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스승의 마음
성수신의는 인간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해 왔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맥에 침을 꽂아 내부에 흐르는 기운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도 있었으며, 갖가지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드는 방식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영약’을 직접 만들어 복용하는 방법도 시도해 보았다.
연단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수신의가 이제껏 쌓아 올린 시간이 있었기에 재료만 충분하다면 영약을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인간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것보단 영약을 만드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기운을 담은 영약을 만드는 건 성수신의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역시 연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재료를 썼느냐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같은 재료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기(氣)를 뽑아낼 수 있느냐다.
성수신의는 중원 각지에서 모은 영초들에 잠든 기운을 극한으로 뽑아내고, 정제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혈고독의 기름이 또 좋은 재료로 활용되었다. 단약의 형태로 제조된 영약의 기운이 흩어지지 않게끔 가공하는 최고의 재료였다.
성수신의는 혈고독을 연구하면 할수록 영물 곤충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아무튼, 성수신의는 만뇌문도들을 위한 영약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꽤 돈이 많이 들었지만 황극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돈이야 계속 벌면 된다. 만뇌문이 벌이는 사업도 있었으며, 황극린이 알고 있는 몇몇 미래의 기억만 활용해도 돈을 벌 수 있다. 거기다 대룡상단에서 뜯어낸 돈도 아직 꽤 남아 있었다.
문도들을 모두 불러모은 황극린이 말한다.
“너희에게 줄 것이 있다.”
“예, 장로님!”
백씨 형제와 비청하. 두 사람 모두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일 몸을 단련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기에 어느샌가 키도 훌쩍 자랐다. 뭐, 백온후는 아직 소년티를 벗기까진 아직이긴 했지만… 몇 년만 지나도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황극린이 목함을 연다.
후각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목함 내부에서 풍겨져 나오는 청아한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제자들이 몽롱한 눈을 하고 목함을 바라본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저것이 영약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제자들은 수준이 낮은 영약들을 몇 번 취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수신의가 작정하고 만든 만뇌문의 첫 영약이었다.
“이건 뇌령단(雷靈丹)이다.”
뇌정심법을 익히고 있는 문도들이 취한다면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
“와아……! 형아, 냄새가 너무 좋아.”
“그, 그러게.”
“…….”
세 사람 다 욕심이 가득했다. 단순히 영약을 취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누군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 무공을 수련하는 만큼 성취에 대한 욕구였다. 영약을 취하면 최소한 누군가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모두 앞으로 와라.”
“예!”
“영약을 취할 때, 내가 직접 진기를 유도할 것이다.”
“자, 장로님께서 직접…….”
“먼저 백건악.”
“옙!”
가장 먼저 호명되었다는 것에 기뻐한 백건악이 헐레벌떡 황극린의 앞에 섰다. 그는 긴장과 기대가 섞인 눈동자로 황극린을 마주한다.
“가부좌를 틀고 영약을 취하도록.”
“예, 장로님!”
“집중해야 한다.”
“예, 절대로 정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백건악이 가부좌를 틀었고, 황극린이 양손을 그의 등에 올렸다.
목구멍을 통해 넘어간 뇌령단. 백건악이 화들짝 놀란다.
‘뜨, 뜨겁다! 이, 이게 뭐야!’
뜨겁다고 느낀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제껏 백건악이 취한 영약은 기본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정제되지 않은 영초를 그대로 취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력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내력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뇌령단은 다르다.
30년 이상의 공력이 든 영약이다. 거기다 같은 30년이라도 뇌령단은 다르다. 순수한 뇌기(雷氣)를 가지고 있었기에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황극린이 직접 진기를 유도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집중하도록.”
“…….”
백건악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고 집중한다.
솔직히 말해서 겁이 났다. 뜨겁게 날뛰는 뇌령단의 기운이 세맥을 찢어 놓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의 등에는 황극린의 손이 닿아 있었다. 그가 있다면 어떤 난관이든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자신감이 생기는 동시에 백건악은 독기를 품었다.
여기서 만약 자신이 영약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면 황극린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 매일 무공 수련에 열두했지만, 노력하는 것과 성과를 내는 건 다르다.
백건악은 노력하는 모습을 황극린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결과를 보여 주고 싶었다.
