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54화 (154/316)

154화 의도

그야말로 귀공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듯한 사내의 외모였다. 꾸민 듯하면서도 꾸미지 않은 것 같은 행색은 그의 주변에 맴도는 분위기를 더 신비롭게 형성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꾸민 것도 아니다. 중원에서는 몇몇 사내들 중 이목구비를 더 뚜렷하게 하려고 화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내는 단지 대충 머리를 쓸어 올린 것일 뿐이었다.

어떻게 입었느냐.

머리의 형태가 어떻냐.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의 완성은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얼굴만 떼어 놓고 본다면 길목에서 흔히 마주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얼굴 하나로 다른 것들이 더 빛이 나 보이고 있었다. 몇몇 이들이 그의 얼굴에 당황하고 있었지만, 종남의 청명쾌검은 크게 당황한 기색은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엔 살짝 놀라긴 했지만, 인간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진 않는다.

거기다 그는 오히려 잘생긴 놈들을 질색한다. 출신 성분이 좋은 것들은 그만한 자만을 부리며, 얼굴이 잘생긴 것들은 그것 나름의 얼굴값을 한다. 만약 출신 성분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다면… 거기다 무공 실력까지 좋다면?

철혈검대의 대주 청명쾌검은 후기지수 시절부터 그러한 이들을 많이 봐 왔다.

특히 사내를 보고 있자니 젊을 적의 남궁세가주가 떠오른다. 현재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어 무림맹에서도 큰소리를 떵떵 치고 살아가는 놈. 타고난 혈통으로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청명쾌검으로선 그런 놈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놈이 남궁세가주도 아닐진대 청명쾌검이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후기지수 시절이었다면 조금 당황하긴 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무림의 큰 어른이었다. 철혈검대라는 무림맹의 정예 무력대를 지휘하는 수장이기도 했다.

“뭐 하는 놈이냐?”

“지나가던 협객이라 할까.”

“뭐?”

어이가 없다.

지나가던 협객이라고?

“그 정도면 되겠군.”

“미친놈이군.”

청명쾌검은 그를 무시했다.

자신이 속삭인 말을 어떻게 똑같이 따라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비종문주를 쫓아내야 한다. 이래서 아무것이나 연을 맺으면 안 된다. 오래전에 조금 잘해 줬다고 이렇게 찾아와서 뭐라도 내놓으라는 듯이 행동하는 게 참으로 역겨웠다. 능력이 되지 않으면 그냥 구석에 박혀 쥐 죽은 듯이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비종문주, 가시오.”

단호한 청명쾌검의 말에도 비종문주는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세차게 떨면서도 억지로 버티고 있다. 거기다 왜인지 슬금슬금 귀공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 비종문주가 끌고 온 지원군이셨군.’

상황이 이해가 된다.

청명쾌검은 비종문주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전형적인 새가슴으로, 그 혼자서 이렇게 대뜸 자신을 찾아올 성격이 아니었다. 어디서 용기가 생겼나 싶었는데, 뒤에 있는 사내를 믿고 행동한 것이다.

‘내가 처음 보는 놈이라면…….’

당연히 무림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 터.

무공이 꽤 고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명쾌검의 입장에선 아직 후기지수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출신이 어디냐였지만, 자신이 처음 보는 후기지수라면 이제껏 무림에서 활약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출신 가문도 별것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 비종문주, 저 사내를 믿고 날 찾아온 것이오?

“그, 그게……!”

비종문주는 정곡을 찔렸는지 동공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사내가 나선다.

“비종문주에게 약조한 것이 있다고 들었소만.”

“나는 그에게 약조한 것이 없다.”

“비종문의 소문주에게 무림맹의 자리 하나를 약조했다고 들었소.”

“…….”

청명쾌검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혈검대의 대원들이 분노한다.

“감히 대주님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분이 누군지 아느냐!”

“종남의 장로이자 철혈검대의 대주가 아니오?”

“그걸 알면서도……!”

“그의 신분이 그렇다고 과거의 일이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이오?”

사내는 청명쾌검이 부정을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철혈검대 대원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노옴!”

