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오래된 방식
천화련 대공자 납치 계획.
솔직히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천화련이 한 방 먹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흑살문의 앞잡이일지 모르는 만뇌문 또한 그 과정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었으니까. 대부분 배교가 사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교는 그 누구와도 같은 사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얼룩져 모든 문파의 힘이 떨어지는 게 배교로선 이익이었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배교의 사상을 퍼트리기가 쉬웠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배교의 부교주 육금연이 황극린과 함께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육금연은 배교의 부교주라는 직위에 올라 있으니 대단한 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경에 오른 고수의 시선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육금연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런데 황극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것도 본교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황극린은 나보고 전투에 참가하라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지켜보라고 했어.’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맛있다!’
육금연의 머릿속은 온통 식사 시간으로 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껏 꽤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녀가 즐거워하던 것은 하나였다. 배교에서 만드는 주술의 연구와 사상의 탐독. 배교는 그녀에게 단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먹는 즐거움 따위는 오래전에 버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황제의 요리라는 만한전석(滿漢全席)도 아니다. 보통 고귀한 재료를 이용한 최상품의 요리는 막대한 시간이 걸려 완성된다고 한다. 명색이 배교의 부교주였으니 육금연도 그러한 사치는 부려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고작 대충 자른 고기에 양념을 바르고 모닥불에 구운 게 이리 맛있을 수 있단 말인가?
‘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건가.’
여러 진귀한 요리를 접한 경험이 있을 때, 그녀는 언제든 그러한 요리를 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새벽에도 그녀가 원하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육금연이 통제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 보라는 듯이 육금연이 황극린을 바라본다. 그는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마차를 멈추었다.
“식사 시간이다.”
“오오!”
육금연이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달려왔다. 모닥불을 지피는 건 그녀의 몫이다. 경험이 쌓였는지 금방 불을 지펴 황극린을 바라본다. 그가 어떻게 고기를 굽는지 확실하게 배우겠다는 듯이.
하지만 그녀는 절대 황극린의 방식을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고기를 익히는 것은 모닥불의 불만이 아니었으니까.
황극린이 단전에 품은 뇌전의 기운이 고기의 내부를 익힌다. 그러면서 최대한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다.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황극린이 만든 자극적인 양념이 노릇노릇하게 직화로 익혀진다.
꿀꺽.
육금연에게 건네주자 그녀가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뇌불이 떠오른다. 그도 황극린이 구운 고기를 참으로 좋아했었다.
‘조만간 만날 거다.’
황극린이 육금연에게 말한다.
“이제부턴 객잔에서 묵을 거다.”
“냠냠, 객잔에서, 냐암, 말인가요?”
“그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육금연의 몸이 흠칫 떨린다.
“이제 그러면… 황 대협의 고기를 먹지 못하는 건가요?”
육금연의 눈이 번뜩인다.
마치 황극린을 협박하는 듯하다. 이 황홀한 맛을 자아내는 고기가 없다면 그녀는 당장이라도 떠날 마음이었다. 물론, 황극린이 그녀의 몸 곳곳에 뇌섬사를 묶어 두었기에 쉽게 도망칠 순 없었지만 말이다.
“고기는 주도록 하지.”
“아, 그래요? 그럼 가죠, 객잔으로.”
세 덩이의 고기를 더 먹은 육금연.
그녀가 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데 객잔으로 간다는 말씀은…….”
“나는 정체를 숨기고 그를 만날 거다. 우리가 그를 납치했다는 걸 드러낼 필요는 없지.”
살수의 방식이다.
살수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가령 점소이나 마굿간의 마부로 변장하여 상대의 방심을 노린다. 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목적이 살해가 아니라 납치라면…….
“넌 천화련을 꽤 잘 아는 것 같더군.”
“…전부는 모른답니다.”
“그들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말해 다오.”
“…….”
황극린이 아는 것은 천화련이 피를 취하는 무공을 익혔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아무리 황극린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방심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그게 살수의 방식이다. 최대한 상대에 대하여 많이 알아내야 한다.