‘무조건… 무조건 뇌령단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한다……!’
찌리릿-! 찌릿-!
세맥에 흐르는 뇌령단의 기운이 황극린의 유도에 따라 움직인다. 백건악이 할 일은 그 기운이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가지 않게, 온전히 단전으로 향하게끔 뭉치는 것이다.
“오…….”
뇌령단을 흡수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비청하와 백온후가 감탄한다.
처음엔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백건악의 얼굴이 온화하게 변했다. 또한, 그의 머리카락이 위로 빳빳하게 솟아올랐으며, 그의 주위로 미세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신기하다. 이제까지 영약을 취할 땐 저러지 않았는데!’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백건악의 빳빳하게 솟아올랐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사방으로 흐르던 바람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황극린이 백건악의 등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형아……?”
“백 사형?”
백건악은 눈을 뜨지 못했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로군.”
“형아가 깨달음!?”
“쳇…….”
황극린 또한 조금 놀랐다.
백건악의 진중한 자세를 보고서도 감탄했지만, 그것에 놀란 게 아니다.
‘성수신의, 정말 대단하긴 하군.’
그가 만들어 낸 뇌령단은 만뇌문도들을 위한 영약이었다.
성수신의는 세 사람의 체질과 뇌정신공에 딱 맞는 영약을 만들어 냈다. 백건악이 영약의 기운을 운기하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영약이었다. 황극린도 그의 운기를 돕다가 몇 번이나 감탄할 정도였으니…….
‘성수신의는 정말 천재로군.’
그가 만약 인간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나마 현실적인 꿈을 꾸었다면… 아마 지금의 황극린조차도 만나기 힘든 거물이 되었을 것이다. 구파일련의 어떤 문파를 가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문도의 성장도 만족스러웠고, 성수신의가 곁에 있다는 것도 흡족했다.
그리고 또한 기대가 되었다.
‘뇌정신공을 위한 뇌령단의 수준이 이 정도다.’
그렇다면…….
황극린을 위한 영약이 완성되면 어떨까?
하지만 황극린을 위한 영약은 제조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재료도 아직 다 모으지 못했으니 당장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하고.
지금 황극린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단 하나였다.
“비청하, 앞으로.”
“예.”
비청하는 백건악을 경쟁 상대로 잔뜩 의식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황극린을 위해 성장하겠다는 공통적인 목표가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경쟁심이 자리잡았다. 비청하는 백건악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다.
“집중하도록.”
“예, 장로님.”
하지만 백건악을 넘어서고 싶다고 이 기회를 발로 걷어차 버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지금은 영약을 취하는 데만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세 시진이 지났을 무렵.
황극린의 앞에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가부좌를 튼 채로 명상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모두가 깨달음을 얻었다?’
의아한 일이긴 했다.
영약을 취한다고 모두 깨달음을 얻진 않는다.
‘뇌령단의 강렬한 기운을 처음 품었기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황극린이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그는 뇌령단의 기운을 유도하며 세맥의 불순물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태워 버렸다. 그게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유가 무엇이 중요하랴?
만뇌문에서 만든 첫 번째 영약, 뇌령단.
문도들은 성공적으로 뇌령단을 단전에 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깨달음을 얻어 명상하고 있었다.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기분이 좋다.
과거 207호로 살아갈 적에는 제자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제자를 키우면 어차피 흑살문의 도구가 되다가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혈고독을 심장에 박아 넣고 목숨을 빌미로 협박을 당한다.
그들을 생각하니 다시금 기분이 나빠졌지만, 열심히 명상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있으니 또 기분이 풀어진다. 저들의 성장이 곧 황극린의 성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을 보면서 황극린 또한 의욕을 얻는다.
황극린은 무림인들이 왜 문파를 키우고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제자로 받아들이려 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었다.
‘호법을 서야겠군.’
사실 이곳은 안전하다.
호법을 설 필요는 없지만, 황극린은 세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만뇌문도들이 뇌령단이 취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청성산과의 거래도 시작되었고, 만뇌약방이 새로이 개발한 내상약 속생보원단(續生保源丹)도 시장에 출시했다. 가격이 꽤 비쌌기에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하나를 팔더라도 꽤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기에 영초 매입으로 줄어드는 만뇌문의 자산을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중원에 만뇌문이 청성산에 있다는 게 밝혀졌을 때, 청성파와 만뇌문이 구설수에 올랐다. 당연히 중원인들은 대룡상단과 만뇌문의 싸움에 청성산이 개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은근슬쩍 만뇌문이나 황극린을 깎아내리려는 세력도 등장했다.
