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04화 (204/316)

204화 은원 관계

“뭐야, 이거!”

어릴 적부터 온갖 종류의 독물(毒物)을 만나 보았던 만독문의 두야랑. 뱀, 두꺼비, 거미, 전갈. 종류는 많았지만 대부분 전형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영물에 준할 정도로 오래 산 놈들은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그 종자가 가진 외형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머리에 뿔이 달렸다거나 신비한 무늬를 가지고 있다거나 발광하거나, 뭐 그런 종류의 특이함뿐이었다.

하지만 흑주는 다르다.

“날개? 거미가 날개라고? 그리고 얼굴이 진짜 사람같이 생겼잖아?”

인면지주는 인간의 얼굴과 비슷한 형태를 몸통에 품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지만, 실제로 보면 사람의 얼굴이라기엔 기괴했다. 하지만 흑주의 얼굴은 마치 인간의 피부와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입과 코 그리고 입의 구분이 명확했다.

두야랑이 처음 황극린에게 주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외형이었다.

영물이 이렇게도 바뀌는 건가?

말이 되는 건가?

“어떻게 된 거야?”

“잘 모르겠군.”

만약 어떻게 했는지 알았다면 실험이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흑주는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알아들었는지 두 발로 늠름하게 서 있었다.

“신기하네. 아빠가 봤으면 당장 해부해 보려 했을 거야. 내단이 얼마나 클까?”

내단이라는 말에 황극린이 흑주를 바라본다.

그는 영물의 내단을 취해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한계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 너도 얘 내단을 취하면 날개 생기는 것 아니야!?”

“…그럴지도?”

황당한 추측이었지만, 왠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 끼에에에에에에!

흑주가 발광하며 도망친다.

두야랑이 어이없다는 듯이 황극린을 바라본다.

“저거, 우리 말 알아들은 거야?”

“그래.”

“말이 돼?”

“훈련된 사냥개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뭐, 영물이면 지능이 더 높을 수도 있지.”

“그거야 그런데… 걔들은 그냥 단어를 기억하는 거잖아. 쟤 반응을 보면 문장 단위로 말을 알아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흑주의 내단은 취할 생각이 없다.”

“그래? 하기야 저렇게 키우면서 정이 많이 들었을 테니.”

황극린이 조용히 입을 뗀다.

“흑주, 안 잡아먹으니 와라.”

- 끼이이…….

흑주는 어느새 땅굴을 파 숨어 있었는데,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어서.”

슬금슬금 다가온 흑주.

“독을 뱉어 보아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에서 녹색 액체를 뱉어 내는 흑주. 순식간에 공동 내부에 독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색깔은 위험하게 보였지만, 냄새는 아주 좋았다. 마치 꽃향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냄새가 좋은 독은 만들기가 몹시 까다롭다.

“대, 대체 이건!”

두야랑이 황급히 손가락을 뻗는다.

독을 살짝 찍어 냄새를 맡더니 살짝 혀에 가져다 댄다.

그 순간.

“으에에엑!”

“…….”

두야랑이 마치 벼락을 맞은 듯이 몸을 떨어 댔다.

귀와 목 부근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말이다. 두야랑이 황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독기를 몰아낸다.

“와아.”

“만독문의 독과 비교하면 어떻지?”

두야랑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대답한다.

“이런 독은 제조하기도 힘들어. 수십 가지 최상급 독을 배합하고 최소한으로 3년은 숙성해야 만들 수준이야. 내가 대부분의 독에 내성이 있는데도 이런 반응이면… 최소 백야천사(白夜天死)급이야!”

“백야천사?”

“응, 만독문의 3대 절독이야! 이건 미친 거라고!”

두야랑이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황극린에게 말한다.

“흑주 나한테 팔아!”

흑주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두 발로 선다. 마치 작은 동물이 덩치를 부풀리는 것처럼 말이다.

황극린이 싱긋 웃는다.

“그건 안 된다.”

“역시.”

두야랑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애초에 흑주를 데려갈 순 없을 것이다. 녀석의 지능 상태로 보건대 만독문에 데려가도 제대로 협조할 리가 없었다. 물론, 만독문이 작정하면 독을 강제로 뽑아낼 수도 있겠지만, 친우의 것을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자꾸만 흑주의 독을 맛본다.

그러다가.

“어? 왜 이렇게 머리가 어지럽…….”

두야랑의 몸이 휘청인다.

그녀 또한 수많은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고 독공을 익혔지만, 흑주의 독은 특별함이 있었다.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리던 두야랑이 말한다.

“미쳤어. 이걸 숙성하고 배합하면…….”

“독은 줄 수 있다.”

“뭐? 정말?”

“그 대신.”

두야랑이 침을 꿀꺽 삼킨다.

대체 무엇을 요구할까? 만독신공을 익힌 그녀에게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협적인 독이다. 독을 다루는 문파라면 기를 쓰고 확보해야 할 신물(神物)이나 다름없었다.

