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34화 (134/316)

134화 묘해지는 상황

백건악은 백온후나 비청하보다 재능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보다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만뇌문도들은 서로 경쟁하며 성장하였고, 백건악은 노력으로 두 사람과의 재능 차이를 극복했다. 노력 또한 재능이라 말한다면 백건악은 재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는 어떻게 수련해야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교관인 구자광이나 황극린에게 질문했다. 또, 동생인 백온후나 비청하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그들을 따라 수련했다.

그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었다.

대룡상단의 호위무사들을 간단하게 제압할 만큼 말이다.

“제법이구나.”

“감사합니다!”

대룡상단의 무인들은 전각 앞의 마당에 널브러져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황극린이 봐도 깔끔한 연계였다. 물론 지적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보내 주도록 해라.”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소……?”

사악평이 말했다.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한다.

“그러니까 하지 않았겠소?”

“……!”

너무도 태연자약하다.

만뇌문의 뒤에 든든한 뒷배라도 있다는 걸까?

“지혈은 했으나 빨리 가서 치료받는 게 좋을 것이오.”

애초에 팔을 자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겠는가.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번에 입을 나불대다간 목이 베여 나갈 것만 같았다.

“이익! 가, 가자! 어, 얼른 일어나!”

“끄응.”

대룡상단의 무인들이 떠나간다.

그것을 본 광견살검이 황극린에게 묻는다.

“밑의 애들을 불러 모을까요?”

그가 말하는 애들이란 흑랑파를 위시한 강서성에 자리를 잡은 사파의 무인들이었다. 물론,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겠지만… 대룡상단과의 싸움에 사파를 끌어들이는 건 오히려 악수가 될 것이다.

“아니, 괜찮다. 제갈수, 식솔들을 모두 불러 모으도록 해라.”

대룡상단과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긴장감에 잔뜩 굳어 있던 제갈수였지만, 황극린의 말에 긴장이 풀어졌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황극린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지만이 가득했다.

“예, 장로님!”

황극린의 손에는 한 장의 서신이 들려 있었다.

* * *

“대체 무슨 일이더냐!”

“크흑……!”

어깨에 붕대를 감은 사악평이 왈칵 눈물을 터트린다. 그나마 왼팔이 잘려 다행이라 할까? 아니, 팔이 잘린 것에 다행은 없었다. 무림에서 입 한번 잘못 놀리면 목이 날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지만, 자신은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뒤에는 대룡상단이 있었으니까.

어떤 미친놈이 인수당 부당주의 팔을 자르겠는가?

“끄흐응, 화, 황극린이……!”

“팔을 잘랐다고? 권룡이?”

“예에에에-!”

분수도 모르는 놈이었다.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다고? 당연히 존경받아야 할 업적이었지만, 200년의 역사를 가진 대룡상단을 건드리는 건 크나큰 실수다. 사악평은 대룡상단이 그들에게 엄벌을 내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우선이 그의 바람에 화답하듯 말한다.

“상단주께 바로 보고드리겠다. 만뇌문은 이번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야.”

“그놈이… 선전포고도 했습니다.”

“뭐라?”

“상단주님께 말을 전하라 하더군요. 끄윽, 만뇌문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동려대협이라는 명성은 모두 거짓이었던가? 어찌 사파의 종자나 할 법한 짓을!”

물론, 사악평은 자신이 마지막에 했던 말은 보고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룡상단과 만뇌문은 싸우게 될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에 자신의 흠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예……?”

“아니, 네 팔이 잘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상회 차원에서도 보상이 들어갈 게야.”

“아……!”

보상이라는 말에 사악평이 화색을 띤다.

팔이 잘렸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는다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번 일로 만뇌약방의 모든 것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옥보단의 제조법과 혈금유의 제조법까지 말이다. 네가 큰일을 해 주었다. 상부에는 내가 잘 말해 주도록 하마.”

“예……! 장로님! 전 장로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푹 쉬도록 해라.”

장로 진우선이 몸을 돌리자마자 입꼬리를 올린다.

‘다행이군. 내가 직접 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인간이란 참으로 약삭빠른 족속이다. 진우선은 자신이 만뇌문에 경고하러 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팔을 잃었다면 얼마나 보기에 추하겠는가? 제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잘린 팔은 다시 붙이지 못한다.

