식이 있거나.’

그 외에도 흑살문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냄새’에 있었다. 그는 중원에 있으면서 여러 차례 흑살문의 살수들과 조우했었다.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는 흑살문도들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이 자각하지 못하는 수준의 냄새.

이 방 안에는 흑살문의 모래 냄새가 없었다.

‘확실하진 않아.’

칠 주야가 지났기에 그리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황극린이 해월대사를 바라본다.

“천학 스님의 시신을 직접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해월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방도가 있는 겁니까?”

“초혼대법(招魂大法)으로 흉수를 찾아낼 생각이니까요.”

초혼대법이라는 말에 천허를 비롯한 제자들이 깜짝 놀란다.

“초혼대법?”

황극린이 고개를 갸웃한다.

불가에 그런 주술 따위가 있었던가? 애초에 인간의 혼을 불러낼 수 있는 주술이 있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달마조사께서 남겨 주신 소림의 비기 중 하나지요. 물론, 생각하시는 것처럼 사자의 혼을 불러오는 건 아닙니다. 단지…….”

해월대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천학의 심장이 꿰뚫릴 때, 어떤 성질의 기운이 상처에 침범했는지 알 수 있는 대법이지요. 인간이 인위적으로 단전에 모은 기(氣)라는 것은 쉽사리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성질이라.

음양오행과 같은 성질을 말하는 듯했다.

“청성의 장문인과 무림맹 사천성 지부장이 오실 겁니다. 그분들이 온다면…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대금강의 시선이 모두 황극린을 향한다.

잘 감추고 있었지만 적의가 알게 모르게 새어 나온다. 예민한 황극린이니 느낄 수가 있었다.

‘해월대사의 말만 들으면 솔직히 빈틈이 많은 대법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일단 소림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계략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 * *

청성의 장문인 태을종객과 무림맹 사천지부장 비천도(飛天刀) 하지태가 객잔에 당도했다. 그들 또한 중강현에서 소림사의 고승들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금방 도착했다.

태을종객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황극린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황극린을 달리 보게 된 이유는 구파일련 장문인들과 육대세가 가주들의 회담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이다.

‘소림의 방장을 꺾을 정도라니.’

화경이라는 경지는 무림에서 널리 알려진 것과 조금 달랐다.

황극린이 화경에 올랐다고 다른 화경의 고수와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태을종객쯤 되는 고수들은 경지라는 잣대로 무인을 구분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고 있었다.

청성의 제자들만 하더라도 검기상인의 경지에 오른 제자가 검기를 전혀 발현하지 못하는 제자에게 패배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투라는 건 얼마나 내공을 잘 뽑아내느냐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황극린이 화경에 올랐다는 건, 검강을 환으로 엮을 수 있다는 말.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강함을 모두 표현할 수 없었다. 애초에 무공이 그리 간단하게 정의될 것이었다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주화입마에 걸리는 무인은 없어야 정상일 터.

‘그만큼 황 장로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사대금강이 대법을 준비한다.

그들은 천학의 시체를 빙 둘러싸고, 합장하며 불호를 왼다. 중앙에 선 해월대사만이 천학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초혼대법은 말처럼 사자의 혼을 불러오는 대법은 아닙니다. 심장을 꿰뚫는 순간 발현된 응축된 의지와 기운이 심장에 남아 있는 경우… 은침(銀鍼)에서 반응이 올 것입니다.”

초혼대법의 방식은 이러했다.

죽음의 직접적인 사인이 된 상처에 대법을 펼치면, 그곳에 남아 있는 기운이 떠오른다고 한다. 물론,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내공심법을 익힌 이가 범인이라면 수확이 없을 것이긴 했지만, 만약 범인이 특별한 내공심법을 익혔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세 명의 사대금강이 합장을 한 채로, 불호를 연신 외고 있다.

그들의 거대한 기운이 융화되어 해월대사에게 향한다.

‘이런 방식인가.’

황극린의 초월적인 감각은 오묘한 기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태산북두의 소림사라 그런지 주술의 수준도 대단했다. 흐름을 완벽히 기억한다면 언젠간 써먹을 수도 있으리라.

모두가 긴장한 시선으로 천학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천학의 심장이 작게 뛰기 시작했다.

