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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11화 (111/316)

111화 뇌전과 얼음

소궁주는 처음 황극린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본 순간 당황했다.

그의 외모에 반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뭐, 확실히 눈길을 끌 만큼 뛰어나긴 하지만 북해빙궁주나 부궁주의 찬란한 미모를 보아 왔던 소궁주였기에 외모엔 혹하지 않는다. 거기다 자신의 외모도 궁주의 핏줄을 이어받았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단지, 황극린이라는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왜 어디서 본 것 같을까?’

익숙했다.

몹시도.

소궁주가 아미를 찌푸렸다.

왜인지 순간 불쾌한 기분이 엄습했다. 일단 궁주님의 명령대로 황극린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가 어디서 왔는지, 왜 북해에 침입했는지 심문하면 그만이었다. 사내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엔 수십 명의 빙궁도들과 흑나찰과 등운선녀가 있다.

거기다 소궁주인 자신까지 있으니 사내를 사로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진을 펼쳐라!”

흑나찰의 명령에 빙궁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빙혼분쇄진은 이미 한번 뚫렸다고 했던가? 삼형환환진(三形幻幻陣)은 또 다를 것이다. 세 개의 형으로 구성된 환상진으로 수십 명의 궁도의 내력을 모아 적에게 집약하여 압박한다. 심기체(心氣體)를 구속당한 상대는 평소 실력의 반절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흑나찰, 등운선녀 그리고 소궁주.

이 세 명의 전력으로도 사내를 죽일 수는 있지만, 궁주의 명령에 따라 사로잡아야 한다. 그렇기에 삼형환환진까지 동원하며 싸우는 것이다.

거기다 이곳은 북해.

북해빙궁의 빙공을 익힌 이들은 본래 실력을 상회하는 위력의 무공을 펼칠 수 있다.

“흥!”

오른손이 새파랗게 질린 흑나찰이지만 이딴 것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손을 휘젓는다. 그녀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음산한 기운의 희뿌연 구체가 형체를 갖추었다.

“북해에 침입한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월광참(月光斬).

흑나찰의 독문무공으로, 적중당한 부위가 찢겨 나가며 월광의 기운이 독처럼 상대의 육신을 좀먹는다. 원래 월광참은 피해야만 하는 무공이다. 정면으로 맞붙다간 치명적인 음기가 체내를 잠식하게 된다.

하지만 피하지 못할 것이다.

황극린이라는 사내는 삼형환환진에 갇힌 상태다. 빙궁도들의 거대한 기운이 육신을 짓눌러 걷기도 힘든 상태이리라. 지금도 황극린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흥,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것!’

흑나찰은 과거 몇 번이나 중원에 나선 적이 있다.

여인이 아닌 사내들이 기득권을 차지한 무림의 행태에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황극린을 잘 알지 못하지만, 주제도 모르고 북해에 기어들어 온 것을 보면 뻔히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잘난 맛에 사는 사내가 분명하다.

흑나찰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앞으로 달려간다.

동시에 등운선녀와 소궁주 또한 흑나찰의 뒤를 따른다. 혹시 흑나찰의 일격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순식간에 황극린의 앞에 도달한 흑나찰.

그녀가 월광참을 펼친다. 흩뿌연 기운이 거세게 진동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곳은 북해. 음기가 충만한 장소였으니 위력이 배가될 것이다.

콰르르륵, 쿵!

황극린에게 부딪치기 전 한 번 더 압축된 월광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그는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니, 피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흥.”

손바닥에 전해지는 충격은 묵직했다. 처음 황극린의 육신에 닿았을 때 차갑다고 생각했던 것이 수치스러웠는데, 이것으로 만회할 수 있었다. 잘난 맛에 살던 사내는 볼품없이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으리라.

“흑나찰!”

등운선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왜…….

“음기를 압축한 건가.”

“어……?”

분명히 황극린의 복부에 정확히 월광참을 꽂아 넣었다. 절대 힘을 조절하거나 했던 것이 아니다. 상대의 무위가 대단하다는 것을 들은 참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어떻게 황극린은 무사히 서 있을 수 있는 걸까?

“내공도 생기고, 음기에 내성도 생긴 건가?”

사내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월광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말이다.

“하압!”

흑나찰이 다시금 손을 휘두른다.

이전보다 훨씬 강한 월광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북해의 축복이자 저주와도 같은 혹한의 추위가 합쳐져 기이한 소리를 낸다.

까드드드득!

소리만 들어도 흑나찰의 손에 맺힌 월광의 기운의 위험성을 직감할 수 있었다. 흑나찰은 지체하지 않고 손을 휘두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극린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사내는 삼형환환진에 종속된 것이 아니었나?

