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선택의 시작
경지에 이른 무인에게 통하는 독(毒).
하나, 그러한 독은 상대가 경계하게끔 만든다. 경계하는 순간, 독이라는 것은 오히려 상대에겐 계기가 된다는 말이었다. 진짜 상대를 중독시키고 싶다면 독이라는 것을 모르게 한 채로, 마치 그것이 약(藥)이라도 되는 듯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독은 진정한 의미로 독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비단 실존하는 독만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수의 살행 방식은 모두가 그러하다. 일상 속에 녹아들어, 그것이 독인지 약인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한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완벽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양념과 뇌전으로 구운 고기는 분명히 통하고 있었다.
“이건…….”
평소 놀라움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내.
천화련의 대공자였으며, 후기지수 중에서 최강이라 불렸던 이가 고기를 한입 먹고 감탄한다. 평범한 인간들이 먹는 음식에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얼마 만일까? 아니, 그가 음식을 먹고 감탄한 적이 있었던가?
뭐,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득한 피만이 자신의 양식이라 알고 있던 대공자 계빈조차도 누군가의 고기구이를 먹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쌍둥이 동생인 계지향이 식사 시간을 지키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런 색다른 맛을 즐기기 위해 시간을 맞추어 객잔의 1층으로 내려갔던 거다.
계지향은 그런 계빈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오라버니는 만족을 모르는 사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점소이의 이 음식은 무언가 다르다. 천화련의 숙수들이 만드는 호화로운 식단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외면은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맛은 천화련의 대단한 숙수들도 만들어 내지 못한 맛이다.
말하자면…….
‘솔직히,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군.’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고 하던가.
이것을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쌍둥이 남매는 멈추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대수란 말인가? 그들은 난생처음 즐겨 보는 맛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독에도 당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취하는 게 독이었다면, 단전에 깃든 그 ‘기운’이 반응했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계빈이 점소이를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 강렬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자네는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중원에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이로군.”
“정제한 소금을 넣었습니다.”
“정제한 소금?”
“예.”
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천화련의 대공자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알 순 없었다. 중원을 넘어가면 더 거대한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눈앞의 점소이가 그런 세상을 경햄해 봤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소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계빈이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는 자네 분야의 천재로군.”
모든 분야에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구축한 명장과 장인들이 있었다. 점소이의 나이는 어렸지만, 그만의 방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 점소이는 가장 유명한 숙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조금 아쉬웠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다른 능력의 끝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힘에 빌붙는 방법뿐이다.
“내 동생의 제안을 거절했다지.”
“예, 저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런 맛이 세상에 퍼져 나간다면 자네는 무사할 수 없을 걸세. 노리는 사람들은 늘어나겠지. 자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방문할 것이야.”
“괜찮습니다.”
대공자 계빈은 잠시 고민했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었지만, 슬슬 밝혀도 될 것 같았다. 그는 신분으로 사람을 누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이 신분보다 훨씬 대단하다 여기는 사내였으니까.
하지만 그 배경을 하찮게 여기진 않았다.
천화련이 만든 중원의 역사는 백성들 또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난 천화련의 대공자다.”
“……!”
점소이의 놀란 얼굴.
계빈은 딱히 그런 얼굴을 보면서 쾌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나를 따라오게. 자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주도록 하지.”
“그건…….”
“자네는 점소이가 아니지 않은가? 아마 자네가 객잔주겠지.”
“…….”
사업을 꾸리는 객잔주가 있다면 이러한 인재를 두고 이런 한적한 장소에 객잔을 열진 않았을 것이다. 현의 중심가만 가더라도 그의 요리는 유명해질 수 있다.
“내가 자네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네. 그렇다고 자유를 속박하진 않겠네. 자네는 그냥 이대로 뜻을 펼치면 된다네.”
계빈의 배려는 그에게 딱히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특정 분야의 장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빛도 보지 못하고 스러진다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내겐 시간이 많으니.”
“…예, 고민해 보겠습니다.”
“대신, 요리를 더 내주지 않겠나? 오랜만에 요리다운 요리를 먹으니 배가 고프군.”
이미 쌍둥이 남매의 그릇은 비어 있었다.
계지향은 계빈의 행동에 약간 놀랐다. 그는 미식 따위는 취향이 없었다. 아니, 맛 따위를 즐기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점소이의 음식은 대공자 계빈에게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깃들도록 했다.
“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해 드리겠습니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점소이가 황급히 주방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몸을 돌렸다고 하여 표면에 떠오른 미소가 사라지진 않았다.
‘운이 좋군.’
점소이는 이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음식이 맛있어 봤자 저들이 여기서 오래도록 묵을까? 천화련의 대공자가 나선 것은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객잔 따위에서 식도락을 즐기고 있을 여유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점소이의 예상과는 달리 저들은 객잔에 더 머무는 것을 택했다.
살수는 일상 속에 녹아들어 평범함을 가장하여 상대가 가장 취약할 때를 노린다.
진정한 살수는 시간을 투자하여,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고 강맹한 적을 물리친다.
점소이는 살수였다.
아니, 살수였던 사람이었다.
황극린이 만족한 얼굴로 주방으로 향했다.
* * *
하루.
또 하루.
그리고 하루.
날이 지나갈 때마다 왜인지 계지향은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이 쏟아진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드높은 성에서 자리를 잡아 편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천화련의 대공녀는 할 일이 많았다.
이번 여정도 여러 계획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들르지 않는 객잔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평소에 떠오르던 걱정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은 점소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객잔에 머무는 건 ‘전운비’라는 이름을 가진 점소이가 만든 요리를 먹는 것과 같았다.
