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무림맹 입성
무림맹의 회의에선 황극린을 소환하여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정파 무림의 명숙이라 불리는 이들은 황극린의 행보에 불만이 많았다. 그들이 후기지수이던 시절에는 감히 무림 선배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다. 배분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겸손이야말로 무인의 미덕이었으며, 선배는 겸손한 후배를 이끌어 주고 보듬어 준다.
틀린 것은 아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무림의 경험이 많은 선배가 후배들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난 것이 정상이었으니까. 거기다 재능이 특출 난 무인이라고 해도 감히 배분이 높은 이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무림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같은 육대세가라 하더라도 자세히 파고들면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같은 뜻을 품은 게 아니며, 그건 구파일련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적이 아니다. 위기의 상황이 오면 서로서로 뭉쳐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혈교와 마교.
그리고 만독문이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에도, 그들이 패도적인 무공을 앞세워 정파 무림을 압도했던 시절에도 종국에 정파가 승리했던 이유는 모두가 위기 앞에서는 뭉쳤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어 적을 물리친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하지만 위기가 위기 같지 않을 때.
무림맹… 아니, 정파 무림의 세력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을 때.
그들은 오판하기 마련이었다.
혈마교의 존재보다도 만뇌문이라는 미꾸라지를 걱정했다.
현 무림 문파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문파를 꼽으라면 천화련이다.
그들도 숱한 견제를 뚫어 내고, 현재의 자리에 올라왔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세대와 세대를 거쳐 성장한 문파였다.
고작 몇 년 만에 화경의 고수를 배출하고, 모든 문도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만뇌문은 비정상적인 문파였다. 그들과 직접적으로 악연이 있는 문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꼽는다면 대정회에 소속된 문파들과 소림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도 불만을 품었다.
만뇌문의 문주라는 이는 전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만뇌문의 장로라는 황극린은 일신의 무력을 믿고 날뛰고 있다. 무림의 기강과 법도를 다시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북해빙궁의 빙백마후가 찾아왔음에도 황극린은 무림맹에 보고다운 보고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만뇌문의 현 위치를 알려 줘야 한다.
언젠가 만뇌문이 천화련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소한 백 년은 지나야 한다. 문파가 성장하는 데에는 수많은 난관과 방해가 있을 것이며… 아마 기성 무림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황극린에게 직접 불만을 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림은 언제나 그러하듯 거미줄처럼 옭아맬 것이다. 만약 정파 무림의 질서를 흔든다고 판단되면, 한마음이 되어 그를 몰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반대급부로 만뇌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세력도 많았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굳은 황극린에 대한 악소문과 빙백마후의 등장. 그리고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사와 마찰을 빚었다는 이유로 무림맹에서 만뇌문의 평가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가 세운 업적도 많았다.
동려대협이라 불리며 사파의 마두를 처단했으며, 청해성 서녕지부에서도 당시 지부장과 유착 관계를 이어 온 귀도방을 쓸어버렸다. 거기다 영예로운 용봉지회 우승자 출신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황극린이 여러 업적을 세웠기에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잘난 이들은 언제나 시기와 질투를 받는 법이니까.
보통 무림에서 시기와 질투를 물리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속 문파나 출신 배경이 압도적일 것.
육대세가나 구파일련에서 천고의 기재가 등장하며 무림에서 명성을 떨치는 건 흔하지는 않지만, 무림 역사에서 종종 일어났던 일이다. 최고의 기재라 불렸던 후기지수들은 현재 거대 세력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배경을 보면 시기와 질투는 감정 낭비라 생각될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출신이 어떻든, 소속된 문파가 어디든 간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증명한다면 시기와 질투도 사그라들 것이다. 물론, 적당히 중원 무림의 눈치를 보며 겸손을 떨었다면, 굳이 두 방법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됐을 것이다. 무림에서 연을 만들어 놓으면 언제고 빛을 볼 수 있다. 이건 무림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모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타인의 비위를 맞출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악소문이 돌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바로 무림맹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빙백마후와의 만남에서 얻은 깨달음을 체화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황극린이 무림맹이 있는 정주에 도착했다.
* * *
“수라공자가 도착했다는구려.”
“그렇소? 얼른 장로 회의에 얼굴을 비치지 않고 뭘 하는 거지?”
“듣기로는 학산객잔에서 식사하는 중이라 하더군.”
“뭣? 지금 밥 먹을 시간인가? 제정신이 아니로군! 북해빙궁과의 관계를 해명해도 모자를 판국에……!”
“워워,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적중산은 미소를 머금으며 철수비검 장로를 달랜다. 천산파 출신의 장로인 그는 적극적으로 황극린을 모함하는 쪽에 속했다. 물론, 본인은 황극린을 모함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오. 북해빙궁과의 일이 있고 석 달이 훨씬 지나 이렇듯 모습을 드러냈소. 무언가를 은폐하려던 것이 분명하오. 객잔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아하니 여유로운 척을 하고 싶은 모양이오.”