육금연에게선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좋아요, 그럼…….”
황극린은 그녀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자신의 고기를 내어 주었다.
육금연은 황급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아는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감춰졌던 천화련의 비밀이 배교 부교주의 입에서 밝혀지고 있었다.
* * *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아침의 냄새는 인간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뻥 뚫린 코에 자연의 냄새가 사방에서 몰아쳐 온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내는 이런 아침의 냄새가 참 좋았다.
멀리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사내는 빗자루질을 하면서 그들을 흘끔흘끔 바라본다. 손님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내의 말에 두 남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무시하는 듯했지만, 여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품속에서 금자 한 냥이 정확히 사내의 손으로 들어갔다.
금자를 본 사내가 깜짝 놀란다.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에 있는 작은 객잔. 잠깐 배를 채우거나 목을 축이고 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금자 한 냥 정도를 내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이 작은 객잔에서 뭘 원하는 걸까?
“소, 손님, 뭐, 뭐가 필요하십니까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의 점소이.
그는 보통의 점소이들과 같은 반응을 내보였다.
“방 두 개.”
“한 달 정도 묵으시려고…….”
“하루다.”
“헙!”
점소이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금자 한 냥을 쓰면서 하루만 묵는다고?
여인과 사내는 그런 반응이 익숙했는지, 점소이를 무시하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외진 곳에 있는 객잔치고는 보기보다 깔끔했다. 창백한 인상의 사내는 방은 자기가 정하겠다는 듯이 점소이의 안내를 받지 않고 위로 올라간다.
점소이는 앞장서려 했지만, 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보고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왜인지 느낌이 이상했다.
아직 올라가지 않은 여인이 말한다.
“자네.”
“넷!?”
사내가 당황한다.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인의 말투에선 확실히 기품이 느껴졌다.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점소이의 안목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원하는 요리를 내어 줄 수 있는가?”
“으음, 아직 숙수께서 출근하시진 않았는데…….”
“괜찮네, 내가 원하는 건 소니까. 소고기는 있나? 갓 잡은 닭이라든지.”
“옙! 소고기가 있습니다.”
“겉면만 약간 익혀서 구워서 내주게. 돈은…….”
“아, 괜찮습니다! 이미 다 지불하셨지 않습니까? 어제 막 잡은 놈이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고맙네.”
점소이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향했다.
여인은 가만히 객잔 내부를 둘러보았다.
‘관리가 정말 잘되어 있군.’
아쉽게도 무림에선 이처럼 관리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황제처럼 거대한 마차에 몸을 맡기는 것도 그들의 취향은 아니었다. 가끔 들른 객잔이 이리 관리가 잘되어 있다면,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주방에서 고기 굽는 연기가 많이 퍼지진 않았다. 점소이가 여인의 부탁을 잘 들어준 것이다.
“손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요?”
겉면만 보고 있자니 확 익혀 버린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었다. 생것으로 먹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여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점소이가 그릇을 놓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먹는 걸 계속 지켜볼 셈인가?”
“아, 아닙니다!”
점소이가 시선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여인은 품속에서 고급스러운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 마치 암기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내 고개를 고정하고 있다. 단도로 고기를 자른 여인. 눈매가 꿈틀한다.
‘호오.’
핏물이 가득했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로 잘 굽는 이는 중원에서 보기가 힘들었다. 중원에서는 고기를 이렇게 먹지 않으니까. 보통은 푹 익혀서 쭉쭉 찢어지게끔 해서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고기 조각을 썰어 여인이 암기처럼 생긴 무언가를 통해 입으로 가져간다.
‘확실히 잘 구웠군.’
여인은 급하지 않게, 고기의 육즙을 음미하듯 식사했다.
점소이는 먼 장소에서 그녀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여인은 그러한 시선은 익숙하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마침내 여인의 식사가 끝났을 무렵이었다.
“저어, 손님?”
“뭐지?”
점소이가 용기를 내어 말한다.
“더 구워 드릴까요?”
