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귀도방
황극린이 다짜고짜 암기를 날린 이유는 간단했다.
기척을 감춘 이에게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등위군의 접근을 허락했던 것은 그들이 경계하긴 했지만 공격 의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암기를 출수할 수 있는 거리에서 살기를 품고 있다면 충분히 선공할 이유가 되었다.
물론, 상대를 죽일 작정으로 던진 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제압만 할 생각으로 던진 암기가 적을 향해 쏘아졌다.
“크윽!”
고통 섞인 신음이 터져 나오자 황극린의 몸이 흐릿해졌다.
기척을 숨기고 매복하고 있던 두 명의 무인이 금세 황극린에게 제압당했다.
“어, 어떻게 알아챈 거지……?”
하지만 질문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황극린이다.
“네놈들은 누구지?”
“…….”
대답하지 않았다. 황극린은 그들이 쓴 복면을 벗겨 냈다. 동시에 뒤쪽에서 등위군이 달려왔다. 그는 복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두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당신들은……!”
“누군지 아시오?”
“귀도방(鬼刀幇)의 간부들이오. 대체 왜……?”
이제야 황극린에게 사로잡힌 두 무인이 입을 연다.
“흥! 네놈들이 먼저 선공하지 않았나?”
“음흉하게 숨어서 살기나 드러내고 있었지.”
“그건……!”
황극린이 정곡을 찌르자 귀도방의 간부 중 하나가 움찔한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홀쭉한 볼의 사내가 여유롭게 미소 짓는다.
“살기? 네놈이 그 거리에서 우리의 살기를 느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응?”
사실이 그랬다.
그들은 살기를 품었을지언정 그것을 이들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기를 품은 것은 사실이다. 귀도방의 간부들은 솔직히 무림맹 암영단, 특히 4조를 공격하고 싶었다. 암영단이 주로 활동하는 반경이 황중(湟中)현과 공화(共和)현이었는데, 사사건건 귀도방의 행사에 참견을 해 댔다. 무림맹 소속이니 함부로 할 수도 없었고, 웬만하면 통하는 뇌물도 일절 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귀도방에선 몰래 암영단 4조를 처리하기로 했다.
물론, 혈마교가 한 것으로 위장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모두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다. 먼저 공격한 것은 황극린이 아니던가?
“아니, 당신들이 몰래 숨어 있었다면 충분히 공격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소. 왜 우리를 몰래 따라왔던 것이오?”
하지만 등위군은 사파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너희를 따라온 게 아니라니까?”
“그럼 왜 여기에 있었소?”
“그냥 정찰을 나온 것이었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었지만, 등위군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는 귀도방의 방도들이 매복하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만약 강서성 만뇌문 출신이라는 사내가 없었으면 당했을 수도 있다.
그는 조원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당신들은 서녕의 무림맹 지부로 압송하겠소.”
“뭐라고? 압송?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건 지부에 가서 알아볼 것이오.”
그런 다음 등위군이 황극린을 돌아본다.
“소협,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
황극린의 무공 수위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직 만뇌문이 어딘지 파악할 수 없었고, 의심을 아예 지운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있었기에 귀도방의 간부들을 쉬이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시오.”
황극린은 귀도방의 방도들을 어찌 처리하든지 크게 상관없었다.
무림맹이 처리하도록 두는 게 편하기도 하고, 이들과 함께 무림맹 서녕지부로 같이 향하면 천흉에 대한 정보도 쉬이 얻어 낼 수 있을 듯하다.
“대신, 나도 같이 서녕지부에 가도 되겠소?”
“예, 저도 부탁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등위군은 황극린의 정체 또한 확실히 파악하고 싶었다.
서녕지부로 가면 그가 거짓을 말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놈들! 본 방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정사대전을 치르고 싶으냐!”
“그래도 당신들을 놓아줄 순 없겠소.”
등위군은 귀도방도들을 포박할 뿐이었다.
* * *
‘성실한 사람이군.’
등위군과 동행한 지 칠 주야가 되었을 때, 황극린은 그가 성실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장인데도 불구하고 조원들과 임무를 분담했다. 거기다 귀도방도들의 은근한 제안까지 딱 잘라 거절했다.