적중산의 말에 철수비검 장로가 인정하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것도 그렇겠구려. 쯔쯧. 그래도 바로 장로 회의를 소집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무림맹의 장로들은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소집된 회의의 주체가 고작해야 밥을 먹다가 지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화를 낼까? 물론, 황극린은 회의 소집 요구 따위를 하진 않았지만… 그걸 계산한 행동이다. 어차피 황극린은 석 달 넘게 무림맹의 선배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던가?
몇몇 이들은 아직까지도 극성으로 황극린의 행동을 옹호하고 있으니 그런 분위기를 완전히 부숴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게 좋겠소.”
“갑시다.”
철수비검과 중주일검이 움직인다.
그들의 의도 아래 황극린은 오늘 밑바닥을 보일 것이다. 화경에 이른 고수라도 구파일련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줘야 한다. 물론, 황극린이 진정한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히 무언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 * *
무림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식사한 후 느긋이 휴식까지 취한 황극린.
애초에 자신 때문에 장로 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딱히 급하게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여유가 넘쳤다.
바로 무림맹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경공을 펼치며 달려왔기에 체력과 내공을 회복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셨군요.”
“허어억……! 허억……!”
거친 숨을 내쉬는 중년 사내.
범을 연상하게 하는 외모에 청색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의복이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의복 위로 우락부락한 근육이 태가 난다.
“부맹주님.”
황극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하자 부맹주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평소 그의 모습을 잘 아는 이들이라면 생소한 모습이리라.
“설마 절 기다린 겁니까?”
“예.”
“제가 온다는 걸 어떻게 알고……?”
“일부러 경공의 속도를 늦췄습니다. 그래도 잘 따라오시더군요.”
“……!”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
화경에 이른 고수의 시선을 피하기 힘들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묘신수는 주의하고 또 주의했다. 그가 감숙성으로 갔을 때처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발악하며 그를 뒤쫓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를 따라잡은 이유가 황극린이 속도를 늦춰 줬기 때문이라니?
충격이 크다.
만묘신수는 경공을 펼치는 데 내공의 반절 이상을 소모했다.
10년 내로 화경에 이를 것이라는 평이 중원에 자자한 만묘신수다. 그는 오늘 황극린을 보며 무언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무언가 달라졌다. 설마 더 성장한 건가?’
상대의 기세를 확인하는 것.
강자는 서로 눈빛만 마주해도 상대의 강함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 상대의 전부를 알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 만묘신수는 황극린이 과거보다 성장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짧은 순간에 말이다.
‘그땐 작은 틈이라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경악.
만묘신수는 겨우 그 감정을 숨겼다. 그는 무림맹의 부맹주였으니까. 그래야만 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왜 절 기다리신 겁니까? 무림맹에 볼일이 있어 오신 게 아닙니까?”
“그 목적이 부맹주님과도 연관이 있더군요.”
“…그렇지요.”
“그럼 갑시다. 무림맹에서 절 기다리고 있다더군요.”
부맹주 만묘신수는 맹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중원 무림의 요람이기도 했지만, 노회한 고수들이 득실거리는 정치판이다. 황극린이 그 정치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천성에서 황극린과 만뇌문에 대한 조사를 세세하게 했던 만묘신수였다. 황극린이 만약 대룡상단이나 소림사와의 대립 때처럼 행동했다가는 큰 화를 자초할 것이다.
그건 장담할 수 있었다.
“황 장로님.”
“예, 말씀하십시오.”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거기선 꼬투리 하나만 나와도 물어뜯을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물론, 협의지사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들은 무림맹의 중심이 아니지요.”
“저와 만뇌문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도 솔직히 황 장로님을 완전히 믿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만묘신수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절 기다려 주셨으니까요. 그에 대한 약소한 보답입니다.”
황극린이 작게 웃는다.
“맹에서는 절 도와주지 않을 겁니까?”
“전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보고할 뿐입니다. 맹주님과 맹의 장로들께서 판단하시겠지요.”
“그 판단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말입니까?”
“옳고 그름은 제가 완벽히 구별할 수 없으니까요.”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은 아닌가.’
뭐, 상관없었다.
만묘신수의 도움을 받고자 기다린 것은 아니다. 어차피 무림맹에서 끝을 보려면 만뇌문을 조사했던 부맹주의 발언이 필요하다. 그를 기다린 것은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
“갑시다.”
“예.”
두 사람이 무림맹으로 향했다.
당연히 맹의 외성(外城)에서부터 난리가 났다.