“음?”
“아무리 소고기라고 해도… 금자 한 냥을 받았지 않습니까? 아직 고기는 많고… 제가 만든 특제 양념도 손님께 대접하고 싶어서…….”
여인이 말한다.
“양념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본연의 맛을 좋아해서 말이야.”
“아, 최대한 본연의 맛을 살리는 형태로 내보이겠습니다. 제가 다른 요리는 못해도 고기를 굽는 불 조절은 잘해서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여인이 방금 먹었던 고기를 떠올렸다.
그녀의 취향을 완벽히 맞춘 숙수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사내의 말대로 불 조절을 잘하는 듯하다.
“그런데 점소이 아니던가?”
“예, 하지만 나중엔 숙수가 될 겁니다, 천하제일의 숙수가!”
희미하게 웃은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네. 그럼 부탁하지.”
점소이가 몸을 돌린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지워진다. 무표정하게 주방으로 걸어간 사내. 그가 작은 통을 열었다. 자극적인 향이 공간에 맴돈다. 점소이는 이런 일을 수백 번도 더 경험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잘 잘린 고기에 양념을 발랐다.
처음처럼 겉면만 약간 익혔지만, 육즙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고기 구이.
점소이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내걸고 주방에서 나갔다. 창백한 인상의 여인은 딱히 기대하지 않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어떨까.
“으음?”
고기를 한입 베어 문 여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하지만 누군가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씹는 것에만 여념이 없지는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의심하듯 여인은 아주 느리게 고기를 씹어 댔다.
“음.”
고기 조각 하나를 모두 씹은 여인이 식사 때 사용하던 단도를 내려놓는다. 흰 천으로 입을 닦은 후 여인이 점소이를 바라본다.
“자네.”
“예.”
“혹시 전속 숙수가 될 생각은 없나?”
“전속 숙수 말입니까?”
“그래.”
여인은 점소이의 요리가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다. 딱히 다른 재료를 넣은 것도 아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도 아니다. 단지 양념이 발린 고기를 구웠을 뿐이었다. 그런데 전속 숙수? 당연히 점소이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달에 기본급으로 금자 스무 냥을 내주지.”
“……!”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임금이었다. 평범한 객잔의 점소이가 한 달에 은자 두 냥 정도를 받는 것을 생각하면… 거의 황실에서 일하는 수준의 임금이었다. 거기다 기본급이라면 따로 더 챙겨 주겠다는 말이다.
여인은 당황하는 점소이를 보며 말한다.
“불쾌하다면 사과하지. 자네의 음식이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돈으로 제안할 수밖에 없군.”
점소이는 여인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듯한 점소이였지만, 이내 답을 내놓는다.
“죄송합니다. 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많은 돈을 내어 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알겠네. 강요하진 않겠네.”
여인은 점소이를 안심시키듯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양념이 발린 고기를 잘라 먹기 시작한다.
점소이는 가만히 여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본래 오늘 밤 객잔을 떠났어야 한다.
하지만 새벽에 객잔에 방문한 두 손님은 객잔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을 묶어 두고 있는 건 하나였다.
“네가 고집을 피우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죄송합니다. 하루만 더 머물고 싶습니다.”
“됐다. 네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된단다. 뭣하면 내가 점소이를 설득해 줄 수도 있는데?”
사내의 권유에 여인의 눈꺼풀이 잘게 흔들린다.
“괜찮습니다.”
“그래,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말하거라. 그런데…….”
왜인지 붉어진 입술의 사내.
그가 말한다.
“나도 한번 먹어 보고 싶구나. 네가 그리 감탄하는 양념 맛이 어떤지 말이야.”
사내의 말에 여인이 깜짝 놀란다.
“대공자님.”
“괜찮다. 어차피 금식(禁食)은 삼 년 전에 풀렸어. 자네, 내 것도 준비해 주지 않겠나?”
“예,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활기차게 대답한다.
그는 주방으로 향하여 양념 통을 열었다. 그런데 평소에 사용하던 양념 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