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40화 (140/316)

140화 용살단 출정

대정회의 몇몇 문파들은 이미 대룡상단에 양해를 표하고 무인들을 복귀시켰다. 애초에 당분간 병석에 누워 요양해야 했기에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였다. 그들은 또 더 이상 무인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한 선택을 내린 이유에는, 처음부터 정예를 보낸 탓도 있었지만, 황극린의 발언이 주효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죽인다는 말.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도박을 하기엔… 잃은 무인들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대룡상회의 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오랜 세월을 걸쳐 키운 제자들을 잃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들에겐 대의명분이 없었다.

만약 만뇌문이 천하의 악독한 대마두가 운영하는 문파였으면 모를까.

같은 무림맹에 속한 정파 문파가 아니던가? 참전한 것만으로 대룡상단과 대정회에 대한 의리는 지킨 것이다.

당연하게도 대룡상단은 그것을 이해해 주었다.

억지로 그들을 참전하게 한다면 끌어들일 수 있겠지만, 이미 용살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상단은 명성이 중요하다. 겨우 쌓아 올린 명성을 만뇌문을 치는 데 무너뜨릴 순 없었다.

용살단은 총 다섯 개의 대대로 나뉜다.

음양오행(陰陽五行) 중 오행으로 대대의 이름을 명명했다. 용살단에 속한 화룡대, 금룡대, 수룡대, 토룡대, 목룡대가 대룡상단이 자랑하는 최고의 무력 단체였다.

그중 화룡대와 금룡대는 북경에서 따로 임무가 있어서 파견하지 못하였고, 나머지 세 개의 대대를 만뇌문을 처리하기 위해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각 대의 대주는 초절정에 이르렀거나 그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거기다 각 대원은 어릴 때부터 무공에 입문하여 무수히 많은 경험을 쌓아 왔다. 각 대대가 경쟁하며 성장했기에 그들의 실력은 웬만한 명문거파의 주력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용살단을 파견하는 의미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용살단주 이중산.

환영신창(幻影神創)이라 불리며 과거 중원에서 명망 높았던 고수 중 하나였다. 그는 일인전승의 문파에서 무공을 익혀 강호로 나왔다. 창이라는 보편적이지 않은 병기로 수많은 마두의 목을 베어 버린 그는, 무림맹에서도 간부가 될 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였지만 대룡상단에 영입되었다.

대룡상단이 투자한 이들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그가 무림초출이었던 시절 전대 대룡상단주는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초기의 작은 도움이 이중산의 행보에 큰 영향을 끼쳐 그의 명성이 정점을 찍었을 때, 그는 대룡상단의 품으로 들어갔다.

전대 상단주로부터 현 상단주 가금후는 초기 투자의 중요성을 침이 마르도록 들어 왔다. 그리고 가금후도 인정하고 있었다. 용살단주 이중산의 영입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그는 용살단의 무력을 몇 단계 더 상승시켰으며, 그 또한 꾸준히 무공을 수련하여 현재는 거의 화경에 근접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천하의 대룡상단주 가금후라 하더라도 용살단주는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수하를 다룰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이중산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단주님.”

“허허, 상단주께서 그리 예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용살단주께서는 아버지의 친우신데 제가 어찌 편안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게 편합니다.”

“전대 상단주님을 닳아 고집은 정말…….”

“하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예.”

이중산.

그의 나이는 벌써 환갑(還甲)을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정하다. 아니, 5살 때부터 무공을 익힌 대룡상단주였지만 그에겐 전혀 이길 것 같지 않았다. 무공의 고수란 노화가 늦게 진행된다고 했던가? 은근히 그를 부러워하며 대룡상단주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단주님을 이리로 모신 이유는…….”

“만뇌문 때문이지요?”

호로록, 이중산이 여유롭게 차를 마신다.

“예… 이미 들으신 모양이로군요.”

“꽤 강호가 떠들썩하더군요. 대룡상단이 중소문파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이지요.”

만약 상단주의 앞에서 대행수나 행수 따위가 저런 말을 내뱉었다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용살단주는 다르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상단주님께 그런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허허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용살단주의 표정이 싹 바뀐다.

“감히 이제 갓 개파한 문파 따위가 대(大)대룡상단을 애먹이고 있다는 소문 따위가 가소로워서 말입니다.”

