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60화 (160/316)

160화 실험

실종 사건이 되었다.

소림사에서 찾아왔던 사대금강 중 하나인 해월대사를 비롯한 십팔나한이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는 이미 절대 고수의 반열에 오른 황극린이 홀로 그들을 해치웠다는 말을 했으며, 또 누군가는 소림사가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아무리 황극린이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더라도, 소림의 십팔나한 전체를 집어삼킬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황극린이 십팔나한을 홀로 해치웠다는 건 신빙성이 떨어지는 말이긴 했다.

하나 상황은 원인으로 황극린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은 만뇌문으로부터 뇌불의 무공을 되찾고자 중강현으로 왔다. 그런 소림사의 고승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으니 의심할 만한 것은 황극린뿐이다.

그때 등장한 의견이 바로 청성 배후설이었다.

만뇌문의 뒤에는 청성파가 있다. 청성파는 소림사와 비교하자면 세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그들 또한 구파일련에 속한 명문거파다. 그들이 작정하면 소림의 십팔나한도 집어삼킬 수 있었다. 이곳은 청성의 권역이 아니던가? 어떤 작전을 세웠을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청성의 장문인은 그런 소문에 몹시 난감해했다.

청성은 소림과 척을 질 생각도 없었으며, 만뇌문과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론이 청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청성이 배후가 되어 가고 있다. 오늘 아침, 소림사 본산에서 방장이 직접 작성한 서신까지 도착했다. 이러다간 오해를 사서 소림사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벌써 보름이나 지났소.”

“그렇군요.”

청성의 장문인 태을종객은 황급히 황극린을 초청했다.

사실 그 또한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소림사의 정예들이 만뇌문의 진법을 찾으러 떠났다는 것뿐이다. 대충 짐작이 되기도 하지만, 막상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누군가?

소림사를 지탱하는 거대한 네 기둥 중 하나인 사대금강과 그를 보좌하는 십팔나한이 아니던가? 백팔나한보다는 그 수가 적지만, 백팔나한보다 개개인의 무력이 훨씬 강한 게 십팔나한이었다. 그들 전부가 만뇌문에 왔다.

아무리 고강한 진이라도 그들을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은 없었다.

거기다 만뇌문의 진은 외부적으로 입구의 위치를 숨기는 데 능한 진이 아니었던가?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소? 소림의 방장에게서 서신이 도착했소이다. 이러다가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소…….”

“그들은 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태을종객이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움직임이 멈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소림의 해월대사라면 진법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 그가 보름 동안 진법을 통과하고 있다고?

“그들이 진을 통과하려면 언제쯤이 될 것 같으시오?”

만뇌문의 진이 기척을 숨기는 데 능할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잘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거기가 한계일 것이다. 조만간 소림의 십팔나한은 그것을 통과할 것이다. 그리 생각했지만, 황극린의 대답은 태평했다.

“일 년.”

“일 년? 지금 일 년이라고 하셨소? 대체 진법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혹은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일 년이라고 말한 것도 그들의 정신력을 높게 평가했기에 그런 겁니다. 도중에 한 명이라도 포기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

그들처럼 고강한 무인들이 진법을 통과하지 못한다?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대체 진 안에 무엇이 있길래……?”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해월대사가 어떤 꼴을 하고 진법 안에 있는지 알려 줄 순 없었다. 그들은 거의 폐인의 몰골이 되어 세 개의 태양이 떠오른 세상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들은 통과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고작해야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황극린은 그들을 일 년 동안 그곳에 박아 둘 생각이 없긴 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그들을 내보낼 것이다.

“설마 그들을 죽이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그럼 소림과의 전면전이 시작될 텐데요.”

“지금 상황도 그리 좋지 않소. 해월대사와 십팔나한은 소림에서 소중한 사람들이라오.”

“하나, 만뇌문에 함부로 침입한 대가는 치러야겠지요.”

“…….”

