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진실 공개
친선비무의 승리는 결국 하후세가가 가져갔다.
하지만 사실상 만뇌문이 승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하후세가의 친위대의 대주가 겨우 나서서야 친선비무에서 승리했다지?”
“그러게 말이야. 후기지수의 비무에서 대주급이 나서다니…….”
“애초에 만뇌문의 문도 중에서는 십대 초반도 있었다는데?”
“그게 말이 되는 건가? 광견살검이 나섰으면 어차피 만뇌문이 이길 비무였구만.”
“그러니까 말일세.”
만뇌문도들은 아직 어리다.
특히 백온후라는 이름이 중원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청하나 백건악의 이름도 조금씩 거론되고 있었다. 강서성에서도 꽤 오랜 역사의 하후세가가 사실상 친선비무에서 패배했다는 소문은 생각 이상으로 충격이 강했다.
거기다 황극린이 강호인들에게 전한 이야기도 같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만뇌문은 어떤 문파의 비무첩이라도 받아들인다고 했다. 만뇌문도들의 실력에 확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참, 북신방(北辰幇)이나 구천성궁(九天聖宮)에서도 만뇌문에 친선비무를 신청한다고 하더군.”
“오호, 북신방이라면 산동성에서 최근 명성을 떨치는 문파가 아닌가? 북신방주가 새로운 수련법을 개발하여 제자들의 무위가 대단하다고 하던데.”
“맞네. 북신방의 제자들은 산동성 1차 예선 통과자만 다섯 명을 배출한 문파지.”
“구경할 맛 나겠군.”
“우리도 한번 가 볼까? 또 모르지 않나? 친선비무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나?”
“설마, 그러려나?”
“만뇌문도들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을 터이니,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지.”
조금씩.
강서성 남창으로 무인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최근 유명세를 떨치는 황극린을 만나려는 이들도 있었고, 만뇌문도들의 재능이 정말 소문처럼 뛰어난지 확인하려는 무인도 있었다. 또, 만뇌문의 명예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기회를 엿보는 후기지수들도 있었으며, 만뇌문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라며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또, 황극린이 정말 소문대로 인간을 홀리게 할 외모의 소유자인지.
만뇌문의 문주가 과거 강호를 뒤흔들었던 고수라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만뇌문에 대한 소문은 여러 갈래로 무성하게 자라나는 중이다.
당연히 소문 그대로의 만뇌문을 믿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그들을 의심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딱히 문제가 없었지만, 크고 작은 문제가 점점 부각되리라.
하후세가는 좋은 의도로 만뇌문에 접근했었지만, 모든 문파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럼 남창으로 가 보세.”
“좋지.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오늘도 만뇌문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남창으로 떠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 * *
“형아, 우리 정말 강한 거야?”
백온후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묻는다.
평생 방 안에서 허약한 체질에 고통받았던 백온후다. 그는 자신이 무공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공을 수련할 때도, 은인 황극린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후세가에 이어 양의문(兩儀門)과 조화문(造化門)의 제자들과의 친선비무까지 끝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강한가?
재능이 있는 건가?
사실 기쁘다기보단 얼떨떨한 마음이 컸다.
어린 동생의 질문에 백건악이 열심히 휘두르던 검을 내려놓는다.
“온후야.”
“응?”
“그걸 떠올려 봐.”
“뭘?”
“장로님과 문주님의 비무.”
백온후가 단번에 이해했다는 듯 입을 벌린다. 백건악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 장로님과 문주님의 차원이 다른 비무가 떠올랐다. 그것을 보고 ‘강함’을 운운하다니…….
“미안… 내가 너무 자만했어.”
“자만이 아니야.”
두 사람에 대화에 끼어든 건 제갈수였다.
“응?”
“무조건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야. 객관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실력을 파악하는 것이요?”
“그래.”
백건악은 딱히 제갈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황극린의 가까이에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제갈수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를 선의의 경쟁자로 인정하고,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갈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 멀리서 조용히 검만 휘두르던 비청하도 은근슬쩍 다가와 귀를 쫑긋한다. 제갈소희에겐 바보 취급을 받는 제갈수였지만, 강호의 물정을 잘 모르는 만뇌문도 중에선 가장 똑똑하다고 할 수 있었다.
