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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46화 (146/316)

146화 은인에게 제안하다

“은인께 인사드립니다.”

교특범이 황극린에게 인사를 올린다.

황극린의 기억에서 그는 감옥에 갇혀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앙상하게 말랐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근육이 우락부락하진 않았지만, 다부진 체격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날렵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황극린은 냄새로 그가 무공을 익혔다는 걸 깨달았다.

‘사파의 무공을 익혔군.’

보통 사파의 무공은 정파의 무공보다 성취 속도가 빠르지만, 한계가 일찍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흑련의 경우를 보면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부류도 있었다. 사파의 무공도 무공 나름이라는 말이다.

교특범의 단전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꽤 진했다.

내력을 많이 쌓은 듯하다. 기연이라도 만난 것일까? 걸음걸이도 확실히 정돈되어 있는 것이 보법을 제대로 익힌 듯하다.

“오랜만이오.”

“예, 은인. 꼭 뵙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 찾아오는 게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오. 앉으시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한다.

교특범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때나 무공을 익혔을 때나 저 단단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흑사회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흑사회 간부의 살점을 씹어 먹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고 했었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소.”

황극린의 말에 교특범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만뇌문의 문도들이 자취를 감춘 곳이 청성산 부근이라는 걸 알고 부근을 탐색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진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지요.”

운이 좋다?

그것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교특범은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말을 이어 나갔다.

“전 예전부터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이 좋았습니다. 냄새나 소리에 민감했지요. 그렇다고 해도 사실 만뇌문의 진은 누군가 오간 발자국을 찾지 못했다면 영원히 발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누군가라는 말에 황극린은 구자광을 떠올렸다.

뭐, 진이 점점 발전하고 있었고… 흑사회처럼 영원히 숨어 지내진 않을 것이다. 조만간 만뇌문이 청성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걸 밝힐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무공에도 재능이 있었나 보오.”

“은인께 자랑할 재주는 아닙니다.”

교특범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무공을 익힌 지 몇 년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완숙한 일류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물론, 현재는 절정의 벽에 가로막혀 진전이 없긴 했지만… 재능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그런 재능도 황극린의 앞에서는 한없이 부족할 뿐이었다.

교특범이 행낭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금으로 만들어진 패였다.

“무문(無門)의 금패입니다.”

“무문?”

“예, 그때 같이 탈출했던 이들과 함께 만든 정보 문파입니다.”

정보 문파.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 문파를 따지면 개방과 하오문이 있다. 그 외에도 각 문파나 무림맹도 독자적인 정보원들을 가지고 있었다. 중원에서 일어나는 각종 소식들이야 개방과 하오문에서 돈으로 살 수 있었지만, 알짜배기 정보들은 꽤 구하기가 힘든 편이었다.

당연히 정보 문파를 만드는 건 어렵다.

“아직 의문이 많으실 테지요. 흑사회에 납치당했던 제가 어찌 정보 문파를 만들 수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솔직히 그렇소.”

그의 출신이 특별한 걸까.

아니면 기연이라도 만난 걸까? 사실 그가 재능이 있었다고 해도 폐쇄적인 중원 무림에서 무공을 익히는 건 매우 힘들다. 삼류의 무공도 돈으로는 쉽게 구할 수 없었으니 일류 이상의 무공은 어떠하리?

“저는 하오문주의 자식 중 하나입니다.”

“하오문주?”

“예.”

무영천왕(無影天王).

하오문의 문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알려진 사내였다. 과거의 삶에서 그는 흑살문의 살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87호. 흑살문의 특급 살수가 될 수 있었던 사내였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황극린에게 죽임을 당했다. 황극린은 천기피독신주를 얻기 위해 그를 죽였다.

“전 하오문주의 절기를 모두 이어받았습니다. 어릴 땐 솔직히 무림에 얽히는 것이 싫어 대충 익히고 말았지만… 흑사회에 납치된 후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그것으로 저는 함께 흑사회에서 탈출했던 동료들을 이끌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왜 하오문의 소속이 아니오?”