“만뇌문이 위험할 때, 만독문이 한번 도와줬으면 좋겠군.”

이건 두야랑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소문주이긴 하지만, 만독문 전체를 움직일 힘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독수마제의 힘이었다.

“응! 알겠어! 무조건 도와줄게. 당장 아빠한테 서신을 보낼게!”

두야랑이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도 맛을 봐야 하니까 땅에 떨어진 건 일단 병에 담아도 되지?”

독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 * *

북해빙궁 소궁주 한도린.

그녀는 몰래 만무지회에 신분을 숨기고 참가했다. 북해빙궁 출신이라는 걸 들킨다면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사실 끝까지 숨기려 했었지만, 첫 번째 예선을 치르고 황극린이 찾아왔다. 뭐,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으니 알아볼 것을 예상해 당황하진 않았다.

그녀는 황극린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북해빙궁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을 테니 참가하게 해 달라고.

그녀가 딱히 만무지회의 우승 상품을 노리는 건 아니다. 빙궁에는 수많은 영약이 있었으니까. 거기다 우승을 차지하라는 궁주의 명령이 있었다.

한도린은 황극린과의 만남을 상기했다.

‘한계를 측정할 수 없는 자.’

그녀 또한 북해빙궁주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구파일련이나 사흑련의 후계자 중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재능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그러한 수준을 뛰어넘었다.

정말 그가 북해의 저주를 풀 수 있을까?

빙백마후의 말은 절대적이다. 하나, 역대 빙궁주들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풀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

처음 황극린의 얼굴을 마주했던 순간.

한도린은 당황했었다.

홀릴 정도로 잘생긴 외모 때문이 아니다. 북해빙궁에서도 흔하지는 않았지만,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여인들이 많았다. 평균적으로 미모가 뛰어난 북해였기에 황극린의 외모는 그리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단지.

‘닮았어.’

한도린은 그와 자신의 얼굴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도린보다 부궁주 한소연을 닮았다.

닮은 사람이야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황극린은 한빙백골소혼장에도 끄떡하지 않았었다. 인간의 혼마저 얼려 버린다는 그 절기에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최소한 인상을 찌푸리기라도 했으면 의심하지 않았을 터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한도린이 인상을 찌푸린다. 머릿속에 하나의 가설이 그려진다. 어쩌면 그는 북해빙궁이 낳은 최초의 ‘남자’가 아닐까? 그렇게 살아남았기에 태극의 기운을 품고 있지 않을까?

시기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부궁주는 궁주의 자리를 물려받기 싫어 몇 년 동안 중원에 도망친 적이 있었다. 거의 다 죽어 갈 때 다시 북해로 돌아왔었지만 말이다.

만약 황극린이 정말 부궁주의 아들이라면…….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더 지켜봐야겠어.’

언젠가 기회는 올 것이다.

* * *

예선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무인 다섯을 꼽자면.

소림사의 천학(天鶴)과 천허(天虛), 종남파의 위무근, 일인전승의 옥향선녀, 단목세가의 단목기를 꼽을 수 있다.

소림의 제자가 둘이나 된다.

칠룡오봉 중 한 명인 천덕이 참가하지 못하니 천학과 천허를 보냈다. 천덕보다 부족하지만 그들 또한 소림의 절기를 이어받은 고수였다. 그리고 종남파의 위무근은 최근 대제자의 신분을 이어받았다.

위무근과 함께 온 종남검호(終南劍豪) 고문종 장로가 본선 대진을 확인한다.

꼴에 참가자 수가 많다고 본선은 32강부터 시작이다.

거기에 소림사에서 온 스님들은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참가자의 수는 많았지만, 용봉지회보단 확실히 수준이 낮다. 그렇기에…….

“무근아.”

“예, 장로님.”

“대진이 나쁘지 않구나.”

첫 상대가 무려 만뇌문의 문도였다.

종남파는 만뇌문에게 당했던 수치를 기억하고 있다. 청명쾌검과 종주일검. 두 사람 다 황극린에게 망신을 당했다. 무림에서 은원은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 물론, 비무대회에서 그들을 이긴다고 은원을 완전히 해소하는 건 아니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만뇌문이 거금을 들여 개최한 비무대회에서 종남이 우승한다?

중원에서의 평이 달라질 것이다. 만뇌문에서 아마 꽤 준비했을 텐데, 영약을 종남에게 홀라당 뺏긴다면?

“백온후.”

자신이 상대해야 할 무인의 이름을 기억한다.

위무근은 종남의 명예를 위해, 만뇌문에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갈며 수련해 왔다.

“본선 첫날에 종남의 위대함을 알릴 수 있겠군요.”

“만뇌문의 명성이 헛되었다는 것도 강호에 퍼지겠지.”

두 사람은 패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만뇌문의 문도들에 대하여 조사했다. 꽤 재능이 있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무공에 입문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고 했다. 위무근은 6살 때부터 무공을 익혔으며, 종남의 절학을 이어받았다.

그는 차기 칠룡오봉 중 한 명으로 언급되는 무인이었다.

