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85화 (85/316)

85화 초감각

모용가아는 대(大)모용세가의 대공자로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으며,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해 왔다. 내공심법을 익히기도 전에 가문의 원로들에게 벌모세수를 받았고, 내공심법을 익힌 후에는 틈만 나면 진귀한 영약을 취해 왔다.

애초에 그는 중소문파의 출신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삼류부터 시작하여 초절정 이상의 고수까지 널려 있는 것이 모용세가다. 모용가아는 원하는 상대와 비무할 수 있었으며, 이미 무림에서 명성을 널리 떨린 고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가 후기지수 중에서 으뜸이라는 칠룡에 속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모용가아는 자신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감이 말이다.

그런 자신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수많은 비무에서 승리해 왔다. 쥐뿔만 한 재능만 믿고 까불던 중소문파의 대제자나 구파일방의 제자들까지 그의 검에 무릎을 꿇었다.

그랬기에 그는 벨 만한 상대를 찾아왔다.

팽여해나 운평자 등이 벨 만한 상대였다. 어중이떠중이들은 이제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이젠 자신과 비슷한 출발선의 상대에게 승리를 쟁취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는 언젠가 천하칠대고수가 될 것이며, 모용세가를 천하육대세가 중 으뜸으로 만들 일만 남았다.

화산파에서 개최되는 용봉지회는 그 초석이 될 것이다.

그래도 섬서성 화음현에서 개최되는 만큼 화산의 대제자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보기 좋게 그를 베어 버릴 것이다.

‘황극린, 넌 제물에 불과하다.’

만뇌문이라 했던가?

당연히 들어 본 적도 없다. 가문의 무인을 시켜 알아보니 남창에서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무가(武家)에게 중요한 건 선함 따위가 아니다.

강력한 힘.

그것이 전제되어야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모용가아는 황극린에게 그걸 알려 주려 했다.

용봉지회 본선의 첫날.

모용가아는 황극린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늘로 그에게 느낀 굴욕감은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자신에게 베여 버린 상대에게 분노를 느낀다는 것도 웃기지 않겠는가?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 * *

“우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

화음현 최중심부에 만들어진 비무장은 수천 명의 관중을 수용할 만큼 넓었다. 예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활기가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모용가아는 비무장으로 나아가며 귀빈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무림의 명숙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무장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 정파라는 틀 안에 속한 동맹이었지만, 저들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는 걸 모용가아는 잘 알고 있다.

‘다들 잘 보시오, 모용세가의 검을.’

그는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뼈를 깎는 수련을 했다. 뛰어난 재능과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서 검을 갈고닦아 무엇이든 벨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모용가아가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며 비무장 위에 오르자 관중이 탄성을 터트린다.

“모용가아다아아!”

“잘생겼다!”

“멋지다아아아!”

모용가아가 정갈하게 동서남북으로 포권지례로 예를 표했다.

겸손의 미덕을 모를 정도로 아둔하진 않았으니까.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테지만, 관중에게 호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언젠가 대모용세가를 이끌 수장이었으니까.

‘남창에서 만뇌문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던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고작해야 현 하나.

모용세가는 중원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 문파였다. 그 차이를 오늘 뼈저리게 알려 줄 것이다.

‘예로부터 용봉지회는 구파일련과 육대세가의 잔치였다. 너희 같은 중소문파의 나부랭이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지.’

그들은 주인공을 빛내 줄 장식품에 불과하다.

‘오는군.’

오늘 모용가아를 빛내게 해 줄 장식품이 비무장에 오른다.

최근 황극린도 화음현에서 꽤 입지를 쌓은 상태였다. 여러 소문이 겹치고 겹쳐 그가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대다수가 오늘 비무에서는 모용가아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천하육대세가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황극린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 벽을 뛰어넘기엔 힘들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내라!”

“오늘도 좋은 비무를 펼쳐라!”

“모용가아가 상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줘!”

황극린은 그들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비무장에 올라 모용가아와 마주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포권지례로 예를 표하고, 심판을 보는 화산의 장로가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쳤다.

때애앵.

환호성이 일순간 사라지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비무장에 집중한다.

“모용가의 검은 극한의 쾌(快)를 추구합니다. 건곤파섬검(乾坤破閃劍)의 속도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좇을 수 없으니 주의하십시오.”

모용가아가 조언하며 황극린에게 말한다.

