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사마명
“또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이오?”
“네, 그런데 특이한 출신이더라고요.”
이미 약조한 한 달은 훨씬 지났지만, 제갈소희와 제갈창해는 진법을 개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오늘도 만뇌문을 찾아온 손님에 대해 알려 주러 온 제갈소희였다. 진법을 개조하고 있을 땐 다른 이들이 제대로 통행할 수 없기에 그녀가 직접 온 것이다. 보통 이런 문지기가 할 법한 일을 하면서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그녀의 눈빛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어디길래 제갈 소저가 그리 말하는 것이오?”
“사마세가예요. 하지만 지금은 사마세가라 말할 수 없긴 하겠네요.”
만뇌문에 새로이 찾아온 손님은 이미 가문에서 축출당한 사내였다.
“사마세가라…….”
“만뇌문의 문주께서 보내서 왔다고 하시더군요.”
뇌불이 보내서 왔다고?
황극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명을 만나러 갔다. 왜 뇌불이 보냈는지도 궁금했지만, 뇌불이 어디서 뭘 하는지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 * *
‘…….’
사마명은 전율했다.
청성산에 이런 장소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처음엔 청성산의 작은 동굴에서 초라하게 생활하는 줄 알았다. 뇌불이 만든 문파라고 해 보았자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도착한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안내하는 의문의 여인을 통해 진을 통과할 때, 걸음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름이 돋아났다.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대자연의 기운에 압도되었다. 별빛과 달빛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가상의 하늘에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깨달았다.
또한, 사마명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만뇌문이다.’
대룡상단과의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과거 이름을 날렸던 초고수 중 하나인 환영신창을 꺾은 후기지수가 있는 문파가 바로 이곳이라는 걸 말이다. 이렇게 진에 숨겨져 있었으니 대룡상단이 그들을 찾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됐다.
역시 뇌불인가?
무림공적이라 하여 제대로 된 문파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생각이었다. 역시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가 만든 문파라 그런 것인가?
사마명은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왔었다.
하지만 진법의 규모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마명입니다.”
“황극린이오. 앉으시오.”
황극린이 사마명을 살펴보는 것처럼 사마명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극린의 인상은 소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치렁치렁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무심한 성격이 목소리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문주님이 보내서 왔다고 했소?”
“예, 뇌불 어르신께서 이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황극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뇌불이라는 걸 밝힌 것으로 봐서는 이 사내를 어느 정도는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하나, 고수는 아니다.’
황극린은 이미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상대의 걸음걸이와 체격만 보고서도 어느 정도는 실력을 유추할 수 있다. 거기다 황극린의 후각은 상대의 내력이 얼마나 진한 냄새를 풍기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마명의 내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뇌불이 황극린에게도 어떠한 귀띔도 해 주지 않았기에 조금 어색한 시간이 지나갔다. 황극린은 사마명이 왜 이 사내를 만뇌문에 보냈는지 의문이었고, 사마명은 진법에 압도되고 황극린이라는 사내를 마주하니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것이오?”
사마명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뇌불은 사마명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가 아는 뇌불의 성격상 문파에도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솔직히 황당하긴 했지만 사마명은 뇌불과 만났던 일을 황극린에게 말해 준다.
갑자기 뇌불이 찾아온 날부터 그가 여러 가지를 물으며 ‘시험’을 거쳤다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시험은 황 장로님께서 해 주실 거라고 하더군요.”
황극린은 그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다.
뇌불이 사마명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사마세가는 중원에서도 잘 알려진 무림 문파였다. 하지만 제갈소희의 말로는 그는 사마세가에서 이미 쫓겨난 신세라고 했다. 거기다 무공 실력도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래도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황극린을 마주하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거기다 만뇌문의 거대한 진을 통과했으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진법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던 구자광도 진을 통과한 후에는 후유증에 시달릴 정도였는데, 사마명은 그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사마 소협은 만뇌문에 들어오고 싶소?”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뇌불 어르신과의 인연이 있기도 했으며, 여행하며 과거를 되돌아보자는 생각으로 이리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소?”
“예. 만뇌문의 문도가 되고 싶습니다.”
황극린이 그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허가하겠소.”
“…예?”
평소 당황하지 않는 사마명이다. 하지만 황극린의 대답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뇌문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문파 중 하나다. 거기다 문파를 지키는 진의 규모로 보건대 더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 문주는 그 뇌불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렇게 간단히 허가한다고?
평소 의심이 많은 사마명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당히 난해한 시험을 내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질문은 고작해야 만뇌문에 들어오고 싶냐는 것이다.
황극린은 그의 의문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입을 연다.
“문도가 되는 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소?”
“……!”
물론, 말하지 않은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뇌불이 보냈다는 점과 사마명의 눈빛. 수많은 인재를 거느렸던 군주들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인간의 재능을 알아보곤 한다. 인재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군주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에겐 당당함이 있다.’
황극린이 사마명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다.
자신의 못난 면을 숨기고, 억지로 강하게 행동하는 것과는 달랐다. 황극린은 짧은 대화에서 사마명에게서 그런 당당함을 느꼈다.
“그런 그렇고 하나 물어볼 게 있소.”
“예, 말씀하십시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소?”
“뇌불 어르신은…….”
* * *
지금 사마명은 무복(武服)을 버리고 문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죽고, 그녀가 운영하던 표국은 쫄딱 망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사마세가가 그녀의 표국을 꿀꺽해 버렸다. 어릴 때는 정확히 몰랐지만 사마명은 자라 가며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 표향의 죽음에 사마세가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말이다.