물론, 진우선은 만뇌문에 대한 분노도 느끼고 있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 주마. 용봉지회에서 우승하고 무림이 제 발밑에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틀렸다. 네놈은 세상을 모른다.’

우스웠다.

동려대협이니 권룡이니 하는 별호로 치켜세워 주니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만뇌문이 무림맹에 정식으로 입맹한 사실도 있으니 그들이 자신들을 지켜 줄 줄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진우선은 돈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만뇌문은 처절하게 멸문하고 말 것이다.

‘문파를 세웠던 것처럼 몰락하는 것도 한순간일 거다.’

진우선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상단주에게의 보고가 먼저였다.

* * *

“뭐야? 만뇌문도들이 어디로 가는 거야?”

“이 사람아, 소문 못 들었어?”

만뇌문의 정문 앞에는 마차가 가득했다.

웅성웅성! 남창의 백성들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룡상단과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다니?

“구 대협!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과거 칠성방의 방도였으나 현재는 과거를 청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유충이 외친다.

“사천성으로 간다.”

구자광이 친절하게 답한다.

사천성이라고? 문파를 이동하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보통 문파는 한번 터를 잡아 놓으면 옮기는 일이 드물었다.

“왜 떠나십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대룡상단과 전쟁을 벌인다는 게, 그게 사실입니까?”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처럼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어제 대룡상단의 단원 한 명이 팔이 잘린 채로 도망치듯 만뇌문의 정문을 빠져나온 것을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구자광이 황극린의 눈치를 보더니, 앞으로 나섰다.

“미안하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본문은 대룡상단과 전쟁을 벌이게 됐소. 남창에 있다간… 여러분께도 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떠나는 것이오.”

순간 좌중이 술렁인다.

작은 술렁임 속에서 분노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대룡상단이 뭐길래?

남창의 자존심이라 불리고 있던 만뇌문이다.

강서성의 성도였지만 유독 이렇다 할 명문거파가 존재하지 않았다. 칠성방이나 독존파와 같은 흑도 방파가 설쳐 댔던 것은 중심을 잡아 주는 문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함께 싸우겠소!”

“대룡상단 놈들이 뭐라고 이리 떠나는 겁니까! 제발, 가지 마십시오!”

만뇌문은 차곡차곡 덕을 쌓아 왔다.

그들은 남창에 자리를 잡고 백성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무공을 익혔다고 행패나 부리는 다른 무림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백성들을 위해 자주 연회를 열어 음식을 나눠 주었다. 흑도 방파는 모두 정리됐으며, 남창의 거리에 활기가 샘솟은 건 만뇌문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때 황극린이 나선다.

“만뇌문은 다시 돌아올 것이오.”

“궈, 권룡 대협이다!”

“동려대협께서 말씀하시는 걸 처음 들어 봐!”

황극린은 백성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남창은 만뇌문의 시작이었소. 언젠가 만뇌문이 지부를 세운다면 가장 먼저 남창을 찾을 것이오.”

지부를 세운다고?

그렇다는 말은…….

“승리하고 돌아오겠소.”

“오오!”

분노가 감탄으로 바뀐다.

사실 대부분 만뇌문이 대룡상단에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황극린이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있다지만 대룡상단의 이름값은 차원이 다르다. 만뇌문이 고작해야 남창에서만 활동하는 것과 달리 대룡상단은 중원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황극린은 승리를 말했다.

진정한 무인이란 죽음의 위기에도 고개를 빳빳이 든다고 했던가? 죽음 따위로는 무림인의 의지를 꺾어 놓을 수 없다고 했다. 당연히 현실에서 그런 무림인은 찾기 힘들다. 모두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만다.

백성들은 황극린의 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꼭 이기십시오!”

“얼른 돌아오세요!”

남창의 백성들이 떠나가는 만뇌문을 응원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사천성. 과거 흑사회가 터를 잡았던 곳이다. 아직 진법을 개조하진 못했지만, 조만간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뇌불이 제갈창해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제갈창해와 제갈소희.’

황극린은 미래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진법에 대해서라면 대단한 재능을 발휘했었다. 물론, 사고를 많이 쳤기에 정파 무림에선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모두 긴장하도록.”

“예!”

