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02화 (102/316)

102화 돈황

늑대, 호랑이, 곰.

과거 자연을 지배하던 맹수들이다. 맹수들도 어릴 때는 맨주먹의 인간에게 사냥당할 만큼 약하지만, 성체가 되면 인간은 찢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힘과 덩치를 가지게 된다.

그건 자연의 섭리라 할 수 있다.

타고난 종(種)의 특성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인면지주는 어떤 섭리를 타고났을까?

거미도 종류가 있다. 곰이나 호랑이와 비교하면 한없이 작았다. 하지만 그들은 포식자로 태어났다. 거기다 덩치가 작아도 곰이나 호랑이가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독(毒)이다.

몇몇 거미가 만들어 낸 독은 곰이나 호랑이도 중독시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감각을 타고났다.

거미줄을 쳐서 먹이가 걸리는지 감지한다. 바람이 부는 건지, 먹이가 걸려 거미줄이 흔들리는 건지 파악하는 능력. 사소한 진동에서 오는 차이를 감지한다.

거미는 그런 존재다.

그리고 인면지주는 그런 거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개체라 할 수 있었다.

‘내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모든 거미가 인면지주가 될 순 없다.

모든 인간이 무공을 익혀도 일류의 고수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인간마다 한계가 뚜렷하다. 재능과 노력의 차이로 그 결과가 달라진다.

인면지주도 마찬가지였다.

- 끼이익!

본래 황극린이 기르는 흑주는 인면지주 중에서도 덩치가 작은 편에 속했다. 애초에 인면지주의 숫자가 중원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으니 비교 대상이 잘 없긴 했지만, 황극린이 융중산에서 발견한 놈과 비교하면 종이 다르다고 생각할 정도로 크기 차이가 났다.

하지만 크기만이 포식자의 강함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니다.

어떤 거미는 영물이 아닌데도 호랑이를 죽일 독을 타고난다. 그리고 몇몇 거미는 ‘학습’을 통해 사냥감을 어떻게 해야 더 확실히 잡을 수 있는지 배우게 된다.

흑주는 어떤 놈일까?

인간을 어미처럼 따를 정도로 지능이 뛰어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아니라 ‘황극린’이라서 따른 것이긴 했지만, 흑주는 주인을 따르며 인간의 행동을 보고 분석한다. 자신의 본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거미가 타고난 감각에 인면지주가 되며 강화된 기감으로 황극린이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는 여타 다른 인간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같은 인간이라도 이렇게 다르다.

그렇다면 흑주도 다른 인면지주와 다르게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흑주가 그러한 고찰을 했던 건 아니다.

단지 녀석이 했던 것은…….

주인을 따라 했던 것뿐이었다.

그렇게 흑주는 성장했다.

무인들이 흔히 말하는 검기상인(劒氣傷人)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말이다.

거미줄에 내력을 담는다. 내력이 담긴 거미줄은 상대도 강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풀어낼 수 없다. 애초에 질기기로는 세상의 어떤 실보다 튼튼했다. 거기에 내력을 주입하고, 몸을 옭아매니 그림자 5호는 인면지주의 속박에서 풀려날 수 없었다.

15년간 살수 수련을 받았고 수십 명의 표적을 사냥한 흑사회의 살수.

그림자 5호는 더 흉포한 포식자에게 사냥당했다.

“꺽…….”

흑주가 실을 움직여 버릇없는 인간 놈을 옮긴다. 주인에게 가져간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다.

그 단순한 욕구는 탁월한 결과를 낳았다.

“대단하군.”

- 끼이이이!

영물이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떠올리지 않았다. 단지, 교육하여 있는 것을 활용하게 할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흑주는 뭔가 다르다. 스스로 사고하여 발전하고 있었다. 영물은 무림인들처럼 내단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마치 무림인들이 내공심법으로 내력을 움직여 무공을 펼치는 것처럼.

흑주는 자신만의 ‘무공’을 만들어 낸 것이다.

‘흑주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다.’

무림에서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위험이 커질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남에게 미움을 받기 쉬웠다. 특히 황극린은 딱히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당장은 어찌어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언젠가 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 도래하리라.

특히 그에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흑주의 감각은 인간을 초월한다. 나 또한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했으니 녀석의 감각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흑주는 만뇌문의 신수(神獸)가 되어 문도들을 지킬 수도 있으리라.

