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결단
처음 한 번의 공격은 막아 낼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막아 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라 할 수 있었다. 뇌룡이 포효하는 듯한 뇌격. 청명쾌검 장서이는 이러한 공격을 처음 당해 보았다. 종남의 장문인이 휘두르는 검을 받아 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는 찰나의 시간 동안 자신이 무엇이랑 싸우는지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의 주먹에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과도 같은 거대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종남의 장로이자 철혈검대의 대주인 장서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벼락……. 이걸 베어 낸다면… 내 승리다!’
왜 그런 마음을 품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장서이는 이걸 막아 내면 승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쾌류무영선을 펼쳤다. 마치 자연의 분노처럼 쏟아지는 뇌격에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만심이 넘쳤다고 해도, 눈앞에서 쏘아지는 거대한 힘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베어 낸다. 기필코 벤다!’
쾌류무영선은 인간의 모든 혈도를 공격하는 쾌검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거기에 검강까지 조화하여 상대가 대응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완벽히 제압하는 무공이다.
벼락?
황극린의 주먹에 담긴 뇌격은 한 번이 끝일 것이다.
그것 말고는 저 힘이 설명이 안 된다.
‘놈은 첫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니 막아 낸다.
베어 낸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한다. 다섯 수를 양보해 주겠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참으로 태세 전환이 빠르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적응력이 빠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하단전의 내력을 급격히 끌어 올리자 세맥이 끊어질 듯이 고통스럽다.
그의 검에는 청명한 색의 검강이 맺혀 피어올랐으며, 수십 가닥의 선들이 뇌격을 베어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완전히 방비조차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황극린의 뇌격이 베이는 것을 느낀 장서이는 희열을 느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콰르르를-!
사아아아아악-!
첫 번째 격돌.
장서이는 비룡십팔쾌검의 최종 초식을 펼쳐 가며 겨우 황극린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막아 냈다. 물론, 완벽히 막아 낸 것이 아니다. 그의 얼굴엔 고통이 가득했다. 뇌격을 베어 낸 검에는 아직도 뇌전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손과 발이 달달 떨린다.
“크, 크크… 내공을 모두 소모한 일격이라…….”
딴에는 여유를 보이려 했던 것 같았다.
청명쾌검이 최대한 손이 떨리는 걸 숨기고 검을 치켜세웠다. 자신은 아직 굳건하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하려는 것이 대단하긴 했다.
“이젠 끝…….”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장서이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대체 무엇……!”
황극린은 장서이랑 대화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의 주먹에선 다시금 뇌룡이 포효하고 있었다. 심지어 처음의 광채보다 더욱 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지? 처음 공격이 끝이 아니었나? 저놈의 내공은 얼마나 많은… 아니, 내공이 많다는 느낌보다는…….
황극린은 그의 의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왔을 뿐이다.
콰르으으응!
황극린은 얼굴을 공개했던 시점부터 시간을 끌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혈풍뇌전신공이라는 무공은 과거에도 지금도 패도적인 무공으로 이름을 날렸다. 뇌전을 막아 내지 못하면 대부분 일격에 패배하곤 했다. 속성의 내력을 지닌 이들과 싸우는 게 난감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뇌룡이 다시 한번 공간을 달구었다.
처음 한 번은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청명쾌검 장서이에겐 다음은 없었다.
‘천재지변(天災地變).’
물론,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주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검을 들고 쾌류무영선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인간은 하늘이 내린 진노에는 도망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던가?
쿠릉-!
뇌격이 그의 검에 닿았고, 팔과 다리를 거쳐 오장육부까지 전해진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순간 장서이는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이놈은…….’
진짜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비무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당연하게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이 큰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역시! 우리 장로님은 최강이다! 크하하하!”
광견살검은 황극린에 대한 칭찬을 마구 쏟아 냈다. 당연히 아무도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와 내기를 했던 북경에서 온 두 낭인은 멍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쓰러진 장서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공격은 뭐지? 대체 얼마나 강하면 청명쾌검을…….’
‘진짜… 화경의 경지란 말인가……!’
광견살검이 사악한 미소를 머금고는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아직 끝내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각오는 했지?”
“……!”
“목을 내놓아라.”
진짜 목을 베겠다는 듯이 광견살검이 다가왔다.
‘어쩌지?’
‘광견살검을 합공한다면 승산이 있어. 하지만…….’
황극린이 가세한다면 상황은 단번에 역전된다. 청명쾌검도 막지 못한 그의 권격을 자신들이 막아 낼 수 있을까? 아니, 그의 뇌전을 맞고 견딜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낭인들은 판단이 빠르다.
이제껏 해결사로서 강호에서 살아온 세월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납작 엎드려야 한다. 두 사람이 허리를 숙였다.
“우리가 졌습니다.”
“살려 준다면 뭐든… 뭐든 하겠습니다.”
광견살검도 솔직히 낭인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뭐, 결과가 나온 시점에서도 헛소리를 내뱉는다면 진짜 죽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저렇게 납작 엎드리니…….
“뭐든 하겠다고 했겠다?”
“…….”
두 낭인은 광견살검의 광기 어린 눈빛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 * *
비무의 결과는 황극린의 승리.
그 이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종문의 문주 악무광이 나타났다. 그는 청명쾌검이 청탁을 빌미로 많은 협박을 했다는 걸 강호에 공표했다. 청명쾌검의 명성이 건재한 상태였다면 그의 발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명쾌검의 명성은 바닥을 쳤다.
자신감 있게 다섯 수를 양보하겠다느니 하더니 고작 두 번 만에 황극린에게 패배했다. 솔직히 비무를 관전한 이들은 황극린이 무식할 정도로 강한 것인지, 청명쾌검이 예상보다 약한 것인지 긴가민가했지만… 확실한 건 황극린이 이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청성파에선 황극린이 화경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정식으로 선언했다.
