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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06화 (106/316)

106화 북해

마령은 황극린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이긴 한데 말이지.’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디선가 보았다고 착각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그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걸까? 만뇌문이라는 문파는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

‘저런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리도 없고 말이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같이 북해로 향하고 있으니 언젠간 떠오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영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봐야 하는 거다.

“황 소협?”

“예.”

“인면지주에게 뭘 먹이시나요?”

“딱히 뭘 먹이지 않소.”

“네?”

이상하다.

포악한 영물이라면 먹이를 주지 않으면 주인마저 먹어 버리려 한다. 비비 또한 굶주리면 은근슬쩍 마령의 몸을 죄려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마령이 비비보다 훨씬 강하니 먹힐 리는 없었지만, 그녀가 어렸을 땐 생명의 위협을 자주 느꼈다.

“알아서 먹소.”

“알아서 먹는다고요?”

황극린은 설명하는 대신, 행낭을 툭툭 쳤다.

빼꼼이 고개를 내민 흑주가 황극린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비비가 다시금 새액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거렸지만, 깔끔히 무시한 흑주가 어딘가로 달려 나간다.

“어? 도망간다. 그대로 둬도 되는 건가요?”

“괜찮소.”

“흐응…….”

그렇게 일각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자그마한 인면지주가 제 몸보다 큰 사슴을 사냥해 왔다. 마령이 화들짝 놀란다.

‘이렇게 똑똑해도 되는 거야?’

흑주는 마치 주인을 위해 잡아 왔다는 듯이 황극린 앞에 사슴을 대령하고는 벌러덩 뒤로 누워 버린다. 황극린이 손을 내밀어 흑주의 배를 쓰다듬자 끼기기, 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정말 똑똑하군요! 대체 어떻게 훈련을 한 건가요?”

“딱히 훈련한 적은 없소.”

“…….”

부러운 듯한 시선으로 황극린과 흑주를 바라보던 마령이 시선을 옮긴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한기(寒氣). 북해엔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벌써 살을 에는 바람이 살랑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북해에 오기 전 돈황에서 두꺼운 의복을 가져왔지만… 이걸로는 북해의 추위를 쉬이 떨쳐 내진 못할 것이다.

“북해에 가면 객잔 따위는 없을 거예요.”

“괜찮소. 노숙은 익숙하니까.”

“그래요? 그건 북해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예요. 중원에서 하는 노숙과는 차원이 다를 거예요.”

황극린이 마령을 바라본다.

“왜요?”

“소저는 혈마교 출신이오?”

“…….”

옅게 피어 있던 그녀의 미소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광사탑의 후계자는 아닐 것이고, 해박한 무공 지식을 볼 때 명문가 출신이라 생각했소. 거기다 보라색 머리카락은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없지 않소?”

“고작 그걸로 제가 혈마교 출신이라 추측했다고요?”

“찍었소.”

“네……?”

황극린의 무신경한 말에 맥이 풀린다.

찍었다고?

‘나 지금 낚인 거야?’

이런 간단한 유도신문에 속았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야 하건만, 왜인지 짜증이 나진 않는다. 황극린의 의외의 모습을 보아서 신기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솔직히 북해로 향하며 느낀 건데, 황극린은 너무 과묵했다. 마치 혈마교의 살수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필요한 말만 하고, 사적인 대화는 나누지 않는 살수들 말이다.

“그런 말도 하실 줄 알았군요. 맞아요. 전 혈마교의 교도랍니다.”

당당히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마령이다.

애초에 그리 중요한 비밀은 아니다. 돈황에서 몇몇 이들은 이미 그녀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극린은 요희루에서 그녀의 이름만 듣고 정체에 대한 정보는 사지 않았다.

“혈마교도와 동행하게 된 느낌이 어떠세요?”

그녀는 도발하듯 황극린에게 질문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은 대답을 잘못하면 잡아먹어 버리겠다는 맹수의 그것과 비슷했다.

“딱히 별 느낌은 없소.”

“정파인들은 그러잖아요. 혈마교는 피에 미친 마귀들만 있다고 말이에요. 뭐, 완전히 거짓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황 소협은 정파인이잖아요?”

