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01화 (201/316)

201화 흔한 진상

황악반점.

여러 이유로 만들어진 반점은 만약 반응이 좋다면 중원 전역에 지점을 세울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황악반점의 앞에는 대기 손님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다. 그것만 보더라도 반응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저긴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은 건가?”

“자네 몰랐나? 최근 중강현에서 가장 유명한 반점이라네. 채소볶음도 깔끔하게 잘 나오는데… 진짜는 잘 구운 고기지. 거기에 발린 양념이 진짜라네.”

“자네는 먹어 보았나?”

“당연하지. 반점이 처음 열린 날 바로 가서 먹었지.”

킁킁.

황악반점의 앞에서 손님들은 끈질기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강현에도 유명한 반점이나 객잔은 꽤 많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몰린 것은 처음 본다. 아마 만뇌문에서 만든 반점이라는 소문이 돈 이후에 더 사람이 몰리는 듯했다. 만무지회 덕분에 중원 각지의 사람들이 중강현에 몰렸으니 더 그러리라.

“으음, 만무지회 예선이 시작되면 더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은데…….”

“그럼 기다려 보세. 그리 비싸지도 않다네.”

“그래?”

두 사내가 줄에 합류한다.

분명 식사를 마친 이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렇게 정당하게 줄을 서는 이들도 많았지만, 세상에는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도 존재했다.

“허어, 줄이 참 길구나.”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20대 중후반의 사내가 입을 여니 그의 일행이 맞장구를 친다. 다섯 명의 일행은 딱 보아도 고급스러운 의복을 걸치고 있었으며, 허리춤에 검을 찬 사람도 있었다. 세 명의 사내와 두 명의 여인. 그중 뾰족한 눈매를 가진 여인이 말한다.

“정말 여기서 식사하실 건가요?”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목소리엔 은은한 짜증이 실려 있었다.

그러자 가장 처음 운을 뗀 사내가 혀를 차며 말한다.

“상관 소저,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상관이라는 말이 나오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의 시선이 조금씩 사라진다. 줄도 서지 않고 바로 입구로 들어갈 것만 같은 일행을 쏘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인이 상관세가라는 걸 알게 되니 함부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일행 모두가 무림인처럼 보이는데 시비가 붙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화려한 비단옷의 사내가 황악반점의 입구로 향한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점소이가 손님을 맞이하고 안내하며 음식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나이도 어리니까 다루기가 쉬워 보인다.

부채를 펼친 사내가 헛기침을 한다.

“크음.”

워낙 손님이 몰려 바쁜 점소이였지만, 빠르게 사내의 일행을 훑는다. 무림인이다. 사실 황악반점의 손님이 워낙 많다 보니, 개점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온갖 부류의 진상들이 몰린다. 대부분 자기네들 동네에선 힘깨나 쓰는 무림인이 대부분이다.

어린 점소이였지만,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손님, 죄송하지만 줄을 서 주셔야 합니다.”

사내는 그런 점소이의 말에 딱히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여기서 분노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미안하군. 우리는 만무지회의 참가자들인데 말일세.”

그렇게 말하며 점소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은자 다섯 냥을 쥐여 주었다. 뒤쪽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보지 못하는 아주 교묘한 손재주였다.

“시간이 없으니 부탁하지. 방금 빈자리가 생긴 것 같은데, 거기로 부탁하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반점에서 일하는 어린 점소이에게 은자 다섯 냥은 매우 큰 돈이다.

하지만 점소이의 반응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애초에 이렇게 길에 늘어선 객잔이나 반점은 잘 없었지만, 보통 이런 일이 있을 때 돈을 쥐여 주면 금방 해결되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돈을 주셔도 제가 임의로 순서를 바꿀…….”

“다섯 냥을 더 주지.”

점소이의 눈동자에 잠시 욕망이 번뜩였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살짝 휘젓고는 다시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금자 한 냥을 주지.”

“그, 그래도… 안 됩니다.”

태평함을 유지했던 사내였지만, 거듭된 거절에 눈썹이 움찔했다.

“난 사마세가의 사마광도라고 하네. 춘풍명검(春風明劍)이라고도 불리고 있지.”

“사, 사마세가……!”