“아버지는 죽었습니다. 비요둔이나 흑살문의 살수에게 당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부문주 중 하나가 의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만… 더 알아봐야겠지요.”

그런가.

하오문주는 결국 죽었다. 흑살문은 의뢰를 맡은 이상 끝까지 완수한다. 물론, 중도에 포기할 때도 있긴 하지만… 황극린이 흑살문에 있을 땐, 그런 경우가 없었다. 아마 87호가 죽었기에 다른 살수가 투입됐을 것이다.

“흑살문일 것이오.”

황극린의 말에 교특범이 묻는다.

“혹시 그리 말씀하시는 근거가 있으십니까?”

은인의 말이라도 그냥 믿지 않는다.

정보 문파를 운영하려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교특범은 하오문에 있으며 많은 것을 배웠으며, 무문을 이끌며 또 배우고 있었다.

“헌원객잔.”

“……!”

“당시 사천성에서 화재가 일어났지 않소?”

“설마…….”

당시 87호는 무영천왕이 머물고 있던 헌원객잔에 점소이로 잠입했었다. 그는 황극린에게 죽임을 당했고, 다음 날 가슴에 구멍이 뚫린 시체가 열 구나 발견됐다. 그리고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사고가 터져 모두 불에 탔었다. 하오문에서도 당시 87호가 위장했던 점소이가 사라진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황극린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건…….

“헌원객잔에 잠입했던 점소이를 내가 죽였소. 흑살문의 문도였지. 첫 살행이 실패했기에 높은 등급의 살수를 보냈을 것이오.”

“예,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특급 살수가 투입됐을 것이다.

사실 특급 살수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의뢰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도 했지만, 흑살문이 그 아래의 등급에게 임무를 주는 건 살수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다. 다만, 의뢰가 실패할 경우엔 대개 특급 살수가 나서는 편이었다.

“그랬던 것이군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살문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군요.”

하지만 교특범은 딱히 분노하거나 슬퍼하진 않았다.

단지, 강인한 눈빛으로 황극린을 마주할 뿐이었다.

“은인께 또 은혜를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 소협을 도와주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니오.”

“그래도 제게 도움이 되었지요.”

교특범이 말을 이어 나간다.

“전 은인께 은혜를 갚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무력적인 부분에선 만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무문의 문도들은 그리 강하지 않으니까요. 하나, 만뇌문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주제넘은 발언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무문은 만뇌문의 직속 정보 문파가 되고 싶습니다.”

은혜를 갚겠다는데 마다할 황극린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식솔을 늘리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눈치챈 교특범이 말을 이어 나간다.

“무문은 당장 만뇌문의 비호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정보 문파를 운영하다 보면 아마 무림의 다른 세력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겠지요. 그건 저희가 성장하며 헤쳐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만약 그 과정에서 도태된다면 은인께 은혜를 갚을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거겠지요. 그러니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능력을 증명하고, 은인께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면 그때 직속 문파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소?”

“5년입니다.”

5년이라…….

사실 황극린도 정보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매번 정보를 얻으려 하오문과 개방을 방문하는 것도 애매한 일이었다. 그들의 정보는 확실히 신뢰가 가지만,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개방과 하오문은 누구에게나 정보를 판매할 수 있었다.

무문이 성장한다면 만뇌문만의 정보 문파가 생기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로군.’

황극린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좋소.”

교특범이 처음으로 얼굴에서 감정을 내비쳤다.

솔직히 말해 황극린이 거절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했다. 대룡상단과의 일을 보면 황극린은 맺고 끊음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5년 동안 다른 문파의 의뢰는 맡지 않을 생각이오?”

“예, 만뇌문에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문파를 운영하는 데 돈이 들지 않소?”

교특범이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전대 문주가 숨겨 놓았던 자산을 꽤 많이 빼돌렸습니다. 아마 현 문주가 그것 때문에 고생깨나 하고 있겠지요.”

“그렇군.”

“무문도 어느 정도 안정을 갖추었습니다. 은인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무문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황극린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들의 정보력이 어느 수준에 올라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 황극린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는 무엇일까?

