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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01화 (101/316)

101화 사냥 시작

흑사회.

무림에서 가장 큰 흑도 문파를 꼽으라면 녹림이나 하오문을 꼽지만, 최근에는 흑사회가 가장 크게 규모를 키워 가고 있었다. 보통 흑도의 문파가 성장하면 사파 문파가 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나 흑도를 지향한다. 밑바닥이 그들의 시작이었으며, 그들의 성장 동력이었다.

그들은 규모를 키워도 쓰레기 같은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흑도 잡배나 할 짓을 한다고 욕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본질적으로 흑도였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약하면 철저히 짓밟고 이용한다. 조금만 틈이 보이면 파고들어 협박한다.

그런 흑사회였기에 당한 것을 절대 잊지 않는다.

과거에 항주지부가 한 사내에 의해 사라졌던 일도 마찬가지였다.

쾅!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탁상을 부숴 버린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몇몇 이들의 피부를 긁었지만 아무도 신음을 내뱉지 않았다. 지금 사내의 심기를 건드리면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려대협이라는 놈이 만뇌문의 황극린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황극린은 이번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던 권룡이고?”

“예…….”

스으으으…….

흑사회주의 분노에 표정이 무표정하게 변한다. 그의 버릇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오히려 티가 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무표정에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단 말이지…….”

흑사회에선 동려대협을 찾고 있었다.

항주지부를 멸문한 놈을 찾는 데에만 상당한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는 찾을 수가 없었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동려대협을 사칭하는 놈들은 몇 있었지만 진짜 흑사회 항주지부를 멸망시켰던 놈은 찾지 못했다. 흑사회가 무서워 숨은 것일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놈이 정말 무서워서 그랬다면…….

‘애초에 날 건들 생각은 안 했겠지,’

놈은 일부러 항주지부를 노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해성 서녕지부를 멸망시켰다. 이쯤 되면 끝까지 가 보자는 게 된다.

“만뇌문에 대한 정보는?”

“예, 여깄습니다.”

흑사회주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로 글을 읽어 나간다.

“주목할 만한 놈은 광견살검 하나 그리고 실력을 파악할 수 없는 문주 한 명이로군.”

“문주도 천하백대고수급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황극린까지 포함한다면 문파에 천하백대고수가 세 명이다. 중소문파의 전력치고는 확실히 대단했지만… 그게 흑사회가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은 힘이 있더라도 정면 대결을 선호하지 않는다. 최대한 힘을 아끼고, 상대의 틈을 노려 비수를 꽂아 넣는다. 그것이 흑사회주의 방식이었다.

“흑살문에 의뢰를 넣을 생각이십니까?”

“고작해야 중소문파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 흑살문의 힘이 필요하겠느냐?”

“…….”

흑사회의 간부 중 하나인 주귀선은 간신히 말을 참았다.

그런 중소문파에게 흑사회는 지부 두 개가 털렸다. 거기다 이번에 털린 지부는 흑사회의 지부 중에서도 상위급의 지부였다.

“우리가 키운 그림자가 있지 않나?”

“예.”

“이제 그들을 써먹을 때가 온 것 같군.”

흑사회는 흑살문과 꽤 가깝긴 하지만 혈맹 따위는 아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하는 사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흑사회는 흑살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살수를 키우고자 했다. 노예 중에서도 특급의 노예들만 고르고 골라 키운 살수.

“황극린의 고강함은 인정한다. 하지만… 살수의 싸움이란 또 다른 영역이지.”

살수가 왜 무서우냐.

상대가 잠들었을 때, 머리맡에서 비수를 심장에 찔러 넣는다.

먹고 있는 음식에 독을 탄다.

평소에 앉는 의자에 독이 발린 바늘이 꽂혀 있다.

방심하는 상대의 틈을 찔러 버린다. 무공의 고강함은 상관없다. 심장에 칼이 찔리면 천하백대고수라도, 아니 천하칠대고수라도 살아갈 수 없다. 그냥 사람은 칼에 찔리면 죽는다.

무공의 고수도 사람이었다.

살수는 그런 고수를 죽이는 효율 좋은 병기다.