“결국, 똑같은 인간이지 않소?”

“정녕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소.”

“으음…….”

마령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광사탑에 찾아와서 기도를 올린 것을 보면 평범하진 않았다.

용봉지회에 우승하여 정파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강할 줄 알았건만, 딱히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조금 신기하다고 할까? 마령은 정체를 숨기고 중원 무림을 겪어 보았다. 황극린과 같은 이들은 찾기 힘들었다.

보통은 사파인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한다.

그런데 황극린은 그런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밀 하나 알려 드릴까요?”

마령은 그를 조금 더 도발해 보기로 한다. 과연 자신이 혈마교주의 딸 중 하나고, 지금은 교주가 되기 위해 무림을 떠도는 중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는 용봉지회의 우승자로 결국은 무림맹의 요직에 앉을 것이다. 혈마교도. 그것도 혈마교주의 딸과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에게도 분명 피해가 가리라.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게 궁금하다.

“전…….”

그녀가 입을 떼려는 순간.

“쉿.”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령도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저들은 누구죠?”

“흑사회의 살수들이오.”

“흑사회요?”

그녀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찼다.

황극린의 또 다른 모습을 볼 기회였다.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여기서 기다리시오.”

황극린은 지체하지 않고, 살수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비릿한 피 냄새가 마령의 코를 간질였다. 그는 약간의 고민도 없이 흑사회의 살수라는 이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이다.

그가 돌아오자 마령이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묻는다.

“다 죽였나요?”

“그렇소.”

“대단하시네요.”

황극린은 정말 정파인 같지 않았다.

보통 정파의 후기지수들은 인간을 죽여 본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황극린도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태평하게 살수들을 학살하고 왔다.

“그런데 흑사회의 살수들이 왜 황 소협을 쫓는 건가요?”

아직 그녀는 흑사회의 간부 중 하나인 심화절이 죽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천흉인 것은 확실하지 않았으나 심화절에게 무공을 전해 준 게 마령이라는 건 확신하고 있었다.

“흑사회의 간부를 죽였소.”

“간부요?”

“그렇소. 흑사회 서녕지부의 지부장을 죽였소.”

마령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새삼 그를 걱정하는 얼굴로 말한다.

“어머, 흑사회는 악독하기로 유명한 이들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각오는 했소.”

어떤 각오를 한 것일까?

황극린은 빤히 마령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순간 황극린의 눈을 마주하고 싶었다. 지금 그는 어떤 눈동자를 하고 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했지만… 잠시 참기로 했다. 당장은 고민해야 할 게 생겼으니까.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사냥은 인면지주가 했으니 요리는 제가 할게요.”

“그러시오.”

딱히 요리랄 것도 없다.

사슴을 손질하여 불에 구우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사슴을 손질하며 생각했다.

‘아쉽네. 그는 괜찮은 실험체였는데.’

새로운 실험체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꽤 가까이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음…….”

마령의 시선이 황극린에게로 향했다.

* * *

“하으으으, 정말 춥네요.”

북해의 초입.

중원인들은 이곳의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어도 극한의 추위는 인간의 생명마저 위협할 정도였다. 그녀는 내력을 운기하여 체온을 높였지만, 추위에 쉬이 적응할 수 없었다.

‘괜히 북해를 안내해 주겠다고 했나?’

그녀는 한번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혈마교의 지존이 되고자 마음먹었으니 그렇게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만에 후회라는 걸 했다. 강인한 정신력도 무너뜨리는 추위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북해의 중심부로 갈수록 더 추워진다는 것.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런데 황 소협은 안 추우세요?”

몸을 웅크린 채 마령이 묻는다.

“괜찮소.”

“정말로요?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고요?”

“그렇소.”

“추위를 잘 견디는 체질이신가? 부럽네요, 정말.”

이건 황극린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열기’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만년화리의 내단을 취하여 생겨난 내성. 그것은 거력도마와의 싸움에서 확실히 증명됐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음기를 지닌 영약을 취하지 않았다.

