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완성
만무지회에서 단연 주목받는 것은 만뇌문의 문도들이었다.
만뇌문은 이제껏 많은 문파의 견제를 받아 왔다. 그 이유는 황극린이라는 규격 외의 강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뇌문과 악연으로 엮인 문파를 제외하곤 진심으로 그들을 경계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고수, 심지어 뇌불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명문거파의 기득권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만뇌문이 용성에 들어간 것도 다 그러한 이유였다.
오히려 만뇌문이 무림맹의 압박을 피해 용성의 일원이 되었기에 구파일련과 육대세가에선 만뇌문의 성장을 한시적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만무지회가 진행될수록.
만뇌문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백온후, 그 아이는 특별한 체질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무림맹의 눈과 귀는 사천성 중강현에도 닿아 있었다.
맹이 파견한 고수들은 만무지회에 등장한 후기지수의 무위를 측정했다. 정파 무림을 관리하는 무림맹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용봉지회에서도 맹의 고수들을 파견하여 후기지수들의 역량과 행동거지를 판단하여 맹에 영입하거나 감시 대상으로 선정하곤 했다.
맹의 정보원들이 모은 정보는 무림맹 군사부에 모인다.
그리고 총군사와 부군사는 모인 정보를 바탕으로 무림맹주에게 보고한다.
그렇기에 지금 부군사 사마태강은 무림맹이 있는 정주에서 만무지회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백건악, 비청하라는 아이도 백온후 못지않다고 하던데.”
“예, 맞습니다. 나이로 따지자면 단연 백온후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백건악과 비청하도 용봉지회에 출전했어도 본선에 진출할 수준입니다.”
“거기다 제갈수도 뛰어나다는 게 문제지.”
“예.”
사마태강의 직속 수하인 흑룡각주가 우려를 표한다.
“만뇌문의 무공은 위험합니다.”
“혈마교의 절기 수준인가.”
“만뇌문이 천하의 기재들을 모은 것이 아닌 이상…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마공(魔功)이 왜 마공인가?
정파의 무공은 순리를 따른다. 하나, 마공은 역천의 기운을 육신에 순환시켜 순리에 맞지 않은 힘을 얻게 한다. 정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성장 속도로만 판단하면 마공은 최고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마공을 익히는 자들은 언젠가 마기에 침범당한다. 혈교나 마교가 왜 무림공적이었나? 중원의 오랜 역사가 마공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흑룡각주는 보고를 이어 갔다.
만뇌문이 정파 무림에 위험이 될 것이라는 사실만 명백해질 뿐이다.
“그리고 황악반점에서 사마세가주의 셋째인 사마광도가 점소이로 일하는 건이 있습니다만.”
“들었다.”
사마태강은 딱히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마태강을 모셔 온 흑룡각주는 그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차가운 분노를 터트린다. 그 분노를 마주하는 이들은 모두 잔인한 최후를 맞이했다.
“만뇌문이 아등바등 무림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하고 있지만, 기반이 닦이지 않아 한 번의 폭풍에도 무너질 것이야. 그 과정에서 사마세가의 작은 흠결은 씻겨 나갈 것이다.”
“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마태강은 중강현에서 어떤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따로 계책을 세운 건 아니다.
조금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사마태강은 직감하고 있었다.
‘곧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과도한 힘이 집약되면 그것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폭풍의 핵이 된다. 고요하지만 주변에선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폭풍이 몰아치면 과분한 자리에 오른 것들은 쓸려 나가겠지.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사마태강이 이끄는 사마세가일 것이다.
* * *
제갈세가의 망나니.
누굴 뜻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제갈수는 제갈세가에서도 한량으로 살아오며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딱히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망나니라 부르진 않았다. 중원에서 그를 망나니라 칭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가문의 곁을 떠나 만뇌문의 문도가 되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그는 망나니 취급을 받았다.
아무리 제갈세가가 육대세가가 아니라지만, 중원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가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방계도 아니고 가주의 직계다. 그런 사내가 만뇌문의 정식 제자가 된다? 무림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제갈수의 실력을 무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만무지회에서도 처참한 실력으로 패배하리라 생각했다. 백온후라는 천재와 제갈수는 다르다. 그의 패배를 예견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출신을 부정하고 다른 문파의 제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형편없겠는가?
만뇌문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제갈수까지 다른 문도들처럼 재능을 뽐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게 밝혀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제갈수는 무려 소림사의 천허에게 승리했다.
백온후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오진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반 시진에 걸친 비무에서 한 끗 차이로 승리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망나니가 만뇌문에 들어가니 소림사의 정식 제자까지 꺾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화제가 되었다. 결국, 제갈수의 승리는 만뇌문의 무공이 뛰어나며 그들의 수련법에 특별함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물론 제갈수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던 이유에는 만뇌문의 무공과 특별한 수련법도 있었지만.
제갈수가 본래 각법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도 있다.
제갈수.
황극린은 전생에서 그가 늦은 나이에 주목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 흑살문의 살수로 살아가다 보면 여러 정보가 들어온다. 제갈수는 언젠가 이름을 떨칠 무인이었다. 만뇌문에 들어와서 시기가 빨라진 것일 뿐.
부상을 입은 제갈수.
16강에 진출했지만, 아마 다음 비무에선 제대로 싸우기 힘들 것이다. 비록 우승권에 오르지 못했지만, 소림사의 천허에게 승리한 제갈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다.
반대로.
“죄송합니다, 사형.”
고개를 푹 숙인 천허.
그 앞에 소림사의 무승들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만뇌문의 평이 높아지는 것과 반대로 소림사의 평은 낮아진다. 그들이 만무지회에 참가한 것은 소림사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였다.
