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돈이 된다
만무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에 중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만뇌문도들의 실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많은 문파의 정보원들도 중강현으로 발을 옮겼다. 또 만뇌문이 내건 영약과 상금을 욕심내는 후기지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외에도 문파들의 무공을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중원 각지에서 구경꾼들이 몰리고 있다.
사천성 중강현은 그리 관광하는 이들이 몰리는 현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호황으로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루에 은자 한 냥.”
“진짜 더럽게 비싸군. 갑시다. 다른 곳 찾아가면 되는 거지.”
“음, 아마 다른 곳에 가도 자리는 없을 것이오.”
객잔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손님을 떠나보낸다.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한철 장사란 이렇게 해야 한다. 평소 방의 8할을 놀리던 객잔주였지만, 어차피 손님은 끊임없이 온다. 지금도 새로운 손님이 다섯 명이나 나타났다.
하나, 이제는 객잔주도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복장과 생김새로 상대를 유추할 수 있는 문파는 중원에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특징을 부각하는 문파는 많았지만, 한낱 객잔주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문파가 특별하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어, 어서 오십시오……!”
중원에서도 평이 좋고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그들에게 은자 한 냥을 그대로 받아도 될까? 그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객잔주의 표정이었지만, 이미 가격을 알고 있던 것인지 한 대머리 사내가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행낭을 건넸다. 그 무게를 절감한 객잔주가 손을 벌벌 떤다.
“만무지회가 끝나기 전까지 머물고 싶습니다.”
“아… 옙! 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잔뜩 내뿜으며 나타난 무인들은 바로 소림사의 무승들이었다. 소림사와 만뇌문은 현재 무림맹과 용성이라는 소속 때문에 제대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 최근엔 소림사의 방장이 파천뇌권 황극린에게 패배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무지회에 소림사의 제자들이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일개 객잔주라 할지라도 알 수 있었다.
‘만뇌문이 개최한 비무대회에서… 소림사가 우승을 차지한다면?’
만뇌문은 다른 대문파들의 견제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칠룡오봉에 오른 이들의 참가를 막았다. 물론, 그렇다고 할지라도 무림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었다. 만뇌문의 문도들과는 달리 다섯 살 때부터 무공을 익히고, 명문거파의 체계적인 수련을 받아 온 인재들이 대부분이다.
‘뭐,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소림사의 제자들이 객잔에 들어온 것을 보았는지 갑자기 손님이 물밀 듯이 몰려온다. 대부분 무인이다. 소림과 연을 맺을 수 있다면 은자 한 냥을 지불할 용의가 넘치는 후기지수들.
“이보시오, 주인장! 방 하나 내주시오.”
다섯 명의 사내가 허겁지겁 객잔으로 들어와 외친다.
“남자 다섯 명이서 방 하나만 쓴다는 말이오?”
“그게 당신한테 뭔 상관이오?”
시비가 붙으려는 때.
“우린 각 방을 쓰겠소.”
세 명의 무인이 세 개의 방을 요구한다. 어차피 경쟁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하루 객잔에서 머무는 것만 해도 은자 석 냥이다. 소림사와 같은 명문거파면 모를까 이런 소비는 보통의 후기지수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거기다 객잔은 긍정적으로 봐 주려고 해도 그리 좋은 수준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객잔주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각 방을 쓰겠다는 무인들에게 방을 내어 주려는 때.
“은자 두 냥!”
“……!”
이제는 방의 가격을 올려 버리는 이들도 나타났다.
‘아무래도 좋지. 소림이나 뭐나 알게 뭐냐. 돈만 많이 벌면 된다!’
신이 난 객잔주는 가만히 있으면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 * *
중강현 중심부.
과거 동가장(董家莊)이라는 무가가 사용하던 장원이었지만, 현재는 주인이 없다고 알려진 장원. 매일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이 열린다.
머리에 영웅건을 두른 구릿빛 근육질 사내가 글자가 각인된 커다란 나무 명패를 꺼내 와 입구에 툭 놓아 둔다. 몇몇 이들이 궁금증에 다가와 나무에 각인된 글을 읽는다.
