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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67화 (167/316)

167화 뜻밖의 등장

소림사의 사대금강 해월대사와 십팔나한이 중강현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무림맹에선 대대적으로 혈마교가 심어 놓은 문파를 수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검문 이후로는 그다지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고검문은 황극린이 알고 있는 확정적인 미래의 정보를 이용하여 그들이 혈마교가 심어 놓은 간자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문파들은 아니었다.

고검문도 마찬가지였지만, 혈마교가 심어 놓은 문파들은 전혀 사파인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외려 정파보다 더 정의롭게 행동하며 백성들을 지켜 주고 협을 행했다.

오히려 정파이면서도 사파처럼 알량한 무력으로 으스대는 일부 문파들 탓에 혈마교의 간자들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과거부터 시작된 혈마교의 작전이었다. 반년 만에 무림맹 전체에 숨어든 혈마교의 간자들을 모두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고검문의 경우에서 보았듯 혈마교의 끄나풀들은 겉으로는 협행을 펼치며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문파를 표적으로 삼아 무림맹이 압박을 가한다면 문제가 된다. 만약 무림맹의 조사단이 혈마교도를 발견하면 다행이지만, 만약 아니라면?

무림맹의 명성에 흠이 간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맹의 윗분들은 빨리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참으로 고역이었다.

“후우, 들어가자.”

무림맹 감숙성지부 순찰대 제2조장 비룡금도(飛龍金刀) 두담동이 한숨을 내쉰다. 조원들도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여러 정황을 조합하여 그들은 혈마교와 결탁했다고 의심되는 문파를 수색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대한 부드럽게 임무에 임하여 혐의자가 무림맹에 악감정을 품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무림맹 순찰대에서 사람이 나왔다고 하면 문주를 비롯한 문도들이 지극정성으로 순찰대원을 모신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진다.

아무리 힘이 없는 중소문파라고 해도.

자신들을 사파의 간자라고 의심하고 있는데,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임무를 맡은 순찰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들이 정말 혈마교도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으며, 미움받지도 않을 것이니까.

처음 한두 번은 막중한 책임감으로 임무에 임했다.

하지만 의심했던 문파가 결국 혈마교와 전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임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문파에선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으며, 위에서는 실적을 내지 못했다고 매번 쪼아 댄다.

거기다 다른 지부에선 그래도 혈마교의 끄나풀을 찾아냈다고 보고가 올라왔기에 감숙성지부의 무인들은 축 처진 어깨로 임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크음, 감식초(鑑識草)를 태우겠습니다.”

“흥, 그러시오!”

태산파의 문주가 불쾌함을 전혀 숨기지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얼굴을 홱 돌렸다.

내로라하는 무림맹의 천재들이 만들어 낸 감식초는 혈마교의 무공을 익힌 이들을 판별해 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고검문의 문주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찾아냈다.

혈마교가 숨겨 둔 첩자들이 마공(魔功)을 익히지 않았을 경우도 생각해 놓았기에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심 문파는 감시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 의심을 받은 것도 모자라 감시가 이어진다는 데에 대부분 강호인은 무림맹에 반감을 갖는다.

감식초를 태운 지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이다.

정말 아쉽게도 태산파의 문주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대기하고 있던 순찰대 3조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태산파 문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속이 시원하시오? 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소. 아무리 강호의 분위기가 흉흉하다 한들 어찌 날 의심할 수 있으시오, 두 대협!”

“죄송합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태산파의 문주는 당장이라도 무림맹의 고위급 무인들에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이제 감식초인지 뭔지 요상한 향을 한 시진 동안 맡는 것도 끝났으니.

“이제 다 끝난 것이지요?”

확인차 물어보았다.

하지만 두 조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끝난 건 아닙니다.”

“더 확인해 볼 게 남았소? 장원 전체를 수색하게 뒀고, 제자들이 수련하는 모습도 보여 줬소. 태산파의 비급을 전부 가져가서 뜯어봐야 만족하시겠소!”

