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97화 (97/316)

97화 노괴

암영대 2조장 안백리가 당황한다.

용봉지회의 우승자 출신들은 무림맹의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무공 실력은 확실히 증명된 셈이고, 우승자들은 든든한 배경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만뇌문이라는 문파가 개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백리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한다.

어떻게 행동해야 자신에게 이득일 것인가? 무력으로 따지자면 황극린은 소림사의 제자 천덕을 꺾을 정도로 강하다. 하나, 만뇌문이라는 문파는…….

‘아직 제대로 된 세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문파를 개파하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성장하기 힘들다. 무림이라는 곳이 그러하다. 새로운 세력이 생기면 주변에서 견제하기 마련이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 나가려면 ‘절대고수’의 존재가 필요하다.

황극린이 재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만뇌문에선 다른 고수가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나마 천하백대고수 중 하나인 광견살검이 경계 대상이다.

‘일단은 좋게 좋게 풀어 나가야겠군.’

계산을 끝냈다.

일단 명분을 만든다. 용봉지회 우승자가 대체 왜 청해성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림에서 배분을 무시하는 행위는 충분히 비난받을 수 있었다. 청해성 서녕지부는 그가 10년 가까이 근무한 곳이다. 조만간 인사 발령이 나면 무림맹 본성으로 향할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이거, 누군가 했더니 만뇌문의 황 소협이셨군.”

안백리의 말투에서 조금이나마 예의가 생겼다.

“내가 누군지 소개를 안 했군. 난 무림맹 서녕지부 암영대 2조 조장이오.”

“…….”

황극린은 대답하지 않고 안백리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왜 서녕에 있는 것이오? 듣자 하니 만뇌문은 강서성에 있는 문파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오?”

“말해 줄 이유가 없군.”

“허허허… 황 소협, 젊은 패기로 나서는 건 좋지만… 지부에는 지부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오. 무림에선 잘 모르는 일에 간섭하다간 화를 부르기도 한다오.”

4조장 등위군이 멍한 눈으로 황극린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다.

예사롭지 않은 무인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사흑련 소속의 무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귀도방도들을 제압하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권룡이라니? 용봉지회의 우승자는 출세가 확정적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자신이 황극린보다 직위가 높다고 하지만, 10년만 지나도 황극린은 무림맹의 요직을 차지할 것이다. 병졸에서 시작하는 것과 간부에서 시작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등위군은 황극린이 걱정됐다.

암영대 2조장 안백리는 오늘 행동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쓰레기다. 무공의 경지는 등위군보다 못하지만 그보다 훨씬 빨리 조장에 진급했다. 곧 무림맹 본성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모두 다 비열한 성정 덕분이었다.

‘만뇌문이라는 문파는 나도 들어 보지 못했다. 안백리가 작정하고 괴롭힌다면… 황 소협은 상당히 고생하겠지.’

귀도방과의 마찰은 자신 때문에 생겨났다.

황극린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는 고작해야 이제 막 무림에 첫발을 내디딘 후기지수였다. 무공은 자신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림에서의 배분은 자신이 더 높다. 선배란 자고로 더 큰 책임이 있었기에 선배라 불리는 것이다.

자신은 말단으로 있으면서 비열한 놈들에게 당해도 상관없었지만, 황극린은 그런 꼴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만! 안 조장, 그만하시오!”

등위군이 나서자 안백리의 한쪽 입꼬리가 씰룩였다.

굳이 최근 용봉지회에서 우승하여 관심이 집중된 후기지수와 싸우는 모습보다 같은 조장을 나무라는 게 더 좋은 그림이었다. 상황을 쉽게 넘길 수 있을 듯하다.

“자네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황 소협이 무림맹 지부에 이리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는 것인가?”

은근슬쩍 황극린이 ‘안백리’가 아닌 ‘무림맹 지부’에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낸 것처럼 상황을 조장한다. 후배에게 욕을 먹은 선배가 화를 내는 것보다는 소속된 세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분노하는 게 더 보기 좋은 그림이다.

“그만! 이번 일은 황 소협과 관련이 없는 일이오. 내가 모두 감당하겠소.”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황 소협, 인사는 추후에 또 나누도록 합시다. 이번 일은…….”