“음?”
“객잔이라고? 장원인데?”
보통 객잔이라 함은 적당한 면적에서 최대한 높게 쌓아 올린 건물을 말한다. 최대한의 이율을 뽑아내고자 하는 게 일반적인 객잔이었으니까. 분명 장원의 형태로 객잔을 운영하는 이들이 중원에 없지는 않았지만, 중강현에선 거의 없던 일이었다.
가격.
“은자 두 냥? 비싸구나.”
한 중년인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구경꾼들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룻밤 머무는 데 은자 두 냥이라면 열흘이면 금자 하나를 지불하는 셈이 된다. 절대로 싸다고 할 수 없다. 흘끔 장원 내부를 둘러보면 관리가 꽤 잘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비싼 건 비싼 거다. 중년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니, 옆에 있던 여인이 비웃음을 흘린다.
“어머, 이게 비싸다고요? 객잔에 안 가 보셨나 보네. 요즘 다 쓰러져 가는 객잔들도 은자 한 냥을 받고 있던데요. 심지어는 하루에 은자 다섯 냥을 받겠다는 고급 객잔도 있는데 잘 모르셨구나.”
“말도 안…….”
여인이 자신에게 한 말인 것을 깨달은 중년인이 발끈하려는 순간이었다.
“맞아요. 요즘 아무 객잔이나 엄청 가격을 높이더라고요. 이 정도 규모의 장원이면 연무장도 갖춰 놓았을 테고…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후기지수들이 머물 수준으로 괜찮은 것 같은데요?”
“이 정도면 정말 싼 거지! 요즘 중강현 객잔주들이 다들 미쳐서는!”
“…….”
중년인은 여인들의 수다에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뒤로 빠진다.
그리고.
얼마나 소문이 빠른지 후기지수 열 명이 후다닥 뛰어왔다. 행색이 그리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 아마 머물 객잔을 찾다가 고생깨나 한 모양이다.
“저… 주인장이십니까?”
“주인은 아닙니다만, 장원에 용무가 있으시면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구릿빛 근육질을 드러낸 사내. 무림인들이라도 그의 외관을 보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열 명이서… 방 하나를 써도… 될는지…….”
대표로 한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이어 나간다.
무림인이라도 모두 돈이 많은 건 아니다. 거기다 이들은 후기지수들. 아직 수련하는 단계에 머문 이들이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의 말에 작은 움직임에도 근육이 꿈틀하는 사내가 싱긋 미소를 머금는다.
“혹, 만무지회에 참가하십니까?”
“예? 아, 예… 예선을 신청하긴 했습니다만…….”
“그럼 탈락하기 전까지는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예?”
장원 내에서 또 다른 사내가 나무 명판을 가지고 나온다.
만무지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장원에서 무료로 머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이곳은 만뇌문을 후원하는 ‘거상련(車商聯)’이 매입한 장원입니다. 당연히 만뇌문이 개최한 비무대회에 참가하시는 분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후기지수들은 작은 객잔방이 아니라 무림인들을 위해 준비된 연무장이 갖춰진 장원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선에서 탈락하게 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없겠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안 그래도 객잔주들의 담합에 만무지회의 참가자들이 머물 곳이 없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그리고 그러한 장원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곳이라는 소문도 마찬가지였다.
* * *
“다섯 개의 장원이 모두 만석입니다.”
사마명.
만뇌문의 총관직을 맡고 있으면서 대외적인 만뇌문의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처음엔 물류의 흐름을 관리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직접 손을 써 사업을 유치할 발언도 가지고 있었다.
사마명은 처음 만뇌문에 들어왔을 때, 자신만의 목표가 있었다.
언젠가 만뇌문에 봉사하다 보면 사마세가에 복수할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세속적인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마명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대장장이뿐 아니라 그의 도제들까지 무공을 익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였던가? 황극린이 문도들에게 아끼지 않고 영약을 내어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재가 그리 뛰어나지 않은 사마명에게도 가끔 가르침을 내려 주었기 때문일까?
