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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57화 (157/316)

157화 거대한 변수들

“근데 정말일까?”

“뭐가?”

“황극린, 그 사람이…….”

“어허, 함부로 말하지 말게. 그분은 이제 우리 주군의 주군이 아닌가?”

“…….”

북경에서 해결사로 유명했던 호리도 좌혼지와 천풍검객 광세웅.

좌혼지는 황극린을 마지못해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천풍검객은 조금 달랐다. 처음엔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황극린의 명성을 땅에 처박으려 했었다. 이유야 벌것 없다. 솔직히 말하면 재밌으니까. 그 외에도 갑자기 잘나가게 된 황극린이 아니꼬워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단번에 바뀌었다.

“주군이라니… 진심인가?”

좌혼지는 광세웅에게 이런 면모가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랜 세월 함께 해결사로 살아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진정한 충심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낭인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진심이지.”

“왜?”

“왜냐니?”

“왜 진심으로 그를 모시려 하는 것이냐 말일세.”

광세웅은 이 감정을 제대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처음엔 황극린이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낭인의 경험으로 그가 실력도 쥐뿔도 없는 주제에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본 황극린은…….

“그분의 권격에 맺힌 뇌광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군. 압도적인 힘. 내가 왜 무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낭인이 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았어. 그리고 자네도 봤지 않은가? 구 대협께서 얼마나 강해지셨는지 말이야.”

“…강해졌더군.”

광견살검 구자광.

그 또한 황극린의 밑에 있으면서 상당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본래 광세웅이나 좌혼지는 광견살검보다 반 수 정도 아래의 실력이라 생각하면 됐지만, 합공한다면 몇 합 내로 광견살검을 이길 자신이 있었었지만, 이번에 비무를 해 보고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광견살검은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냈다.

낭인의 삶을 살아가며, 정치에 맛들려 살아가던 북경의 해결사들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요인이 합쳐져서 광세웅은 변화했다.

아니, 변하고자 했다. 이대로 정치질만 해서 살아가서는…….

‘나도 청명쾌검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종남의 장로이면 뭐 하나?

무림맹 전투대의 대주면 무엇 하나?

결국, 패배 한 번이면 쌓아 놓은 명성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늦은 나이긴 해도 광견살검도 새롭게 살아가고 있다. 광세웅이라고 하여 새롭게 살아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광세웅의 말을 듣고 있던 호리도 좌혼지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오랜 친우의 말이 맞았다.

“후우, 그런데 우리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사실 그걸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지.”

“…….”

“그래도 노력은 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의 장점을 활용 해가면서 말이야.”

“그건 그렇군.”

황극린이 그들에게 맡긴 일은 간단하다.

여러 소문을 북경에 퍼트리는 것. 소림사에 당장 큰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작은 변수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만뇌문이 정말 황실과 관련이 있을까?”

“황 장로님이 거짓을 말할 사람이라고 보나?”

“그건 아니지.”

“그럼 우리는 해야 할 일만 하면 된다네.”

황극린이 망해 버리는 모습을 보고자 북경에서 중강현으로 달려왔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았다. 그의 압도적인 힘과 가능성을 말이다. 솔직히 만뇌문이 소림사와 정면으로 승부하면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모습은 보여 주지 않으리라.

“후우,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가 없군.”

아직은 미적지근한 친우의 반응을 보며 광세웅이 입을 연다.

“그리고 생각해 보게.”

“뭘?”

“대체 만뇌문의 문주는 누구일까?”

“응?”

“내가 원래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가? 어쩌면 문주는… 과거 무림을 뒤흔들어 놓았던 그 뇌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네.”

“설마!”

“쉿, 이건 가능성에 불과하다네. 그리고 지금 밝혀져서는 안 되지. 최소한… 만뇌문이 구파일련과 육대세가에 확실히 그들의 힘을 드러낸 후에야 밝혀져야 하네.”

“자네, 진심이로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어차피 우리는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목숨이니까. 과거처럼 살아갈 수만은 없지.”

광세웅의 결의에 찬 얼굴.

무림초출이었던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당시의 그는 여느 무림인들과 마찬가지로 협의를 바라보았고, 정의를 추구했다. 물론, 과거와는 조금 다른 결의일지도 모르겠지만… 왜인지 친우의 감정에 좌혼지도 전염되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 것 같다.

“좋아.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는데 아무렴 어떤가? 가세!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 보세!”

“후후, 그래야 내 친우 좌혼지지.”

그렇게 두 사람은 주군의 주군인 황극린의 명을 받고 북경으로 떠나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만뇌문이 망하기를 바랐던 두 사람은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 * *

“소림사가…….”

합비(合肥).

안휘성의 성도이자 육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가 자리를 잡은 장소였다. 안휘성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거대한 장원의 중심부에선 한 중년 사내와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한 느낌을 자아내는 여인이 마주 앉아 있었다.

“아무리 소림사라고 해도 이런 행동은 아니라고 봐요.”

평소 말수가 없고 자신의 의견을 도통 드러내지 않는 남궁운혜였지만, 지금은 왜인지 열성적으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있었다. 대룡상단의 공세를 손쉽게 넘긴 만뇌문이었다. 거기다 남궁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다고 황극린은 누누이 말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대금강 중 하나인 해월대사와 십팔나한 전원이 중강현으로 나아가고 있단다.

남궁운혜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만뇌문이 멸문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이 혈풍뇌전신공을 내어 준다면 그나마 평화롭게 끝낼 수도 있겠지만, 만뇌문이 그런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그런 모습은 보기가 싫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남궁세가는 육대세가에 속해 있었다. 육대세가와 구파일련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한다. 남궁세가의 참전으로 인해 정파 무림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었다. 대룡상단과의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아버지.”