어영부영 등위군에게 상황을 전가하고, 황극린과는 귀도방과의 일이 모두 끝난 후에 처리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안백리였지만… 황극린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가 무공을 익힌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서녕지부장께서도 이렇게 일이 졸속으로 처리되는 걸 알고 있는 건가?”

안백리의 얼굴이 구겨진다.

감히 여기서 지부장님을 언급해?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는데, 아직 제 분수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가 당장 무림맹에 입맹한다고 하더라도 암영대의 조장과 말을 섞을 위치는 아니다. 하물며 지부장은 어떠하리?

“황 소협,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면 함부로 나서는 게 아니오. 사부께서 그런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소? 무림맹에서 만뇌문에 서신이라도 보내면 어쩔 생각이오?”

후기지수는 대개 이런 협박에 약하다.

무림맹은 중소문파에선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중심이었다. 무림맹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고달파지는 건 중소문파일 뿐이다. 문파 하나가 멸문하더라도 그 빈자리를 채울 문파는 많았다.

“청해성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소. 북쪽으로는 혈마교가, 서쪽으로는 서장의 포달랍궁이 있소. 남쪽으로는 또 만독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지. 서녕지부는 그런 위험천만한 장소라오. 대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귀도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한 문파가 아니오.”

혈마교, 포달랍궁, 만독문.

이름만 들어도 정파인들이 공포에 떤다는 거대 세력들이다. 포달랍궁은 사파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확실히 정파는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을 팔면 용봉지회의 우승자도 물러설 것이다.

용봉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무림초출이 끼일 판이 아니다. 만약 황극린이 용봉지회의 우승자만 아니었어도 이미 매타작을 하여 정신교육을 시켜 줬을 것이다.

“그리고 선공을 한 것은 황 소협이 아니오? 15장이나 떨어진 거리에서 살기를 감지한다는 건 들어 보지도 못했소. 거짓이 드러나 부끄러운 것을 알겠으나… 이제 그만하시오.”

이 정도면 됐겠지.

아무리 말이 안 통하는 꼴통이라도 상황을 파악했으리라.

“갑시다.”

그렇게 귀도방주와 암영대 2조장 안백리가 떠나려는 순간.

“무슨 짓인가!”

“……!”

황극린이 귀도방의 간부 두 명을 잡아챘다. 귀도방주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한다. 인자한 도인과도 같은 표정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이곳이 만약 무림맹의 지부가 아니었다면 당장 실력 행사를 했을 것이다.

“지금 무림맹의 행사를 방해하는 건가?”

“귀도방에게 받을 것이 있어서.”

“뭣……?”

황극린이 표적을 바꾸었다.

“당신이 귀도방주인가?”

“그래, 내가 귀도방주 귀세춘일세. 용봉지회 우승자라 했던가?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간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곳이 강호일세.”

귀도방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그러니 그만하시게.”

실력 행사라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그리고 그건 황극린이 원하는 방향이었다.

“사과할 생각이 없는 건가?”

“사과라니? 자네가 먼저 선공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

“살기를 품고 매복하고 있는 상대를 봐줄 필요는 없지.”

“허허, 15장 밖에서 매복하고 있는 방도들의 살기를 알아채고 선공을 가한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그때 4조장 등위군이 나선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당신이 귀도방에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소. 당신 말을 어찌 믿겠소?”

증거가 없었다.

황극린이 말하는 15장 밖에서 매복하는 상대의 살기를 감지했다는 건 순전히 그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걸 알고 귀도방주나 2조장이 배짱을 부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뭘 할 수 있을까? 억지를 부리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단순히 말싸움하기 위해서 그들을 가로막은 게 아니다.

무공을 익힌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다. 무림은 힘의 논리가 통용되는 세계였다.

“비무첩이다.”

“비무첩?”

“실력으로 증명하지.”

귀도방주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는다.

“내가 자네의 비무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

“패배할까 봐 겁나나?”

“뭐라……?”

“귀도방주님, 참으십시오. 아직 어린 후기지수가 아닙니까?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안백리가 귀도방주를 말린다.

