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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29화 (129/316)

129화 발견

쾅쾅! 쾅쾅! 쾅쾅!

만뇌문 장원 외곽에 마련된 대장간. 이곳은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대장장이 초우와 그의 도제(徒弟)들은 만뇌문을 위해 병기를 제작한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단순히 검(劍) 같은 병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탄지기를 두른 고수를 위협할 수 있을 수준의 화살도 만들었으며, 암기와 비수 따위도 제작하고 있었다. 문파에 활을 사용하는 문도는 없었지만, 문파를 보호하는 기관진식을 제작하기 위해 초우는 온갖 종류의 병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만드는 건 무기만이 아니었다.

대장간 구석에선 근육질의 장정들이 실을 짜고 있었는데, 보통 여인들이 많이 하는 작업이었지만 실의 강도나 탄성을 생각하면 여인들의 근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기에 망치질을 배운 도제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들이 다루고 있는 건 흑주의 실이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귀하디귀한 재료가 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실을 짜는 데 망치질보다 더 큰 힘이 들어가니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도검불침(刀劍不侵)의 의복을 만들 수 있는 특급의 재료였으니 다루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초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도제들이 실을 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더 팽팽하게 당겨!”

“예!”

그래도 초우가 고르고 골라 뽑은 도제들이었기에 작업의 능률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만뇌문도 전부가 흑주의 실로 뽑은 무복을 착용할 수 있을 것이다.

초우의 고함과 철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는 대장간.

그곳에 황극린이 찾아왔다.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문주님과 황 장로님의 배려 덕분에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문도들의 무복도 모두 완성할 겁니다.”

흑주의 실을 뽑아내는 건 황극린밖에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흑주의 실을 가져다주는 건 황극린의 몫이다.

“이것으로는 도제들의 의복을 제작하십시오.”

“예?”

“들어 보니 도제들이 용광로에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더군요.”

한 명이 다치면, 세 사람이 죽어라 고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도제들을 위해 의복을 만들라니? 흑주의 실도 무한한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뽑아내는 실의 양이 줄었다고 알고 있었다.

“저희같이 철을 만지는 놈들이 어찌 그런 귀한 재료를 사용할 수…….”

“식솔들에게 아낄 만큼 귀하지는 않습니다.”

“……!”

“그래서 말입니다.”

황극린은 초우에게 제안했다.

그들이 내공심법을 익힐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이다.

“내, 내공심법 말입니까?”

“예, 화기(火氣)를 다루는 내공심법이 있습니다. 그리 대단한 무공은 아니지만… 내공심법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작업의 능률이 높아질 겁니다.”

가장 처음 만들어진 내공심법은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인간이 더욱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만들어진 게 바로 내공심법이다. 어떻게 숨을 쉬어야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서 탄생된 것이 최초의 내공심법이다. 뭐, 이 부분에선 문파마다 이견이 나뉘기도 한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제안에 초우는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장장이들이 무공을 익힌다니? 어떤 문파를 봐도 대장장이에게 내공심법을 익히라고 하는 문파는 없었다.

“초 장인께서도 무공을 익히시지 않으셨습니까?”

“역시… 알고 계셨군요.”

“예.”

처음 초우를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에게 묵철을 맡기고, 묵철을 강탈당한 칠성방에서 불을 켜고 묵철을 찾아다니고 있었음에도 초우는 긴장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대단한 경지에 오른 건 아니다. 최대한으로 잡아도 일류쯤 될까? 삼류 흑도 무리를 두려워할 수준은 아니라 말할 수 있다.

만뇌문의 문주가 뇌불이라는 사실은 초우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고수라면 수십 가지의 무공을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베푸는 것은 다른 일이다. 무림인들은 백성 모두가 무공을 익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무공이라는 것의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초우만 보아도 자신의 기술(技術)과 지식을 함부로 베풀지 않았으니까.

“내공심법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한 것 같기도. 단지, 육신과 정신이 더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쉽게 말해 숨 쉬는 법이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도… 도제들이 그걸 유출하기라도 하면…….”