무림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점소이가 생각하기에도 꽤 거물이었다.

그리고 사마세가는…….

“뒤의 친우들도 나 못지않게 명성이 자자한 이들이야. 우리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반점은 더 유명해질 거라네. 감당하기 힘들다면 책임자를 불러와 주게. 대신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이제는 거절하지 않을 거다.

고작해야 반점의 점소이가 아닌가?

“저… 그래도 규칙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

점소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한다. 왜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린 점소이는 배운 대로 행동하려 했을 뿐이다.

“우리가 규칙도 지키지 않는 무뢰배로 보인다는 건가? 날 모욕하는군.”

사마광도가 논점을 바꾸어 버린다.

무림인은 눈만 마주치고도 검을 뽑기도 한다.

“모욕이 아니라…….”

사내가 점소이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갔다.

귀에다 대고 누구도 들을 수 없게 스산한 목소리로 말한다.

“황악반점이 만뇌문이 관리하는 반점이라 그렇게 뻣뻣하게 나오는 거냐? 네까짓 점소이가 팔 병신이 된다고 만뇌문에서 신경이나 써 줄 것 같으냐? 오히려 만뇌문은 사마세가의 편을 들지 않을까?”

사마광도는 그래도 무림의 경험이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만뇌문의 현 상황이 무림에서 그리 좋진 않다는 걸 말이다. 듣자 하니 조만간 무림맹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도 했다. 아무리 황실의 밑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중원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문파들과 최대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처신하리라는 판단이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고작해야 반점에서 일하는 점소이를 신경 쓰는 문파가 어딨겠나. 일이 커진다고 해도 점소이가 하는 말을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점소이 일을 하는 걸 보면 그 부모가 어떠한 몰골을 하고 있을지 생생히 그려진다.

잘게 입술을 떠는 점소이와 살짝 멀어진 사마광도.

그가 거리를 벌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자네가 이해했다고 생각하겠네.”

“사마광도.”

“……?”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였다. 사마광도가 고개를 돌린다. 입구에서는 그와 닮았지만 키가 더 크고 더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냉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 너는… 명 형?”

반말과 존대가 섞인 목소리.

말의 끝부분에는 어딘가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잠시만, 정말 명 형입니까? 거의 10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

사마광도가 사마명의 허리춤을 바라본다.

검이나 도 따위의 병장기는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소문을 들었을 땐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사마광도도 그리 무재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사마명과 비교하면 월등한 실력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사마세가의 본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사마광도였다.

사마명은 사마세가의 방계일 뿐이며, 그것뿐 아니라 가문에서 퇴출당한 놈이었다. 존대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마광도는 스스로의 인품이 빛이 난다고 여겼다. 그의 입가에 흐뭇함이 녹아 있다.

“어딜 갔나 했더니 중강현에 와 있었습니까? 허허, 이것 참 우연이로군요.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정말…….”

“초, 총관님!”

은근히 겁에 질린 점소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마광도가 머리를 굴린다.

‘아하, 이놈이 반점 따위에서 총관직을 맡고 있었구나. 어쩐지 최근에 소문이 들려오지 않는다 했더니!’

꽤 오래전 사마광도는 사마명에 대하여 형제자매들끼리 이야기 나눴던 적이 있었다. 대공자를 위시한 형님과 누님들은 놈이 사마세가에 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고, 사마광도는 그딴 놈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었다.

당시에 사마광도는 꾸지람을 들었었다.

무림에서는 그 누구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무림의 고수가 아이가 쥔 식칼에 당할 수도 있다고 했던가?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사마명이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게 있다.

사마광도는 그때 그가 말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형님께서 총관직을 하고 계셨는지 몰랐습니다. 무공을 수련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역시 무공을 익힌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하하!”

“뭐야? 아는 분이신가?”

“우리도 소개해 주게.”

“아, 이분은… 명 형이라고 하네. 옛날에 우리 가문과 연이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보았었지. 이곳의 총관을 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네.”

사마명이라는 이름 대신 명이라고만 언급하고 있었다.

사마광도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명 형, 상관세가의 상관려 소저입니다. 그리고 옆에는 위지세가의…….”