이렇듯 조언을 해 주면서 승리까지 쟁취하면 관중에게 더 좋은 평을 얻을 것이다.

“그렇소?”

“방심하다간… 중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저도 본선이니만큼 적당히 하진 않을 겁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좋습니다.”

먼저 몸을 움직인 쪽은 모용가아다.

그는 천천히 황극린의 주위를 배회하며, 틈을 노리고 있었다.

‘틈 하나가 보이면 두 곳을 벤다.’

건곤파섬검(乾坤破閃劍).

하늘과 땅을 가를 정도로 빠른 극한의 쾌검. 모용세가의 가주가 될 이만 익힐 수 있는 절세의 검법이다. 틈을 보이는 순간, 황극린에겐 두 곳의 상처가 생겨날 것이다.

타닷!

‘모조리 틈!’

그리고 모용가아의 눈에는 황극린의 전신에서 틈이 보였다. 어디를 공격하든 황극린은 방어할 수 없으리라. 마치 구름 속을 유영하듯 부드럽게 황극린에게 접근한 모용가아가 황극린의 가슴을 노리고 검을 찌른다.

“꺄아아악!”

관중이 비명을 터트린다.

너무도 빠른 검의 움직임에 대부분 모용가아의 움직임을 놓쳤다. 순간적으로 모용가아의 검이 황극린의 가슴을 꿰뚫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가슴을 꿰뚫은 줄 알았던 검은 찰나의 차이로 빗나가 황극린의 옷깃만 베어 냈을 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순식간에 검을 회수한 모용가아가 황극린이 옆으로 검을 휘두른다. 처음엔 우연으로 피했다고 한들, 이것마저 피해 낼 수는…….

“……?”

하지만 모용가아의 손에는 전해지는 감각이 없었다.

아무것도 베지 못했다는 건가? 그는 절대로 대충 검을 휘두른 게 아니었다. 작정하고 황극린의 몸을 베어 내기 위해서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황극린은 이번에도 간발의 차이로 그의 검을 피해 냈다.

그리고.

“헙!”

검과 권의 거리는 다르다. 검은 상대를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권을 사용하는 자는 상대에게 접근하려 한다. 가까이 붙으면 권의 승리다. 하지만 검을 쓰는 자를 따라가지 못하면 권의 일방적인 패배가 된다.

그렇기에 보법은 중요하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발을 움직이느냐. 그것이 권과 검의 첫 번째 싸움이다.

그런데 기묘할 정도로 황극린의 보법은 은밀하고 빨랐다. 모용가아가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려 황급히 검을 찌를 정도로 말이다.

쉿! 쉿! 쉿!

유령섬쾌(幽靈閃快). 황극린이 접근해 오는 방위로 세 번 검을 찔렀다. 황극린은 감히 거리를 좁히지 못할 것이다. 극한의 쾌검에 찔리지 않으려면 뒤로 물러서야 할 것이다.

“……!”

하지만 모용가아의 착각이다.

황극린은 유령섬쾌의 초식을 피해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틈을 파고든다. 그 말은 황극린이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쾌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는 뜻이었다.

‘제기랄!’

마음이 급해진 모용가아가 더 많은 내공을 끌어 올린다. 막대한 내공으로 만들어진 반탄지기는 황극린의 강력한 권격을 방비해 낼 수 있으리라. 한 번만 맞으면 다시 자신의 차례가 온다.

퍼억!

“컥!?”

예상보다 황극린의 권격의 위력이 너무 강하다.

내장이 찢어지는 고통. 이것 때문에 구강룡이 두 방 만에 패배했던 건가? 분명히 반탄지기를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모용가아는 순간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그를 지탱하고 있는 건 오랫동안 수련한 강인한 육신과 단전을 채운 막대한 내공이었다.

‘더는 맞으면 안 된다.’

몇 합 겨루지도 않았건만 황극린에 대한 모용가아의 생각이 뒤바뀌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구강룡처럼 맞다가 패배할 수 있었다. 반탄지기를 두르지 않았다면 주먹 한 방에 쓰러졌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무조건 거리를 벌려야 해.’

모용가아는 작정하고 내공을 끌어 올린다. 내력을 많이 소모할수록 육체의 반응이 빨라진다. 모용가아는 어릴 때부터 진귀한 영약을 취해 막대한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즈으으으!

단전의 내공이 손끝, 발끝까지 전해진다. 또한, 모용가아의 검에 더욱 짙은 푸른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검강이다!”