“용봉지회의 우승자라는 명성은 확실히 대단하긴 했습니다. 묘용세가와 형산파까지 당했습니다.”

상단주가 약한 소리를 하자 용살단주가 고개를 젓는다.

“모용세가와 형산파가 누굴 파견했는지 이미 알아보았습니다. 역시나 보여 주기식이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은혜를 축소하여 갚는 게 취미인 줄 알았습니다.”

“후우우, 확실히 아쉽긴 하더군요.”

“제가 확실하게 만뇌문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용살단주의 발언.

그는 한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켰다.

“단주님, 이런 하찮은 일을 맡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대룡상단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뭐든 못 하겠습니까? 전 평생에 걸쳐 대룡상단에 빚을 갚아 나갈 겁니다.”

“단주님…….”

“이 늙은이가 누군지. 대룡상단에 누가 있는지… 강호 무림에 일깨워 주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중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환영신창이라 불리며 강호를 종횡무진했던 초고수.

그가 나선 것으로 이미 승부는 결정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룡상단주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대정회에서 나온 문파와 가문들은 사천성 중강현 근처에서 만뇌문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천혜의 절진 안에 머무는 만뇌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만뇌문을 찾는 대정회의 문파들은 황극린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하나씩 차례대로 격파한다.

형산파를 가장 처음 공격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가장 눈에 띄었을 뿐.

황극린의 경고 덕분인지 대정회에서 나온 문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다시 무인들을 파견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대룡상단에 서신도 보내 놨으니 기다려 봐야겠군.’

황극린의 요구는 간단했다.

금자 백만 냥과 상단주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것. 사실 그들이 받아들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숨겨 놓은 패를 또다시 꺼낼 것이다. 여기서 모용세가나 형산파가 무인을 더 보낼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대룡상단과 대립하며 이미 만뇌문은 형산이나 모용세가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지만, 황극린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호 무림에서 대정회가 꽤 영향력이 크다지만, 무림에서 그러한 단체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만뇌문이 쓸 만하다고 판단되면 비슷한 단체에서 접근해 올 것이다.

여차하면 제갈세가나 개방과도 동맹하면 된다.

물론, 남궁세가는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다니.’

남궁세가는 진심으로 만뇌문을 돕고자 했다. 대정회와 대립한다는 소식을 들은 남궁세가의 가주 창천뇌검은 남궁세가의 최정예 중 하나인 무애단(無涯團)을 덜컥 파견했다.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으나 황극린은 그들을 바로 돌려보냈다.

남궁세가의 도움을 받는 건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황극린이 남궁세가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준 건 현재도 과거도 아닌 ‘미래’의 일이었으니, 사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황극린도 빚을 갚았다고 생각했기에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만뇌문이 황극린이나 뇌불조차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다면 당연히 그런 감정 따위는 접고 남궁세가에 도움을 청할 것이지만… 고작 대룡상단을 상대하는 데 그들의 힘이 필요하진 않았다.

‘확실히 나도 조금 변하긴 했군.’

황극린은 207호로 불렸던 때의 자신과 현재 황극린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비교해 보았다.

‘나쁘진 않아.’

이렇게 선택하고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었다.

과거엔 그의 선택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흑살문의 명령이라면 가족까지 죽여야 했다. 물론, 황극린에게 가족이란 남아 있지 않긴 했어도 말이다.

그렇게 황극린이 청성산으로 돌아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환영신창이 다시 무림에 나타났다고?”

“벌써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뭐어? 그게 정말인가? 구파일련의 출신도 육대세가 출신도 아닌데 화경의 경지에 오르다니…….”

“화경에 올랐다는 건 추측에 불과하긴 하다네.”

“그래도 엄청 강하긴 하겠지. 권룡이 애가 타겠군.”

“거기다 대룡상단의 최정예 무인들도 나섰다지?”

“용살단이라고 했나? 기병대도 갖춰 놓아서 대단하다더군.”

“기병대는 관에서만 활용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대룡상단과 용살단의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환영신창. 황극린도 그 별호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단지…….

‘추정 순위가 50위 아래였던가.’

흑살문에선 은퇴한 무인이든 활동하는 무인이든 간에 자체적으로 순위를 매겨 놓는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활동하지 않는 무인의 경우에는 과거의 업적으로 실력을 평가한다. 그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강호에서 활약하지 않으면 순위는 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흑살문에서 높게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낮은 순위의 무인에게 가끔 패배하는 일도 왕왕 존재했다. 그렇기에 흑살문이 매겨 놓은 순위는 참고만 하면 된다.