“그만. 내가 해결하지.”

청명쾌검의 말에 대원들이 겨우 검을 뽑으려던 것을 멈춘다.

그들은 임무를 받고 중강현에 왔다. 이곳에서 다른 이유로 사고를 칠 순 없었다. 물론, 저 젊은 사내를 죽여 버려도 깔끔히 뒤처리하는 것이야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굳이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조용히 해결하면 된다.

조용히.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

청명쾌검이 비종문주를 바라본다.

“문주, 어떠시오?”

“그것이… 그게…….”

대뜸 청명쾌검을 찾아올 때는 언제고, 저리 떨어 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같잖았다. 힘이 없는 이들은 주제에 맞게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좋소.”

귀공자가 여유롭게 말한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는 청명쾌검을 지나쳐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본 청명쾌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어 댔다. 그런 다음 비종문주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알아 두시오.

“……!”

비종문주는 자포자기하여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객잔 안으로 들어간다. 철혈검대의 대원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2층의 창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단목패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뭐지? 대주님이 비종문주의 청탁을 들어준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철혈검대의 대주가 뭐가 아쉬워서 청탁을 받겠는가? 거기다 더 의문인 것은…….

‘저 사내는 누구지?’

설령 철혈검대의 대주가 청탁을 받았다고 치자. 하지만 막무가내로 저리 찾아온다면 일을 해결하긴커녕 오히려 악화된다. 무림맹에서 종남파의 입김은 강했으며, 철혈검대의 대주 또한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궁금해서 미치겠군.’

당장이라도 방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엿듣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 * *

세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 지 반 시진 정도 지났을까?

끼이익.

문이 열렸다. 철혈검대의 대원들은 지시가 있었기에 딱히 대기하거나 하진 않았고, 단목패만 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왔다.’

사내와 비종문주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비종문주는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사내의 표정은 태평했다. 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던 걸까? 정말 대주께서 청탁을 받았던 걸까? 여러 의문이 남았지만,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순 없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청명쾌검이었다.

그는 평소의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쾌한 듯한 눈빛이었다.

“대주님.”

“그래, 패야.”

“대체 무슨 일입니까?”

“비무를 청하더군.”

“비무요?”

“그래, 비무에서 패배하면 죄를 인정하라나?”

‘왜 굳이…….’

단목패의 머릿속에 당연한 의문이 떠올랐다.

왜 대주께서는 비무를 받아들인 걸까? 비무를 하는 것도 서로 급이 맞아야 한다. 청명쾌검이 무림에서 가지는 배분을 생각해 볼 때, 처음 보는 사내와 비무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극린이더군.”

“예?”

“비종문주가 데려온 저 사내 말이야.”

“황극린!”

단목패 또한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황극린의 빼어난 외모가 가려져 있다고 했다. 물론, 실제로 본 사람이 적어 그리 신빙성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단목패는 그 소문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 비무를 하실 겁니까?”

“왜? 내가 질 것 같나?”

“당연히 아닙니다. 전 임무가 걱정되어…….”

“우리 임무가 무엇이냐?”

“소림과 만뇌문을 중재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그건…….”

당연히 만뇌문이 소림사에 굴복할 것이다.

무림의 이치. 아니, 세상의 이치였다. 힘이 있는 자들의 말은 힘이 없는 자들의 말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거기다 소림사는 명분까지 가지고 있었다.

“만뇌문이 결국 소림에게 무공을 내어 줘야 하겠지요.”

“하지만 소림사는 일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지. 이전까지 아미파와도 대립했었으니 소림이 직접 나서기에는 체면상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무림맹에 공식적으로 중재를 요청한 것이지.”

청명쾌검이 말을 이어 간다.

“그래서 우리의 임무는 무엇이냐?”

단목패가 잠시 고민하다가 적절한 답을 찾아낸다.

대주가 원하는 답을 말이다.

“만뇌문을 빨리 설득하여 정파 무림의 분란을 막는 것입니다.”

“그렇지.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비무를 받아들인 이유.

