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59화 (159/316)

159화 지옥 입성

해월대사는 그 소림에서도 기재로 손꼽히며 기대를 받으며 자라 왔다.

하나를 배우면 셋을 깨우치는 무재. 그는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무공에 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자라 왔다.

하지만 해월대사는 세 번의 좌절을 겪었다.

첫째로는 현 소림의 방장이자 과거 소림의 대제자였던 심허대사(心虛大師)와의 만남이다.

그는 소림에서 천재라 불리던 해월대사보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다.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계를 지니고 있었으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였다.

어렸던 해월대사는 그와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는 데 일 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인정하면 편해졌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좌절은 사형이지만 사형 같지 않았던 그놈이었다.

당시 대사형이자 자신보다 열 살도 많은 심허대사는 재능도 재능이었지만, 노력도 대단했다. 해월대사도 노력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심허대사는 그 급이 달랐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득도한 고승처럼 면벽 수련에도 어떠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놈은 다르다.

분명 재능은 있지만, 자신보단 뛰어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거기다 노력은 어떤가?

매번 사제들을 불러 모아 놓고 소림의 수련은 형편없다느니 이런 방식으로 정말 강해질 수 있는 거냐느니 불평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해월대사는 그를 무시했다.

당장 그가 해월대사보다 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며, 그에게 동화된다면 자신 또한 그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 자명해 보였다.

하지만 해월대사가 두 번째로 좌절을 느낀 게 현재는 ‘뇌불’이라 불리는 그놈 때문이었다.

재능도 별 차이 없어 보였으며, 노력도 하지 않는 방만한 그에게 비무에서 처참히 패배했었다.

해월대사는 당시의 좌절에서 벗어나는 데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당시의 좌절은…….

황극린의 도발로 약간은 흔들릴 뻔한 해월대사였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좌절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도 함께 떠올렸다. 당연히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십팔나한을 데리고 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저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그 사람이 떠오르는군.’

감히 소림의 산문을 박차고 나가 대마두가 되어 버린 그.

황극린의 얼굴은 그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당연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무엇을 믿고 저리 날뛰는 것인가.’

화경에 오른 재능.

물론, 대단하다.

이미 해월대사는 황극린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판단하고 있다. 환을 다룰 수 있다면 화경이라 생각하는 게 적합하다. 물론, 화경에서도 또 경지가 나뉘며… 전투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해월대사는 무공의 경지가 모든 걸 설명하지 않는다고 깨달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황극린의 저러한 행동이 가소로웠다.

‘아이야, 현 무림에는 너보다 강한 이들이 참으로 많단다.’

왜 그들이 무림에서 함부로 날뛰지 않을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화경에 올랐다고 황제처럼 하고 싶은 걸 모두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강한 힘을 지닌 이들은 그보다 많은 책임을 강요받는다. 그래야지만 유지될 수 있는 질서라는 게 존재했다. 절대 고수들은 그러한 암묵적인 질서에 동의한 상태였으니까.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언젠가 자만심에 크게 발목을 잡힐 날이 올 것입니다.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황극린은 그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이왕 이렇게 오셨는데 그래도 회담을 가져야겠지요? 정식 회담은 보름 후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요즘 문파 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해월대사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 했다. 지금 그와 싸우게 된다면 무림맹에서 파견을 나왔던 철혈검대의 대주 청명쾌검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황극린은 해월대사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행동했다.

‘당장 무력으로 황극린을 무너뜨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십팔나한을 끌고 온 이유도 그것이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야 한다.

‘당장 황극린과 싸울 수는 없겠지.’

소림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다.

그와의 인연은 조금 더 지켜봐도 될 것이다. 물론, 보름은 너무 길다.

“사흘 뒤에 뵙도록 하지요. 저희가 직접 만뇌문으로 찾아가겠습니다.”

황극린은 해월대사가 칠 주야 정도를 말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사흘 뒤라…….

“그러시죠.”

청성파의 원로 노해일룡이 깊은 한숨을 토해 낸다.

이제까지 황극린의 행보로 보았을 때, 겁도 없이 여기서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소림과 만뇌문이 전투를 벌인다면 청성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현재 청성이 가진 고민이었다.

다행히도 당일 바로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소림에서 온 십팔나한은 건재했으며, 두 문파 사이에서 냉기가 풀풀 날리고 있었기에, 싸움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였지만 말이다.

황극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떠나간다.

노해일룡이 해월대사에게 묻는다.