그걸 느낀 이는 황극린 한 명뿐이었다.

‘이미 죽은 육이라도… 기(氣)가 담기면 잠깐의 생을 얻는 건가. 그래서 초혼대법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군.’

웬만한 무림인들은 모두 내공을 다루고 있지만, 그 위대함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극린은 단전에 쌓이는 내력이 늘어날수록 대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학의 심장이 멈추었고, 벌어진 상처에 박아 넣은 길쭉한 은침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찌지지직.

바늘에 특정한 기운이 응축되었다. 아주 적은 기운에 불과했지만, 이곳에 있는 고수들은 바늘에 어떠한 성질의 기운이 맺혔는지 깨달았다.

황극린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다.

‘그랬군.’

흉수가 누군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있다.

‘소림과 만뇌문이 더 대립하길 원했던 거다.’

결과를 확인한 해월대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흉수는 뇌(雷)의 기운을 품고 있었군요.”

“……!”

“…….”

누구는 놀란 눈을 했고.

또 어떤 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 거대한 긴장감이 흐른다. 어느샌가 사대금강 중 세 명이 황극린을 에워싸고 있었다.

“황 장로, 협조해 주셔야겠소이다!”

“아미타불……!”

황극린이 어깨를 으쓱한다.

“은침에서 뇌전의 기운이 맺혔다고 내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혈풍뇌전신공이 뇌를 다룬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거기다 만뇌문은 본문과…….”

“악연이 있고?”

“그렇소.”

해공대사는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냉정한 눈으로 황극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협조해 주시길 바라오. 소림과 완전히 척을 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오.”

“저도 황 장로님을 의심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게 되어 버렸군요.”

해월대사까지 황극린에게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태을종객과 사천지부장이 긴장한다. 까딱 잘못하다간 여기서 또 다른 피가 흐를 수 있었다. 만뇌문과 소림사의 전쟁.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혈마교나 다른 사흑련의 동태가 의심되는 때, 용성과 무림맹이 싸워서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은침에 맺힌 기운과 같은 내공심법을 익혔다면… 세맥에 꽂았을 때, 아무런 반발이 없을 거라 했습니까?”

사대금강이 바라는 협조는 그것이다.

은침을 황극린의 세맥에 꽂게 하는 것.

대체 어떤 무림인이 그따위 짓을 허락하겠는가?

“힘을 쓰고 싶지 않소이다. 그러니…….”

해공대사가 황극린을 설득하려 할 때.

객잔 1층에서 소란이 일었다.

“아, 안 됩니다!”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이… 으악!”

황극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놈아! 혼자 오면 어떡하냐? 땡중 놈들이 얼마나 간악한데, 사기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소림의 사대금강을 간악한 땡중으로 묘사하는 모습에 태을종객이나 사천지부장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잠시 장내를 둘러보던 뇌불의 시선이 해월대사가 손에 쥔 은침을 바라본다.

“뭐야? 초혼대법? 쯔쯔, 아직 달마가 남긴 장난감 따위를 믿는 거냐?”

“뇌불…….”

해월대사가 노한 기색으로 뇌불을 노려본다.

“근데 지금 우리 극린이를 의심하는 거냐? 소림이 정말 갈 때까지 갔구나! 허허허.”

다른 사대금강은 왜인지 뇌불을 껄끄러워하는 얼굴이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해월대사와는 조금 다르다.

“…소승도 황 장로가 그랬다고 믿지 않습니다. ‘무림공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지요.”

그 말은.

뇌불은 의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뇌전의 기운을 다루는 건 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클클, 내가 저딴 놈을 왜 몰래 죽이겠느냐? 그럴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너도 알 것인데?”

“모르는 일이지요. 주화입마에 빠진 무인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뇌불과 해월대사의 시선이 교차한다.

두 사람의 기운이 충돌하고,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중재하기 위해 객잔에 방문한 사천지부장과 태을종객이 황급히 두 사람을 말리려 할 때.

“만약 만뇌문이 아니라면.”

황극린이 말한다.

“소림은 어떤 대가를 치를 겁니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평생 불법을 수행해 온 해월대사마저 그의 눈동자를 보고 흠칫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