“승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예, 장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진을 짠 것은 만뇌문이다.

아마 위무근의 상대인 백온후는 만뇌문의 문도 중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리라. 그를 꺾는다면 만뇌문이 개최한 만무지회는 실패다. 용봉지회에서도 개최한 문파가 대개 우승자를 배출한다. 하물며 중소문파가 연 비무대회는 어떠하리?

주제도 모르고 규모를 키운 게 잘못이다.

“아둔하구나. 칠룡오봉이 참가하지 못한다고 하여 문도들이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중원을 만만히 보았다니.”

“황극린은 무공은 강하지만… 계책에 능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

두 사람이 대진표에서 눈을 떼고 숙소로 발을 옮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남은 기간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 * *

옥향선녀의 비무는 싱겁게 끝이 났다.

그녀의 상대는 운이 좋게 예선을 통과한 중소문파 출신의 무인이었다. 예선에서 유망한 다른 후기지수를 만났다면 탈락이 확실했겠지. 싱거운 전투에 관객들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일각 정도가 지나자 다시금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두 번째 대결이 펼쳐진다.

무려 만무지회를 개최한 만뇌문의 문도와 종남의 대제자가 맞붙는다.

“미쳤군!”

“대진을 만뇌문이 짰다고 하던데, 벌써 우승 후보와 맞붙는다니?”

“만뇌문도들이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욕했는데, 그래도 양심은 있군!”

대부분 다음 비무를 기대하며 흥분해 있었지만, 일각에선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흥, 던져 주기 식이겠지. 제대로 된 놈이 아닐 게 분명해!”

“여론을 잠재우려는 수법이지. 당연한 걸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가 부럽군. 그러한 무지가 있었다면 나도 비무를 기대했을 터인데, 쯔읏.”

이딴 비무를 기대하는 무지몽매한 관중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생각보다 그런 이들이 많았지만, 심판이 비무장 중심에 서자 함성에 모두 묻히고 만다.

“만뇌문의 백온후와 종남파의 위무근이 맞붙겠습니다.”

공정성을 이유로 심판은 청성의 장로가 맡아 주었다.

“먼저 종남파의 위무근!”

위무근이 등장하자 관중석에 거친 함성이 울려 퍼진다. 압박감이 상당할 텐데도 위무근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비무장에 당당히 섰다. 그리고 사방에 포권지례로 예를 표하며 인사했다.

“멋지다!”

“예의가 있구나!”

함성 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심판이 만뇌문도의 이름을 외친다.

“만뇌문의 백온후!”

“와아아아아아……!”

거센 함성이.

“…어?”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뭐야?”

“어린애잖아?”

백온후는 형 백건악과는 다르게 키가 작았다. 묘연골을 타고났음에도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기에 그런 거다. 물론 황극린의 도움으로 병세는 완벽히 치료됐지만… 키는 많이 자라지 못했다.

거기다 백온후는 사실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최근엔 사형제들과 밝게 대화하곤 했지만, 그건 익숙한 사람들이라서다. 생판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허리를 펼 수 있는 성정은 아니었다. 거기다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당당할 수는 없었다.

“와, 자네의 예상이 맞았군! 그냥 버리는 패였잖아!”

“만뇌문이 생각이 있으면 우승 후보와 첫 경기부터 맞붙겠나? 그냥 던져 준 거지!”

“역시 조작된 비무대회로군.”

일각에 불과하던 조롱이 점차 퍼져 나간다.

그러자 백온후의 어깨가 더 움츠러든다.

‘힉, 무서워…….’

흉흉한 타인의 시선.

과거 형과 자신을 괴롭혔던 뒷골목의 무지막지했던 흑도 놈들이 떠오른다.

슬그머니 귀빈석을 바라보니 황극린을 위시한 만뇌문도들이 백온후를 응시하고 있었다.

‘야, 약한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돼!’

그렇게 다짐하고 스스로 뺨을 후려친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저런 어린애를 본선에 내보내면 어쩌자는 거지?”

“만뇌문에 인재가 그리도 없나! 비겁하다!”

위무근도 그러한 의견에 동의했다.

‘일격에 끝내야겠군.’

그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을 거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인사한다. 심판이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

위무근은 뒷짐을 지고 말한다.

“선공을 양보하마.”

“네? 선공을요……?”

“그래.”

역시 종남파!

그런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 그래도 되나요?”

“후우우… 그래. 한 초식 정도는 제대로 펼칠 수 있게 해 주마. 반격하지 않을 터이니 한번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보아라.”

무조건 압도적으로 꺾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만뇌문도를 배려하면 오히려 종남의 명성이 올라간다.

귀빈석에서 종남검호가 미소를 머금었다.

‘대제자다운 판단이다. 장하다.’

우물쭈물.

백온후가 상체를 낮춘다. 겁을 잔뜩 먹어 웅크린 것 같았다.

“저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제대로 준비하셔야 해요……?”

위무근은 백온후의 말에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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