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도착하다
청명쾌검 장서이.
그는 무림맹의 명령이 하달되는 순간 철혈검대를 이끌고 사천성 중강현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그다지 임무가 없었기에 평화롭게 보내고 있었지만, 사람은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장서이는 생각했다.
거기다 황극린을 보는 것이다.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라면 현재는 황극린이었다. 뭐, 다른 칠룡오봉에 속하는 이들이 활동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황극린의 활약이 독보적이긴 했다.
‘그게 활약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야.’
장서이가 고개를 돌린다.
“단목패.”
“예! 부르셨습니까, 대주님!”
사내답지 않게 곱상한 생김새의 청년이 달려온다. 머리에는 영웅건을 두르고 있었으며, 두 자루의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단목세가는 백의로 자신들을 나타내지만, 철혈검대에 속한 이상 붉은 색상의 의복을 입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칠룡오봉 중 하나.
아니, 과거에 칠룡오봉에 속했다고 할까? 칠룡오봉에 속한 후기지수들이 영원히 후기지수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5년 전만 하더라도 칠룡오봉이었으며, 이제는 무림맹에 녹아들어 기성 무림인이라 할 정도의 경험을 쌓았다.
출신 성분도 좋고, 무공 실력도 뛰어나기에 출세는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실 청명쾌검은 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다만, 겉으로 그걸 표 내지 않을 뿐이었다. 언젠간 무림맹에서도 요직에 오를 사내였기에 지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았다.
“그래, 칠룡오봉 출신인 네가 보기에 황극린이라는 후기지수는 어떤 것 같나?”
“으음.”
의외의 질문을 받았는지 단목패가 고민한다.
무림맹에 있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누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림맹에 들어온다고 하지만, 막상 계급이 확고하게 정해진 무림맹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소문만 들어 보면 대단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면, 언젠가 천하제일을 논할 고수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 정말 화경이라면 지금도…….”
“흐음…….”
단목패가 대주의 표정을 잠시 살핀다.
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나 보다.
단목패가 말을 덧붙인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혈풍뇌전신공의 부작용을 겪게 되느냐겠지요. 혈풍뇌전신공이 빠른 성장을 보장하는 대신, 과거 무림공적이었던 뇌불처럼 대마두가 될 수도 있다면… 아쉬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대주의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대주의 질문에 이미 철혈검대의 대원들이 모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오랫동안 그의 밑에 있으면서 배운 게 하나 있었다. 이렇게 한 사람을 불러 대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은연중에 주목하라는 것과 같았다.
“이미 그가 뇌전을 다루는 무공을 익혔다는 건 확실하다. 소림에서도 그가 혈풍뇌전신공을 익혔다고 보증했지. 당연히 그 ‘무림공적’ 뇌불의 무공을 익혔을 것이다.”
무림공적.
현재 생사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총 3명이 무림공적에 올라 있었다. 당연히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백성들이나 정파 무림에 피해를 끼친다고 해도 무림맹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무림공적에 오를 수 없었다.
무림맹에서 판단하기로, 정파 무림이 힘을 합치지 않는 한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대마두들이 무림공적에 오른다. 뇌불은 압도적인 힘으로 무림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정말 칠룡오봉 중 하나인 황극린이 뇌불의 사악한 마공을 이어받았을까?
명분은 무림맹에 있었다.
“우리는 정의를 집행하는 사자들이다. 여기서 황극린의 활약을 좋게 보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이번 임무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예, 대주님!”
청명쾌검 장서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주님, 질문이 있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질문한다.
“뭐지?”
“만약 황극린이 소림의 요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최대한 평화적으로 나가야겠지.”
“그래도 안 된다면…….”
“모두 긴장하고 있어라.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청명쾌검의 말에 모두 굳은 얼굴이 되었다. 같은 정파와 싸우는 것도 껄끄럽긴 하겠지만, 그가 마공을 익혔다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진다. 그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대룡상단의 용살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소문으로 들었을 땐, 그래도 상단이 운영하는 무력 조직이 당했으니 그리 대단하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마주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겁이 나긴 했다. 황극린의 잔혹한 손속이 자신들을 향할 수도 있지 않은가?