대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황극린 또한 주먹을 뻗는다.

흑나찰과는 달리 내력을 담지 않아 보였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흑나찰의 손바닥과 황극린의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휘황찬란한 뇌전이 번뜩였다.

쿠우웅!

유형화된 기운이 충돌한다. 힘과 힘의 격돌. 북해에서 흑나찰이 작정하고 펼친 월광참을 힘으로 막아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황극린은 손쉽게 그것을 해냈다.

콰지지지지직-!

“하으으, 윽!”

감전(感電).

난생처음 느끼는 고통이다. 황극린의 주먹에 맺힌 뇌전이 흑나찰의 월광의 기운을 찢어 버리고 그녀의 피부에 닿았다. 온몸이 마비되며 머릿속은 새하얗게 질렸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치 삼형환환진에 갇힌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진!”

등운선녀가 크게 외치자 황극린에게 전해지는 진의 기운이 거세진다.

그리고 소궁주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흑나찰을 옆으로 밀고, 검을 겨누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검이다. 마치 얼음처럼 말이다.

‘기를 형상화한 건가. 상당한 내력이 소모될 터인데.’

빙천검(氷天劍).

빙궁주의 절기를 이어받은 여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무공. 손잡이에 냉기와 음기를 조합하고 암축하여 그대로 얼려 버린다. 이것으로 검기를 발현하면 그 위력이 훨씬 강해진다. 적은 내력으로도 강력한 강기를 사용할 수 있다.

혹한의 추위가 불어닥치는 북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었지만, 북해빙궁의 궁도들은 애초에 북해에서만 살아간다.

빙천검은 스치기만 해도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인간은 음기와 양기가 조화되어야 하지만, 빙천검은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무공이었다.

사아아아-!

혹한의 냉기를 뿜어내는 빙천검이 황극린의 다리를 노린다. 하체가 묶이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게 된다. 빙궁도들은 궁주에게 침입자를 제압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거세진 삼형환환진의 기세와 소궁주의 일격.

또한, 옆에서는 등운선녀가 다음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뇌전에 당했던 흑나찰이 정신을 차렸다.

누가 봐도 황극린이 열세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유로웠다.

사아악- 사아아! 사아아악!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는 빙천검. 황극린이 간발의 차이로 소궁주의 검격을 피해 낸다. 소궁주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단순히 피하는 것으로는 빙천검의 음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욱이 사내라면 음기에 몹시 취약하다.

사아아아……! 사아아……!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은빛의 광채가 번뜩이며 음기를 방출한다.

‘이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음기에 중독되고 냉기에 당한다면 육신이 얼어붙는다.

이제까진 잘 피해 냈다고 하지만 이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합!”

등운선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황극린의 뒤를 점한 그녀의 손에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한 냉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흑나찰이 음기를 활용한 무공을 익혔다면, 등운선녀는 오로지 빙공에만 매진했다.

촤라라락!

손바닥에 거대한 냉기가 응축된다. 그녀의 내공뿐 아니라 북해의 차가운 바람이 그에 화합하듯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

등운선녀와 소궁주가 앞뒤로 황극린에게 일격을 쏟아 냈다.

‘이건 꽤…….’

황극린은 초감각으로 두 여인의 합공이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북해라서 그런지 빙궁도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확실히 증폭되고 있었다.

‘하지만 뇌전이 더 강하다.’

만약 화공계의 무공을 익혔다면 두 여인에게 고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뇌(雷)의 기운을 품은 황극린은… 눈보라처럼 밀려오는 기운을 찢어 낼 수 있었다.

사악.

황극린이 두 손을 비빈다. 하단전에 가득한 뇌전이 그의 손에 깃들었다.

짝!

그런 다음 손뼉을 쳤다.

“……!”

“……!”

등운선녀와 소궁주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뇌전(雷電)을 말이다. 먼 거리에서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터져 나오는 번개는 처음 보는 것이다. 당연히 피할 틈이 없었다.

소궁주와 등운선녀가 더 많은 내력을 검과 손에 담았다.

빙(氷)과 뇌(雷)의 격돌.

성질의 우세도 있겠지만, 북해에선 당연히 빙공이 우세해야 맞았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쿠르으으으응!

하나, 두 여인은 황극린이 터트린 뇌전의 기운과 부딪치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폭뢰(爆雷)에 음기(陰氣)와 빙기(氷氣)는 쉽게 녹아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이게 무슨……!’

* * *

‘확실히 강하군.’