자신들을 놓아주면 금자 백 냥을 주겠다는 제안에도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사실 암영대는 무림맹에선 한직이나 다름없었다. 청해성이나 감숙성 등지에서 활동하는 암영대는 그리 높지 않은 봉급에 위험한 지역에서 정찰과 경계 임무를 수행한다. 사파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지만, 황극린은 잘 알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 모두가 사명감으로 일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황극린이 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등위군은 금전 따위에 욕심이 없어 보였다.
‘뭐, 이게 당연한 건가.’
등위군은 무림맹 암영대에 속한 무인이다.
정파인으로서 사파인들과 타협하여 뇌물을 받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이놈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우리를 풀어 주지 않으면…….”
“당신들의 죄는 서녕지부로 향하여 차근차근 파악할 것이고, 만약 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면 풀어 줄 것이오.”
귀도방의 간부 괴자인이 인상을 찌푸린다.
이래서 그를 처리하려 했다. 등위군의 전임자와는 적당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파와 정파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 무의미하게 피를 흘리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등위군의 전임자는 적당히 받아먹을 것은 받아먹고 귀도방의 행차에 간섭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등위군은 다르다.
그는 평화를 위해서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이렇게 크게 키우곤 했다.
‘애당초 먼저 공격한 것은 저놈이 아닌가?’
괴자인이 인상을 찌푸린 채 황극린을 바라본다.
“네놈도 암영대냐?”
“아니.”
암영대가 아니면 더 상급 부대에서 나온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일이 꼬인다. 귀도방주는 무림맹 서녕지부에도 연이 어느 정도는 닿아 있다. 하지만 그 윗선까지는 처리하기 힘들다.
“그럼 무림맹 어디 소속이지?”
“알아서 뭐 하게?”
“감히 겁도 없이 귀도방의 간부인 나를 선공한 놈이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난 무림맹 소속이 아니다.”
“그래? 그럼 어디 문파 출신이지? 응? 청해성 출신은 아닌 듯한데…….”
“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
“그래? 언젠가 네놈의 말을 후회하도록 해 주지.”
황극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등위군이 황극린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서녕에 가면 지부가 있으니 아무리 귀도방이라도 황 소협께 손을 쓰진 못할 겁니다.”
황극린이 고수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귀도방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다. 등위군이 굳이 먼 서녕지부까지 저들을 압송하는 것도 확실히 일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걱정하지 않소.”
“그럼 다행입니다. 오늘 저녁쯤엔 서녕지부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서녕에 도착하기 전까지 귀도방의 방도들이 그들을 가로막거나 하진 않았다. 암영대 4조의 조원들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림맹 지부에 도착하는 순간.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바, 방주님!”
귀도방의 두 무인이 누군가를 보고 소리쳤다.
그곳에는 마치 도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풍모를 가진 백발노인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잘 훈련된 무인 수십 명이 정렬해 있었다.
“귀도방주가 어떻게 지부에……?”
등위군이 의문을 담아 외친다.
하지만 오히려 돌아오는 건 같은 암영대 조장의 비아냥이었다.
“굳이 귀도방과 척을 져서 어쩌겠다는 건가?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암영대는 사파와의 연결점이라고, 고지식하게 행동해서는 여기서 더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하지 않았던가.”
암영대 2조장 안백리.
그는 처음부터 암영대에 배속되어 서녕지부의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한 무인이었다. 청해성은 중원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었다. 구파일련이 생기기도 전에 곤륜파라는 명문거파가 있었다.
그들은 정파를 표방하긴 했지만, 화산파나 무당파와는 확실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익히는 무공은 도가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살생을 최대한 지양하는 도가 문파와는 다르게 최대한 적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속세지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곤륜이 혈마교의 습격에 멸문한 이후, 청해성엔 정파를 표방하지만 사파처럼 행동하는 중소문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귀도방도 그중 하나였다.
굳이 따지자면 귀도방은 사파로 분류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무림맹 서녕지부와 은밀하게 연을 맺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사업을 무림맹에서 훼방을 놓지 않게끔 하도록 매년 거액의 상납금을 준다. 물론, 정식 장부에는 기입하지 않았다.