굳이 여기서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조용히 넘어가는 게 그에게 가장 좋은 상황이다.

“둘이 함께 덤벼도 좋다. 아니, 귀도방 전체가 함께 덤벼도 된다.”

“허허허…….”

귀도방은 본질적으로는 사파와 가깝다.

특히 귀도방주 귀세춘은 청해성 서녕 일대에서는 절대자로 살아왔다. 당연히 피가 끓어오른다. 저 버릇없는 후기지수 놈의 볼기짝을 흠씬 두들기고 싶었다.

“그래, 좋다. 네놈이 원하는 대로 비무를 해 주도록 하마. 하지만 그냥 비무는 재미없지 않겠는가?”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난 금자 천 냥을 걸겠네. 패배하면 즉시 전표를 내어 주지.”

“처, 천 냥……!”

안백리가 당황한다.

귀세춘이 패배할 리는 없었지만, 저리 큰 것을 함부로 거는 건 위험하다. 만에 하나라도 패배하면…….

“배포가 작군.”

“호오? 자네는 목이라도 걸 셈인가?”

단지 던져 본 말에 불과하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 됐다고 하더라도, 세상 물정 모르는 후기지수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용봉지회의 우승자가 청해성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들은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게 좋았다.

“목을 걸지.”

“…진심인가?”

“대신, 네 목도 걸어라.”

“허허허… 허허허허!”

권룡 황극린.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다손 쳐도 귀도방주 귀세춘은 강호에서 40년 이상을 굴러먹은 노괴였다. 거기다 비무와 실전은 전혀 다르다. 한순간의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는 생사결만 해도 수백 번을 경험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좋아. 내 목을 걸지.”

“귀도방주님!”

안백리가 당황하여 소리친다.

‘제기랄, 사파 출신 아니랄까 봐 분위기에 취해 버렸군.’

귀도방주가 안백리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 죽이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그래도…….

- 안 조장께서도 저놈이 거슬리지 않습니까? 제가 강호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려 주도록 하겠습니다.

- 정말 죽이지 않으실 겁니까?

안백리는 귀도방주의 잔혹한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와는 이해득실로 묶인 관계였지만, 솔직히 섬뜩할 때가 있긴 했다. 그는 야생이나 다름없는 청해성의 무림에서 살아남은 독종이었다.

- 당연합니다. 황가 놈은 용봉지회의 우승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 알겠습니다. 방주님만 믿겠습니다.

안백리의 허가가 떨어졌다.

이제는 합법적으로 저 분수도 모르는 치를 교육할 수 있었다.

“비무장으로 가세.”

* * *

당연히 시끌벅적하게 비무를 펼치진 않는다.

2조장 안백리와 4조장만 등위군만이 비무를 관전할 수 있었다.

“황 소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제게 맡기시고…….”

“당신이 정말 해결할 수 있겠소?”

“그건… 노력해야겠지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해결할 터이니…….”

“괜찮소.”

“귀세춘은 수십 년 동안 강호에 굴러먹던 노괴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황 소협이 다치기라도 하면…….”

“당신 탓을 하진 않을 것이오.”

완강한 황극린이다.

귀세춘이 그것을 지켜보다가 혀를 찬다.

“등 조장께선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설마 어린 치의 목숨을 빼앗기라도 할까 봐?”

“만약 그렇다면…….”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

황극린과 귀도방주 귀세춘의 비무.

용봉지회 우승자라 했던가? 최소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따위의 경지는 실전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귀세춘은 알고 있었다. 그는 삼류라 불리던 시절에도 일류 고수의 멱을 딴 적이 있었다. 싸움이라는 건 타고나는 것이다.

무공의 경지와 상대를 죽이는 능력은 다르다.

그는 타고난 살성(殺星)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귀세춘은 후배에게 몇 수 양보한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네는 일 초에 죽을 것이네.”

“충고 고맙군.”

그렇게 두 사람의 비무가 시작된다.

귀세춘은 이번 비무에서 어린 후기지수의 꿈을 단단히 짓밟아 놓을 생각이다. 다시 자신과 마주하면 오줌을 질질 싸 버릴 정도로 공포를 줄 것이다. 훗날 영웅이라 불릴 용봉지회 우승자가 자신을 보면 도망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흘흘, 짜릿하구나.’