황극린은 폭뢰 한 번으로 세 사람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막대한 내공을 잡아먹는 기술이었다. 내력이 늘어난 김에 작정하고 사용했지만, 확실히 북해라서 그런지 빙궁도들은 강했다.

특히 가장 얇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은 폭뢰를 맞으면서도 반격을 날렸는데, 그것이 참으로 묘한 수였다. 손바닥을 펼쳐 공간에 휘둘렀을 뿐인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음기의 내성을 지니게 된 황극린 또한 ‘조금’ 춥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떻게……?”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은 여인이 멀쩡하게 선 황극린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인의 두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다. 충격이 꽤 큰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한빙백골소혼장(寒氷白骨消魂掌)을……?”

황극린 또한 들어 본 적이 있는 무공이다.

빙백마후라고 했던가? 초대 북해빙궁주가 만든 역천의 무공. 북해에서 그녀의 손짓 한 번이면 무엇이든 얼어붙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내성이 없었다면… 내상을 입었을 수도 있겠군.’

아니면 반탄지기를 끌어 올려 최대한으로 방비해야 했으리라. 하지만 황극린은 전혀 방비하지 않고도 여인의 최후의 일격을 그냥 흘려 내 버렸다.

‘영물의 내단을 완벽히 흡수한 것은 맞군.’

그렇기에 빙궁도의 빙공을 쉽게 흘려 낼 수 있었겠지.

그런데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내공이 두 배가 되었군.’

본래 그가 가졌던 내력은 고작해야 30년 수준.

하지만 곰 영물의 내단을 취한 후에 그는 드디어 1갑자를 달성했다. 혈풍뇌전신공의 내공 소모량을 생각하면 꽤 부족하긴 하지만……. 이번에 북해에 온 것은 내력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양기와 음기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왜 내력이 이렇게 많이 늘었을까?

곰 영물의 내단에 담긴 기운이 컸기에? 아니다. 내력이 담긴 정도를 따지면 만년화리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다.

‘애초에 내가 음기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던 건가?’

그러면 말이 된다.

만년화리를 취하여 양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딱히 부작용은 없었다. 보통 사람은 한쪽 기운에 치우치면 살아갈 수 없었다. 북해빙궁만 보아도 체내에 음기가 넘쳐 났기에 많은 부작용을 앓고 있지 않은가?

황극린은 납득하고, 고개를 돌렸다.

세 여인은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려는 게 보였다.

여인을 보며 황극린이 묻는다.

“북해빙궁에서 왔나?”

“대체 당신의 목적이 무엇이죠? 왜 북해에 침입한 것이죠? 설마 혈마교에서……!”

“영물의 내단을 얻으러 왔다.”

그게 끝이란 말인가?

물론, 그것만으로도 북해에서는 죽을죄였지만 지금 당장은 황극린이 갑이었다. 소궁주는 빙궁도들의 목숨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도 삼형환환진을 펼치는 빙궁도들이 황극린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것을 막은 참이었다.

“당신의 실력은 인정하겠어요. 강해요. 북해에서 나찰과 선녀를 동시에 상대한 거니까요. 하지만 빙궁의 전력이 이게 끝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북해빙궁에는 열 명의 나찰과 열 명의 선녀가 있다.

또한, 수백 명에 달하는 1급 빙궁도가 존재한다. 거기다 부궁주와 궁주는… 규격 외라고 할 만큼 강한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겠지.”

“그러니 제안하겠어요. 살려 주신다면…….”

소궁주는 황극린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패자는 죽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소궁주는 소중한 빙궁도들을 지켜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 궁주에게 처벌을 받더라도 모두를 살려야 한다.

“궁주님! 이런 놈에게 굴복하다니요!”

“그러지 마십시오! 죽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등운선녀와 흑나찰이 소리쳤지만, 소궁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은 제가 감당하겠어요. 절 인질로 삼아도 좋답니다. 그러니 다른 궁도들은…….”

“죽이지 않을 거다.”

“네?”

“빙궁주께 잘 말씀드렸으면 좋겠군. 언젠가 몰래 침입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전해 다오.”

정녕 사내는 패배한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 생각인가?

태어날 때부터 힘의 논리를 배워 왔던 소궁주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적은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소궁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당신은 후회할 수도…….”

“살려 달라고 해 놓고 살려 준다니 후회라?”

“그건…….”

황극린이 화제를 전환한다.

“살려 주는 대신 하나만 물어보지.”

“제가 대답할 수 있다면 답해 드리죠.”

“북해빙궁의 여인들은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무언가를 알고 질문하는 것일까?

소궁주의 표정이 차갑게 변해 갔다. 이 부분은 북해빙궁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였다.

“아뇨. 불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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