관중이 외쳤지만, 귀빈석에서 비무를 관전하는 무인들은 알고 있었다. 저것은 검강은 아니다. 하지만… 맨몸으로 저 검에 맞았다간 위험할 수도 있는 강렬한 검기였다.

“하아아압!”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모용가아는 최선을 다해 비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황극린도 마찬가지였다.

‘극한의 쾌검이라…….’

* * *

비무장이 긴장된 침묵에 휩싸였다.

유력한 우승 후보의 비무. 확실히 좋은 경기를 보여 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근소하게 모용가아가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모용세가의 대공자 모용가아가 더 뛰어난 게 아니었다.

거기다 근소한 차이였느냐?

지금 펼쳐지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모용가아는 황극린의 주먹을 허용한 이후 완전히 다른 기세를 분출하며 비무에 임했다. 비무를 실전처럼, 패배하면 죽는다는 마음가짐. 관중들은 모용가아의 눈빛에서 그 진중함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모용가아는 황극린을 상대로 반격을 시작하는 듯했다.

그가 뿜어낸 화려한 검기가 깃든 검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 될 것이 뻔했다. 황극린은 그 검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거리가 벌어졌으니 검을 사용하는 모용가아의 시간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황극린이 그의 검격을 모두 피해 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허어억… 허어억……!”

조금 전, 건곤파섬검의 오의 맹룡파하(猛龍破河)를 펼쳐 냈다.

공간을 수놓는 수백 번의 검격과 검에 깃든 푸른 기운이 황극린의 몸을 난자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관중들은 곧 알게 되었다.

황극린이 그의 쾌검을 모두 피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의 안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검격. 마치 수십 개의 검이 동시에 황극린을 찌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간발의 차이로 그의 맹룡파하를 모두 피해냈다.

“대체… 어떻게… 내 검을 피해 낼 수 있는…….”

모용가아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다.

처음 그를 몰아내고 거리를 벌렸을 때만 하더라도 승리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모용가아는 황극린을 압박했다.

하지만 거리를 벌리면 뭐 하는가?

상대는 공격을 모두 피해 내는데 말이다.

대체 어떻게?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극한의 쾌검. 쾌검이 왜 무섭나?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용가아는 심각하게 가문의 절기가 외부로 유출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말이 되는가?

어찌하여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발로, 인간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검을 ‘모두’ 피해 낼 수 있겠는가?

“건곤파섬검의 초식을 알고 있는… 건가……? 허어억…….”

황극린이 당최 검에 닿질 않으니 모용가아는 가진 것을 모두 펼쳐 냈다.

내공도 체력도 모두 바닥이다.

그런 모용가아를 충격으로 빠트리는 말이 황극린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처음 보는 무공이오.”

“거짓… 거짓말…….”

“내가 모용세가의 무공을 어찌 알겠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황극린의 말이 맞다.

모용가아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평생 갈고닦은 쾌검을 모두 피해 내는 황극린이라는 존재 자체를 말이다. 구파일련 출신도 아니고 하물며 명문가 출신도 아니다. 그는 새로이 만들어진 중소문파에서 처음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흔한 후기지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 존재가.

어떻게.

천하육대세가 중 하나인 모용세가의 대공자의 검을 모두 피해 낼 수 있는가?

“말도 안 돼……!”

사실 황극린이 초감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의 검을 모두 피해 내진 못했을 것이다. 현재의 황극린은 무공의 경지도 경지였지만, 영약의 특성을 취하여 환골탈태한 것이나 다름없는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무공의 경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을 초월한 육신.

과거 살수였던 207호는 가지지 못했던 최고의 무기였다.

“이제 그만 쉬시오.”

“그럴 순… 없… 컥!”

모용가아의 검을 피해 내는 와중에 황극린은 수차례 그의 턱과 복부를 가격했다. 하지만 확실히 명문가 출신이라 그런지 황극린의 예상보단 오래 버틴 편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질 것이다.

물론, 강해지는 건 황극린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말이다.

“황극린의 승리!”

조용했던 비무장이 환호로 가득찬다.

예상 밖의 결과다. 대부분 모용가아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비무는 황극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압도적인 1강의 탄생이다. 새로운 용(龍)이 탄생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아아아아아-!”

관중의 함성 속에서.

전음이 들려온다.

- 자네, 잠시 시간 좀 내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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