솔직히 사마명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만뇌문에 이렇게 녹아들 것이라곤 처음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그는 자신의 재능을 모두 만뇌문의 자산을 부풀리는 데 이용하고 있었다.
“만무지회 참가자들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
“거의 팔 할이 만무지회 참가자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압도적인 이익이었다. 나머지 삼 할에게 은자 두 냥씩 받고 있으니 장원의 유지비로는 차고 넘친다. 물론, 만무지회가 끝나면 그 수익은 줄어들게 될 터였지만… 그건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계획대로 매년 만무지회를 개최한다고 한다면 객잔 사업으로만 몇 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겁니다.”
만무지회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사마명은 중원의 반응이 뜨겁다는 걸 깨달은 즉시 황극린에게 보고를 올렸다. 장원을 매입하여 객잔처럼 이용하자는 사마명의 제안. 황극린은 계획을 추진하라 했다.
뭐, 혈금유나 내상약을 통하여 압도적인 이익을 내는 만뇌문이니 사실 객잔 사업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개방도들에게 의뢰하여 알아본 결과 저잣거리에서 만뇌문을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의 발언이 최소 삼 할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시작이 나쁘진 않군.”
문파의 힘은 무공에서 나온다.
그건 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황극린과 사마명은 만뇌문의 평판도 내팽개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소림사가 왜 찬양받는가?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도 있었지만, 중원에서 그들이 행한 선행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무림인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각인되었다.
사마명은 만뇌문의 평판을 끌어올릴 계획을 세웠다.
그 누구도 만뇌문을 의심할 수 없도록.
아무리 만뇌문이 정파의 문파가 아니라고 하지만, 굳이 사파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모르긴 몰라도.
‘이대로 만뇌문의 평판이 높아진다면… 필히 황실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마명은 만뇌문을 최고의 문파로 만들고 싶었다.
그 또한 어느 순간부터 진정한 만뇌문도가 되었다. 거상련이라는 다른 사업체를 만들었지만, 그 뒤에 만뇌문이 있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양념을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사마명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가 만든 양념을 맛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혈금유나 내상약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될 것이라고.
단순히 양념장을 파는 것보다.
사마명은 이 양념장을 이용한 ‘반점’을 중원 곳곳에 세울 계획을 세웠다.
중강현의 최중심부에 위치한 ‘황악’반점.
“점심과 저녁이 아닌데도 줄이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가격을 꽤 비싸게 책정했는데도 이 정도 인기라면… 분명 다른 성에서도 통할 것입니다.”
황악반점의 요리는 간단하기 그지없다.
잘 구워진 고기에 특제 양념. 그리고 채소볶음. 그것만으로도 중강현의 반응은 뜨거웠다. 뇌불의 이름이 긍정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헤쳐 가야 할 난관은 많았지만.
“다행이군.”
사실 양념장보다 중요한 게 황극린의 세심한 온도 조절이었다. 겉은 노릇하게, 속은 촉촉하게. 오랜 경험으로 어떻게 해야 고기가 더 맛있어지는지 연구했던 황극린이다. 살수 생활을 이어 가던 중 유일한 취미가 그것이었으니까. 거기다 ‘뇌전’을 이용하여 굽고 양념장을 바르면 완벽한 요리가 탄생한다.
반점에서는 황극린이 직접 만든 것과 비교하면 꽤 모자랐지만, 그래도 인기가 많았다. 양념 자체가 맛있었으니까.
“양념도 만들 겸 시찰이나 가 보도록 하지.”
“예. 준비하겠습니다.”
양념의 재료를 알고 있는 건 황극린과 사마명 그리고 뇌불뿐이다.
황악반점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부터 반점의 총책임자는 문주인 뇌불이었지만, 현재 뇌불은 만무지회의 대비로 문도들에게 ‘특별 훈련’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바빴다. 황극린은 장로라고 하여 가만히 손짓으로 지휘만 할 생각은 없었다.
황극린과 사마명이 지금도 줄이 끊이질 않는다는 황악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