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75화 (175/316)

175화 용성

황금의 갑주를 착용한 병사. 그들은 황실에서 무림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특수부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무림인들처럼 무공을 익혔으며, 오로지 황실만을 위해 봉사하는 집단이었다. 특히나 일대일의 대결보다는 집단전에 능하여 세력 간의 다툼이 벌어질 경우 금의위의 힘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무공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황실이라는 주체가 작정하고 키운 집단이었다. 황실의 힘으로 중원 전역에서 모은 비급들을 엮고 또 엮어 황실만의 무공을 창안해 냈다. 특히나 무림인들은 눈만 마주쳐도 싸움이 일어났기에 언제 객사할지 몰랐지만, 황실 출신의 무관들은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죽는 경우가 잘 없었다. 거기다 실력만 좋으면 벼슬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몇몇 무가(武家)에서는 강호로 진출하여 명성을 떨치지 않고 바로 황실의 금의위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금의위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어느 정도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금의위에 들어가기는 쉬웠지만, 지금은 금의위의 덩치가 워낙 커져 들어가고 싶다고 막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금의위의 세력은 정파 무림의 전력이 역대 최고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금의위는 그 넘쳐 나는 힘을 바탕으로 점점 활동 반경을 넓혀 가고 있었으며, 결국 무림맹에 닿게 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황극린과 무림맹주가 맞붙게 될 수도 있었지만, 금의위의 등장은 그 상황을 어느 정도 진정시켜 주었다.

“황 대협, 잠시 멈추시는 게 어떻겠소?”

“어찌 멈춘단 말입니까! 수라공자에게 적 장로께서 당하셨는데!”

“금의위가 왔는데 우리끼리 싸우기라도 할 셈이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림맹주는 장로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무림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직통으로 보고받는다. 그중에는 당연히 황실에 대한 것도 있었다.

본래 황실의 세력은 크게 세 개로 나뉘었지만, 최근에는 한 세력이 패망하여 두 개의 세력이 황실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황실의 내부 갈등이 적어도 겉으로는 봉합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 금의위가 등장한다?

내부의 분란을 잠재웠으니 그들이 외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예상한 바였다. 물론, 황극린이 이곳에 왔을 때 금의위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저야 원래 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황극린이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적중산 장로에게 시선을 던졌다.

“복수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시오,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이익……!”

무림맹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장 회의보다 더 중요한 게 금의위의 등장이었다. 무림맹주나 구파일련의 장문인들은 과거부터 회동을 가져 황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과거엔 황실에서 중원 무림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황실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가진 막대한 규모의 관군들을 모두 동원한다면 제아무리 구파일련이라 할지라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정파에선 황실과 싸울 명분이 없었다. 현 국가의 정통성은 황실에 있었으니까.

황실은 무림을 인정했고, 무림도 황실을 배려했다.

하지만 황실은 이제까지의 태도를 깨고 무림맹에 등장했다.

대체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일까?

무림맹에 무엇을 요구하려는 걸까?

사안이 심각하다면 20년 만에 구파일련의 장로들과 육대세가의 가주들이 모두 모여야 할 수도 있었다.

맹주 팽사혁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머리 아프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밖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 금의위의 부지휘사 소의장군(昭毅將軍)께서 곧 도착하십니다!”

소의장군이라는 말에 맹주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들의 신분은 확실하다. 황실의 손님을 밖에 세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성까지 그들이 진입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회의실까지 안내했단 말인가?

“맹주전으로 안내하도록 하게.”

“그,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금의위는 맹주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니라 합니다.”

맹주가 문을 열었다.

멀리서 작렬하는 태양 빛을 반사하는 황금의 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일정 수준으로 가까워지지는 않았으며, 무림맹주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금의위는 걸음을 멈추었다.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하는 갑주를 착용한 이가 다가온다.

“금의위의 부지휘사가 무림맹주를 뵙습니다.”

포권지례를 하며 맹주에게 예를 표한다.

아무리 황실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파 무림의 대표 격인 무림맹주에겐 예를 갖춰야 한다. 그건 맹주도 마찬가지였다.

“소의장군님을 뵙습니다.”

묘한 긴장감이 스쳐 지나간다.

소의장군 금홍락이 슬쩍 회의실 내부를 바라본다. 왜인지 분위기가 험악했다. 젊은 청년과 늙은 무인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의장군이 옅은 미소를 띤다. 그러자 무림맹주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 웃는 거지?’

황실과 무림맹은 동맹이라기보다는 협력 관계라고 보는 게 맞았다.

특히 황실의 무인들은 최근 세력을 더 확장하고 있었다. 무림맹으로선 마냥 마음 편하게만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안에 만뇌문의 장로이신 황극린 대협께서 계십니까?”

황극린?

금의위에서 왜 황극린을 찾는단 말인가?

의문이었지만 그가 있는 건 사실이었기에 대답한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는 사실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금의위는 황 대협을 모시기 위해 이렇게 무림맹까지 찾아왔습니다. 무림맹의 수장이신 팽 맹주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함이 예인 줄 아오나 황실의 명이 내려왔기에 그럴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군요.”

팽사혁이 슬쩍 뒤를 돌아본다.

그들은 황극린을 만나기 위해 무림맹까지 행차했다. 그 엉덩이가 무거운 양반들이 말이다. 거기다 어중이떠중이를 보낸 게 아니라 금의위의 서열 3위 소의장군을 보냈다. 황실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가?

“맹주님, 황 대협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맹주전으로 가시지요.”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는 쪽이 나았다.