그의 일행은 전부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가문 출신이다.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가문을 이어받을 후계자는 아니었지만, 고작 반점의 총관이나 하는 사마명이 보기엔 얼굴을 트는 것만 하더라도 감지덕지할 수준이리라.

‘굳이 이딴 점소이를 겁주지 않아도 괜찮겠군.’

사마명을 구슬리면 줄 따위는 서지 않아도 될 터.

반점 따위의 총관이지만 그 정도 힘은 있을 게 아닌가?

- 명 형, 자리 좀 부탁합니다.

눈을 찡긋하며 전음을 보내는 사마광도.

사마명은 그의 전음을 깨끗이 무시하고, 어린 점소이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이더냐? 사마광도가 행패를 부린 건가?”

“행패라고? 명 형,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본다.

일행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반점의 총관 따위에게 무시당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저기 계신 소협께서 돈을 줄 터이니 바로 자리를 내어 달라고 하셔서…….”

“협박했나?”

“그, 그게…….”

점소이는 사마광도의 얼굴을 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이제껏 많은 진상을 상대했지만, 사마세가나 상관세가와 같은 명문가의 진상은 처음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가 보여 줬던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사마명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사마광도, 여기서 보천이에게 사과하고 줄을 서고 기다린다면 더 책임을 묻진 않으마.”

사마명으로선 최대한 참은 거다.

마음 같아서는 신랄하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고 싶기도 하다. 사마세가가 그의 어머니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는다. 하지만 만뇌문과 황악반점의 명예를 위해 참는다.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굳이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악연으로 만뇌문에 짐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마명의 태도가 사마광도의 심기를 건드렸다. 형이라고 불러 주었는데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입을 놀리고 있다. 주제를 알지 못하는 게 몹시 거슬린다.

“사과? 내가 사과할 일이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하라는 거지?”

사마광도의 태도가 바뀐다.

뻣뻣하게 세운 목. 상대를 얕잡아 보는 눈동자.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했다. 정말 그가 협박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언제나 진실은 강자가 만드는 법이었으니까.

“그러게요. 아무리 ‘총관님’이라도 말이 심하신 것 같군요.”

상관려가 사마광도의 편을 든다.

그녀도 어떤 상황인지 알았다. 그리고 명이라 불리는 사내가 고작해야 반점의 총관인 것도 알아차렸다. 상관려까지 그렇게 나오자 신창양가의 양묘승과 단리세가의 단리총운까지 나선다.

“사과는 총관님이 하셔야 할 것 같소만.”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지.”

사마명이 잠시 입을 다문다.

그러자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더욱 기세가 오른 사마광도가 말한다.

“명 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협박이니 뭐니 했던 것에 제대로 사과한다면… 넘어가 주도록 하지. 하나, 허튼소리를 내뱉은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오.”

명분이다.

이제 그들은 총관의 실수로 인하여 황악반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서 식사할 권리까지 챙길 수 있었다. 사마명의 자격지심으로 상황이 술술 풀리고 있다.

“어떻게 모욕의 대가를 치를 셈이오?”

“왜 말이 없으시오?”

“침묵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진 않아요.”

소위 명문가 자제들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장로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마명이 입구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장로라고?

일행이 의아한 눈으로 입구를 바라본다. 그곳엔 치렁치렁한 머리를 기른 사내가 무심한 자세로 서 있었다.

“딸꾹!”

그리고 사마광도의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단리총운이 딸꾹질을 한다.

‘저, 저, 저놈은!’

단리총운.

그는 오래전 황극린과 부딪친 적이 있었다. 절강성 항주. 당시 피로한 몸을 회복하고자 유명한 의원 중 하나인 백초의은이 운영하는 천목의방에서 새치기를 하려다가 된통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황극린에게 뺨을 맞아 빠진 이가 아직도 휑하니 비어 있었다.

‘제기랄!’

단리총운은 그때 이후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무력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지금도 작은 권력에 취해 약자를 핍박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성정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강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의방에서 만났던 황극린과 현 무림에서 이름을 알린 황극린은 전혀 다르다. 뭐, 의방에서도 일방적으로 맞았던 기억뿐이었지만 말이다.

‘씨벌! 잘못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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