물론, 지금 당장은 확실히 부족한 면이 많았다. 절정의 고수와 제대로 싸운다면 흑주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니…….

“나랑 훈련해야겠다.”

- 끼익?

황극린은 처음으로 거미에게 어떤 무공이 어울릴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니라 거미는 어떻게 싸우는가?

다리가 여덟 개.

거미줄을 내뿜을 수 있으며 감각이 뛰어나다.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다.

“…….”

그렇게 고뇌하고 있으니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황극린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무언가가 떠오를 듯 말 듯.

‘그러고 보니 무공은 사실 맹수의 움직임을 흉내 냈다는 소리도 있었던가.’

무공의 기초를 배우면서 들었던 내용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지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흑주만을 위한 고민은 아니로구나.’

만약 황극린이 답을 찾는다면.

아마 흑주뿐 아니라 그 또한 유의미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돈황(敦煌).

감숙성에 위치한 현으로 사막 오아시스를 기점으로 하여 발전한 곳이다. 황극린은 흑살문에 있던 시절 자주 돈황을 들렀었다. 이곳은 흑살문의 지부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지부가 있는 곳이기도 했으며, 사악한 대마두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곳으로 유명했다.

과거엔 관군들도 배치되었었다고 하지만, 워낙 사파인들이 많아 관군들도 철수한 위험지역이다. 그런 만큼 어린아이나 노인들은 잘 볼 수 없는 지역이기도 했는데, 만약 어린아이나 노인이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필시 발톱을 감추고 있을 것이니까.

황극린에겐 돈황은 친숙한 장소였다.

누구도 타인에게 잘 말을 걸거나 하지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걸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가끔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기련노괴(祁連老怪)의 존재가 흉흉한 돈황에 평화를 만들고 있었다. 누구든지 돈황 전체에 해를 끼치려 하면 그가 등장한다. 그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기에 죽음이 두렵다면 함부로 돈황에서 힘자랑을 할 수 없었다.

최근 객잔을 발견할 수 없어 황극린은 돈황에서 하루 정도 쉬어 가려 했다.

북해로 가게 된다면 객잔은 찾아볼 수 없으니 쉴 수 있을 때, 휴식을 취해야 한다.

요희루.

이름부터가 객잔 이름 같지 않은 칙칙한 건물 안으로 황극린이 들어선다.

207호라 불리던 시절에 요희루는 황극린이 자주 방문하는 객잔이었다. 반쪽짜리 가면을 쓴 노인장이 슬쩍 시선을 던진다.

“식사?”

“숙식 그리고 향.”

“금자 한 냥.”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었지만, 황극린은 그에게 금자 한 냥을 내밀었다.

노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황극린이 노인을 따라 들어간다.

요희루는 돈황의 정보 문파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돈황 부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수집하여 정보로 가공하여 판매한다. 흑살문에도 독립적인 정보망이 있었지만, 요희루만 못하다.

“그래, 어떤 냄새를 찾는가?”

“백색 가면을 쓴 여인.”

“백색 가면? 그게 끝인가?”

“영물을 키우고 있을 수도 있다.”

“영물이라……. 그건 특별한 정보지.”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 뒷방으로 향한다.

황극린은 북해에 먼저 들르기로 했지만, 혹여나 천흉이 이 부근에 있다면 죽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죽여야 할 상대라면 빨리 찾아서 죽이는 게 최선이다. 천흉은 위험한 적이었으니까.

일각 정도가 지나자 뒷방으로 들어갔던 노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정보는 없다.”

“그렇군.”

일단 금자 한 냥을 냈지만, 정보가 없다고 하여 돈을 돌려받을 수는 없다.

그래도 요희루는 정보에 한해서만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똑같이 정보를 판매한다.

“하나 더.”

황극린이 금자를 올려놓는다.

“북해의 영약이나 영물에 관한 정보.”

“뭐, 그런 거야 많지.”

“최상급 이상으로.”

“으음, 그런 수준의 영약은 북해빙궁에 가야 있을걸?”

“…….”

북해빙궁.

사흑련 중 하나로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였다. 그들이 품은 선천적인 음기(陰氣)는 사내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간혹 북해빙궁에 사내가 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지만, 그들은 북해빙궁의 궁도들이 아니라 종마(種馬)였다.

황극린이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하나 북해빙궁에서 영약을 탈취할 수는 없었다.

“북해의 지도. 그리고 이제까지 영약이 발견된 장소를 표기해 주시오.”