등위군은 명확히 정파인의 관점으로 귀도방을 바라보았고, 2조장 안백리는 청해성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적당히 타협하라 했었다.
그리고 오늘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일머리가 없는 자네가 사고를 칠 줄 알았건만…….”
“안 조장, 내가 잘못했다고 했나?”
“그럼 귀도방을 공격하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자네 하나 때문에 정사대전이라도 일어나야 한다는 건가?”
“그래서 매복하고 살기를 내뿜고 있던 이자들을 놓아줘야 했다는 건가?”
매복과 살기라는 말에 조금 당황한 안백리였지만, 금세 빈틈을 찾아낸다.
“뭐야, 매복과 살기?”
“그렇다.”
“자네가 그걸 알아채고 저들을 ‘선공’한 것인가?”
공격한 것은 황극린이다.
하지만 등위군은 굳이 자신을 구해 준 그에게 부담을 씌우고 싶진 않았다.
“그래.”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십오 장 정도…….”
“크크크, 크크크큭……!”
2조장 안백리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는다.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해야 믿어 주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정리하면 십오 장 밖에서 매복하고 있던 귀도방도들의 살기를 알아차리고, 자네가 그것을 제압했다는 말이지?”
“…그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자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않아?”
귀도방의 방주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은 채, 뒷짐을 지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건…….”
“자네는 감찰을 받아야 할 거야. 함부로 권력을 남용한 죄로 말이야.”
“뭐라고? 그게 무슨…….”
등위군이 당황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청해성이 아무리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여긴 무림맹의 지부다. 귀도방은 확실한 사파였다. 그런데 자신을 감찰한다고? 그럼 수하로 둔 조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감찰 기록이 있고,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면 승진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조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제 막 무림맹에 입맹한 조원들은… 여기서 윗선에서 찍히면 평생 조원급에서 머물다 은퇴하게 될 것이다. 그런 미래를 어찌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만뇌문의 황극린은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온갖 조사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두 주먹을 꽉 쥐는 등위군.
‘이건 아니야. 그렇지만…….’
하지만 막무가내로 윗선에 들이박을 수는 없었다.
그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고지식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 정의롭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예전부터 귀도방의 악행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적당한 선에서 간섭만 할 뿐,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진 않았었다.
황극린 덕에 기회가 생겨 떠밀리듯 행동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조원들의 앞날을 위해 뒤로 물러서느냐.
등위군이 선택하려는 순간이었다.
“여긴 사흑련의 서녕지부인가?”
누군가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히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사실이 그러하다는 듯이 말할 뿐이다.
“뭐라? 사흑련?”
2조장 안백리가 성난 얼굴로 황극린에게 다가간다.
감히 무림맹의 지부에서 사흑련을 들먹여? 제정신인가?
“지금 뭐라고 했나?”
“사파들과 뒤에서 작당하고, 오히려 성실한 무인을 핍박하니 사흑련이라 생각했을 뿐이오.”
“감당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지금 어디에서 네놈이 지껄이고 있는지 아느냐? 여기는 정파 무림의 심장 무림맹의 서녕지부다! 난 서녕지부 암영대의 2조 조장이고……. 네놈의 소속은 어디지? 어디 문파 출신이냐?”
안백리가 위압적인 목소리로 황극린을 압박한다.
만약 별것 아닌 문파의 출신이라면 없던 죄도 만들어서 뇌옥에 처넣을 수도 있었다. 조장의 직위는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봐 가면서 사용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하다.
“황극린.”
“황극린이라고?”
“만뇌문의 황극린이다.”
그의 기척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분명히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사라지는 기묘한 현상에 안백리가 당황한다.
그리고 멀찍이 뒤에서 상황을 즐겁게 구경하던 귀도방주의 표정이 굳는다.
‘고수.’
고수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안백리는 야비한 성격 탓에 중원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황극린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매번 정찰과 경계 임무로 몸을 혹사하는 등위군과는 다르게 말이다.
“권룡(拳龍) 황극린……?”
권룡 황극린.
후기지수 중에서도 최고 반열에 든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룡의 별호.
그는 최근 펼쳐졌던 화산파 용봉지회의 우승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