태을종객은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소림사의 십팔나한은 만뇌문의 진에 침입했고, 황극린은 그것을 알고 있다. 거기다 그들이 진법 내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살펴보았다는 말이 된다.

‘예상보다 만뇌문의 진법이 훨씬 대단한 모양이로구나.’

소림의 정예조차 통과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만뇌문은 황극린만 존재하는 문파가 절대 아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만뇌문의 저력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다. 물론, 소림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관건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할 생각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기다릴 겁니다.”

“무엇을……?”

황극린이 서신 한 장을 꺼낸다.

종이 위로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태을종객은 서신을 읽으며 얼굴이 굳는다.

“혈마교?”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내부 분쟁이 심해지는 경우 외세의 적으로 시선을 돌리는 전략이 있다. 과거 중원 무림에서 정파끼리는 무척이나 많은 싸움을 벌였다. 같은 정파라고 해도 각 문파만의 사정이 있었으며, 사람마다 가치관과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싸웠던 정파 무림이 하나가 될 때가 있다.

바로 사파의 준동.

아무리 정파 문파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할지라도, 사파에겐 밀려서 안 된다는 게 정파 전체의 생각이었다. 혈마교가 과거보단 그 위세가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과거엔 그들 하나를 막기 위해서 전 무림이 힘을 합쳐야 했다.

“허허허, 만약 적힌 대로라면… 아무리 소림사라도 만뇌문에 계속 관심을 두진 못할 것이오. 물론, 십팔나한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말이오.”

“예, 그렇기에 적절히 조절하고 있습니다.”

뭘 조절하고 있다는 말일까?

솔직한 말로 태을종객은 자신이 직접 만뇌문의 진을 경험하고 싶었다. 대체 진법의 내부가 어떻길래 소림의 정예들이 통과하는 데 일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는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단다.

“청성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혈마교에 대한 것을 무림맹의 안건으로 올려 주십시오. 무림맹의 정보력이 대거 투입된다면 중원에 자리 잡은 혈마교의 간자들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요.”

태을종객은 황극린에게 감탄하면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어떻게 아직 무림맹에서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것을 알고 있을까? 거기다 대체 만뇌문 내에는 어떤 인재가 있길래 소림의 정예들도 통과하지 못하는 진법을 만들었을까?

‘만뇌문의 문주.’

아직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는 그가 만뇌문의 진정한 실력자라 생각했다.

현 무림에서는 황극린만 제압하면 만뇌문은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다. 만뇌문의 힘은 황극린 하나가 아니다.

“그리하겠소.”

청성은 만뇌문을 돕기로 했다.

혈마교의 준동이 사실이라면 청성 또한 나서야 함이 당연하다.

“소림의 방장께는 어찌 말하려 하시오?”

“그건 제가 직접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소림의 장문인은 덕이 많고 인자하신 분이시오. 해월대사와는 확실히 다른 분이시지. 잘 해결되길 바라겠소.”

“예, 조언 감사합니다.”

그렇게 황극린은 혈마교에 대한 정보를 청성파에게 넘겨주고, 만뇌문으로 돌아갔다.

소림의 고승들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을 헤쳐 나가고 있다.’

사부가 제자를 가르치며 무(武)의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다고 했던가?

지금 황극린의 상황이 그러했다.

소림의 고승들이 진을 통과하는 방식은 황극린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평생 쌓아 올린 정신력으로 진의 기운을 직접 맞받아치고 있었다. 황극린이 감각으로 진짜와 가짜를 모두 구별하여 생문(生門)으로 직선으로 향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무식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과정에서 황극린은 소림의 무공에 대하여 연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내고 버티는 중이었다.

‘좋은 표본이 되겠군.’

황극린은 이들을 보며 새로운 수련 방식을 떠올렸다. 당연히 황극린이 수련하려는 건 아니다. 이미 그의 감각은 몇 번이나 진을 통과하며 진 내부에 완벽히 적응했다. 황극린이 하려는 것은…….