“그림자 1조를 투입하여 황극린을 노린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2조는 만뇌문을 멸문한다.”

“예, 회주님.”

황극린에게도 똑같이 갚아 준다.

놈의 모든 것을 파멸시킬 것이다. 감히 흑사회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줘야 했다.

흑사회주가 잔혹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의자에 앉았다.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다.

“놈의 머리통은 가져오도록 해라.”

흑사회주는 황극린의 머리를 전시할 생각이었다.

“사냥을 시작해라.”

“존명!”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청해성.

황극린은 전서구를 통해 만뇌문에 서신을 보냈다. 답장은 빠르게 왔다. 만뇌문은 아직 전서구를 훈련시키지 못했지만, 남창에는 개방의 분타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서녕지부에 빠르게 서신을 전달할 수 있었다.

서신을 읽어 보던 황극린이 작게 미소를 짓는다.

“잘하고 있나 보군.”

총 다섯 장의 서신.

문도들이 쓴 정성스러운 서신들을 읽어 나갔다. 그들이 어떤 수련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만뇌문에 돌아가면 얼마나 발전해 있을지 알아보는 것도 기대가 된다.

- 걱정하지 마라! 그깟 놈들은 쳐들어오는 즉시 죽여 주마.

자신감 넘치는 뇌불의 대답.

마음에 들었다. 그는 황극린과 문도들의 보금자리를 지켜 줄 것이다. 처음 비동에서 그를 만났을 땐 의심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지금은 가장 든든한 우군이라 할 수 있었다. 최근에 무위도 많이 회복했다고 하니 흑사회가 수작을 부려 오더라도 쉬이 막아 낼 수 있으리라.

문제는 흑살문이 나서게 될 경우인데…….

‘흑사회라도 흑살문에 문파 전체를 몰살해 달라는 의뢰를 맡길 수는 없다.’

그러려면 흑사회가 가진 자산의 대부분을 털어야 할 것이다.

아마 흑살문에 의뢰를 한다면 자신을 표적으로 정할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좋지.’

살수를 상대하는 방법은 황극린이 잘 알고 있다.

거기다 그는 작은 기척이라도 감지해 낼 초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는 동안 감시를 해 줄 인면지주 흑주도 있다.

흑주는 자기 전에 중간중간 거미줄을 쳐 놓고, 먹잇감이 걸리는지 확인한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거미줄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접근해 오는 자가 있으면 거미줄이 흔들려 흑주나 황극린이 알아챌 수 있었다.

살수가 가까이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히…….

‘독살도 통하지 않지.’

그래도 방심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월감 같은 것으로 허무하게 죽는다면 그처럼 억울한 것이 없으리라.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황극린이 서신을 정리하고 지부를 나선다.

지부장은 스스로 죄를 밝히겠다며 무림맹 본성으로 향했다. 암영대 2조장과 지부장마저 떠나 버리니 지부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황극린이 더 머물 필요는 없다. 거기다 여기서 얻을 정보도 존재하지 않았다.

“황 소협!”

등위군과 그의 조원들이 황극린을 향해 달려온다.

“버, 벌써 떠나시려는 겁니까?”

“예.”

“그, 그렇군요…….”

등위군은 황극린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보다 어린 후배였지만, 오히려 선배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어떻게 저리도 어린 나이에 강호에 잘 적응했을까? 등위군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이번 일에서 황 소협께 배운 점이 많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수련하여 힘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황 소협께서 펼친 협의를 저 또한 펼쳐 보이겠습니다. 제 미약한 힘이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노력하고 있을 테니, 언제든 필요하면 찾아 주십시오.”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등위군은 더 강한 힘을 가져야겠다고 판단했다. 강한 무력이 뒷받침된다면 정의를 펼치기에도 수월해진다. 황극린 정도로 강해질 순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야 한다. 그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저와 저희 조원들은 무림맹 강서성 지부로 발령을 신청했습니다.”

“그렇군.”

“다음에 또 뵐 수 있겠습니까?”

“못 볼 것도 없지 않겠소?”

등위군이 움찔한다.