“운혜야, 너도 알겠지만 이번 일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 혼자라도 가겠다고…….”

“어허!”

소중한 딸이 혼자 그런 위험한 곳에 간다?

절대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안 그래도 화음현에서 그녀가 납치당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열불이 치솟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딸 바보인 창천뇌검이 그걸 허락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넌 그 아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이더냐?”

남궁운혜가 정말 그렇다면…….

창천뇌검은 확실하게 선택할 것이다. 솔직한 말로 그녀가 평생 혼인이나 할지 걱정되었다. 사내에겐 관심도 없던 그녀였다. 아니, 그녀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딸 아이가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얻게 해 준다.

그것이 아비의 마음이다.

하지만 남궁운혜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뇨.”

“음?”

“그는 지금 죽어서는 안 돼요. 그것뿐이에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감이 좋았던 남궁운혜였다. 그녀의 직감이 때로는 냉철한 통찰과 분석을 초월하는 경우도 있었다.

“네가 가지 않으면 황극린 그 아이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막상 남궁운혜는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녀 또한 합비로 돌아온 뒤 피나는 수련을 했다. 확실히 실력을 키웠지만, 황극린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가고 싶어요.”

창천뇌검은 그녀의 말을 듣고 결정했다.

“좋다. 가자.”

“정말인가요?”

사실 아버지가 허락해 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그는 결국 남궁운혜의 말에 따라 주었다. 창천뇌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나와 네가 그냥 외출하는 것이다. 일단 정체를 숨기고 중강현으로 간다. 물론, 내가 그곳에서 만뇌문의 편을 든다면 남궁세가가 움직인 게 되겠지만… 태상가주께서 계시지 않으냐?”

남궁세가의 태상가주.

전대의 천하칠대고수.

무림맹의 부맹주직을 지냈던 그는 이제 금분세수 하여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창천뇌검은 어찌 보면 낭만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인 벽력뇌제(霹靂雷帝)는 그것을 걱정했지만, 창천뇌검의 무(武)의 재능 덕분에 결국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었다.

“죄송해요. 이런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요.”

“허허, 내가 허락하고 나니 사과하는 것이냐? 됐다. 나 또한 보고 싶었던 참이다. 황극린 그 아이가 어떻게 일을 해결하려 할지 말이다. 솔직히 육대세가의 다른 가주들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겠지만, 직접 움직이는 이는 나밖에 없겠지.”

그렇게 창천뇌검과 남궁운혜가 움직였다.

두 사람은 황극린이 의도한 변수는 아니었지만, 만뇌문에게는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 * *

황극린은 먼 훗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물론, 과거가 바뀌었기에 변화한 미래도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제갈창해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녹림의 총채주가 되었으며, 황극린과도 연을 맺었다. 비동에서 쓸쓸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뇌불 또한 황극린으로 인해 살아났다.

작은 변수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황극린이 해 왔던 모든 것은 거대한 변수였다.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던 것이나 북해에 찾아가서 영물의 내단을 빼앗아 왔던 것. 그리고 사망교의 지흉을 잡아 죽였던 것까지 크게 보면 미래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다.

그렇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미래라는 게 있다.

황극린은 그중 하나를 꺼내기로 했다.

‘내가 무림맹에 한창 쫓기던 중에 정파와 사파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었지.’

혈마교를 주축으로 한 사흑련의 중원 진출 선언.

아마도 무림맹과 크고 작은 암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황극린은 당시에 흑살문의 소속이 아니라 그들에게 버림받아 쫓기는 신세였으니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아는 게 있었다.

‘혈마교가 진짜로 노리는 건 천화련이었다.’

천화련은 명실상부 정파 무림에서 단일 문파로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자신들을 천마신교라 칭하던 마교가 과거에는 단일 문파로는 최고라 불렸던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먼 과거였다. 천화련이 만들어진 이래로 그들의 명성은 중원에서 2등으로 밀려났다.

천화련과 혈마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황극린은 그러한 미래를 알고 있었으며, 그 미래는 정파 무림 자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이용할 수 있겠지.’

소림사가 아무리 자신들의 무공을 회수하려는 의지가 강하더라도, 외부의 적이 중원에 침투한다면 소림사는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린다. 만약 사흑련이 무림맹에 야욕을 드러내는데도 전력을 중강현에만 투입하고 있다면, 제아무리 소림이라 하여도…….

‘물러설 수밖에 없겠지.’

전면전으로 간다면 만뇌문에 불리하다.

아무리 황극린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혈마교의 중원 진출의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

그걸 이용한다.

최소한 석 달만 버틴다면 소림사는 알아서 물러날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놓긴 했지만, 그건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둘 생각이다. 그리고 황극린 혼자서는 안 된다. 뇌불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거지.’

사마명의 말에 따르면 뇌불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북경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도 중원에 있다면 아마 만뇌문의 소식을 들었으리라. 조만간 그와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도 만뇌문에는 진심이었으니까. 물론, 그가 온다고 상황이 긍정적으로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긴 했다. 뇌불은 무림공적이기도 하고 소림사에 상당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니.

‘뭐, 지금 당장은 오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

황극린은 서신을 작성한 뒤 붓을 내려놓았다.

개방과 하오문을 통해 서신들이 비밀리에 전달될 것이다.

소림사의 대규모 전력은 거의 중강현에 도착한 상태라고 했다.

최소한 한 번은 만나야 했다. 서신으로 대화하는 것과 실제로 만나는 것은 다르다. 만약 소림사가 물러날 여지가 있다면, 평화롭게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말이다.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번 만나러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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