마침 황극린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처음 과거로 돌아왔을 때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대체 왜 자신은 과거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여러 가정 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바로…….

바로 부서진 단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취했던 영약이었다.

인형혈삼(人形血蔘).

발견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이름 없는 약초꾼에게 발견된 인형혈삼은 팔리고 또 팔려 결국 거대 문파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황극린은 인형혈삼을 훔쳐 냈었다.

처음 인형혈삼이 발견됐다고 추정되는 장소는 절강성.

당연히 아직 약초꾼에 의해 발견도 되지 않았을 때이니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형혈삼에 대한 정보는 찾아낼 수 있으리라.

인형혈삼이 왜 그러한 이름이 붙었는지.

과거에도 존재했었는지.

만약 과거에도 존재했다면, 그것을 취한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인형혈삼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정보는 얻을 수 있으리라. 개방이나 하오문에도 의뢰한 적이 있지만, 그들도 정보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성수신의조차도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무문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으로 이것보다 적당한 건 없었다.

“5년까지는 필요 없소.”

“혹,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신지요?”

“인형혈삼에 대한 모든 정보가 필요하오.”

“인형혈삼…….”

“그것을 찾거나 혹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다면… 무문을 받아들이겠소.”

당연히 교특범이라도 처음 들어 보는 영약이었다.

천년설삼이나 인형삼은 들어 본 적이 있다. 영약에 혈(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인간의 형체를 한 삼이오. 피를 먹고 자란 듯 붉은 것이 특징이오.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없소. 절강성에 있다는 작은 소문 정도는 들은 바가 있소.”

황극린이 그것을 취했다곤 말할 수는 없었기에 에둘러 설명했다.

사실 황극린이 그것을 훔친 이유는 우연히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인형혈삼은 단전도 수복할 수 있는 천하제일의 영약이라는 소문을 말이다. 그는 죽을 위기를 겪으며 그것을 훔쳐 냈었다.

“어려운 임무군요.”

사실 밑도 끝도 없는 임무라 할 수 있다.

천년설삼을 찾아내라 해도 사실 불가능할진대, 처음 들어 보는 인형혈삼이라니? 하지만 교특범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였으니까. 물론, 5년보다 더 걸릴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무문이 만뇌문에 걸맞은 정보 문파가 되기 위해선 그 정도 시련은 당연했다.

“꼭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 낸다면 서신을 보내 주시오.”

“여기로 말입니까?”

현재 만뇌문의 본거지는 숨겨진 상태였다. 만약 서신으로 정보를 전달했다간 만뇌문의 위치가 특정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조만간 만뇌문의 위치를 밝힐 것이오.”

“예, 알겠습니다.”

제갈소희에 안내에 따라 진을 통과했던 교특범은 만뇌문의 진이 얼마나 뛰어난지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만약 혼자서 진을 뚫으려 했다면… 아무리 감각이 뛰어난 그라도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럼 바로 임무에 착수하겠습니다.”

“고맙소.”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할 따름이지요. 꼭 무문의 필요성을 은인께 증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특범은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떠나갔다.

두 사람이 다시 대화할 때는 인형혈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순간이리라.

* * *

교특범이 방을 나서자 누군가 팔짱을 낀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

그의 얼굴만 보고서도 교특범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광견살검 구자광. 듣던 대로 인상이 매섭군.’

하지만 광견살검이라는 별호와는 다르게 그는 은근히 맹한 구석도 있었고, 왠지 모르게 순수한 면이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저런 이를 거둔다면 확실히 다루기 편하겠어.’

교특범은 우두머리의 자질이 있다.

황극린의 밑에 인재들이 모이듯, 교특범이 이끄는 무문에도 수많은 인재가 즐비하다.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 또한 탁월했다. 광견살검은 ‘명견’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교특범은 감히 은인의 수하를 꼬드기려 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매서운 눈빛을 무시하고 지나쳤을 뿐이다.

“흥, 어린놈이 인사도 안 하네.”

구시렁거리던 광견살검이 황극린이 있는 접객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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