마치 입에 대면 몸이 안 좋아질 것 같은 맛을 가진 요리. 단순히 양념을 발라 구운 것에 불과하지만 그 요리에는 예술이 담겨 있었다.
점소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계지향은 존중할 생각이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정상에 오른 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유롭게 기다렸다.
대공자 계빈 또한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칠 주야가 흘렀을 때.
계지향은 이상함을 느꼈다.
‘내공이…….’
희미하게 내공이 자신의 의지에 반발하는 것이 느껴진다. 움직이면 세맥에서 조금씩 새어 나가는 느낌이랄까? 단전의 내공은 그것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의 의지로 뭉치고 있었다. 자연의 기운을 단전의 내공으로 변환했다고 하여 인간의 의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장기들을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단전 또한 인간의 장기들과 비슷하다.
순간 희미한 의문이 떠올랐다.
새로운 맛에 취하여, 휴식을 즐겨 왔던 계지향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 객잔엔 어떤 손님도 찾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점소이는 왜 혼자 객잔을 운영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의심할 것투성이였다.
그런데도 계지향이 객잔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맛이었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맛. 어색함을 느껴야 했지만, 그 맛에 취해 계지향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공자님.”
계지향이 대공자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는 객잔에서 가장 큰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세상을 오시하는 절대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왜인지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제야 알아챘느냐.”
대공자의 말에 계지향의 표정이 변한다.
그녀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너무 이상하다. 저러한 맛을 낼 수 있는 점소이가 왜 이런 한적한 객잔에 있는 걸까? 대체 그가 말한 ‘해야 할 일’이라는 건 무엇일까?
“그게 인연이라는 것이지.”
“인연… 이요?”
“그렇다.”
계빈은 굳이 자신의 생각을 동생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첫날부터 의심했다. 점소이의 얼굴은 왜인지 어색했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쓴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인피면구 따위를 뒤집어썼을 것이다. 경지에 오른 고수에게서 인피면구란 간단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평소의 계빈이었다면 그러한 함정은 가볍게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계속 객잔에 머무른 이유는 계지향과 같았다. 그녀처럼 새로운 맛에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다. 또한, 아버지인 천화련주의 말도 떠올랐다.
“난 무림이 좁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천화련의 배경을 떼고 중원을 주유하니 넓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구나.”
과연 누굴까.
이런 함정을 판 사내. 아마 만만치 않은 놈일 것이리라. 그렇기에 대공자는 기뻤다. 경지에 이른 이와의 대화는 분명히 잘 통할 것이다. 어쩌면 그와 친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그를 기다리는 황극린이라는 희대의 천재도 있었다.
“하단전의 반발이 느껴져요. 얼른 독기를 몰아내지 않는다면…….”
“그걸 완벽히 몰아낸다면 넌 작은 벽 하나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신에 가까운 말투.
“그러니 넌 가만히 있거라, 이 오라버니가 지켜 줄 터이니.”
계빈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애검을 챙겼다. 여유가 극에 달했다. 계지향이 인상을 찌푸린다.
“대공자님.”
“그도 오고 있구나.”
계지향은 느끼지 못했다.
누가 오고 있단 말인가?
“……!”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무언가가 벽면을 꿰뚫는다. 계지향은 비로소 하나의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꿰뚫고 죽이고자 하는 살의. 천화련에서 매번 보아 왔던 완숙에 이른 살기(殺氣)가 자신의 몸을 에워쌌다.
“대공자님, 피해야……!”
카앙!
대공자가 검을 뽑았다. 그의 검에선 그녀가 이제껏 보지 못한 거대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지독한 혈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계지향은 몽롱한 얼굴로 그의 검강(劍罡)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살수인가?”
계빈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와 마주했다.
찌릿!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
뇌리를 파고드는 벌레의 울음소리.
지독할 살의를 마주한 계빈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에게 오늘의 일은 일종의 ‘유희’에 가까웠다. 의심은 했었다.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의심을 지워 버리게 만든 맛이 그를 여기에 머물도록 만들었다. 그 또한 유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한 가지에서 절대에 이른 이가 얼마나 무료하겠는가?
오랫동안 이 객잔에 머물며 어찌나 외로웠을까?
계빈은 그의 외로움에 공감하며 어울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과 마주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계빈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살(殺).
모든 것을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범람한다. 재해(災害) 혹은 재앙(災殃)이라 불릴 한 줄기의 의지가 계빈의 몸을 강타한다.
그 순간.
계빈은 처음으로 죽음을 감지했다.
콰아아아아-!
의지를 가진 듯이 움직이는 핏빛 검강. 계빈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는 마주 오는 재앙을 검으로 막아 낸다.
쿠릉!
뇌전이 담긴 암기.
“이기어검(以氣馭劍)?”
놀란 얼굴로 중얼거리던 계빈이었지만, 완벽한 이기어검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검의 끝에는 인간의 안력으로는 분간하기 힘든 얇은 실이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 순간 암기가 궤적을 바꾼 이유는 이기어검술 때문이 아니라, 저 실이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쿠르으응!
또다시 뇌전의 격변이 들려온다. 계지향 또한 싸울 채비를 마쳤지만 계빈이 소리친다.
“넌 나서지 마라.”
계빈은 홀로 싸울 생각이었다.
그래야지만 이번 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인연은 계빈에게 소중한 것이었으니. 중원에서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
과연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핏빛으로 일렁거리는 눈동자가 계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강렬한 살기에 계빈은 처음으로 소름이 돋는다는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