사실 전쟁을 선포하고 바로 문파를 이동하는 건 위험한 판단이긴 했다.

하지만 전쟁이 심화되기 전, 최대한 문도들이 안전하게 머물 곳이 필요했다. 대룡상단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뇌문은 문파치고는 인원이 매우 적었다. 특히 무공을 익힌 이들은 그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만뇌문의 장원에는 현재 어떠한 기관진식이나 진법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에 작정하고 살수를 투입하면 황극린 혼자 막아 내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황극린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문도들을 두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 그걸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떠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이동 중에 발생할 전투 상황에도 대책을 세워 둔 상태였다.

말이 끄는 마차의 행렬이 사천성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건청문(乾淸門)과 천지문(天智門)이 패퇴했습니다.”

“이번에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나?”

“예, 당분간 전투를 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다치긴 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게끔 적당히 조절하고 있어. 영약한 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정말 그놈은 귀신인가?”

처음 만뇌문이 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룡상단의 모두가 몹시 황당해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껏 전쟁을 선포하더니 도망치듯 떠나가는 게 말이 되는가?

당황했던 대룡상단이었지만 조치는 빨랐다.

강서성에 터를 잡은 대정회 소속 문파들에게 빠르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연히 대정회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가진 대룡상단의 요청이었기에 문파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룡상단에서도 그들이 키운 무인들을 투입하여 이동하는 만뇌문도들을 사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총 다섯 번의 전투에서 만뇌문은 완벽하게 승리했다.

거기다 그들은 여유를 부리듯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다만, 다리를 분지르거나 손을 다치게 하여 당분간 전투에 나서지 못하도록 했을 뿐.

벌써 만뇌문은 사천성에 진입한 상태였다.

모두가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당한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모용세가와 형산파는?”

대정회에서 가장 강한 문파를 꼽으라면 모용세가와 형산파였다.

그들은 대룡상단에서 가장 많은 돈을 먹은 곳이었기에 당연히 나서 주어야 했다. 모용세가의 대공자인 모용가아는 만뇌문과의 싸움을 반대했지만, 대정회에 속한 이상 대룡상단의 청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칠 주야 내로 만뇌문도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모용세가와 형산파의 무인들이라면 만뇌문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룡상단에서도 최정예를 파견했다고 한다. 대정회에 속한 수많은 문파의 무인들이 포위하면 만뇌문은 완전히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장로님! 장로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황극린에게 팔이 잘려 버렸던 사악평이 호들갑을 떨며 진우선을 찾았다.

“왜!”

“큰일 났습니다.”

“또 뭐?”

진우선은 최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만뇌문은 생각 외로 상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권룡의 무위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다.

만뇌문과 대룡상단의 전쟁은 사실상 진우선의 작품이었기에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다.

“만뇌문의 행렬에 무인들이 합류했습니다!”

“어디!”

신경질적인 진우선의 말에 사악평이 땀을 삐질 흘리며 답한다.

“개, 개방과 제갈세가입니다.”

제갈세가는 이해했다.

차남이 만뇌문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는 버린 자식이라는 소문이 중원에 파다했다. 제갈세가에서도 제대로 된 무인을 파견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개방은…….

“거지 놈들이 미친 게로군.”

구파일방 중 하나에 속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 개방의 세력은 쇠퇴했다.

“됐다. 모용세가와 형산파가 있고, 북경에서도 개방에 압력을 넣을 거다.”

“저어, 그리고 또…….”

“또 뭐가 있느냐!”

“…궁… 세가도…….”

“뭐? 어디?”

“남궁….”

왈칵, 인상을 찌푸린 진우선.

남궁세가는 또 뭔가? 용봉지회에서 남궁세가의 공녀가 황극린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정보는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그거랑 무인을 지원해 주는 것은 다르다.

“남궁세가…….”

물론, 대룡상단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대정회의 힘도 있으니 남궁세가의 참전을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진우선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돈’을 지출하지 않고 만뇌문을 잡아먹는가였다. 옥보단과 혈금유의 제조법이 대단하긴 했지만, 전쟁으로 그보다 많은 돈을 쓴다면…….

“씨발.”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는다.

만뇌문이 터를 옮긴다고 하였을 때, 진우선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묘해지고 있다.

그때, 누군가 또 진우선을 찾아왔다.

“장로님, 상단주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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