먼저 움직인 쪽은 귀세춘이다.

그는 처음에 말한 것처럼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무공은 조공(爪功).

검게 물든 그의 손톱에 한 번이라도 피부가 스치면 치명상을 입는다. 해독약이 없으면 내가고수라도 하루 이내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크크, 중독되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 주마.’

순식간에 접근한 귀세춘이 손톱을 찔러 간다.

하지만 귀세춘이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손에 감각이 전해져야 했건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피한 건가?’

한 번만 스치면 치명상이다.

그러니 계속 손을 휘두른다.

쉬이익-! 쉬이이익!

공간을 가르는 파공성이 울려 퍼진다. 당연히 귀세춘의 공격은 황극린에게 적중하지 않았다.

‘어떻게 피하는 거지? 내 변초를 읽고 있다는…….’

맹수의 본능과도 같은 공격이다.

찰나의 순간 열두 번도 넘게 황극린을 노렸지만, 한 번도 명중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공격을 모두 예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설마 내 움직임을 다 꿰고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용봉지회 우승자이기에 절대 대충 싸움에 임하지 않았다.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하고자 최선을 다해 내력을 끌어 올려 손톱을 휘두르고 있다. 그런데 간발의 차이로 계속 빗나간다.

‘이렇게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음에도 왜 반격을……?’

화들짝 놀란 귀세춘이 재빨리 뒤로 물러선다.

분명히 숨겨 둔 한 수가 있다. 이대로 공격만 하다간 놈의 의도대로 놀아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놈이 대체 어떻게 공격을 피했는지 파악한다면…….

‘이놈은 분명히 15장 밖의 살기를 읽었다고 했지. 천부적인 기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최선을 다한 내 초식을 모두 다 피할 정도라면…….’

귀세춘의 머리가 빨빨거리며 돌아간다.

40년 동안 청해성에서 생존해 온 그의 본능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패배한다.

‘일단 말로 놈을 흔들어 놔야겠군.’

귀세춘이 거리를 벌린 상태로 여유로이 말한다.

“이미 자네는 중독되었다네.”

“…….”

“심장이 빠르게 뛰지 않나? 그게 바로 중독되었다는 뜻이라네.”

귀세춘의 공격을 피하려면 당연히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있으리라. 독이라는 것에 무림인들은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분명히 흔들릴 것이다. 그 틈을 노린다. 경험이 부족한 후기지수라면 절대적으로 걸려들 수밖에 없는 덫이다.

“해독약이 있을까, 없을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귀세춘이 여유로운 척하며 황극린의 심기를 뒤흔들고 있을 때.

“난 해독제가 없다.”

“흐흐, 당연히 자네에겐 해독… 컥……?”

귀세춘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뭐지? 왜 이렇게 어지럽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하고, 숨이 가빠 온다.

이건 분명히 중독 증상이다.

대체 이게 무슨…….

“귀 방주님!”

안백리가 화들짝 놀라 외친다.

귀세춘의 몸이 크게 휘청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의 코와 입에선 검은 피가 주르륵 쏟아지고 있었다.

“무슨… 무슨 독이냐……. 해독제를…….”

“없다.”

“쿨러어억……! 안 조장……! 도와, 도와주시오!”

뭐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비무는 이제 막 시작했다. 공격하던 것은 귀세춘이다. 피하기만 하던 황극린을 보며 귀신이라도 본 듯 도망친 귀세춘이었는데… 어느샌가 그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

‘대체 언제…….’

해독제를 말하는 것을 보면 황극린이 독을 쓴 게 분명하다.

신성한 비무에서 독을 쓰다니!

“그만! 비무를 멈추겠소이다! 황 소협, 물러 서시…….”

그때 황극린이 안백리의 앞을 가로막는다.

“당신도 비무할 건가?”

“뭐……?”

“선을 넘는다면 그런 것으로 간주하지.”

“……!”

그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백리는 비열하게 살아온 본능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비무장의 선을 넘으면…….’

귀도방주 귀세춘처럼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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