“소림은 정녕 만뇌문과 싸울 생각입니까?”

“싸움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해월대사는 여유를 되찾았다. 그의 뒤에는 십팔나한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소림의 최정예들의 모습을 본 노해일룡이 긴장한다. 청성에도 청성십검(靑城十劍)이라는 최정예가 존재한다. 하지만 노해일룡은 십팔나한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청성십검은 아직 소림의 십팔나한엔 미치지 못한다.

“하나, 만뇌문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십팔나한은 무림의 안녕을 위해서 행동할 뿐입니다.”

소림은 살생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나한전과 십팔나한은 스스로를 희생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언제든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부디 평화롭게 해결되었으면 좋겠군요.”

“아미타불, 그러기를 바랄 뿐입니다.”

해월대사가 물러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평화롭게 해결할 수 없다는 건 황극린을 보고 확실히 깨달은 상태였다.

* * *

약조했던 사흘이 지났다.

해월대사는 십팔나한을 이끌고 만뇌문이 터를 잡았다던 청성산 북쪽 절벽에 도착했다.

청성산도 숭산 못지않게 토양의 지맥이 발달했다.

만뇌문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수련을 위해서일 것이다.

‘문파를 키우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뇌불.

무림공적이라 불렸던 그놈은 과거 소림사에서도 상당히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뇌불이 세력을 키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뇌불이 그런 선택을 했다면 소림은 전력을 쏟아부어 뇌불을 처단했으리라.

지금 뇌불은 죽고 없지만, 그가 남긴 흔적이 발아하여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혈풍뇌전신공은 역천의 무공이다. 뇌불이 남긴 의지는 말살되어야 한다.

‘당신이 남긴 인연이 여기까지 닿았구려.’

해월대사는 뇌불을 떠올렸다.

두 번째 좌절을 주었던 사내. 참으로 태평하게 걱정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대사형은 뇌불을 어여삐 여기셨다. 당시 소림의 원로들도 뇌불의 성격을 다 받아 주었다. 이미 인연이 되었기에 그들은 뇌불을 쳐 내려 하지 않았었다. 뇌불이 참회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을 뿐.

그렇기에 인연이 무섭다.

이제는 나한전주가 된 해월대사는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으려 한다. 만뇌문에게서 혈풍뇌전신공을 회수하면 이제 그와의 인연은 끝이 난다. 그는 소림의 대표로 뇌불과 소림의 악연을 끊으려 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실타래 하나가 완전히 풀릴 것 같구나.’

해월대사는 직감했다.

혈풍뇌전신공을 회수하고, 악연을 끊어 낸다면… 그는 한 단계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진의 입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십팔나한 중 한 명이 보고한다.

해월대사는 조용히 절벽에 손을 댄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또한 진에 일가견이 있다. 진이라는 것은 자연을 속이는 행위다. 자신 또한 자연과 동화된다면 풀잎과 바람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해월대사가 미소를 머금었다.

‘이곳이로군.’

약조한 사흘째가 되었지만, 황극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법을 믿고 안에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

하나, 나한전주인 자신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오만방자함의 근본은 이 진법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황극린은 과거의 뇌불과는 달리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화경에 이른 절대 고수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대부분 그러했다. 남의 것을 취한다면 자신의 것을 내어 줘야 한다. 무림에는 강자들이 즐비하다.

“아미타불.”

해월대사가 불호를 외자 십팔나한이 일자로 쭉 정렬한다. 그리고 서로의 등에 손을 얹은 채로,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십팔나한의 내공이 해월대사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십팔나한의 무서운 점.

모두가 같은 내공심법을 익혔다. 그들은 개개인의 무력도 뛰어나지만, 십팔나한으로서 모였을 때,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

구오오오오-!

막대한 내력이 쏟아지자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절벽의 틈새가 갈라진다. 보랏빛을 방출해 내는 기묘한 공간의 비틀림이 시야를 간지럽힌다. 해월대사가 눈을 떴다.

‘확실히 대단한 진이긴 하군.’

그러나 이미 입구는 열렸다.

해월대사와 십팔나한은 당당히 진 안으로 발을 디뎠다.

“…….”

소림의 정예들이 자취를 감췄을 때,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황극린이었다.

‘들어갔군.’

나한전주와 십팔나한이라면 어쩌면 만뇌문의 진을 통과할 수도 있었다.

제갈창해가 그리 말했다. 모든 진은 완벽하지 않다고 말이다.