“너무들 걱정하지 마라. 아마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거다. 만뇌문이 미치지 않았다면 말이야.”
철혈검대로도 만뇌문을 상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청명쾌검이었지만, 그는 그것만 믿는 게 아니다. 무림맹은 만뇌문과 소림의 중재자로 참가하는 것이다. 혹시나 모를 전투에 대비하는 것.
당연히 소림사에서도 사람을 보낸다.
아마 그 유명한 십팔나한급의 인물일 것이다.
무림맹에서 명령을 하달받고, 무림맹이 있는 정주(鄭州)에서 사천성 중강현에 도착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전쟁이 아니었기에 굳이 쉴 수 있는 상황에서 강행군을 하진 않았다. 애초에 만뇌문과 소림의 공식적인 회담은 아직 시일이 꽤 남아 있었다.
“일단 객잔에 가서는 푹 쉬도록 해라. 세부적인 명령은 차후에 내려 주겠다.”
“예, 대주님!”
철혈검대가 중강현에 도착했다는 건 이미 만뇌문도 알고 있었다.
* * *
철혈검대의 단목패는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철혈검대에서 막내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그래도 아직 선배분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무공 실력으로는 자신이 부대주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무림은… 아니, 무림맹은 배분과 계급에 몹시 민감하다.
무공 실력으로 모든 것을 뒤집을 수는 없다. 또한, 그는 엄한 아버지의 교육 방침에 따라 힘이 있다고 만용과 자만으로 똘똘 뭉친 귀한 집 자제들과는 조금 다른 교육을 받으며 자라 왔다.
그렇다고 해도…….
‘만뇌문의 황극린.’
솔직히 그가 마공을 익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혈풍뇌전신공에 대한 이야기는 무림맹 내에서도 평이 갈린다.
결국, 혈풍뇌전신공은 소림사의 무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무공이다. 만약 그것을 마공으로 인정한다면 소림사의 대반야금강공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이번 일이 무림 문파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라 생각했다.
‘조금 부럽긴 하군.’
어찌 됐든 단목패는 황극린이 조금 부럽긴 했다.
그 또한 처음에 무림맹에 입맹할 적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칠룡오봉이라 불리며 무림에선 한껏 그를 치켜세워 줬지만, 막상 무림맹에 들어오고 난 뒤에는 딱히 무림에서 언급되는 일이 없었다. 칠룡오봉도 세대교체가 되었으니 이제 그건 과거의 일일 뿐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칠룡오봉에 들었으며,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지 않고 행하는 듯하다. 자신이 과연 대룡상단의 용살단과 싸우게 되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처럼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난 무리겠지.’
온갖 규율에 묶여 그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게 불만은 아니었다. 그의 계급이 높아질수록 더 편해질 것은 사실이고, 훗날 그의 밑에도 많은 수하가 생겨날 것이다. 무림에서 배분이 높아지면 그만의 정의를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찍부터 자신만의 뜻을 관철하는 황극린이 부러울 뿐.
그것과 별개로 그가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증이 일긴 했다.
“으음……?”
막 떠오른 달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단목패.
그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향했다. 왜인지 객잔의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청명쾌검 대협-! 저 비종문(飛宗門)의 문주 악무광입니다!”
“죄송합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내, 내가 청명쾌검 대협과 인연이 있다는데 왜 막는 것이오? 잠깐만 대화를…….”
비종문의 문주라는 이가 철혈검대의 대주인 청명쾌검을 만나러 온 모양이다. 청명쾌검은 종남의 장로이기도 했지만, 무림맹에서 보낸 세월이 훨씬 길었다. 무림에서 온갖 인연을 만들었을 것이다.
‘으음, 비종문이라는 문파는 처음 들어 보는군. 대주님과 연이 있는 건가? 급해 보이는데.’