그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애초에 중원 전역에 뿌리를 내린 혈마교의 끄나풀들을 찾으라는 명령 자체가 잘못되었다. 아무리 무림맹이라 할지라도 작정하고 숨은 이들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최대한 의심 가는 문파를 직접 심문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의가 있다고는 하나 의심을 받는 장본인들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왜, 옆에 있는 주가장도 이렇게 수색하지 그랬소?”

“예, 맹에서는 모든 문파를 점검하라 명령했습니다. 그러니 주가장에도 찾아갈 겁니다.”

주가장에도 찾아간다는 말에 태산파의 문주가 그나마 화가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만 의심받는 건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큼! 난 제자들의 수련을 봐줘야 하니 이만 가 보셨으면 좋겠소. 설마 오늘도 종일 붙잡고 있을 것은 아니겠지요?”

“예, 오늘은 끝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비룡금도 두담동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는 태산파의 장원을 나섰다.

조원들도 그리 표정이 좋진 않았다.

“조장님, 이렇게 해서 정말 찾을 수나 있는 겁니까?”

두담동 또한 조원들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걸 드러낼 순 없었다.

“다른 지부에서는 찾아냈다고 했으니, 우리도 찾을 수 있겠지.”

“15개의 지부 중에서 지부 두 곳만 혈마교의 끄나풀을 찾아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 만약 시일이 더 지나 혈마교의 간자들이 지역의 백성들을 세뇌하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솔직히 두담동도 임무를 수행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검문의 혐의를 밝혀 냈던 남궁원은 대대적으로 교육 자료를 작성하여 배포했다. 혈마교가 간자들을 심어 무엇을 의도하는지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계속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비록 성과는 없었으며,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조원이 두담동에게 저리 말한 것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단지, 태산파의 문도들이 내뿜는 적의를 마주하니 억울해서였다. 의심받는 이들은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으며, 그들을 심문하는 무림맹의 무인들도 고충이 있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주가장은 생략한다.

어차피 오늘 대원들의 상태로 보건대 임무를 지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육체적으로 고된 임무는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공적을 세웠다면 모를까 연속으로 실패만 거듭하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3조가 지부로 복귀하려고 할 때였다.

“왜 안 가?”

“저, 저기…….”

대원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보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조장인 두담동 또한 발걸음을 멈춘다. 왜인지 거리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행인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녀다.”

선녀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하늘하늘한 소복을 입고 땅을 거니는 여인들. 멀리서 보았음에도 그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뭐, 외모가 출중한 이들이야 거리에 한둘 보이기 마련이었지만, 외모가 특출 난 여인 열 명이 행렬을 갖춘 채 걸어가고 있는 게 참으로 특이했다.

거기다 여인들의 허리춤에는…….

‘검?’

무림인이 분명하다.

두담동이 사람의 외관만 보고 상대의 실력을 유추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지만, 여인들은 딱 보아도 무림과 관련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문파의 제자들일까요? 여인들만 있는 문파가 이 근처에 있던가?”

“아니, 처음 보는데?”

조원들이 쑥덕거리고 있을 때, 두담동이 결연한 목소리로 외친다.

“모두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예?”

“저들의 행색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어느 문파의 제자들인지 아시는 겁니…….”

그때 조원 중에서 눈치가 빠른 이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소리친다.

“부, 북해빙궁……!”

북해빙궁?

당연히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감숙성의 무인들은 북해빙궁의 궁도들의 특징을 교육받은 적이 있었다. 만약 북해빙궁이 중원 무림에 나타난다면 감숙성을 표적으로 삼을 테니 대비를 해 둔 것이었다.

북해빙궁의 궁도들이 전투태세를 갖춘 순찰 3조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꿀꺽……!”

긴장되는 순간.