“초 장인께서 가려서 뽑은 도제들이 아닙니까? 한 사람을 뽑는 데 석 달 이상을 지켜봤다고 들었습니다. 초 장인의 안목을 믿겠습니다.”

초우는 묘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부담이 되긴 했지만… 고작해야 철을 만지는 대장장이인 자신을 이렇게 믿어 주는 황극린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도제들이 황 장로님의, 만뇌문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하겠습니다. 결코, 만뇌문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피식.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는다.

“모두 다 같은 만뇌문도가 아닙니까?”

“…….”

코끝이 찡하다.

초우는 자신이 어딘가에 소속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만뇌문에 들어온 것이 그의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도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뇌문도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황극린은 무심하게 몸을 돌려 대장간을 떠나갔다.

초우는 거칠게 눈을 비비고, 다시금 망치를 들었다. 황극린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쾅쾅! 쾅쾅!

오늘도 대장간에선 철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문파를 키우는 건 단순히 문도들의 무위가 성장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문도들의 무공이 성장하면 부가적인 요소들은 자연스레 해결되곤 한다. 보통 문파의 주 수입원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의뢰를 받아 경계 무인들을 배치함으로써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문도들의 무공이 강하면 규모가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강호라는 곳은 언제든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 관아나 협객들이 모든 백성을 지켜 주진 않는다. 스스로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 강할수록 더 많은 사업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다만, 황극린은 보통의 문파처럼 객잔이나 주루를 운영하며 수익을 내고 싶진 않았다.

당장은 용비문이나 흑사회에게서 얻은 금자가 있었기에 여유가 있는 것도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강서성 남창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수입이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게 황극린이 원하는 문파의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편이 기대 수익이 더 높기도 했다.

현재 만뇌문의 주 수입원은 ‘옥보단’이었다.

성수신의는 비 노인이 만든 옥보단보다 더 효율이 높고 부작용이 적게 환약을 개선했으며… 만뇌약방(萬雷藥房)의 옥보단은 중원 전역에 판매되고 있었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만뇌문이 이제껏 소비한 금자보다 많은 금자가 금고에 쌓인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만뇌문이 본격적으로 연단(練丹)을 시작했기에 진귀한 약재들을 본격적으로 매입하여,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황극린은 만뇌문에 돌아온 날부터 매일 성수신의와 논의하여 만뇌약방의 미래에 대하여 토의했다. 옥보단만으로는 연단에 필요한 약재들을 만족할 만큼 매입할 수는 없었으니까.

성수신의는 오랜 세월 인간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온갖 약재를 조합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황극린은 미래의 지식과 흑살문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지금 탁상 위에는 황극린과 성수신의가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 올려져 있었다.

“새로운 금창약(金瘡藥)이 완성됐습니다.”

무림인들은 외상을 많이 입는다. 당연한 일이다. 눈만 마주치면 칼부림이 나는 곳이 강호였다. 그렇기에 외상에 효과적인 금창약은 중원의 어느 약방을 가도 구할 수 있지만, 그 품질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름은 혈금유(血金油)라 지었습니다.”

강렬한 인상의 이름이었다.

아마 그것을 노리고 지은 이름이리라. 제조한 사람이 성수신의이니 황극린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직접 손에 상처를 낸 후, 혈금유를 발라 본다. 황극린도 쉬이 참기 힘든 고통이 환부를 통해 전해진다.

“혈금유의 장점은 흉이 지지 않는 겁니다. 환부를 소독하여 상처가 덧나는 것을 방지하고, 약방에서 판매하는 금창약보다 더 빠르게 외상을 치유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 황 장로님이 알려 주신 특제 금창약과 혈고독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특제 금창약이라고 하는 건 흑살문에서 황극린이 사용하던 금창약을 말한다. 사실 다른 이름이 있었지만, 굳이 그것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혈금유에는 흑살문에서 강탈한 혈고독의 피부에 맺힌 ‘기름’이 주재료로 들어갔다. 혈고독은 흑살문에서 수하들을 묶어 두는 족쇄로 사용했지만, 이렇듯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가격은 생각해 두셨습니까?”