황극린이 저리 말해 주니 힘이 솟아오른다. 밤새 세워 놓았던 목표에 한 발자국 더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최대한 참아 낸다. 사내가 눈물을 흘리면 되겠는가?

“크음……! 강서성에서 뵙겠습니다, 황 소협!”

“감사했습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겠소.”

황극린이 작게 미소를 띤 채 몸을 돌렸다.

만뇌문 또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황극린은 차곡차곡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고작해야 암영대 4조장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황극린은 실력보다 신뢰를 중요하게 여겼다. 힘이 강해도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다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등위군은 인연을 맺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 그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몸조심하십시오! 꼭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황극린은 등위군의 인사를 들으며 서녕지부에서 떠나갔다.

* * *

황극린은 고민했다.

천흉을 찾거나 이제 북해로 떠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천흉이 청해성에 있는 건 확실했지만, 서녕에는 없었다. 흑주와 함께 초감각을 동원하여 낙혼향의 냄새를 수색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청해성 전체를 냄새를 맡아 가며 수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거다.’

황극린은 잠시 천흉에 대한 일을 제쳐 두기로 했다.

심화절이 죽은 것을 알았다면, 아마 천흉은 더 깊숙한 곳으로 숨었으리라.

‘지금은 북해로 가는 게 좋겠군.’

시간이 지나면 천흉은 다시금 흔적을 남길 것이다.

‘어쩌면 천흉이 날 쫓아올 수도 있겠지.’

그는 천흉이 준 무공서 마라역천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회수하기 위해 황극린을 찾아올 가능성도 존재했다.

‘심화절에게 그러한 무공을 그냥 내어 준 것을 보면 아닐 가능성이 더 크긴하지만.’

일단 마라역천공을 가지고 있다.

이 무공은 분석할 맛이 있었다. 중원의 무공과는 확실히 달랐기에 배울 점이 많았다.

그렇게 황극린은 청해성에서 북해로 방향을 틀었다.

* * *

어두운 밤.

풀벌레 소리만이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벌레의 울음소리와 어둠에 숨어 움직이는 이들이 존재했다. 마치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발을 놀려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살수들의 보법이었다.

그들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어딘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주방이었다.

스윽, 슥.

물을 담아 놓는 통에 무언가를 털어 넣으려 한다.

“…….”

그때, 복면을 쓴 사내가 움찔한다.

뭐지? 무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럴까?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시간에 일어나 있을 사람은 없으리라.

‘…착각인가.’

그가 다시금 손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콰직-!

“……!”

가까스로 비명을 참았다.

살수들은 온갖 고통을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 그러한 훈련 덕에 겨우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무언가가 날 물었…….’

끼기기긱, 끼기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 기다란 무언가가 자신의 등을 밟고 있었다. 대체 이건 뭐지?

살수가 조심스레 자신의 등에 손을 뻗는다.

하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등에 닿은 감각도 사라져 있다.

착각인가?

아니면…….

잔뜩 긴장한 채 어둠 속을 살펴보던 살수.

그가 다시금 물이 담긴 통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였다.

“……!”

무언가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작은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놈의 눈동자는 볼 수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 문제는 한 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거미가 왜……?’

여덟 개의 눈동자를 가진 거미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 문제는…….

‘사람의 얼굴?’

살수는 그게 평범한 거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죽여야 한다.’

그의 임무는 물에 독을 타는 것이다. 요리를 할 때 필수적인 게 물이다. 표적이 묵고 있는 객잔에 독을 타 놓으면 확실히 그를 죽일 수 있으리라. 물론,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겠지만 흑사회의 살수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흑사회의 그림자 5호가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딱딱한 무언가가 팔과 다리에 닿아 있다.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다.

‘거미줄?’

사람이 거미줄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림자 5호는 보았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거미의 엉덩이에서 은빛의 거미줄이 줄기차게 뿜어지고 있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속박하고 있었다. 마치…….

‘마, 말도 안 돼! 마치 내공으로 실을 다루는 것 같은…….’

왠지 모르게 거미의 얼굴에 툭 튀어나온 사람의 얼굴이 웃는 것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

영물 흑주가 사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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