여인들의 외모를 구경하듯 몰려 있던 백성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거리를 벌렸다.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찰 3조의 긴장과는 다르게 북해빙궁의 궁도들은 전혀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앞에 선 단발의 여인이 무표정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북해빙궁에서 왔다. 감숙성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이와 대화하고 싶다.”

그들은 진짜 북해빙궁에서 온 이들이었다.

* * *

“보고드리겠습니다, 장로님.”

만뇌문의 총관이 된 사마명은 자신이 맡은 바를 확실히 수행했다. 알게 모르게 새어 나가던 돈의 흐름을 꽉 쥐고,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끔 예산을 분배했다. 그리고 책정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모두 황극린이 신경 써야 했기에 부담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마명의 보고만 듣고 중요한 것만 결정하면 된다.

“최근엔 영초를 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가격이 이 할 이상 상승했는데, 계속 매입을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판단하기로는 보름 정도 매입을 중단하면 가격을 다시 낮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 영초를 매입하지 않아도 약방의 연구에는 차질이 없나?”

“예, 그렇습니다. 이미 매입해 놓은 영초로 한 달 이상은 충분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예, 그리고…….”

만뇌문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착실히 정리하여 보고하는 사마명이다.

다음 차례는 외부에서 구입한 정보들이다.

개방과 하오문을 통해 만뇌문은 지속적으로 강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역시 부맹주가 아직까지 무림맹에 복귀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장로님의 말씀대로 그는 아직 사천성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렇군.”

황극린은 부맹주 만묘신수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 사천성, 정확히는 중강현에 머물며 만뇌문이 혈마교와 관련이 있는지 증거를 찾고 있으리라. 물론, 다른 중소문파들에게 했던 것처럼 대놓고 만뇌문의 내부를 수색하거나 하진 못했다. 무림맹에서 만뇌문을 의심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만뇌문은 화경의 고수를 보유한 문파였기에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다.

물론, 부맹주가 만뇌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거슬리긴 했지만 말이다.

어차피 부맹주라도 만뇌문의 진을 뚫고 내부까지 침입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무문(無門)에서 따로 소식은 없었나?”

“예, 없었습니다.”

인형혈삼의 정보를 찾으러 간 무문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임무에 돌입했다는 서신을 받은 이후로는 서신이 없었다. 뭐, 솔직히 큰 기대를 품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뭐지?”

“감숙성 난주에 북해빙궁의 궁도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북해빙궁? 그들이 북해에서 나왔다고?”

“예.”

“으음.”

북해빙궁은 황극린이 207호로서 죽을 때에도 강호에 나선 적이 없었다.

미래가 또다시 바뀌었다. 무엇이 변수가 되었을까? 떠오르는 건 황극린이 북해에서 영물 곰의 내단을 취했던 일이다. 물론, 그것과 관계가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내게 책임을 물으려 할 수도 있겠군.’

북해에 침입할 때부터 걱정했던 것이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 놓았다. 북해빙궁과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다. 안 그래도 만뇌문은 알게 모르게 적이 늘어나고 있었다. 북해빙궁은 적으로 돌리기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무슨 목적으로?”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개방의 말로는 무림맹 감숙지부장과의 만남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무림맹을 통해 만뇌문을 압박하려는 걸까?

아니면 그냥 무림맹과 대화하려는 걸까?

“관련한 정보가 있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예, 장로님.”

사마명이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선다.

황극린은 편하게 다시 웃옷을 벗고 수련을 시작한다. 외부적으로는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문도들이 성장하고 자리를 잡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극린은 자신의 능력에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수련했다. 화경에 올랐다고 끝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황극린이 수련한 지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장로님, 사마명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평소 표정의 변화가 없는 사마명이었지만, 황극린의 완벽한 육신을 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만약 자신도 저러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사마세가에 복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을 할 뿐.’

사마명은 분명 만뇌문에 들어온 목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해빙궁의 목적은… 장로님인 것 같습니다.”

황극린의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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