“하하, 이미 만들어 놓은 게 많지. 너처럼 영약 사냥꾼들이 북해에 자주 가거든. 금자 다섯 냥.”

황극린이 말없이 금자를 올려놓는다.

노인은 기분이 좋은지 지도를 꺼내 와 황극린에게 건넨다. 사실 요희루는 이렇게 가끔 찾아오는 손님 한 사람에게서 매출을 크게 올린다. 최근 사막 폭풍이 심해져 돈황을 찾는 이들이 적어 손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간만에 매상이 올라가고 있다.

“더 필요한 건 없나? 백색 가면 말고 푸른 가면을 쓴 사내는 있는데 말이야.”

“필요 없소.”

혹시 황극린이 흥미 있어 할까 싶어 여러 정보를 흘려 대던 노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다.

원하지 않는 정보를 강매할 정도로 수준이 낮진 않았다.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친다.

“백색 가면을 쓴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뱀 영물을 키우는 여인은 있다.”

뱀 영물이라?

뱀 또한 독을 가진 영물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여인이 천흉이 아닐까?

“어디에 있지?”

“금자 삼십 냥.”

정보 하나에 금자 삼십 냥을 부른다.

미친 가격이라 할 수 있었다. 개방이나 하오문도 저리도 비싼 가격을 부르진 않았다. 사실 그건 요희루도 마찬가지다. 이 정보가 상당히 진귀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요희루에선 정보의 값을 허투루 매기지 않는다.

황극린이 금자를 올려놓는다.

혹시 몰라 돈황에 오기 전 낙양전장에서 전표를 금자로 많이 바꾸어 두어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크크크, 그녀는 광사탑(狂沙塔)에 있다.”

“…….”

황극린의 표정이 굳는다.

광사탑.

그곳은…….

기련노괴가 있는 곳이다.

사대마제 중 하나에 속하지 않았지만, 사대마제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 알려진 인물. 그는 사파인도 정파인도 아닌 회색에 속한 무인이었다. 기행을 즐기며,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위험한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서 싸움을 벌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황극린이 만약 광사탑에 가서 여인에게 싸움을 건다면 필시 기련노괴가 나타날 것이다. 황극린이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하여도 그는 죽일 수 없었다.

‘천흉이 기련노괴와 연관이 있었던가.’

그가 확실하게 아는 미래의 정보는 천하칠대고수 중 하나인 창천뇌검이 천흉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사망교가 본래 어디서 왔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어렵군.’

만약 천흉이 기련노괴와 관련이 있다면, 당장 처리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름도 알고 싶나?”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는 정보의 값이 금자 30냥이다.

이름을 알려면 돈을 더 내야 했다.

“금자 백 냥만 더 내라.”

황극린이 말없이 금자를 올려놓는다.

노인이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이제 몇 달 동안 손님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매상을 올렸다.

“마령(馬鈴).”

마령이라고?

황극린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노인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황극린의 눈을 볼 수 없었다. 평소 감정을 표정으로 잘 드러내지 않던 황극린이 오랜만에 놀람의 감정을 느꼈다.

“어디 출신인지도 알려면 금자 천 냥이다.”

이것까지 수락할 것인가?

노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천 냥이면… 흑천유계(黑天幽界)에 가서 실컷 즐길 수 있다. 유흥의 성지라 할 만큼 유명한 곳이었지만, 가격이 사악하기로 유명하다. 웬만한 이들은 감히 구경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돈을 가진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됐소.”

하지만 황극린은 마지막 정보를 사지 않았다.

이미 이름을 듣고 누군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가겠소.”

“끄응, 그래. 3번 방을 사용해라.”

노인은 가격을 깎아 준다며 유혹하지는 않았다.

황극린이 3번 방으로 올라갔다.

자리에 앉은 황극린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마령.’

그녀는 황극린이 마주한 적이 있는 여인이었다.

흑살문에 있던 시절에 말이다.

‘혈마교주의 딸.’

그녀가 천흉일 가능성이 있을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황극린이 알기로 그녀는 황극린이 죽던 순간까지도 중원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가 천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중원을 헤집어 놓은 것이라면? 그녀가 창천뇌검에게 죽었기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라면?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직접 확인해 보아야 한다.

‘내일 광사탑으로 가 봐야겠군.’

기련노괴의 앞에서는 싸우지만 않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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