그녀가 사고로 죽기 일 년 전부터 사마세가의 간섭이 심해졌다. 사마명의 아버지는 사마세가의 방계 출신이었다. 그가 죽고 표향이 홀로 만들어 낸 표국이었지만 사마세가는 표향에게 복종을 요구했다.
당연히 표향은 꽤 오랫동안 그 사마세가조차도 골치가 아플 만큼 저항했지만…….
그녀의 죽음 이후에는 표국은 빠르게 망해 버렸다.
사마세가에선 그래도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사마명에게 가문으로 들어오라 했다. 하지만 사마명은 어린 나이에도 사마세가에 들어가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당차게 거절하였고, 사실 사마세가도 굳이 사마명을 키워 줄 생각은 없었다.
어린 사마명은 그렇게 홀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의 장점은 빠른 수 계산과 기억력이었다. 사실 그는 무공에는 재능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공을 익혔다. 어머니에게 배웠던 것이라곤 권법의 초식과 내공심법이 전부였다. 그는 사부도 없이 홀로 무공을 익혀 나갔다. 무모한 도전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가 이류의 경지에 오른 것도 꽤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무공 실력만으로는 당연히 사마세가에 복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무공을 익히는 척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공은 열심히 익혔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언젠가 대기만성 하여 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말이다.
그가 무공을 익힌 이유는 사마세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미 망해 버린 표국이었지만 사마세가에선 간간이 사마명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었다. 사마명은 그렇게 무공을 익히면서도…….
“네가 새로이 총관이 되었다고?”
“예.”
“그럼 맨날 장로님의 곁을 지키는 거냐?”
갑자기 찾아온 구자광.
그는 왜인지 호승심이 잔뜩 드러내는 표정으로 사마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전 약재의 재고를 파악하고 유통망과 예산을 관리합니다. 장로님과 마주할 일은 크게 없습니다.”
“오, 그래?”
사마명의 대답에 구자광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는 그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아니, 조언이라기보다는 황극린이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 알려 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사마명은 대부분 공감했다. 그 또한 만뇌문의 소문을 꽤 들어 왔기 때문이다.
도박장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
사마명은 그런 도박장에 오래 머물렀던 사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 맞다. 너 듣자 하니 도박장을 운영했다면서?”
“예.”
“몇 개나 운영했는데?”
“열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열 개? 오오. 역시 본문의 총관이 될 자질이 있구나!”
사마명은 스스로 무공을 익혀 복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10살 때 깨달았다. 모든 것을 잃은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지만, 그는 적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조금씩 부풀렸다. 사실 흑도 방파가 꽉 잡고 있는 도박장의 세계에서 사마명과 같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가 열 개의 점포를 냈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 그는 재능도 없으면서 무공도 열심히 익혔다. 그의 얼굴이 초췌해 보이는 것은 그런 고생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사마명은 복수를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공도 익혔다. 하지만 그는 깨닫고 있었다. 이대로는 사마세가에 복수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만뇌문에 들어오게 되었다. 뇌불과의 인연? 황극린에 대한 관심?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마명의 진정한 목표는 사마세가로의 복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것을 실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10년이든 20년이든 기다릴 수 있었다. 10살의 나이에 각오했던 것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도박장을 백 개, 천 개를 운영해 보았자 사마세가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물론, 그곳에서 모은 돈으로 사마세가에 타격은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마명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기왕이면 사마세가의 직계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그들의 위상을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싶었다. 그들이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뇌문은 사마명에게 새로운 가능성이다.
도박장보다는 만뇌문이 훨씬 낫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었지만, 만뇌문과 황극린을 보고는 이곳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깨달았다.
그렇게 사마명은 만뇌문의 총관이 되었다.
황극린 혼자 도맡았어야 했던 중요하지만 조금 사소한 문제들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바로 총관이 된 것을 보아하니 머리가 상당히 좋은가 보구나.”
“아닙니다. 기억력이 좋을 뿐입니다.”
구자광이 사마명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알겠다. 하지만 네가 알아 둬야 할 게 있다.”
“예.”
“총관의 직책을 달았다고 하여 장로님께 버릇없게 굴지 마라. 만약 내 눈에 보이면……. 내 별호 알지?”
당연히 알고 있다.
광견살검. 사실 그는 사마명이 운영하는 도박장에 찾아와서 깽판을 부린 적도 있었다. 물론, 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잘해 보자. 혹시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고.”
“예, 구 대협.”
구자광이 조금 전 보여 줬던 눈빛은 진심이었다.
물론 사마명은 지레 겁을 먹지 않았지만, 조금 놀라기도 했다. 구자명의 얼굴에서 과거 어머니께 충성하던 표두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만뇌문의 문도는 황 장로님을 이야기할 때 모두 같은 표정을 짓는군.’
대장간의 도제들도, 어린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마명이 본 만뇌문도들은 진심으로 황극린에게 충성하는 듯했다. 사마명 또한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꽤 많은 경험을 해 보았지만, 이런 문파는 처음 보았다.
잠시 어머니가 이끌던 표국을 추억하던 사마명이 작게 고개를 저어 상념을 뿌리친다.
‘난 내가 할 것만 하면 된다.’
굳이 저들처럼 황극린에게 열성적으로 충성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만뇌문의 총관으로서 만뇌문에 최대한의 이익만 가져다주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간 당당히 자신의 바람을 요구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현재 사마명에게 만뇌문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