또한, 제갈창해와 제갈소희는 말했다.

황극린과 같은 특별한 ‘감각’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최소한 일 년은 진법 안에서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제갈세가의 와룡이 만든 진과 배교의 악랄함 그리고 두 사람의 천재성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진법이다. 거기다 황극린은 유일하게 그 진을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십팔나한과 사대금강 중 하나인 해월대사는 덫에 빠졌다.

황극린은 그들을 도륙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황극린은 그들의 진을 조금씩 빼 놓으며,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다. 물론, 아무리 황극린이라도 십팔나한과 해월대사가 작정하고 합공하면 어렵긴 하겠지만 말이다.

황극린은 그러한 수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소림사의 힘은 이게 다가 아니다. 거기다 소림의 고승들을 학살한다면 더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황극린이 원하는 결말은 그게 아니었다.

‘진의 위력도 알아볼 겸.’

황극린의 기척이 사라진다.

무영심결을 토대로 한 역사상 최고의 살수 유령의 은형술이 펼쳐진다.

그 또한 절벽의 틈 속으로 몸을 맡겼다.

얼마 뒤.

그 위험성을 드러내며 보랏빛으로 반짝이던 틈새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 *

“아미타불!”

“아미타불……!”

곳곳에서 불호를 외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땅에서는 망자가 일어서며, 하늘에선 음울한 귀조(怪鳥)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대, 대체 이곳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이라는 것은 일정한 규칙으로 만들어진다.

메마른 땅에서는 그와 반대로 수(水)의 기운이 충만한 환상을 만들어 내며, 한파가 불어닥치는 땅에서는 용암이 터져 나오는 화산 지대가 펼쳐진다. 물론, 그것도 중원 최고의 진법이라 불리는 것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며 보통은 방 한 개 크기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만뇌문이 만들어 놓은 지옥은 달랐다.

평생을 수양과 수련으로 정신력을 갈고닦은 십팔나한들이 공포에 떨었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괴이(怪異)의 의지에 모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멈춰 섰다.

‘이건 차원이 다르다.’

불가의 경전과 소림의 비급들을 보관해 놓은 장경각(藏經閣).

그곳의 진법도 이곳처럼 방대한 기운을 품고 있지 않았다.

‘팔대지옥(八大地獄)…….’

해월대사는 지옥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나, 나한전주님!”

십팔나한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해월대사는 그에게 출구를 확보하라는 명을 받고 움직였다.

“어떻게 됐느냐?”

“아, 아, 아미타불……! 이, 입구가 사라졌습니다.”

“뭐라-!”

해월대사와 십팔나한이 겨우 통과했던 지역을 돌아서서 다시 돌아간다. 하지만 해월대사는 기묘함을 느껴야 했다. 분명히 되돌아가는 것인데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소한 장소로 향하는 듯한…….

‘방향을 잃었다.’

말이 안 된다.

해월대사는 극도로 집중하여 동서남북을 기억했다.

하늘에 떠오른 푸르스름한 태양의 위치 또한…….

‘……!’

해월대사가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떴다.

“태양이… 두 개……?”

대체 이런 진법은 어떤 사상을 품어야 만들 수 있는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괴이한 장소였다. 저 멀리 보이는 노르스름한 폭풍이 점차 가까이 오고 있었다.

“십팔나한진을 펼친다.”

결국, 해월대사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 지옥 같은 진을 타파하는 방법은 소림 최고의 진인 십팔나한진으로 극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십팔나한 모두가 힙을 합친다면 힘으로 진을 깨고 탈출할 수 있으리라. 진을 통과하는 건 이미 반 시진 전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우우우우웅-!

십팔나한이 펼치는 십팔나한진.

공간의 음울함과 십팔나한의 정기(正氣)가 부딪친다.

순간적으로나마 공간이 떨린다. 해월대사는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쿠르으으응-!

쿠릉!

공간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

해월대사가 하늘을 보고 입을 벌리고 말았다.

“태, 태양이 하나 더…….”

마치 인간의 동공과 같이 끝을 알 수 없는 형상을 품은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본래 제갈소희와 제갈창해가 만든 진은 두 개의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환상을 구축하는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황극린은 모든 진법을 ‘감각’으로 통과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진법의 천재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역대 최악의 진을 만들어 냈다. 세 개의 태양이 발산해 내는 기괴한 기운이 해월대사와 십팔나한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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