단목패는 2층의 창을 통해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제발, 제가 왔다고 전갈이라도……!”
“이미 말씀드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일 날이 밝거든 찾아오십시오.”
“내 직접 청명쾌검 대협께 드릴 말씀이 있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급하면 이렇게 철혈검대의 행선지까지 파악하고 찾아왔겠냐마는… 단목패는 대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목패가 여기서 저 사내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솔직한 그의 심정으로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리 행동하면 대주에게 미운털이 박힐 것이다.
그렇게 실랑이가 커지고 있을 때, 비종문의 문주가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한다.
마치 숨겨 둔 검이라도 꺼내려는 모양새였다.
당연히 철혈검대의 대원들이 정색하며 그를 무력으로 제압한다.
“크억! 놓으시오!”
“이게 뭐야?”
“돈인데?”
묵직한 행낭.
돈이라도 뇌물로 준다면 철혈검대가 대주와의 만남을 허락해 줄 것이라 생각한 건가? 당연히 객잔의 입구를 지키던 대원들의 표정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감히 이딴 것을…….”
“제발, 제발 부탁이오. 청명쾌검 대협께 드릴 말씀이……!”
그때였다.
“시끄러워서 나와 봤더니.”
“처, 청명쾌검 대협!”
청명쾌검이 나타났다.
그는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비종문의 문주를 바라보았다. 대원들은 제압한 비종문주를 풀어 주었지만, 그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청명쾌검의 굳을 얼굴을 보고 뒷걸음질할 뿐이다. 저리 무서워할 거면서 찾아오긴 왜 찾아온 것인가?
단목패가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그래, 날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나?”
“저, 그, 그게…….”
“당신과의 일은 예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군. 아직 끝나지 않은 게야.”
“……!”
청명쾌검을 보자고 할 땐 언제고,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단목패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대주님이 엄하시긴 하지만 그렇게 무서운 분은 아니신데…….’
마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듯한 비종문주의 얼굴이다.
“그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게… 그것이…….”
제대로 말을 내뱉지도 못하는 비종문주. 청명쾌검이 혀를 찬다. 속에 담아 둔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는 겁쟁이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 다시 찾아오지 마라. 죽기 싫으면 말이야.
청명쾌검이 전음으로 비종문주에게 경고하자 그는 다리에서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린다.
그렇게 청명쾌검이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내, 내 아들……!”
“…….”
“내 아들에게 자리를 약조하지 않았소오오!”
“하?”
그의 말에 철혈검대 대원들의 표정도 굳었다. 철혈검대의 대주 장서이는 실력과 품성으로만 수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인사에 반영하는 칼 같은 사람이었다. 자리를 약조하거나 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단목패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 모함하는 비종문주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말투마저 바뀐 청명쾌검.
그는 분노하기보다는 차분한 얼굴로 비종문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게…….”
용기를 내 소리칠 때는 언제고, 다시 겁을 집어먹은 비종문주다.
청명쾌검이 조용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네놈의 아들이 병신이 된 것을 나한테 따질 것이 아니지. 다시 찾아오면 아들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게 해 준다고 했을 텐데?”
“……!”
비종문주가 공포에 눈물마저 찔끔 흘리고 있다.
그것을 한심하게 본 청명쾌검이 크게 말한다.
“가십시오. 마지막 기회입…….”
“네놈의 아들이 병신이 된 것을 나한테 따질 것이 아니지. 다시 찾아오면 아들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게 해 준다고 했을 텐데?”
“……!”
어디선가 들려온 무심한 목소리.
귓가에 아주 작게 속삭인 것이라 들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는 사람이 있으니 청명쾌검조차도 당황하여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누구냐!”
찬란한 만월이 땅을 비추고 있기 때문일까? 사내의 의복은 왜인지 발광하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의복이 빛이 나는 게 아니다.
‘뭐 저리 잘생겼어?’
2층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단목패조차도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