‘대룡상단이 제대로 칼을 갈았나 보군.’

흑살문에서 50위 부근이라면 확실히 강적이다.

거기다 용살단이라고 했던가?

만약 만뇌문이 강서성에 머물고 있었다면 위험했으리라. 아무리 황극린이 강하다고 한들, 사방에서 덮쳐 오는 무인들 사이에서 식솔들을 모두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경고를 무시했다 이건가.’

황극린은 형산파에 경고했던 것처럼 대룡상단의 무인들에게도 경고했다.

한 번 더 만뇌문을 공격하려 한다면 제압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한번은 확실히 보여 줘야겠지.’

여기서 뒤로 빼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 주면 또 다른 이리 떼가 만뇌문을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최소한 만뇌문을 공격하면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야 한다.

황극린이 걸음을 옮긴다.

그가 향하는 곳은 개방이었다. 그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 * *

90명의 수하를 이끌고 나아가는 용살단주 이중산.

그의 거창(巨槍)은 도룡은창(屠龍銀槍)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거대했다. 60이 넘은 노인이 그런 창을 들고 있다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흑마(黑馬)에 올라탄 기골이 장대한 무인이 창을 짊어지고 있으니 위엄이 흘러넘쳤다.

“이제 곧 면양(綿陽)현입니다.”

목룡대의 대주 전대용이 보고한다.

이대로 관도만 쭉 타고 나아가면 만뇌문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강현에 도착할 수 있다. 여러 정보를 통해 만뇌문도들이 중강현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찾아내지 않더라도 만뇌문에선 그들을 찾아올 것이다.

모용세가와 형산파를 찾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과 내가 같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죽을 것이다.’

환영신창.

어찌나 빠른지 잔상이 환영처럼 남아 상대를 현혹시킨다고 하여 붙은 별호였다. 그가 익힌 환영창법(幻影槍法)은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무공이다. 푸른 빛의 강기가 공간을 수놓으면, 피아를 가리지 않고 탄성이 터져 나온다.

물론, 그 창을 마주하는 자는 공포에 떨겠지만 말이다.

“면양현에서 하루 쉰다.”

황극린 혼자 나타난다면 단주가 직접 나서 수준의 차이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또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남궁세가나 제갈세가가 만뇌문을 돕게 된다면 대규모의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수하들의 체력 안배는 필수적이었다.

얼마 뒤, 용살단이 면양현에 도착했다.

용을 잡는다는 그들의 이름답게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며 관도를 나아가는 그들을 가로막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상객잔을 예약해 뒀습니다.”

“그리로 가지.”

목룡대에서는 기마대를 운용한다. 열 마리의 말이 머물기 위해서는 넓은 마굿간이 필수였다. 무상객잔은 면양현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객잔이었다.

그렇게 객잔에 도착한 용살단.

그들은 곧 있을지도 모르는 전투에 대비하여 술은 일절 금하고,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객잔의 식재료를 거덜 낼 듯이 먹어 치웠다.

1층 객잔에서 식사를 마친 대주들이 면양객잔의 최상층부로 올라간다.

단주는 당연히 직위 자체가 달랐기에 단원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세 명의 대주들이 단주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다.

단주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상의를 탈의한 채로 육체 단련을 하고 있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화경의 벽에 도달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수련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인의 표본이 아닌가?

대주들은 다시 한번 단주의 성실함과 노력에 탄복하고는 입을 열었다.

“단주님, 식사를 끝마쳤습니다. 취침하겠습니다.”

“그래.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할 것이다.”

“예, 단주님!”

대주들이 인사를 마치고 돌아간다.

이중산은 그들이 떠나간 후에도 두 시진이나 더 수련했다. 이렇게 이동하는 와중에도 수련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듯하다.

그는 깨끗하게 땀을 씻어 낸 후, 자리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놈의 형체가 떠오른다.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다고 꽤 기고만장하고 있겠구나.’

이중산은 그런 이들을 무너뜨리는 게 좋았다. 분수도 모르고 나대는 이들을 가장 싫어했다. 조만간 그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좌절을 주고, 대룡상단의 무너졌던 자존심을 회복하리라.

“…….”

이중산은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깊게 내려앉은 암흑 속에서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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