그들의 선언으로 인해 황극린의 이름은 또다시 무림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활약은 소림사에도 전해졌다.
“청명쾌검이 패배했다라…….”
소림을 지키는 사대금강(四大金剛) 중 하나이자 나한전의 전주인 해월대사가 서신을 받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가 왜 비무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임무는 소림사와 만뇌문을 중재하는 역할이 아니었던가? 먼저 중강현에 가더니 보기 좋게 황극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강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중원 전역에서 만뇌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특히 혈풍뇌전신공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안평대사는 언제 중강현에 도착하는가?”
“아마 칠 주야 이내로 중강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가 간다고 해도 혈풍뇌전신공을 반환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군.”
황극린의 의도는 뻔했다.
소림사의 정중한 요청에도 그들은 몇 번이나 무시했다.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중재자들의 명성을 박살 내 버렸다. 만약 소림의 뜻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의 자존심이 구겨지고 있었다.
해월대사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장문인이나 다른 사대금강과의 회담을 통해 혈풍뇌전신공은 꼭 받아 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 전권은 해월대사가 가지고 있었다.
“방장님께서 수행하시는 데 방해할 수는 없겠지.”
이대로 황극린의 명성만 높여 주다간 의외의 상황과 마주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빠르게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모두가 소림사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고 여기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
“십팔나한을 소집하거라.”
“……!”
“나도 중강현으로 가겠다.”
소림을 지키는 거대한 네 기둥 중 하나인 사대금강 중 하나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무림은 떠들썩해질 것이다. 하물며 십팔나한도 함께 움직인다? 평화로운 무림에서 소림의 정예가 이리 대규모로 움직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예, 사부님.”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 중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정파 무림뿐 아니라 사흑련에도 전해지게 될 것이다.
‘혈풍뇌전신공, 참으로 탐나는 무공이로군.’
과거에는 그 무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기필코 천하제일의 무공을 손에 넣을 것이리라. 그리고 소림의 금강불괴체신공과 결합한다면…….
‘사대금강 전원이 달마 조사께서 오르신 경지에 오를 수도 있겠지.’
모두가 소림을 태산북두라 생각했다.
소림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해월대사는 지금의 소림사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각 지역에 똬리를 튼 용들이 얼마나 대단한 전력을 모아 놨을지를 말이다. 그들에게 압도적인 소림의 위용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혈풍뇌전신공이 필요하다.
그걸 마공이라 말한 적도 있었지만, 해월대사 자신이라면 마공서에서 뻗어 오는 심마의 손길도 뿌리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 평생을 수행해 오지 않았던가?
황극린의 승리.
분명히 최소한 중원에서 한 달 이상은 난리가 날 소식이다.
그 이야기는 금방 묻히고 말 것이다.
분명히 황극린이 화경에 오른 것과 철혈검대의 대주에게 승리한 건 대단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몇십 년 동안 잠잠하던 소림이 움직이는 게 더욱 중원에서는 중요할뿐더러 더욱 화제가 될 것이다. 해월대사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소림이 진심이라는 걸 보여 줬는데도 거역한다면…….’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뇌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 * *
“장로님! 큰일 났습니다!”
광견살검.
그는 황극린이라면 어떤 누가 와도 깔끔하게 이겨 줄 것이라 여겼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무림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가 않았다. 소림과도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기가 너무 일렀다.
광견살검이 예상한 상황은 이러했다.
당연히 처음엔 십팔나한 한 명 정도를 보낼 것이고, 그다음은 십팔나한을 비롯한 무승들을 여럿 보내리라. 그렇게 지나고 지나다 보면 결국 사대금강 중 하나가 황극린과 싸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소림사도 위대하신 장로님의 실력과 품성을 알게 될 것이며, 무림에서도 장로님의 편을 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최종 흑막이 등장해 버렸다.
사대금강 하나로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인데…….
“사대금강과 시, 십팔나한 전원이 중강현으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래?”
황극린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상보다 훨씬 소림사가 적극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리 당황할 것도 아니다. 어차피 지나가야 할 과정이었다. 이미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진법을 완벽히 개조하였고, 쇠뇌와 같은 전력 병기를 구축해 놓았다.
“어, 어떻게 하죠?”
분명 그들이 와도 생존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만뇌문이 그들의 등장에 숨어 버린다면 강호에서 쌓아 올린 명성은 모두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정면으로 싸우자니 만뇌문의 전력으로는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제아무리 황극린이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들, 그들 전원을 상대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소림사는 전쟁하러 오는 게 아니다.”
“그, 그런가요?”
“물론, 싸울 수도 있겠지만.”
“허업!”
황극린은 소림사가 가진 자존심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혈풍뇌전신공에 진심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십팔나한과 사대금강이 황극린을 협공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첫 만남에서는 말이다.
‘살수로서 싸우는 게 효율적이긴 하다.’
황극린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살수의 강점을 살린다면 어찌어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다만, 그렇게 되면 만뇌문 자체가 뇌불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었다. 살수의 방법은 이 상황에선 애매하다.
‘만뇌문도 무림공적이 되면 문파를 세운 이유가 사라지겠지.’
그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소림사가 서신을 보내올 때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다.
“구자광.”
“예!”
“네가 거둔 낭인들이 북경에서 발이 넓다고 했던가?”
“예, 그놈들이 입을 터는 것 하나는 기똥차기에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 뭐, 지금은 제 수하가 됐지만요. 크흐흐!”
구자광이 대번에 표정이 돌변해서는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들을 데려와라.”
“예,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