천학이 천허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미 승부가 난 것을 어찌하겠는가?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패배는 내가 감당할 터이니.”
부담감이 커졌지만, 천학은 자신이 있었다.
소림의 대제자인 천덕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소림의 절학을 모두 이어받은 기대주였다. 사대금강 중 하나인 해공대사(海空大師)가 그의 사부였다.
그는 제갈수는 물론이고, 만뇌문도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백온후에게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리 쉬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돌아가도록 하세. 자네가 내 수련을 도와준다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질 것 같군.”
소림의 무승들이 비무장을 떠나갔다.
그리고.
죽립을 눌러쓴 사내가 그들의 뒤를 밟았다.
* * *
황극린은 성수신의의 연단실로 향했다.
“이제 곧 완성입니다.”
불을 뿜어내는 아궁이 안에서 거대한 항아리가 청아하면서도 묘한 향이 깃든 연기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혈고독을 이용한 황극린만을 위한 영약. 그의 체질을 또 한 번 변화시키기 위해서 성수신의는 자신의 지식을 쏟아붓고 있었다.
연단이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평생 체질 개선을 위해 약재를 다뤄 온 성수신의도 작은 실수로 모든 작업을 망치게 된다. 저 아궁이에 들어간 재료의 가격만 해도 완성된 영약을 돈으로 몇 개나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혈금유나 내상약으로 중원 곳곳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만뇌문이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성수신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서 영약의 완성을 계속 미뤄 왔다.
그리고 오늘.
제갈수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으며, 황극린만을 위한 성수신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날이었다.
성수신의는 긴장되는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사실 특정한 기운을 한곳에 담은 영약을 만드는 건 연단에서 금기로 취급됩니다.”
황극린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안정하니까 그런 겁니까?”
“예, 맞습니다. 소림사의 대환단과 같은 절세 영약들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의 정순한 기운을 완벽하게 원(圓)의 형태로 가공하는 것이지요. 수백 년이 지나도 영약의 기운은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라고 하신 것이군요.”
“예.”
성수신의는 몇 번의 실패를 거치고 깨달았다.
황극린만을 위한 영약은 그런 균형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하여 연단된 영약은 불안정해야 한다. 특수한 기운이 집약되었으니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게 오히려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치우쳐서 불안정한 영약은 외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외부로 기운이 새어 나간다.
그렇기에 만들어지는 즉시 복용해야 한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빨리 완성되는군요.”
“최근 백 년 묵은 하수오 몇 뿌리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혈고독에 깃든 기운을 폭주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후후!”
다른 문파에서 보면 돈지랄이라고 욕할 수도 있었지만, 성수신의의 영약이 성공한다면 황극린은 또 다른 체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지금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황극린이었지만, 성수신의는 황극린을 더 완벽하게, 절대적인 존재로 탈바꿈시키고 싶었다.
두 사람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아궁이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항아리에서 새어 나오던 연기가 줄어든다.
“곧 완성됩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흑주의 실로 만든 방화복(防火服)을 입은 성수신의가 항아리 앞으로 간다. 그리고 묵철로 만든 망치와 섬세한 손길로 그것을 깨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성수신의의 팔. 오늘을 위해 수천 개의 같은 항아리를 깨며 연습했다.
항아리를 깨자 그 안에서 육각형의 항아리가 또 나타난다. 항아리의 상단에 작은 숨구멍이 있었다. 이것도 깨야 한다.
깡. 깡. 깡.
그렇게 두 개의 항아리를 더 깨고 나니, 작은 구멍이 뚫린 항아리만 남았다.
꿀꺽.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예.”
아궁이 내부는 열기로 후끈했지만, 황극린에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복용하신 후 바로 저기로 가셔서 운기조식을 하시면 됩니다.”
성수신의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연공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깡. 깡. 깡. 까드득.
작은 항아리가 깨지고.
평범한 영약과는 전혀 다른.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리는 붉은 내력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힘이 집약되어 있었기에 사방으로 뻗어 나가려 한다.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걸로 체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더라도… 꽤 많은 내력을 얻을 수 있겠군.’
황극린은 대번에 내력 덩어리에 담긴 힘이 얼마나 큰지 알아차렸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손으로 그것을 덥석 잡았다.
입으로 내력 덩어리를 가져가려는 순간이었다.
“…어?”
성수신의가 당황한다.
내력 덩어리가 황극린의 손에 잡히자마자 사라졌다.
“무, 무슨? 이럴 리가 없는데!”
성수신의가 당황하고 있으니 황극린이 말한다.
“확실히 특이한 기운이군요. 피부를 통해 기가 흡수됐습니다.”
“예? 정말입니까?”
“…설명은 운기조식이 끝나고 하겠습니다.”
성수신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황극린의 육신 안으로 들어갔다면, 더 대화할 필요는 없다. 그는 황극린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바로 아궁이 속에서 빠져나갔다. 방화복을 입고 내력을 끌어 올렸음에도 성수신의의 온몸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황극린이 아궁이 깊숙한 곳에 마련된 연공실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즈으으으으…….
성수신의가 듣기에도 기묘한 소음이 황극린의 몸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과연 혈고독이 품은 특수한 기운이 황극린에게 잘 흡수될 수 있을까? 이미 완벽한 육신을 가진 황극린의 몸이 다시 한번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부작용은 없어야 할 터인데…….’
이제껏 황극린은 어떤 영약이나 영물의 내단을 취하더라도 딱히 부작용을 겪진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황극린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성수신의는 뇌불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제발, 성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