‘여기서 수련하면 제자들의 실력 또한 일취월장할 것이다.’

만뇌문은 황극린 혼자가 아니었다.

광견살검을 필두로 하여 제자들은 매일 열심히 수련하며 실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작은 벽에 가로막혀 있었는데, 만뇌문의 진법을 활용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몇 단계는 건너뛸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침입자를 막아 내는 진을 수련용으로 활용하기엔 위험했다.

그렇기에 황극린은 소림사의 고승들을 지켜보며, 주의해야 할 점을 확인해 나갔다.

그들은 만뇌문의 문도들을 위해 소중한 정보들을 직접 몸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 * *

“으음.”

진천객잔.

중강현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3층 높이의 전각으로 특실도 여럿 마련되어 있었으며, 중강현을 지나는 부호들이 자주 들르는 객잔이기도 하다. 그런 진천객잔의 3층을 모두 빌린 두 사람이 있었다.

밖으로 나갈 때는 커다란 죽립을 눌러쓰고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지만, 3층의 특실로 들어오면 두 사람은 죽립을 벗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청성산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외모에도 경지가 있다면 그는 화경의 경지라 일컬을 수 있으리라.

이미 중년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나이는 오히려 외모에 신비감을 불어넣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흑색의 눈동자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얕은 주름. 동년배 중에서는 최고로 꼽힐 만한 외모였다.

“그러게요.”

그리고 그에 대답하는 여인.

그녀는 놀랍게도 중년인과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남궁세가의 가주와 대공녀인 남궁운혜.

만뇌문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곳 중강현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림사의 고승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여러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소림사에선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러 추측들이 나돌았다. 황극린이 비밀리에 소림의 고승들과 비무하여 승리했다는 것부터, 이미 만뇌문의 내부가 소림사에게 점령당했다는 소문까지 말이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가주 창천뇌검은 만뇌문이 무사하다는 정보까지 알아냈다.

황극린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종종 중강현에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개방에게 비싼 돈을 주고 산 정보였기에 신뢰도가 높았다.

물론,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기에…….

“만뇌문에 가 보고 싶어요.”

창천뇌검이 은근한 눈빛으로 남궁운혜를 바라본다.

딸아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느냐 물으면, 그녀는 당황하지도 않고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런 딸아이의 말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었다. 아무리 잘난 사내라도 제 딸보단 부족한 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행동과 말은 반대된다.

대체 황극린의 무엇 때문에 저리 딸아이가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그가 목숨을 구해 줬으니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 보자꾸나. 상황이 그리 급박히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겠어. 여차하면 청성의 장문인께 물어보자꾸나.”

“네, 아버지.”

두 사람은 중강현을 떠나 청성산으로 향했다.

당연히 청성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육대세가의 가주가 직접 찾아오다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두 부녀의 미모에 모두가 숨을 죽인다.

“오랜만입니다, 남궁 가주님.”

“예, 장문인.”

두 사내는 후기지수 시절부터 안면이 있었다.

용봉지회나 각종 비무대회에서 부딪친 경험이 있다. 청성의 장문인은 매번 창천뇌검에게 한 끗 차이로 패배하곤 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악감정이 있진 않았다. 만약 패배한 것으로 악감정을 품으려면, 대체 무림에서 몇 명이나 증오해야 할까? 태을종객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해탈했다. 특히 최근에는 자신보다 30살 어린 황극린의 무위를 보면서도 그러려니 했던 태을종객이었다.

“만뇌문으로 가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딸 남궁운혜가 당장이라도 직접 만뇌문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창천뇌검도 말을 돌리지 않았다.

“만뇌문? 아, 그러고 보니…….”

태을종객은 남궁운혜를 슬쩍 바라본다.

짐작한 바가 있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는다.

“오늘 청성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예.”

남궁운혜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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