이유야 어찌 됐든 황극린의 기를 죽여 놓을 필요가 있었다. 대룡상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기세등등하여 전쟁 선포니 뭐니 허튼짓을 해 버리면 또 중원의 이목이 이곳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청명쾌검이 그의 기세를 꺾어 놓는다면?

주제 파악을 하게 한다면?

소림에 불똥이 튈 일도 없이 일이 해결된다.

당연히 청명쾌검은 소림사에서 감사를 받게 될 것이며, 무림맹의 대주로서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 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 황 소협이 왜… 직접 찾아 왔을까?’

거기다 이제까지 치렁치렁한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음울한 행색을 하고 다녔다. 그는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던 경력이나 동려에서 용비문이라는 사파 문파를 무너뜨린 일로 중원의 평가를 받았었다. 대체로 중원에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환영신창을 죽인 후로는 ‘수라공자’라는 정파 무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별호까지 얻었다.

그는 이제까지 행적으로만 중원의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단목패는 알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무공 실력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칠룡오봉에 속한 이들 중에서도 외모로 주목받았던 이가 있었지.’

예를 들어 모용세가의 모용가아나 천음양씨세가(天音梁氏世家)의 대공녀 그리고 남궁세가의 남궁운혜가 그러했다. 그 외에도 외모로 득을 보는 이들은 참으로 많았다.

그들은 빼어난 무공 실력도 갖추고 있었지만, 외모도 빼어났기에 중원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외모라는 건 인간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황극린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단목패는 그걸 깨달았다. 거기다 비종문주를 황극린이 섭외했다면…….

“문주님, 비무를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비무를 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황극린이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과거 그도 칠룡오봉에 속했었으니 황극린은 그의 후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철혈검대 소속이었다. 철혈검대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청명쾌검은 단목패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가 가리고 가려서 뽑은 철혈검대의 대원들은 모두 실력이 출중하고 대부분 출신 성분도 좋았다. 일단 이유는 들어 봐도 좋으리라.

단목패가 걱정했던 것을 정리하여 말했다.

그러자 청명쾌검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네 의문은 타당하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놈이 그 잘난 면상을 보여 준 것은… 정치질을 하겠다는 이유일 테지.”

만뇌문의 문주는 한 번도 강호에 출두한 적이 없었다.

지금 중원에서 만뇌문 하면 황극린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만큼 황극린의 인상에 의해 만뇌문의 평가가 좌지우지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 않으냐?”

“예?”

“이미 우리는 놈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 놈은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일을 계획했겠지만…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겠지.”

“그건…….”

“그건?”

“아닙니다.”

단목패는 마지막 의문을 내뱉지 못했다.

만약… 철혈검대의 대주이자 청명쾌검 장서이가 패배한다면? 그 뒤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철혈검대의 대원으로서 차마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대주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청명쾌검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빨리 해결하고 맹으로 돌아가자꾸나.”

“예, 대주님.”

* * *

황극린은 외모를 드러내는 것을 딱히 원하지 않았다.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모를 꼭꼭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과거 207호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그는 외모를 이용하여 살행에 나섰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살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하여 상대를 죽여야 한다.

아름다운 외모는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할 수 있었다.

또한, 의도치 않은 호의를 받을 수도 있었다.

수라공자라는 별호를 얻은 것에 딱히 나쁜 상황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소림이나 무림맹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마공을 익힌 후기지수라는 인식은 어느 정도는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얼굴을 이용하기로 했다.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대체 뭐야?”

“저 사람이… 수라공자라고?”

“말도 안 돼-!”

철강무관에 마련된 비무장.

이미 황극린과 청명쾌검의 비무 소식은 중강현에 싹 퍼졌다. 청성파가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백성과 중강현의 무인들이 철강무관으로 모였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종남파의 장로이자 무림맹 전투대의 대주인 청명쾌검과 황극린의 비무를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더 주목받는 건 황극린의 외모였다.

“대체… 대체 왜… 저런 얼굴을 숨겨 왔던 거지……?”

모두가 떠올리는 의문이다.

그리고 철혈검대의 대주 청명쾌검은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 같으냐? 세상이 그리 쉬워 보이더냐?’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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