부맹주가 복귀하고 강호를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화경의 고수가 처음으로 무림맹에 입성하는 일이었으니까. 정치판에서 황극린에 대한 소문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무림맹에서 직접적으로 황극린을 얕잡아 보거나 비아냥대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만뇌문과 황극린과 연을 쌓으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황극린에 대한 소문이야 소문이었고, 그는 언젠가 무림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고수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와의 인연은 자신들의 강호 인생에 퍽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장로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끼이이이익-
호위가 거대한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원형 탁상 위로 20명의 무림맹의 장로가 앉아 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지만, 황극린은 문이 열리기 전에 대화가 오갔던 것을 확인했다. 초감각 덕분이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부맹주였다.
“부맹주 계립입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황극린입니다.”
“크으으흠!”
“커흠!”
시위하듯 몇몇 이들이 불쾌한 기침 소리를 낸다. 황극린은 알게 모르게 눈동자를 굴려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당연히 다 본 적이 없는 무인이었지만, 그들이 주도적으로 황극린을 몰아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맹주님과 다른 부맹주들께서는 안 계신 겁니까?”
계립의 질문에 누군가 대답한다.
“그렇소. 일단 장로 회의를 거쳐 2차 회의에서 맹주님과 부맹주께 보고를 드릴 예정이었소.”
- 종남파의 중주일검 적중산입니다.
부맹주가 황극린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종남파라…….’
황극린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 사내의 목소리는 회의실 바깥에서부터 들려왔다.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을 모함하던 인물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철혈검대의 대주.’
황극린은 그의 위신을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공개적으로 그의 잘못을 공개하고, 비무에서 그를 패퇴시켰다. 청성파에서도 종남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귀띔을 해 준 적이 있다.
부맹주가 대답하려 할 때, 황극린이 나선다.
그는 20명의 장로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것을 좋게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적중산의 주위에 앉은 장로들은 대부분 그 태도에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 2차 회의까지 참석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자네가 처한 상황을 잘 모르나 보군.”
대뜸 반말을 내뱉는다.
뭐, 배분이라는 게 존재하는 정파 무림이었기에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화경의 경지에 올랐으며 일문의 장로에겐 결례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는 자제했어야 옳았지만, 적중산에겐 그것마저도 계산에 넣은 행동이었다.
‘황극린, 너는 아직 어린 애송이일 뿐이다. 여기서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중립의 입장이던 장로들도 태도를 바꾸겠지.’
적중산이 말을 이어 나간다.
“자네는 혈마교나 북해빙궁과 결탁한 혐의가 있는 용의자라네. 그러니 2차 회의는 물론이고 언제 끝날지 모를 회의에 참석하여 자네가 아는 바를 모두 진술하여야 모든 의심을 거둘 수…….”
“난 혈마교나 북해빙궁과 결탁하지 않았소.”
말투가 조금 거슬렸지만, 적중산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말로는 누가 그런 소리를 못 하겠는가? 간자의 대부분은 그리 말한다네. 나는 간자가 아니라고 말일세. 억울하다며 소리치곤 하지. 그걸 증명해야 하는 것은… 자네일세.”
황극린이 천천히 적중산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50대 중반의 사내가 벌떡 일어선다.
“그만! 다가오지 마시오!”
- 천지문의 철수비검 장로입니다.
천지문이라.
이들도 과거 만뇌문과 악연이 있었다. 천지문 소문주의 두 다리뼈를 부러뜨렸었다. 적당히 봐주려 했지만 대정회가 무섭지 않느냐며 조잘거렸던 놈이었다.
“적중산 장로?”
“어허, 말이 너무 짧은 것 아니오?”
“존칭을 붙이시오. 적 장로는 엄연히 무림맹의…….”
“허허, 괜찮소. 내가 이해해야 하는 일이겠지. 그래,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적중산이 여유로운 미소로 황극린을 마주한다.
“하나 묻겠소.”
“뭘 말인가?”
“당신과 종남파는 혈마교나 사파 문파와 결탁하지 않았소?”
“이 무슨 망발을!”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미친 건가!”
장로들이 발끈한다.
지금 황극린의 말은 종남을 무시하는 것도 되지만, 무림맹의 장로를 모욕하는 말이었다. 여유롭던 적중산의 얼굴도 무섭게 굳었다.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아니,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하지 않겠소?”
황극린의 살의가 회의장 전체를 덮었다.
무공의 정점에 올라 있다는 무림맹의 장로들. 그들은 황극린이 내뿜는 살의에 모두 몸이 굳었다.
“말로는 누구나 부정할 수 있다고 말한 건 적중산 장로 바로 당신이오. 그걸 증명해야 하는 것은 적 장로 아니겠소?”
황극린의 말은 일견 호탕하다 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황극린에게 혈마교와 결탁하지 않은 것을 증명하라 했던 적중산이다. 그리고 황극린은 그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황극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발언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불리하게 할 생각도 없었던 부맹주 만묘신수였다. 그래도 평화적으로 회의를 이끌려고 했던 부맹주. 그는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황극린의 뒷모습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대체 어쩌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