황극린은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나왔다. 소의장군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이 소의장군을 따라간다. 회의실에서 나온 장로들이 멍하니 사라져 가는 황극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지? 금의위가 왜?”

“설마 금의위에서 황 대협을 잡아넣으려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부맹주 만묘신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외통수로군.’

소의장군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 * *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제 앞에선 편히 앉으셔도 됩니다.”

소의장군.

그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사내였다. 황실 군부 조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금의위의 서열 3위라는 자리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금의위는 황실의 어느 조직보다 실력을 우선시한다. 출신 배경을 따지다간 정파 무림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파들에게 밀린다는 사실을 황제는 알고 있었다.

완벽한 실력주의.

물론, 정치가 아예 개입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소의장군은 혈혈단신으로 황실에 입성하여 금의위의 부지휘사가 되었다. 그런 소의장군이 황극린에게 극진한 예를 표하고 있었다. 오히려 무림맹주를 대할 때보다 더 공손했다.

“괜찮습니다. 이게 편합니다.”

“하하, 역시 무림인들은 그 자세가 편하긴 하지요.”

소의장군도 가부좌를 튼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소의장군은 소소한 잡담으로 분위기를 풀려 했으며, 황극린도 굳이 그에게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황극린은 그들이 언젠가 자신에게 접근해 올 것이라 예상하긴 했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무림맹에서 허튼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데, 황실이 그걸 가만히 두고만 볼 것이냐?

아무리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이라는 해괴한 단어마저 생겨난 시대라고 하지만, 황실은 과거의 영예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당연히 겉으로는 무림맹에 신경을 쓰지 않는 척, 그들의 권리를 모두 보장해 주는 척하고 있지만… 그 뒤로는 그들을 압도할 전력을 키우기 위해 매년 막대한 황금을 쏟아붓고 있었다.

물론, 황극린은 그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소한 황극린이 알고 있는 미래에선 말이다. 황실이 아무리 무림을 제압할 세력을 키운다고 할지라도 정파 무림과 사파 무림의 힘은 황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절대 고수’의 존재 차이는 황실에게 뼈아픈 약점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황실도 절대 고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 그리고…….”

소소한 잡담을 나누던 소의장군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런데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그 물건 자체가 신성한 무언가라도 되는 듯이 경건한 얼굴로 잔뜩 예를 담아 두 손으로 공손히 내려놓는다.

“이건?”

“태자 전하께서 황 대협께 전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장의 서신이었다.

황극린이 서신을 열어 읽어 본다.

‘주원일이로군.’

황극린은 꽤 오래전 한 소년을 구해 준 적이 있었다.

흑사회에 납치되어 감금되어 있던 소년. 당시만 하더라도 황실의 내부 세력 다툼은 격화되었으며, 그가 황실로 돌아가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황태자가 되었다?’

신기한 인연이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를 구해 준다면 언젠가 황실과 연을 맺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지만… 솔직히 그것만을 위해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나처럼 되기 위해 무공을 열심히 익히고 있으며, 천하제일의 황제가 되겠다라…….’

피식.

경건하고 위엄 서린 글씨체였지만 왜인지 내용은 어린아이의 그것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황태자가 된 주원일은 황극린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황실의 힘은 중원 곳곳에 뻗어 있었다. 주원일은 황극린에게 황실의 품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있었다.

황극린이 서신을 다 읽은 것을 확인한 소의장군이 입을 연다.

“무림맹을 떠날 생각이 있으십니까?”

“금의위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까?”

“하하하, 아닙니다. 금의위에 들어오신다면야 솔직히 저로선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습니다만… 금의위는 될 수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황 대협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니 노여워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소의장군의 말을 이해했다.

금의위는 완벽히 황실에 충실할 병사들의 집단이었다. 더군다나 화경에 이른 고수가 대뜸 금의위에 소속될 순 없는 노릇이다.

“황실은 용성(龍城)이라는 새로운 무림 집단을 만들 생각입니다.”

용성.

황극린은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황실에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문파의 집단. 쉽게 설명하면 대룡상단이 소속되어 있던 대정회와 그 성질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황실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기에 대정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황극린은 이미 용성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을 했다.

“황실은 무림맹과 같은 기능을 하는 집단을 새로이 만들 생각입니다. 현재의 무림맹은… 직접 느껴 보셨기에 아시겠지만, 그들은 오랜 역사를 거쳐 고이고 고여 버렸습니다. 썩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솔직히 황극린은 신물이 나긴 했다.

왜 만뇌문을 의심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솔직히 황극린이 보기에도 자신의 성장은 비정상적이었으니까. 다만, 자꾸 의심을 받고 증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니 피곤하긴 했다. 아무리 황극린이라도 막무가내로 사파와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하라면 어찌 증명하겠는가?

그리고 만뇌문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뇌불의 존재.’

오늘처럼 사흑련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해명하라면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무림공적에 지정된 뇌불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건 황극린으로서도 쉬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황실과의 연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만드는 용성이라는 단체에는 사파나 정파 따위의 이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황실이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였다.

물론, 용성은 황실의 의도처럼 중원 무림을 주름잡지는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무림맹과 사흑련으로 양분된 무림맹의 공고한 세력을 어찌 쉽게 뚫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황극린은 황실이 만든 용성이 무림의 패자가 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으음.’

황극린이 눈을 감고 기척을 감지한다.

금의위가 철통같이 경호를 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무림맹의 무인들이 잔뜩이었다. 그들은 황극린과 금의위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황극린이 눈을 떴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솔직히 이미 마음은 기울었지만, 바로바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 만뇌문이 사파나 배교와 관련 있다고 의심하던 무림맹의 장로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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