아니, 청성산과 관련이 없었더라도 그런 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권룡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환영신창을 이기는 건 말이 안 됐어.”
“그러게 말일세.”
북경의 객잔에서 중년 무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20년 이상 강호에서 굴러먹던 낭인들로, 무림에서 오랫동안 생존한 만큼 자신들이 중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중원에선 언제나 칼을 맞고 죽을 수 있었다. 생존했다는 건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뭐, 대룡상단이 그렇게 대단한가?”
“응? 그게 무슨 소린가?”
“만뇌문이 대룡상단을 꺾었다고 조만간 구파일련에 들어간다느니 하는 소문이 떠돌았지 않은가? 고작해야 상단을 꺾고 말일세!”
“허허,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같군. 개파한 지 5년도 안 된 문파가 구파일련이라니? 그 천화련도 30년이 걸렸지 않은가?”
“그러니까. 소문은 그냥 믿으면 안 돼.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지……. 에잉, 쯔쯧!”
그들은 일부러 다른 객잔의 손님들이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과거 만뇌문이 터를 잡았던 강서성이나 황극린이 싸우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사천성에선 만뇌문에 대한 평가가 좋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만뇌문을 깎아내리려는 이들이 넘쳐 났다.
특히 황극린의 존재가 아니꼬운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들과 다를 게 없는 출신이다. 구파일련이나 육대세가의 출신도 아닌데, 재능 하나만으로 용봉지회에서 우승하고 벌써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었다고?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아니, 분명히 조작되었을 게 분명하다. 무천신룡(武天新龍) 그놈도 결국엔 사기꾼으로 밝혀졌었지.’
강호에는 신룡이라 불리는 후기지수들이 은근히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몇 년만 지나도 그들의 진면목이 밝혀지며 사기꾼이라는 게 들통났다.
황극린도 그런 놈 중 한 명이 아닐까?
그래도 소림사의 천덕을 용봉지회에서 꺾었으니 그 정도는 인정하겠지만…….
“그리고 수라공자가 화경에 접어들었다는 소문도 있지 않은가?”
“허허, 그건 무공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지 않은가? 천하칠대고수에 이른 이들이 수십 년 동안 겨우 오른 경지를 그 어린 나이에 오른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나지 않은가?”
웅성웅성.
북경에선 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모두가 두 중년 무인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도 북경에선 조금씩 수라공자와 만뇌문에 대한 의심이 깊어질 것이다. 언젠가 황극린은 그것을 듣고 행동을 취하리라.
‘증명하려다가 자빠지거나 아니면 어디에 콱 숨어 버리겠지.’
천풍검객(天風劍客) 광세웅과 호리도(狐狸刀) 좌혼지.
낭인 중에서는 꽤 유명한 두 사람이다. 특히 북경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낭인들이다. 두 사람이 한 발언인 만큼 대화를 엿듣는 객잔의 손님들은 가능성이 높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주변의 반응에 만족하던 광세웅과 좌혼지.
여기서 더 험담하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대화를 멈추고 식사를 이어 나가려 할 때.
“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이제는 낭인 무사가 아닌 학사풍을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낭인들보다는 작게 말하고 있었지만, 낭인들은 뛰어난 청각으로 그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림에서 만뇌문을 압박하고 있다는군.”
“응?”
두 중년 낭인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만뇌문이 소림의 무공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더군. 아미파와 합의를 본 소림이 바로 만뇌문에게…….”
광세웅과 좌혼지가 벌떡 일어선다.
그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형씨, 우리도 그 이야기가 궁금한걸?”
북경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서강객잔.
그곳은 소문이 사실이 되고 사실이 소문이 되는 정보의 장이었다. 조만간 이곳에서 나눴던 모든 대화는 ‘정보’로 둔갑하여 중원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 소림사가 만뇌문을 압박한다.
최근 잠잠했던 무림에서 또다시 자극적인 화제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