“너희는 최소한 일류의 경지에 올라 있어.”
“일류?”
“그래, 일류. 그런 경지의 구분은 안 배웠어?”
“딱히 그런 것을 배운 적은 없습니다.”
“어디 보자…….”
제갈수는 가문에서 배웠던 것을 정리하여, 그들에게 알려 준다. 삼류의 무인과 이류의 차이. 그리고 이류와 일류의 차이 등… 사실 무림에서도 경지의 구분이 명확하게 나눠진 것은 아니었지만, 제갈세가의 방식으로 경지를 구분하는 방식이 있었다.
“삼류는 초식 하나를 겨우 펼치는 수준. 그냥 무공의 입문자라고 생각하면 돼. 이류는 초식 하나를 자유자재로 펼치는 수준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일류부터는 ‘내공’을 운기하여 초식에 담을 수준이라고 대충 이해하면 될 거야.”
“아…….”
“보통 강호에선 일류부터 ‘고수’라 칭하곤 해. 보통 일류 고수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장정 열 명 이상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니… 최소한 너희는 열 사람의 힘을 낼 수 있다고 보는 거지. 물론, 이건 일반적인 경우라 말할 수 있어.”
“우리가 고수라니…….”
“내가 처음에 말했지? 스스로의 실력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응, 맞아요!”
똘망똘망한 백온후의 눈빛.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제갈수는 왠지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갈세가만 하더라도 수백 명의 일류 고수를 보유하고 있어.”
“수, 수백……!”
“당연하지. 제갈세가는 호북성뿐 아니라 20개가 넘는 지부를 가지고 있으니 그만큼 지부를 지킬 무인도 많아야 해. 그리고 일류만으로는 모자라지.”
“일류 다음엔 무슨 고수라고 부르나요?”
“보통 일류 다음을 절정 고수, 그다음을 초절정 고수라 불러. 이들은 이제 어떤 문파를 가도 대접을 받을 수 있어. 절정 고수는 내공을 유형화하여 기로써 발현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하지. 장로님과 문주님이 사용하는 뇌전이 기를 유형화한 것의 심화판이라고 보면 돼.”
“우와……! 대단해요!”
“그렇지? 너희는 거의 절정에 가까운 일류라고 보면 돼. 그러니까 너희가 무림 어딜 가서도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되지만… 너희보다 강한 고수가 강호엔 널려 있다는 말도 되지. 무림은 넓으니까. 아까 말했지? 제갈세가에서 일류의 고수만 수백이라고.”
“네에…….”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비청하가 묻는다.
“그럼 구 교관님은 어떤 경지에 올라 있습니까?”
“천하백대고수. 그것이 뜻하는 건, 초절정에 올라 있다는 말이야.”
“초절정…….”
“검기를 넘어 검강을 바라볼 경지라는 뜻이지. 사실 강호 전체로 따지자면 초절정 고수는 백 명보다 더 많을 거야. 그런데 왜 백대고수라는 말을 쓰는지 알아?”
“왜요? 왜 그렇게 불러요?”
“강호인들은 딱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하니까.”
“그게 무슨…….”
“하하, 나도 어릴 때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야. 하지만 그게 사실이야.”
제갈수는 무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소년과 두 청년을 상대로 지식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랐기에 자신의 해석은 거의 넣지 않고, 어른들에게 배웠던 ‘상식’ 수준으로 문도들에게 지식을 전해 주고 있었다.
“그럼 황 장로님은요!?”
“초절정 이상은 화경(化境)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 초절정 고수보다 훨씬 강하다지만… 그 경지가 어떤 경지인지는 나도 자세히는 몰라.”
“화경…….”
그때 백건악이 묻는다.
화경이라는, 참으로 멋있는 단어라고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는 말이다.
“강호에 화경의 고수가 어느 정도나 있는 겁니까?”
“보통 천하칠대고수에 오르면 화경에 올랐다고 하더군. 정파 무림에서 최소 일곱 정도라 생각하면 될 거야. 물론, 무림에서 은퇴한 고수들이나 활동하지 않는 고수들은 칠대고수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그것까지 고려해야겠지.”