환골탈태를 겪지 않았으니 북해의 추위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북해의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춥진 않았다. 내력을 끌어 올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의아했지만, 크게 의문을 가지진 않았다. 아마 다른 영약을 취하며 몸이 기온에 잘 적응하도록 변화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정도면 굳이 음기를 지닌 영약을 취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래도 북해까지 왔으니 영약을 찾아 돌아가는 게 좋으리라.

육신이 더 변화하지 않더라도 음기의 영약을 취하면 내공을 늘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북해의 입구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사악. 사악.

눈길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멈춰라.”

어느샌가 황극린과 마령을 둘러싼 열 명의 여인.

극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은 얇은 소복을 입고 있었다. 북해빙궁의 여인들이 타고난 음기 덕에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건 사실인 듯했다. 이런 추위에도 얇게 입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마령도 똑같이 느낀 듯했다.

“정말 부럽다니까.”

그녀가 앞으로 나선다.

“멈추라고 했다.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베겠다.”

가장 키가 큰 여인이 검을 뽑으며 말한다.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무표정했지만, 지독한 살의가 느껴진다. 절대 북해로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넓은 북해에 이렇듯 감시 인원을 배치했단 말인가?’

황극린은 북해빙궁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사람의 침입을 경계하는 걸까? 북해에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건가? 그래도 과하다는 생각을 뿌리칠 순 없었다.

“어머, 무서워라.”

마령의 느긋한 목소리에 여인들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진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바로 공격할 태세였다.

“잠시만요.”

마령이 털모자를 벗고, 보랏빛의 머리카락을 드러낸다.

그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인의 눈이 가늘게 변한다.

“저 아시죠?”

“혈마교주의 딸인가?”

여인의 말에 마령이 입술을 삐죽인다.

“…아직 그 비밀은 황 소협한테 안 알려 줬는데. 맞아요. 대혈마교의 이공녀 마령이라 해요.”

“북해는 금남의 구역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키가 큰 여인은 혈마교라는 이름을 듣고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혈마교와 북해빙궁은 같은 사흑련이라고 해도, 친밀하다곤 할 수 없었다. 서로 경쟁하고 경계하는 관계였다.

“거짓말. 예전에 수레로 사내를 끌고 북해로 들어가는 걸 봤는걸요? 북해가 정말 금남의 구역이라면… 당신들은 태어날 수도 없었겠죠.”

“헛소리!”

여인의 검에 푸르스름한 강기가 맺힌다.

그 강기는 한파가 몰아칠 때마다 더욱 진해지고 있다. 딱히 내력을 더 주입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말이다. 애초에 북해는 음기(陰氣)로 가득한 공간. 북해에서 북해빙궁은 무적이라는 말이 괜하 나오는 게 아니다. 기련노괴 또한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아, 전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이것 보세요.”

마령이 소매 속에서 흑색의 패를 꺼낸다. 그것엔 날개를 펼친 봉황이 그려져 있었는데, 패를 유심히 살펴보던 여인이 깜짝 놀란다.

“소궁주님의 패…….”

“예전에 소궁주를 도와준 적이 있죠. 아,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요. 이건 제가 아버지한테 생일 선물로 받은 거랍니다. 언젠가 다시 북해에 갈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마령이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황극린을 바라본다.

마치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듯 말이다.

“우리는 얼지 않는 호수로 갈 거랍니다. 북해빙궁과는 방향이 다르죠. 들어가도 되겠죠? 봉황의 패가 있으니까 말이에요.”

마령은 당연히 북해빙궁이 막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초감각으로 여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살펴보던 황극린은 여인이 거절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황극린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 봉황의 패를 가지고 있어도 북해의 출입을 허가할 수 없다.”

“남자를 너무 싫어하는 것 아닌가요?”

마령의 도발에 여인이 더욱 진한 살의를 내뿜으며 말한다.

“아니, 사내뿐 아니라 여인도 출입은 불가하다.”

“뭐라고요? 봉황의 패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가능하다고요?”

“그렇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북해에 출입할 수 있다고 선언했건만 북해의 입구에서 가로막히고 말았다.

“…….”

은근한 황극린의 시선에 마령이 흠칫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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