“한 통에 금자 한 냥으로 책정할까 합니다.”

금창약치고는 매우 비싼 편이었지만, 무인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곤 할 수 없었다. 효과만 확실하다면 말이다.

“좋습니다. 일단 제가 직접 확인해 보고 효과가 확실하다면 개방과 하오문에게 혈금유를 제공하겠습니다.”

“예, 효과를 확인해 보시면 아마 장로님께서도 깜짝 놀라실 겁니다.”

성수신의는 호언장담하며 제 가슴을 두드렸다. 인간의 체질을 바꾼다며 온갖 실험을 자행했던 그였다. 효율이 높은 금창약을 만드는 것은 그것보단 훨씬 쉬웠다. 더군다나 진귀한 재료인 혈고독도 있지 않았는가?

소림사가 만드는 강호에서 최고의 금창약이라 불리는 옥령산(玉靈散)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음?”

그렇게 생각한 성수신의였지만, 황극린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하자 깜짝 놀란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가?

“왜 그러십니까? 혹시 환부가 불에 덴 듯이 아픈 것이시라면 그건…….”

“아니오. 그게 아닙니다. 혹시 신의께서도 이 약을 상처에 발라 보셨습니까?”

“예, 여기 손바닥과 팔뚝에 상처를 내고 발라 보았습니다. 흉이 거의 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군요.”

황극린이 상처 부위를 내밀었다.

성수신의가 황급히 황극린의 상처를 살펴본다.

‘응?’

고개를 갸웃한다.

성수신의는 무림의다. 당연히 무공을 익혔으며, 안력이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다. 자세히 환부를 살펴보던 성수신의는 황극린의 살점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게 무슨……? 지금 설마…….”

상처가 치료되는 과정으로는 먼저 상처 부위가 지혈되고 그 이후 고름과 진물 등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건 정상적으로 새 살이 돋아나고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피딱지가 생겨나면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다고 할 수 있는데, 혈금유를 바르면 피딱지가 거의 생기지 않고 상처가 낫게 된다. 그래서 흉이 거의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황극린의 상처 부위는… 눈에 보일 정도로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 정도가 지났어야 할 수준이었다.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원래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회복이 빠르셨던 겁니까……?”

성수신의의 질문에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뭐, 느린 편은 아니라 생각했어도 이 정도로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혈금유를 바르니 이렇게 빨라진 것 같습니다.”

황극린은 다른 손에도 똑같은 깊이의 상처를 냈다.

그리고 그곳에는 혈금유를 바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반 시진 동안 상처 부위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황 장로님의 육신은… 약효를 미친 듯이 잘 받아들이는 체질인 듯합니다.”

그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기(氣)를 가진 영약이나 내단의 특성을 흡수하여 그의 체질은 변화한다. 하지만 그의 육신이 적용되는 부분은 그것뿐만이 아닌 듯하다. 어쩌면…….

‘황 장로님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요상단(療傷丹)을 만들 수도 있겠어. 아니, 그보다 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수도……?’

요상단이란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었다.

황극린의 회복 속도라면 내상을 입어도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림에서 엄청난 이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층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면……?

아예 내상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신체가 된다면 어떨까?

그게 정말 가능할까?

의문이 든 것도 잠시.

‘음양의 조화를 완벽히 이루어 낸 장로님의 신체라면 분명히… 가능하다!’

성수신의의 눈동자에 열망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체질을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는 진행 중이었지만, 사실 특정한 성질의 영약을 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혈금유의 약효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그의 신체를 보고 있자니, 몇몇 방법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새로운 혈금유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장로님만 사용할 수 있는 혈금유를 말입니다.”

일단 황극린이 약효를 어느 정도로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걸 알아보는 게 첫걸음이었다.

제갈창해를 만나러 간 뇌불이 돌아올 때쯤이면,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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