“천하칠대고수…….”
“그렇다면 뇌불 어르신께서도 원래는 칠대고수에 속해 계셨겠군.”
“뇌불 어르신께서는 과거 천하제일의 대마두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어지는 대화에 제갈수가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 뇌불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뇌불 어르신? 그게 지금 무슨 소리지? 갑자기 왜 뇌불 이야기가…….”
그러자 백온후가 고개를 갸웃한다.
“문주님이 뇌불 어르신이잖아요.”
“응?”
“음?”
“…뇌불? 문주님이 뇌불이라고……?”
잠시만, 이게 무슨 소린가?
백온후나 다른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뇌불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도 태평하다. 저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잠시만, 그러고 보니…….
‘주공께서는 문주님의 존명대성을 알려 주지 않으셨지. 그리고 분명…….’
뇌불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간 만나게 될 것이라며 말했었다. 이제야 그 말이 뭘 뜻하는지 알게 된 제갈수였다.
“저, 정말로 문주님이 뇌불… 뇌불 어르신이라는 말이냐?”
“맞아요.”
“맞습니다.”
“예.”
백온후, 백건악, 비청하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말도 안 돼!”
깜짝 놀란 제갈수가 외친다.
제갈세가의 원로원주님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를 때, 문주가 범상치 않은 인물인 것 같기는 했었다.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변치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뇌불이라니?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대마두 뇌불이라고?
“저기… 온후야, 솔직히 하나만 답해 다오.”
“응?”
“문주께서는 정말로… 사람을 먹는 것이냐?”
세 사람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백온후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그건 아닐걸요?”
뇌불이 무섭기는 하지만, 사람을 먹진 않는다. 그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가장 좋아하며, 특히 황극린의 양념장에 환장한다. 이상한 미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제갈수는 그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다른 걱정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뇌불은…….
‘무림공적…….’
그가 알기로 무림공적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뇌불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무림맹에선 아직 뇌불을 무림공적으로 올려놓았으리라.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백온후를 비롯한 문도들은 뇌불이 대마두였다는 것에 거부감 따위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미 강호를 수없이 많이 경험했던 제갈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아무리 문도들이 인정한다고 해서 변하는 사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만뇌문을 조여 올 것이다.
그러다 문득.
황극린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만나 본 문주님은 과격한 언행을 하긴 하셨지만… 나쁜 사람이라 생각되진 않았어.’
오히려 제갈수는 그를 무림에 대단한 명성을 가진 무인이라 생각했었다. 아마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그가 뇌불이라는 걸 들키는 경우는 없으리라.
거기다 황극린이 있었다.
그가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으리라. 분명히 이번 일도 문도들이 걱정하기도 전에 다 해결해 놓은 것이 아닐까? 그가 이렇게 걱정하는 게 괜히 만뇌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한번 여쭤 봐야겠어.’
제갈수는 그래도 제갈세가 출신이었다.
제갈세가에서도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찜찜한 일을 묻어 둬서만은 안 된다고 배워 왔었다.
제갈수는 직접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제갈수는 문도들과의 대화를 멈추고, 황극린이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헉!”
황극린의 전각에 찾아간 제갈수는 깜짝 놀랐다. 입가에 피를 덕지덕지 묻힌 노인이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는 뇌불이었다.
“뭘 그렇게 보냐?”
“무, 문주님을 뵙습니다!”
자세히 보니 뇌불이 입가에 묻힌 건 피가 아니라 양념장이었었다. 아마도 황극린이 만든 양념장이 분명했다.
뇌불은 무언가 제갈수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과거엔 존경만을 담았다고 한다면, 지금 그의 눈빛에선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극린이를 찾아온 거냐?”
“예에,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같이 들어가자. 나도 극린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뇌불은 복잡한 얼굴로 황극린의 전각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만뇌문에 머물며, 문주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의 손에는 서신 한 장이 들려 있었는데…….
‘저것 때문인가?’
과연 어떤 내용의 서신일까?
제갈수는 그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